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8장 - 호환 (虎患)
“어때. 혹 몸을 움직이는 데에 불편한 점이라도 있나?”
“없습니다. 오히려 헐렁거리는 느낌이 없어서 훨씬 좋네요.”
늘씬한 몸매의 미녀가 검은 가죽옷까지 입고 있으니 어디 계의 형사 같은 모습이다.
다만 다른 부분이 있다면 거기서는 붙잡혀서 이런저런 일을 당하곤 하지만.
오늘 출동할 이 호랑이는 그냥 죄다 찢어죽이고 물어죽이기에 바쁠 것이다.
몸을 이리저리 돌리던 카엘라는 쥐고 있던 손을 가볍게 펼쳤다.
그러자 스릉! 하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시퍼런 예기를 뿜어내는 손톱이 모습을 드러낸다.
어지간한 칼날보다도 더욱 날카롭게 연마된 그 무기를 바라보면서.
클라우스는 잠시 후 뒷골목에서 울려 퍼질 비명을 낼 주인공들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사령관님. 사령관님의 말씀대로라면 이번 작전은 전투가 아니라 사냥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겠지.”
“허면 사냥의 은밀함을 위해서 되도록 신발은 신지 않는 게 어떨까 합니다만….”
“….”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라는 뜻으로 시선을 보내니 카엘라는 실언을 했다는 듯 고개를 숙인다.
한숨을 한 번 내뱉은 후 손짓으로 호랑이 여인을 앞으로 불러낸다.
“앉아. 발 내밀고.”
“호, 혼자 할 수 있습니다!”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인데. 불복종할 생각이냐?”
그러자 카엘라는 다급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직후 자리에 앉아서는 여전히 부끄러워 죽겠다는 표정을 한 채 다리를 뻗었다.
“말했다시피 이건 전투가 아니라 사냥이다. 하지만, 굳이 최고 수준의 은밀함을 갖출 필요는 없어. 오히려 너무 조용히 일을 끝내면 전해지는 충격이 덜 할 거다.”
“무슨 말씀이신지….”
“그러니까.”
카엘라의 발에 양말과 가죽신발을 신겨주고는 말을 잇는다.
“놈들과 붙어먹었던 놈들이 두려움을 가지고 앞으로는 찍소리도 못 내고서 조용히 지내게 만들라는 거다. 다 죽이기에는 너무 많을뿐더러 잡다한 놈들 하나, 하나까지 사냥할 필요도 없지 않겠냐.”
“저는 괜찮습니다, 사령관님.”
“내가 안 괜찮아. 한 번 해서 끝낼 수 있는 일을 왜 여러 번 시켜. 난 그거 딱 질색이다.”
그렇게 말한 후 카엘라에게 기상, 이라고 속삭이는 클라우스.
신발이 헐렁거리지는 않는지 확인해보라는 말에 카엘라는 콩콩거리며 제 발에 신겨진 것을 확인해보고는 이 정도면 괜찮겠다고 답했다.
“너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지만 조금은 마음이 불편하군.”
“사령관님께서는 아무런 걱정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난 내 부관이 뛰어난 전사였으면 하지 학살자가 되는 건 유쾌하지 않아서 말이다.”
“저는 뛰어난 전사도, 잔혹한 사냥꾼이나 학살자도 상관없습니다. 그냥 사령관님의 명을 따르는 충실한 부관. 그거 하나면 족합니다.”
계속해서 은근히 네가 신경 쓰인다, 라는 부분을 언급하는 클라우스였다.
어찌 되었든 고양잇과답게 대놓고 들이대는 애정 표현은 부담스러워한다.
이 여자가 가장 부끄러워하면서도 좋아하는 건 이렇게 걱정해주면서 돌려 챙겨주는 것.
비록 하는 말이나 행동은 차가울지 몰라도 너를 챙기는 것만큼은 진심이다, 뭐 이런 느낌이 드는 부분이라면 충분하다고 할 수 있었다.
“카엘라.”
이런 궂은일까지 기꺼이 하는 충성스러운 여인을 언제까지 귀족들 틈에 던져둘 수는 없다.
몇 년 동안은 인내심을 기르기 위해 그들 곁에 두었다고 하지만, 더는 그녀에게 무리다.
거기에 얼마 후면 한미친 귀족 놈이 변태적인 성향을 드러내게 된다.
카엘라에게 약을 먹여서 그대로 범하려고 하는 것이었는데, 그 전에 카엘라를 빼내지 않으면 함정임을 알아챈 호랑이가 격노해서는 아주 쑥대밭을 만들고 만다.
아니면 그 귀족 놈을 미리 죽여 없애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었지만 그쪽 부분은 짊어져야 할 리스크가 조금 더 컸다.
“이번 일이 끝나고 대충 정리한 후 내 곁으로 돌아와도 좋다.”
그래서 이제는 슬슬 호랑이를 다시금 주인 곁으로 불러올 때였다.
“저, 정말이십니까?”
