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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화 〉8장 - 호환 (虎患) (105/341)



〈 105화 〉8장 - 호환 (虎患)

당황하지 말자, 당황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지금  장면도 두 번 정도 봤던 것이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허둥거리거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다면 무조건 망한다.
율리아가 분노하여 일갈을 내뱉는다거나 아니면 실망이라면서 문을 박차고 나가지는 않는다.

그보다도 더욱 무서운 일, 그리고 남자 입장에서 가장 불편한 일이 기다리고 있게 된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묘한 시선으로 쳐다보다가 계속해서 은근히 돌려 까는 거.’

당해보면 정말 사람 환장하게 만드는 일이다.
멀쩡히 대화하다가 갑자기 그 때 일을 언급하면서 세게 명치를 때리고.
그러다가도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상으로 복귀.
거기에 또 맞춰주면 ‘기분 좋나보네요?’ 라고 다시금 기습 공격.

다른 여인도 아니고 율리아가 하는 것이라 더더욱 숨이 막혔다.
 번 그렇게 당한 이후로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길 만한 건수도 잡히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얼마나 다짐했던가.



“후우.”

클라우스는 일단 한숨부터 내뱉었다.
표정 연기에 발동을 거는 신호탄이라고 할  있었다.



“갑자기 한숨은 왜 쉬는 거죠?”
“당신 때문에요, 율리아.”
“네?”
“이번에 나가서 당신의 자금난을 해결하고자 귀찮은 일들에 많이도 휩쓸렸습니다.”
“그게 무슨… 지금 자금이라고 했나요?”

고개를 끄덕이자 율리아는 아아, 하고 탄식을 내뱉고는 손가락을 만지작거린다.
그녀도 마왕치고는 가난해도 너무 가난하다는 것을 진작 알고 있는 중이었다.
몇  남은 충성파들이 역성 혁명파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 하는 이유에는 완전히 바닥난 자금도 크게 한 몫을 하고 있었다.

싸움도 결국 돈이다, 돈이 없으면 싸우다가 제풀에 주저앉게 된다.
이미 마왕가의 자산은 그녀의 숙부에 의해 모조리 비워진 상태.
지금 율리아와 몇 안 남은 충신들이 가지고 있는 자금은 마왕성만 간신히 유지할 수 있는 정도였다.



“일단 마왕성에 남은 당신의 사람들이 활동할 수 있는 자금은 구해두었습니다.”
“얼마나 되는 자금이기에 그리….”
“넉넉지는 않지만 대충 말하자면 대략 3천의 병사들이 무장을  수 있고 거기에 더해서 한동안 지낼 수 있는 식량을 구할  있는 정도 수준이라고 해두죠.”




그러자 율리아의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3천의 병사들을 무장시킬 수 있는 수준? 거기에 그들이 한동안 지내는 데에 부담이 없기까지 한 자금을 구했다고?
이건 율리아 입장에서는 갑자기 하늘에서 돈이 쏟아져 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정도 자금이면 바짝 메말라버린 마왕성에 한 줄기 단비와도 같은 것.
그걸 넘어서서 우물에 물이 어느 정도 들어찼다고도 볼 수 있는 수준이다.


“도대체, 도대체 그런 많은 자금을 어디서… 설마 귀족들에게서 강탈한 건 아니겠죠?”

꽤나 실현 가능성이 있는,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실제로 대륙 전쟁 당시 군자금이 부족해지자 클라우스는 남부 귀족들을 찾아갔었다.
그리고는 전시에서의 사령관 권한으로 그들의 재산을 징발했던 적이 있다.


덕분에 제때 남부군이 배를 곯거나 무기가 다 망가지는 일은 없었다지만.
반대로 귀족들의 클라우스에 대한 경계심은 그 날을 기점으로 더욱 더 높아졌다.
감히 평민 주제에 이제는 귀족들의 성에까지 막 들어오는 놈이라고.
전쟁이 끝나면 반드시 이번 일의 책임을 물을 거라고 으르렁거리면서.

“설마요. 지금은 전쟁 중도 아니고 나는 사령관이 아닙니다. 귀족의 물건에 손끝이라도 댔다가는 당장 그대로 잡혀서는 끌려갈 걸요?”



당연히 끌려가지는 않는다.
과거 전쟁 영웅이라는 점은 밀어두고서라도 클라우스가 어떤 이의 비호를 받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어지간한 귀족은 오히려 클라우스를 슬슬 피해 다닐  분명한 상황이었다.

“…당신을 끌고 간다면 내가 쫓아가서 박살을 내놓을 거예요.”




