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9화 〉8장 - 호환 (虎患) (99/341)



〈 99화 〉8장 - 호환 (虎患)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어둠이 도시를 삼켜간다.
여관의 방에 앉아서 그 풍경을 바라보던 클라우스는  대신 창문을 열어두었다.
자신의 이동 경로를 본능적으로 숨기는 여인에게 창문이 정문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슬슬  때가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고 정확히 30초가 지난 후, 엄청나게 빠른 몸놀림이 감지되었다.
그 재빠른 몸놀림의 주인공은 건물 지붕과 사이를 막힘없이 오고 가고 지나치면서.
아주 정확하게 클라우스가 머물고 있는 여관으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주인을 만난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달려오고 있을 충성스러운 여인.
그녀를 위해서 클라우스는 미리 마실 물을 준비해두었다.

타다닷!!-


주인의 부름을 받은 호랑이가 당도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언제가 되든 자신을 부를 때만 기다리고 있겠다더니 정말 약속한 때에 나타난 것이었다.



“사령관님.”



창문 너머로 고개만 빼꼼 내미는 호랑이 수인.
쫑긋거리는 귀와 질끈 묶은 머리칼이 무척이나 인상적인 여인.
대륙 전쟁 당시 클라우스의 옆을 보좌하면서 온갖 일을 해왔던 충성스러운 부관.
카엘라 티거의 재등장이었다.

“어서 와라, 카엘라.”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허락이 떨어지자 그제야 2층 창문에 매달려있던 카엘라가 안으로 들어선다.
가볍게 몸을 날려서는 바닥에 착지하는데 발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원래라면 신발로 인해서, 그게 나무로 되어있는 바닥에 닿을 때 소리가 나야 하는데.
전혀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건 결국 하나를 의미했다.




“또 맨발로  거냐.”
“네? 아, 죄송합니다. 신발을 신으면 자꾸 소리가 나서 그랬습니다.”
“그러다 다친다. 특히나 도시 안에서는. 내가 그 부분에 대해서 누누이 말했을 텐데?”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주의토록 하겠습니다.”

빈틈 하나 없이 정말 철저하게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카엘라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뱉은  손짓으로 그녀를 부른다.
호랑이 여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슬쩍 다가오니 클라우스가 말했다.


“발.”
“네?”
“내밀어봐.”

그 말에 잠시 멍한 눈동자를 하고 있던 카엘라.
그러다가 곧 고개를 젓고 손까지 내젓더니 급히 입을 연다.

“더, 더럽습니다! 그리고 사령관님께서 그리 신경까지 쓰실 필요는….”
“있어. 네가 날 여전히 사령관이라 생각하는 것처럼 나는 널 여전히 충성스러운 부관이라고 여긴다. 그런 녀석이 애먼 순간에 부상이라도 입어서. 그리고 그것 때문에 향후 일정에 차질이 생긴다면 그건 널 제대로 관리하지 못 한 내 잘못인 거다.”
“절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오롯이  잘못인 겁니다.”
“물론 네게도 잘못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잘못도 있는 셈이야. 카엘라, 넌 나를 부하 녀석에게 죄를 진 상관으로 만들 생각인 건가?”



절대 아닙니다!! 카엘라가 거의 비명을 지르듯 우렁차게 대답을 했다.
그나마 방음 마법을 걸어두어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도시 한 가운데에서 맹수의 무시무시한 괴성이 울려 퍼질 뻔 했다.



“조용히 말해. 여기는 전장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도시 안이다, 카엘라.”
“아, 넵. 죄송합니다. 사령관님.”
“죄송하면 얼른 발 내밀어.”
“하, 하지만….”
“발  줄 거면 나가라.”

클라우스의 명령이라면 지옥 불에도 들어갈 여인이 바로 카엘라다.
하지만 그런 카엘라도 바로 따르지 못 하는 명령이 바로 발을 보이라는 것.


‘수인들에게 있어 가장 민감한 곳이 귀와 꼬리, 그리고 발이라고 했던가.’


