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8화 〉7장 - 붉은 독거미 (98/341)



〈 98화 〉7장 - 붉은 독거미

웅-.

순간이었지만 가벼운 마력의 울림이 전해진다.

안젤리카가 방문에 잠금 마법을 걸고 뒤를 이어서  전체에 방음 마법까지 쓴 것이다.
혼혈이라곤 해도 요정의 피를 반은 이어받았기에 마법에 능통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 요정인데도 마법에 영 젬병인 나타샤가 특이한 거였지.’




의자에 편히 앉아서 안젤리카를 응시한다.

비록 암흑가의 여왕이라곤 하지만, 마법과 육탄전에 꽤나 능한 모습을 보인다고 하지만.
또 빈틈만 드러나면 언제든지 작업을 당할 수도 있는 게 뒷골목 인생.
해서 원래라면 호위를 데리고 다니는 게 당연하다  해 기본 중의 기본이다.
무엇보다 여인이니만큼 적대 세력에게 붙잡힌다면 어떤 험한 꼴을 당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안젤리카는  다른 호위 없이 여기까지 혼자 찾아왔다.
당장 이 근처에서 이쪽을 주시하는 눈길이나 마력이 단 하나도 없음이 그 증거였다.
클라우스는 그런 안젤리카에게 자리를 권하면서 입을 열었다.

“이리 빨리 찾아왔다면 희망적인 대답을 기대해도 되는 건가? 아니면 반대일까.”
“…일단 저희가 내어드릴 수 있는 자금은 병사  오백여명을 무장하고 또 유지할  있는 정도에요.”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부탁한 것의 반 밖에 되지 않는군. 내가 내어준 정보가 영 쓸모가 없었나? 아닐 텐데. 오히려 이걸 들은 이상 그에 맞는 값을 치러야 할 터인데.”


웃고 있는 남자의 입 꼬리가 싸늘하게 느껴진다.
지금 보이고 있는 미소가 결코 좋은 뜻의 미소가 아님을 알려주는 것 같다.



현재 클라우스의 손에는  어떤 무기도 잡혀있지 않다.
그러나 마법을 다루는 이들은, 특히나 전투 마법을 쓰는 자들은 순간적으로 제 마력을 변형시켜 칼날 같이 날카롭게 만들거나 둔기처럼 단단하게 할 수도 있다.

만약 이 자리에서 클라우스가 안젤리카를 죽이겠다고 마음먹는다면.
그녀는 정말 비명 한 번 지르지 못 하고 그대로 살해당할 수도 있었다.



허나 안젤리카는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다거나 클라우스가 자신을 해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보다는.
거래를 하러 온 입장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음을 알기에.
그래서 죽기 바로 직전의 순간에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그런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 부분은 저도 무척 죄송스럽게 생각해요. 하지만 이것도 지금의 저희에게는  모험이에요. 사실은….”
“너희와 갈등하던 암흑가의 세력들이 연합해서는 붉은 독거미를 압박이라도 하나?”




그러자 안젤리카는 바로 침묵하고 말았다.
이번에도 마치 위에서 전부  꿰어보고 있다는 듯이 말을 한다.
단순히 예측을 하는 게 아니라 충분한 정보를 듣고 모아서 결론을 내린 것처럼 말이다.



“…이미  아시는 것 같으니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현재 저희들은 전쟁 중입니다. 그 어떤 전쟁보다도 더 추악하고 더럽지만 가장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죠.”
“상대는?”
“이전에 왕국의 암흑가를 점하고 있던 8월 형제들이라고 하는 조직입니다.”


8월 형제들, 붉은 독거미와는 다르게 조직원 대부분이 남성인 곳.
안젤리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붉은 독거미를 만들고 자금을 확보하며 암흑가의 질서를 새로 정립하기 전까지 지배 세력이었던 자들의 집합체였다.

하는 짓은 순 양아치, 깡패와 다를  없었지만 그래도 뒷골목에서 싸움 좀 한다는 것들은 전부 모은 곳이었기에 약하다고 할 수는 없는 곳이다.

무엇보다 이런 뒷골목에서  만큼 중요한 게 바로 힘이다.
붉은 독거미가 자금을 꽉 쥐고 있다고 해도 아직 조직원 수나 그들의 무력 총량은 8월 형제들이 아주 근소하게 앞서는 중이다.

‘그리고 무슨 여자들이 이런 험한 세상을 지배하냐고, 그렇게 떠들면서 붉은 독거미들에 대한 적의를 불태우는 놈들도 계속 합류하고 있고.’


얼마 전까지 꽉 쥐고 있던 뒷골목 세계를 빼앗기는 것도 억울한데.
그 대상이 같은 우락부락한 남자도 아니고 매끈한 살결을 지닌 여인들이다.
그러니 그 뒷골목에서 칼밥 좀 먹었다는 자들이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겠는가.