“그래. 단, 조용히 돌아오도록. 괜히 귀족들 함부로 대하거나 다치게 하거나 죽이지 말고.”
이 경고도 반드시 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어떤 회차에서는 돌아오라고 했더니 신나서는 귀족 놈들의 모가지를 들고 온 적도 있었다.
이놈들이 감히 주제도 모르고 사령관님의 욕을 했다나 뭐라나.
덕분에 기껏 불러 넣고는 한동안 숨겨두느라고 온갖 고생까지 치르기도 했었다.
“아, 네. 알겠습니다.”
표정이 묘한 게 이번에도 나올 때 마음에 안 들었던 귀족 놈들 손 좀 봐주려고 했던 모양.
역시 이 호랑이 여인도 결코 정상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면서 클라우스는 진정하라는 뜻으로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또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 카엘라다.
연신 그르릉 소리를 내고 꼬리를 살랑거리면서 너무나 만족스럽다는 속내를 다 내보인다.
사냥에서, 전투에서 자신의 기척을 감추는 것은 그리도 잘 하면서.
정작 이런 부분에서는 숨기는 것 자체가 너무나 힘들다는 고양이였다.
‘이래서 율리아가 은근히 카엘라를 마음에 들어 했지.’
일단 본인이 클라우스와 이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고.
거기에 절대 속내를 감추지 못 하는 그런 순수한 것도 있는 여인이다.
그러하니 율리아 입장에서는 클라우스 옆에 둬도 일단은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
“슬슬 가보겠습니다,사령관님.”
“그래. 창문은 열어둘 테니 오늘 일 끝나면 여기로 돌아오도록 해라.”
“…네, 알겠습니다.”
카엘라에게 있어서 클라우스의 곁이바로 제 보금자리이자 은신처였다.
여태까지 억지로 그곳에서 밀려나 외지 생활을 했던 자신이다.
혹 이번에도 임무를 끝내고 어딘가에서 대기하란 말을 들을까봐 긴장하던 호랑이 여인.
하지만 제 주인이 일을 끝내면 바로 제 곁으로 돌아와도 좋다고 말을 했다.
이런 식이면, 1분 1초가 아쉬워서라도 더더욱 미친 듯이 날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클라우스도, 바로 그 점을 노리고 있었고 말이다.
* * * * * * * * * *
“준비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지?”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눈가에 지독한 화상 자국이 난 남자였다.
보고만 있어도 절로 바라보는 이의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
거기에 여기저기 베이고 패인 상처들이 험악한 인상을 더욱 강조하고 있었다.
“일단 다른 조직들 몇을 포섭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그 망할 년들의 장사를 계속 방해하다보면 결국 그쪽에서 먼저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대답을 한 이는 상당히 약삭빨라 보이는 얼굴의 남자.
수염을 기르기는 했는데 멋진 것도 아니고 그냥 대충 뻗어난 것 때문인지 간신배의 이미지가 절로 떠오르는 그런 얼굴이라고 할 수 있었다.
“형님. 그냥 밀어버리면 안 되는 거요? 우리가 조금 휘둘리기는 했어도 8월 형제들이요. 이 뒷골목 세계를 완력 하나로 꽉 붙잡고 있던 놈들이란 말이오!”
“저도 동감입니다. 그 덜떨어진 년들 그냥 일거에 공격하면 다 무너져 내릴 겁니다. 아무리 독한 년들이라고 한들 정면 힘 싸움에서 우리를 이길 수 있는 없습니다.”
우락부락한 덩치의 남자와 적당히 균형 잡힌 몸의 남자가 그리 말했다.
그러자 눈에 화상 자국이 나있던 남자가 책상을 쾅! 하고 내려치면서 분노를 표출했다.
“지금 이게 애들 패싸움인 줄 아냐? 어? 그대로 밀고 들어가면 뭐 어떻게 할 건데. 그 독한 년들이 지레 겁을 먹고 젖통 다 까고 나와서 ‘어머, 항복할 테니 빨아주세요!’ 라고 할 것 같냐? 멍청한 것들. 우리가 정면으로 밀고 들어가면 그년들은 필시 사방으로 흩어져서 우리 향제들의 출혈을 강요할 거다. 그걸 몰라?”
“모르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길 수….”
“이긴다고 치자. 그래서 그 다음은. 그 독한 년들이랑 싸우면 당연히 우리 애들도 상하는 놈들이 잔뜩 나올 텐데 그러면 그 틈에 다른 조직들이 손가락 빨고 구경이라도 할 것 같아?”
그러자 당장 밀어버리자고 주장하던 남자들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형님이라 불린 이의 말대로, 다른 조직들이 뒤를 노린다면 이겨도 이긴 게 아닐 수 있었다.