귀는 감각 기관, 꼬리는 균형 장치, 그리고 발은 수인들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속도의 근원.
단순히 민감하다는 말이 성적으로만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있어서 제 목숨만큼 소중한 곳이고 그만큼 조심스럽게 여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때문에 수인들은 귀나 꼬리, 그리고 발을 만지는 걸 특히 싫어한다.
아주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거기를 만지는 실수를 범하면 바로 적으로 규정할 정도다.
당장 클라우스도 회차를 진행한지 몇 번 되지 않았을 때 그런 실수로 카엘라와의 사이가 이상하게 변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물론, 고이다 못 해 석유화가 되어버린 클라우스였기에 끝끝내 공략법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카엘라의 귀나 꼬리, 그리고 발을 만질 수 있게 되었다.
부하의 상태를 살핀다는 굉장히 합법적인 이유를 들이대서 말이다.




“앉아.”

어쩔 줄 모르던 카엘라가 제 주인의 맞은편에 엉덩이를 붙인다.
그럼에도 여전히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니 클라우스가 말을 잇는다.



“발 내밀어.”
“….”
“발.”


계속되는 압박에 그제야 조심스레 다리를 들어 보이는 카엘라였다.

수인답게, 그들 중에서도 특히 강하고 아름답다는 호랑이답게.
카엘라의 다리는 늘씬하면서도 탄탄하게 잘 빠진 모습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입고 있는 복장은 지극히 단순하고 활동하기 좋은, 몸에 적당히 달라붙는 옷.
덕분에 육감적이면서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근사한 여인의 몸매가 여실히 드러났다.


“흐으읏….”

클라우스의 손이 제 발에 닿자 신음을 흘리는 카엘라.
마치 은밀한 곳을 애무 당하는 것 마냥 어쩔 줄 몰라 하는 반응이다.




‘수인들이 특히 발이 예쁘다고 했지.’



아름다운 여인은 손과 발마저 예쁘다고 하는데, 이렇게 보면 확실히 맞는 말이다.
외모나 몸매도 우월한데 이렇게 발마저 예쁘면 솔직히 반칙 아닌가 싶기도 하다.

발의 상태를 살피면서 은근한 손길로 카엘라의 부끄럽고 민감한 곳을 꾹꾹 만져준다.
그럴 때마다 호랑이 여인은 부끄러워 죽겠다는 듯 애타는 신음을 흘려댄다.

“흐으응….”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있다고 하지만 성대를 막지 않는 이상 막을 수가 없는 법이다.
오히려 입술을 꾹 다물고 손까지 써서 막고 있으니 소리가 더 야하게 들린다.
수인이어서 그런지, 수컷을 홀리는 암컷의 본능이 있어서 그런지 그 신음 소리에 클라우스는 저도 모르게  물건이 자꾸만 웅장해지려고 하는 걸 느껴야만 했다.


‘진정하자. 진정. 후우, 후우우….’


충성스러운 부관이긴 하지만, 카엘라도 결국 따지고 보면 한창 때의 호랑이 수인 암컷이다.
자신이 원하는 수컷이  앞에서 물씬 남자의 향을 풍기면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으면 바로 눈이 돌아가서는 얼른 짝짓기를 하자고 달려드는 그런 여인이라는 것이다.


클라우스가 빈틈을 보이게 되면 이 호랑이는 무조건 달려든다.
그리고는 아마  안에 씨를 뿌려달라고, 새끼를 배게 해달라며 위에 올라탈 것이다.


“도시에는 사람들이 워낙 많고 그만큼 바닥도 더러운 법이다. 당장 너도 모르는 사이에 유리 같은 걸 밟아서 발바닥이 찢어지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냐.”
“며, 면목 없습니다….”


수인들은 본능적으로 소리가 날 수 있는 지형을 피해서 발을 놀린다.
물웅덩이가 가득한 곳에서도 용케 웅덩이가 아닌 곳을 파악해서 그곳으로 발을 떼어 첨벙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을 방지했으며 진흙에 빠져 움직임이 둔해지거나 발목을 다치는 것도 모조리 회피해내곤 했다.


해서 수인들의 발은 어지간해서는 더러운 것들을 묻히지 않는다.
그냥 먼지나 흙만 조금 묻어있는 것이 전부이다.
숙련된 사냥꾼일수록 자신의 손발 관리에 더더욱 철저한 것이 바로 수인이었다.

“흐음. 다행히 다친 곳은 없구나.”

그리 말하면서 카엘라의 발바닥을 부드럽게 털어준다.
그럴 때마다 여인의 발가락이 귀엽게 꼬물거리는 게 무척 자극적이다.


“또 말 안 들으면 그 때는 정말 혼난다, 카엘라.”
“명심하겠습니다. 사령관님.”