 와중에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율리아였다.
웬 개새끼들이 자신이 침을 듬뿍 발라둔 남자를 건드린다면.
정말로 쫓아가서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아무튼 귀족들에게서 뜯어낸 돈은 아니라는 것이군요.”
“어디까지나 정당하게 거래로  돈입니다. 당신이 걱정할 일이 없을 거예요.”
“…정확한 출처를 말해줄 수는 없는 건가요?”




클라우스가 제대로 된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뭔가를 숨기려고 한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린 율리아.
여인의 질문에 어쩔 수 없다는  침음을 내뱉고는 입술을 뗀다.



“실은 왕국에서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뒷골목 세력과 손을 좀 잡았습니다.”
“…범죄 조직이라도 되는 건가요?”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죠. 지금은 양지에서도 활동하고 있지만 그들의 시작은 항상 음지이고, 그 음지에서 벌일 수 있는 일은 불법적인 게 대부분이니까요.”
“당신이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었나요? 그래도 천하의 클라우스인데….”
“당장 내 주군이 곤란한 상황인데 자존심 챙길 여력은 없습니다, 율리아.”


이게  너를 위한 것이라고, 너 하나 때문에 벌인 일이라고.
은근한 어조로 그리 말하니 바로 눈치를  율리아는 슬그머니 클라우스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그의 품에  안기고는 제 남자를 껴안으면서 중얼거렸다.



“쓸데없는 짓을 했어요. 내가 고작 한두 푼이 아쉬워서 내 사람의 자존심까지 파는 여자로 보이나요? 차라리 내 몸을 팔지언정  사람들을 버리지는 않을 거예요.”
“…미안합니다, 율리아.”
“알면 됐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매번 당신에게 빚만 늘어나네요.”

율리아는 그렇게 몇 분을 클라우스를 껴안은 채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클라우스가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자 그제야 탄식을 내뱉고는 떨어질 정도였다.


“하루 자리를 비운 사이에 무슨 일은 없었겠죠.”
“세실리 레블랑이 당신을 애타게 찾더라고요. 겉으로는 대련이니 강의니 하던데 보면 몰라요?  봐도 다른 이유로 당신을 찾는  보이던데.”



그 부분에 대해서 딱히 대답은 하지 않는다.
다만 미소를 짓고는 율리아를 안은 채 옆에 있는 쇼파 위에 앉는 게 다였다.



“이렇게 보면  무서운 남자네요. 그 짧은 시간에 나는 물론이고 나타샤에 세실리까지. 물론 그럴 만한 자격도 있고 능력이 있으니 뭐라 할 말은 없지만요.”
“먼저 다가온 건 율리아 아닌가요? 마치 내가 유혹한 것처럼 말하네요.”
“그렇긴 하지만 결국 내가 당신에게 더 혹했잖아요. 그러니까 굳이 따지자면 당신이 나를 유혹해서 결국 넘어트린 거예요, 클라우스.”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먼저 다가와서는 달콤한 냄새를 뿌리던 게 누구인데.
조금은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은 그대로 넘어가기로 했다.
여인의 말에 꼬투리를 잡아봤자 이로운 거 하나 없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니까.



“그보다… 더 해줄 말 없나요?”
“글쎄요. 대충 할 말은 다 한 것 같은데.”
“아직 하나  해줬어요. 하나가 남았다고요, 클라우스.”



율리아의 말에도 클라우스는 짐짓 모르는 척을 해보였다.
자신은 이해를 하지 못 하겠다는 듯, 감을 잡지 못 하겠다는  말이다.




“…예전에 당신의 부관이라고 했던. 그 수인 여자.”


결국 이번에도 먼저 입을 연 건 율리아 쪽이었다.
그녀는 볼을 부풀리고는 클라우스의 무릎 위에 걸터앉은 다음에 얼른 말하라는 듯 최대한 매서운 눈동자를 해보이곤 말을 이었다.


“그 여자를 만난 거죠. 그리고 그 여자랑, 꽤나 가까운 거리까지 닿았던 거죠.”
“…네, 맞아요.”
“그게 끝이에요? 아니잖아요. 더 자세하게 말해 봐요.”
“슬슬 내 부관을 곁으로 불러들일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동안 귀족들 쪽에 붙어서 정보를 전달해주고 그들에게는 거짓 정보를 흘렸거든요.”
“…무척 충성스러운 여인이네요.”

클라우스는 일부러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율리아에게 아주 보란 듯이, 무척이나 흐뭇하다는 그런 미소 말이다.

“….”