“8월 형제들을 깔끔하게 정리하기 위해 현재 자금을 풀어 그들과 적대시하던 조직 몇을 끌어들이고 또 용병들까지 사용한 상황이에요. 거기에 만약을 대비해서 왕국의 관리들과 귀족들에게도 뇌물을 먹여두었고요.”
“그래서 자금이 많이 비는 상황이다?”
“네. 맞아요.”
“그런 부분들을 내게 다 알려주는 이유는 뭐지?”
“클라우스님께 받은 정보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세요. 솔직히 아직도 셈을  못 치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요.”


역시 뒷골목 세계에서 오래도 굴러먹은 티가 나는 여인이다.
받은 값만큼 셈은 반드시 치러야 한다는, 그리하지 않으면 사서 적을 만들게 된다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아주 좋은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허면 그 8월 형제들인지 뭔지 하는 것들이 빠르게 정리되면 된다는 말인가?”
“그렇긴 합니다만 워낙 방대하게 퍼져있는 자들이라서요. 시간이 걸릴 겁니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매번 죽는  꼬리들이고 정작 잡아 족쳐야 할 대가리들은 매번 튀어버리니까.
대가리를 잡아다 처리하지 않는 이상 저들은 계속 생겨날 것이다.
아무리 붉은 독거미라고 해도, 암흑가의 여왕이라는 안젤리카라고 해도 그것만큼은 별 수 없는 일이었다.

도망친 이를 과하게 쫓다가 자칫 함정으로 걸어 들어갈 수도 있는 법.
그리고  함정이 대게 가장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곤 했다.



‘하지만, 난 아니야.’



이미 이들을 위한 최고의 인선을 준비해두었다.
아마도 내일 새벽쯤이면 도착하지 않을까 싶다.
 더 빠르다면 오늘 밤에라도 도착할 수 있고 말이다.



“그쪽 상황은 잘 알았다.”
“그러면 일단….”
“말한 대로 3천. 거기에 맞는 준비를 부탁하지.”



막 천 오백 여명의 준비를 하겠다던 안젤리카가 눈살을 찌푸린다.
당장 이쪽 상황도 좋지가 않아서 그렇게 엄청난 자금을 한 번에 투자할 여유가 없다고 했는데 끝까지 저리 나오는 건 도대체 무슨 심보란 말인가.
혹 붉은 독거미를 후하게 평가하는 것이라면 이번만큼은 되었다고 하고 싶었다.

8월 형제들이 쉬운 족속들도 아니고 지금도 뒷골목 여기저기서 혈투가 벌어지고 있다.
정규군이 투입된다고 해도 힘들 정도로 자신이 기거하는 세상의 싸움은 더럽기 짝이 없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 지금 당장 뭔가를 해줄 여유는 없었다.



“그 8월 형제들인지 뭔지 하는 것들은 내가 일주일 안으로 정리하게 도와주마.”

헌데 클라우스의 입에서 나온 말은, 꽤나 유혹적인 것이었다.



“…농담으로 듣고 싶지만, 그리 들리지 않는군요.”
“난 전혀 농담이 아니니까.”




안젤리카는 그리 말하는 남자를 바라보면서 묘한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아무리 뒷골목의 깡패들이라곤 하나 그래도 나름 경험을 한 자들이다.
언제 어느 곳에 숨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빈틈을 노려야 하는지 다 알고 있다.
벌써 그들의 함정에 붉은 독거미의 단원들을 여럿 잃지 않았던가.

여태 자신의 목이 붙어 있는   붙잡힌 단원들이 끝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는 것.
그러니 그들이 어떤 고통과 치욕을 당했을지는 너무나도 뻔한 부분들이었다.
아마 죽어도 결코 편히 죽을 수 없는 그런 고통 속에서 몸부림쳤으리라.

‘그런데 그걸 한 달도 아니고  일주일 만에 정리하겠다고?’

솔직히 의심이  많이 드는 게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믿고 싶어도 이 생활을 많이 경험해본 자신이기에 그게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대가리 하나 찾아서 잘라내려면 희생이 얼마고 들어가는 돈이 얼마인데.
눈앞의 남자는 너무나도 당당하게 기한까지 말하면서 자신만 믿으라고 한다.



‘…막상 믿음이 또 가서 어이가 없는 일이긴 하네요.’




안젤리카는 속으로 웃음을 흘리면서 그리 중얼거렸다.

눈앞의 그 말도  되는 말을 하는 남자가 누구인가.
바로 전 남부 사령관 클라우스다.
마족들이 악마라고 부르며 두려워했던 남자, 유일하게 경외하던 인간이다.
   만에 인간 측 영토가 모조리 휩쓸리던  순간 등장하여 멸망을 막은 이다.
자그마치 7년 동안이나 마족을 상대로 남부를 사수해낸 영웅이다.