마침내 발 검사가 끝나자 카엘라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혹 자신이 실수라도 할까봐, 이성을 놓치고 암컷의 본능만 남을까봐 걱정했던 모양이다.
충성을 다해야 하는 상대방에게 씨를 구걸하는 암컷의 모습이라니.
카엘라는 상상만 해도 당장 머리가 터질 듯 부끄러운 장면이라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뭔 생각하는지 다 보인다, 이 고양이야.’


처음 만났을 때는  이런 무시무시한 괴물이 다 있나 싶었고.
회차를 조금 반복하니 무섭기는 하지만 믿음직하기도 한 호랑이였으며.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귀엽고 예쁜 고양이가 되어버린 카엘라였다.

“일단, 갑작스레 불렀음에도 바로 응해서 여기까지  시간에 온 점, 고맙다고 해두마.”
“감사 인사라뇨. 당치 않습니다, 사령관님. 저는 다만 사령관님의 충성스러운 부관으로서 언제든 명령에 복종할 뿐입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은근히 머리를 기울이는 카엘라다.
정말 고마우면, 그래서 그걸 표현하고 싶다면 말보다는 행동으로 해달라고.
자신이 특히 좋아하는  하나 있지 않느냐고 말이다.

‘…너무 응석받이로 만들어둔  아닌가 몰라.’



그런 걱정이 아주 살짝 들기도 했지만, 나쁠 거야 없다.
일단 적을 마주하면 수인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는 호랑이 수인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육탄전에서 카엘라를 상대로 싸울  있는 이는 역시나 율리아, 단 한 명이다.
나머지는 간신히 버티거나 그게 아니라면 결국 패배하는 게 확실할 정도다.

그런 호랑이가, 그런 여인이 자신의 앞에서는 아양을 떠는 모습이 된다?
이거야말로 남자의 로망을 자극하는 수많은 것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클라우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손을 내밀어 카엘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르릉, 그르르릉-.


곧 카엘라의 입술 사이로 골골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두 눈을 감고 어찌나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지 괜히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쪽까지 다 행복해지는 그런 반응이었다.

한동안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슬며시 손을 뗀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카엘라의 눈동자에 아쉬워 죽겠다는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가능하다면 조금만 더 만져달라고 떼를 쓰고 싶다는 모습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제 욕망을 충성심으로 억누르고 말았다.

그렇게 앞에 앉아있는 호랑이 여인의 마음이 진정되기를 기다리던 클라우스.
곧 카엘라가 자세를 바로하고는 자신을 응시하니 입을 연다.

“내가 널 부른 이유까지는 아직 설명해주지 않았었지.”
“네, 그렇습니다.”
“네게 부탁할 게 있어서다.”
“부탁이라뇨. 가당치도 않습니다. 전 그저 명령만 따르면 될 뿐입니다.”
“그렇게 쉽게 생각하지 마라, 카엘라. 명백한 적을 상대하여 죽이는 것과 달리 이번 일은 너와는 딱히 상관이 없는 일, 이유 없는 살행이 될 수도 있으니까.”



카엘라는 두 눈을 깜빡이며 침묵할 뿐이었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클라우스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 자신의 마음은 확고하다는 뜻으로.



“…내가 가르쳐주는 곳에 가서, 그곳의 사람들을 전부 죽이는 일이다.”
“사령관님의 적들인 겁니까?”
“내 적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부릴 사람의 적이라고  수 있지.”
“그러면 또한 사령관님의 적이 맞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세요. 가서 모조리 찢어죽이고 오겠습니다.”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심지어 무슨 일을 저질렀고 어떤 이유로 죽이는 지도 알지 못 함에도 카엘라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죄의식 따위는 진작 쓰레기통에 처박아서 땅속 깊은 곳에 묻어둔 모습이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오직 클라우스의 명령, 그리고 그의 만족뿐이었다.




“…당연한 것이지만 정체는 숨겨야 한다.”
“예상했습니다.”
“작전에 투입을 앞서서 입고 나갈 복장은 미리 준비해두었다. 뒤에 있으니 확인하도록.”



그러자 카엘라는 몸을 돌려서는 뒤에 있던 옷가지를 들어 보인다.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단  치의 차질 없이 임무를 수행토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클라우스가 준비한 건 몸에 쫙 달라붙는 가죽옷의 일종.
카엘라의 육감적인 몸매를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만들어주는 아이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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