덕분에 율리아의 얼굴이 조금씩 굳어가고 있었다.
자신에게만 보여주는 줄 알았던 미소가 다른 여인을 위해서도 지어진다.
그리고 자신 앞에서 다른 여인의 칭찬에 아주 확실하게 긍정까지 하고 있다.
이러면 애써 아무 생각 안 하려고 했던 마음에, 질투라는 불씨가 튀지 않겠는가.

“그런 카엘라를 불러서 일을 맡겼습니다. 일종의 시험이었죠. 그리고 그녀는 아주 보기 좋게 합격을 했고 이제는 내 곁으로 돌아와도 되겠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마 조만간 남은 일을 전부 마치고 아카데미로 오게 될 겁니다. 교수를 보조하는 조교로서 말이죠.”

점점 굳어가는 여인의 마음은 전혀 모른다는 듯.
남자는 제  말만 계속해서 늘어놓고 있는 중이었다.
율리아는 슬며시 제 입술을 깨물면서 불편하다는 기운을 숨기지 않았지만.

“괜찮은 여인이니 잘 대해주세요. 무척이나 충성스러운 수인이랍니다. 무엇보다… 읍.”

어찌 된 일인지 클라우스는 끝까지 율리아의 속을 살살 긁어대는 중이었다.
결국 더는 참지 못 하겠다는 듯 율리아가 제 손으로 남자의 입술을 막아버린다.
그리고는 갑자기 이게 뭐하는 짓이냐는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남자를 노려보던 그녀는.



“내 앞에서 다른 여자 칭찬, 적당히 하라고요. 짜증나게.”



라고 으르렁대더니 더는 못 참아주겠다는 듯 바로 제 입술로 남자의 입을 덮어버렸다.
클라우스가 살짝 당황한 눈빛을  채 눈을 깜빡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율리아는 제 짜증이 조금은 풀어지는 걸 느꼈다.

여태까지는 계속 자신을 몰아붙이던 클라우스였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역공을 가했다.
그리고  역공이 보기 좋게 성공적으로 들어갔다!


츄릇- 츄륵-.

심지어 키스의 주도권도 율리아가 완벽하게 쥐고 있다.
이리저리 남자의 혀를 굴리면서 한껏 약을 올리던 율리아는 클라우스가 막 주도권을 채가려고 하는 순간 혀를 빼내고서는 상당히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의도한  아니었지만 어쩌다보니 자신이 클라우스의 위를 점하고 그대로 올라탄 모습이다.
거기에서 또 묘하게 쾌감을 얻은 마왕은 제 혀로 붉은 입술을 축이며 속삭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네요, 클라우스. 감히 왕인 나를 두고 다른 여인과 붙어있다 오다뇨.”
“그냥 일 때문에 만난 겁니다. 정말 하늘에 맹세코 아무런 일도 없었어요.”


그래, 이번만큼은 정말 아무런 일도 없었다.
그래서 클라우스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당당하게 맹세까지 언급할  있었다.
율리아는 그런 남자의 반응을 잠시 살피다가 아무래도 좋다는 듯 제 상의 단추를 풀어냈다.



“아무튼 당신은 내게 모욕감을 줬어요. 나를 두고 다른 여자에게 미소를 짓다니. 그런 짓을  거면 내가 없는 곳에서 해요. 내가 보는 앞에서 그런 표정을 짓는다니. 너무 한 거 아닌가요?”




툭, 투툭-.


율리아의 손길이 제 셔츠를 시작으로, 이제는 클라우스의 셔츠로 넘어왔다.
아주 재빠르게 단추들을 풀어내고는 남자의 상의를 한 번에 풀어헤쳐버린다.
그리고는 그 품에 와락 안겨들면서 선언하듯이 입술을 뗀다.




“나 이외의 어떤 여자하고도 가까이 있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요. 그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인 걸 아니까. 하지만 적어도 내 앞에서는 나한테만 집중해요. 그게 내 조건이야. 무조건 내가 먼저야. 나한테 먼저 웃어주고, 나를 먼저 안아주고, 무조건 내가 먼저에요. 알겠어요?”



클라우스는  위에 올라타서는 여왕 포스를 철철 흘리시는 율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잘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좋아요. 그러면 이제 뭘 해야 할지, 감이 잡히겠죠? 클라우스?”


언제 또 치마에 팬티까지 벗어버린 건지.
손에 들고 있던 팬티를 뒤로 휙! 하고 던져버리는 율리아였다.

꽤 화가 난 표정을 하고 있지만, 실은 얼른 하고 싶어서 미치겠다는 속마음을 감춘 여인.
그런 율리아를 바라보면서 클라우스는 잘 알고 있다고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럴 줄 알고 어제 밤에 일부러 허리를 놀리지 않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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