그런 남자가 자신이 일주일 안에 자신의 적을 정리해주겠다 말하고 있다.
이미 뭐가 문제였는지 다 알고 있었다는 듯, 어떤 식으로 접근해서 어떻게 끝을 내야 할지 전부 생각해두었다는 것처럼 말이다.



‘…왠지 모르게 불안해. 굉장히 위험한 게 느껴져.’

안젤리카는 제 감을, 그리고 본능을 믿는 쪽이었다.
여태 그것으로 살아남은 자신이니까, 그게 틀렸던 적이  번도 없으니까.
그런 부분에서 볼 때 눈앞의 저 남자는 정말 위험한 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 세상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전부 다 사기이고, 말도 안 되는 장난질에 불과하다.
그런 순간에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하는 이는 절대적으로 피해야 하는 상대.
지금 안젤리카의 감각이, 그리고 본능이 그렇게 경고를 하고 있었다.

암흑가의 여왕, 붉은 독거미의 단장, 혼혈임에도 여기까지 온 여인.
원래의 안젤리카였다면 단번에 이번 거래를 쳐냈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만약 12년 전 그 일만 아니었다면, 안젤리카는 분명 그리 했을 것이다.

“정말로 일주일 안에 약속을 이행하신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부탁을 들어드릴 수 있어요.”
“좋아. 시원시원해서 좋네. 역시 운으로  자리에 오른 건 아니라는 건가? 수를 던져야  때 망설임이 없군.”
“겁을 먹고 망설여서 얻을 수 있는 건 오직 중간이 전부이니까요.”




안젤리카는 그렇게 답한 후 따로 더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 있냐 물었다.
그에 클라우스가 손을 저으며 오늘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대답한다.
여인은 그 답에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  차후 따로 논의할 일이 있다면 이곳에서 근무할 제니를 통해서 전하면 된다고 붙여두었다.




“안젤리카.”
“네.”
“한동안은 너희 쪽 식구들한테 숙이고 지내라고 전해둬라.”
“….”
“내가 위험한 녀석을 하나 풀 생각인데, 생각보다  직진만 하는 녀석인지라 자칫 네 단원들까지 휩쓸릴 수가 있어서 말이야.”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안젤리카도 그 부분을 어렴풋이 눈치 챘는지 고맙다고 말한 후 문고리를 잡았다.
이런 만남은 무조건 짧아야만 서로에게 이로운 법이건만.


“….”

스스로가 참으로 우습게도, 안젤리카는 쉬이 방을 나서지 못 하고 있었다.


“더 할 말이라도 남았나?”



클라우스가 은근한 어조로 입을 연다.
그에 안젤리카는 무례임을 알면서도 몸을 돌리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아까 제가 저의 아지트에서 마지막으로 드렸던 질문, 기억하시나요?”
“마지막 질문이라. 아, 그 피난민 무리를 구했다던 그 이야기 말인가?”
“네. 맞아요.”
“기억나는데. 갑자기  부분은  또 짚고 가는 거지?”




짐짓 모르는 척 클라우스가 입을 연다.
그에 안젤리카는 고개를 살짝 돌려 잠시 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감사합니다.”
“….”
“그 때 포기하지 않아주셔서. 비참하기 짝이 없던 한 여인을 구해주셔서.”
“설마.”
“구해준 그 분께 내가 살아있음을 언젠가 한 번은 보여주고자 발버둥 쳤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었던 삶에 이유를 던져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여인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대충은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그 부분들을 아주 철저하게 숨기면서, 결코 드러나지 않게 하면서.
클라우스는 멍하니 안젤리카를 바라보다가 잔잔한 미소를 짓고는 그녀가 가장 기다렸을 대답을 들려주었다.


“고맙다. 살아남아줘서.”



* * *  * * * * *  *  *

침대에 누워 시간을 보내던 클라우스는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생각해보니 안젤리카의 속살도 나름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녀의 보지가 처음으로 머금은 물건이 제 것이 아님은 많이 아쉽지만.
그래도 한 두 번 정도는 먹을 만하다고 할  있었다.
요정의 부드러움과 마족의 쫀득함을  가진 여인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클라우스는 안젤리카를 그냥 보내주었다.
솔직히 그 타이밍에서 어떻게 혀를 좀 놀렸다면 충분히 그녀를 침대 위로 넘어트릴 수도 있었고 한껏 신음을 토해내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 혼혈 여인을 보내준 이유는, 곧 당도할 고양이에게.
아니, 호랑이에게 불만 사항을 만들어주지 않기 위함이었다.

‘뒷골목 쥐새끼들을 잡아 족치는 데에는 역시 고양잇과 맹수가 최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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