오히려 죽 쒀서 개주는 꼴이 될 수도 있으니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잘 들어라, 이 멍청한 것들아. 내가 고작 그년들이 무서워서 이렇게 뒤로 물러나서 준비에 준비를 하고 있는 줄 알아? 그 이후를 생각하는 거다. 우리 8월 형제들은 이미 전쟁에서 한 번 졌던 놈들이야. 그걸 다른 조직 놈들이 다 알고 있어! 그리고 비웃고 다니지! 8월 형제들 8월 형제들. 스스로를 암흑가의 장사들이라고 하던 놈들이 젖통 까고 다니는 계집들에게 홀려서 홀라당 다 내어주었다고! 염병, 부랄 터진 새끼들!”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테이블까지 두드리면서 남자가 외쳐댄다.
덕분에 그 곁에 있던 다른 이들은 바짝 얼어붙어서는 그의 눈치만 살필 뿐이다.
“이번에 그 거미 년들을 몰아내고 다시 우리 것을 취한다고 해도 여전히 다른 놈들은 우리들을 무시할 거다. 그리고 그 무시는 결국 새로운 전쟁을 끌고 오겠지! 한창 때의 우리 8월 형제들이라면 또 모를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아니야! 확실하게 해야 해. 그 거미의 다리 여덟 개를 전부 잘라버리고! 우리 뒤를 노릴 수도 있는 놈들의 손까지 묶어두고! 그래야 한단 말이다, 이 돌대가리 새끼들아!!”
간부란 놈들이 죄다 머리는 쓸 생각을 안 하고 주먹과 몸으로 때우려고 한다.
큰 조직이 돌아가려면 힘만 쓰려 하는 놈은 말단이나 중간까지만 되고, 간부급부터는 몸보다 머리가 먼저 움직여야 하는데 말이다.
‘이러니까 그 젖통 큰 년들한테 밀리는 거 아냐! 머저리 새끼들!’
그래도 다들 자신만 믿고 따라와 준 아우들이니 대놓고 욕은 또 못 하겠고.
도대체 이 놈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었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그나마 똘똘이라고 부르는 놈이 머리가 좀 돌아간다는 것.
만약 이놈조차 없었다면 정말 8월 형제들은 그야말로 공중분해가 되었을 게 확실했다.
“잘 들어라, 이것들아. 일단….”
머리가 고생하는 것보다 몸이 고생하는 게 더 좋다는 놈들.
그런 녀석들을 위해서 보다 더 쉽게 이번 일에 대해서 설명하려던 찰나였다.
콰앙!-
“혀, 형님! 형님! 큰일, 큰일 났습니다!”
“…큰일이어야지. 그게 아니면 지금 내가 널 죽일 테니까.”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남자가 정말 소식을 전하러 온 이를 죽이겠다는 듯 눈빛을 번뜩인다.
어디 그 큰일 한 번 들어보자고 재촉을 하니 내용이 쏟아지는데, 듣고 보니 큰일이 맞았다.
“뭐, 뭐? 지금 뭐라고?”
“지금 어떤 미친놈인지 년인지도 모를 것이 쳐들어와서는 우리 애들을 다 죽이고 있습니다!”“몇 명이나 쳐들어왔기에 여기까지 뚫리고 있다는 거야?”
“하, 한 명! 한 명입니다!”
그 말에 8월 형제들의 주요 간부들이 뭔 헛소리냐고 반문한다.
아무리 뒷골목 깡패들, 양아치들이라고 해도 기본적인 완력은 가지고 있다.
패싸움 한 두 번도 아니고 숫자가 적은 상대를 어떻게 괴롭혀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니고 8월 형제들의 아지트에 쳐들어온 단 하나에게 싹 털리고 있다?
‘새끼들. 또 엄살 부리는군.’
‘이 몸이 나서야 하는 건가?’
‘아, 싸우기 귀찮은데.’
라는 생각을 하는 게 주요 간부들의 생각이었다.
다만 8월 형제들의 큰형님인 눈가의 화상이 있는 남자는 달랐다.
‘…혼자 왔는데 우리 애들을 싹 털고 있다. 아니, 그 전에 아지트를 단 한 번에 찾아왔다? 그동안 우리가 던져둔 미끼가 몇인데. 찌도 흔들린 적이 없는데 이렇게 바로?’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걱정마라. 설마 이 아지트에 개구멍 하나 마련해두지 않았을까.
“형님. 애들이 아무래도 긴장이 다 풀린 모양이오. 내가 나가서 손 좀 봐주고 오겠소.”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아서라. 우리 아지트까지 한 번에 뚫고 들어온 놈이다. 일단 피하는 게 좋겠어.”
“형님. 우리 애들이보고 있는데 다 내뺄 수는 없는 거 아니오! 형님이야 대가리이니 무조건 빠져야 하는 게 맞지만 우리까지 그러면 안 됩니다.”
“저희가 가보겠습니다. 상대가 강하면 대충 빼면 그만이고, 그게 아니면 잡아 족쳐서 끌고 오겠습니다.”
“…그래. 너희 마음대로 해라.”
너무 뒤로 빼는 모습만 보이는 것도 좋지는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허락을 해주니 껄껄 웃으면서 막 방을 나서던 두 남자.
그리고 그게 그 둘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크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