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5화 〉7장 - 붉은 독거미 (95/341)



〈 95화 〉7장 - 붉은 독거미

제니가 클라우스를 안내한 곳은 다름 아닌 전당포.
대충 40대로 보이는 여인이 운영하는 것이었는데 겉뿐만이 아니라 그 안도 여타 전당포와 아주 똑같은 곳이라 할 수 있었다.

순서를 기다려 전당포 주인과 마주한 제니는 품에서 뭔가를 내놓았다.



“….”



그러자 두 눈을 반짝인 전당포 주인은 ‘이런 물건은 바로 취급하기 모호한데.’ 라고 말했다.


직후 제니에게 안으로 들어가서 조금 더 정확한 셈을 치르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고개를 끄덕인 제니는 클라우스를 데리고서 전당포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안에는 전당포 주인의 딸처럼 보이는 소녀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라면 바로 물건의 정확한 값을 알기 위해 간단한 작업을 거치겠지만.
소녀는 그런 작업은 바로 건너뛰고 제니와 클라우스를 더 깊숙한 곳으로 안내했다.
마침내 전당포 안 가장 깊숙한 방까지 다다르자 소녀는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섰다.



“…다들 내 정체를  물어보는군.”
“이미 저와 같이 왔다는 것 자체가 신원 보증이 된 셈이에요.”


그럴 수밖에. 제니는 붉은 독거미에서도 일개 단원이 아닌 조장에 있는 여인이니까.
원래 아지트로 올 때에는 무조건 혼자서만 와야 한다는 철칙을 깨고 누군가를 대동했다.
이건 정말 중요한 사안이 있다는 소리였고 때문에 저들은 군말 없이 안내를 한 것이다.

제니는 바닥에 깔려있던 양탄자를 옆으로 치워냈다.
그리고 전당포 주인에게 내밀었던 물건을 나무 바닥에 가져다대니 곧 옅은 빛을 발하며 마법진이 생성되었다가 사라졌다.

‘침입자 감지 마법이라. 지극히 단순한 마법진이긴 해도 귀족도 아닌 평민들이 이런 걸 구하려면 돈을 꽤나 많이 들여야 했을 테지.’



클라우스가 만든 이 세상에서 평민은 정말 철저하게 을의 위치에 있었다.
어느 상황에서도 감히 귀족에게 무례를 범해서는 안 되는 건 당연한 일.
심지어 물건들을 구입할 때도 평민이란 이유로 바가지를 쓰거나 아예 판매를 거부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지금 보고 있는  침입자 감지 마법은 귀족들이라 하면 전부  가지고 있는 것.
따지자면 일종의 도어락이라고 할 수 있는 물품이지만 평민은 꿈에도 꾸지 못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걸 이렇게 붙이고 있다는 건 붉은 독거미가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소리다.

끼익- 덜컹!-



“들어가시죠.”


마법진을 해제하고 나무 바닥으로 위장하고 있던 문을 연 후 안으로 들어가는 제니.
그녀의 뒤를 따라서 클라우스 역시 안으로 들어갔다.
컴컴한 어둠이  그들을 맞이했으나 제니는 미리 준비한 횃불을 들었다.




“…지하에 이런 시설을 만들어두다니. 대단하군.”
“정확히는 대륙 전쟁 당시 대피소로 쓰이려고 했던 곳이에요. 마족들의 군세가 너무 강했고, 반대로 우리 인간 측은 너무 약해서 뭐 숨어서 저항해볼 틈도 없이 쓸려나갔지만요.”



제니의 말대로 남부를 제외한 인간 측 영토는 쑥대밭이 되었다.
요정들과 수인들이 급히 원군을 보내지 않았다면 마족들에게 전부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리 준비한 대피소가 쓸모 있었을  만무.
아마 만들어놓고도 이런  있었나,  잊어먹었으리라.

두 남녀는 그렇게 약 10여 분을 걸었다.

“잠시 멈추세요.”



클라우스를 멈춰 세운 제니는 앞에 보이는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그 후 이쪽을 가로막고 있는 뭔가를, 일정한 속도와 뭔지 모를 박자로 두드렸다.


딱딱, 딱딱딱-. 딱. 딱딱-.

그러자 이번에는  너머에서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딱, 딱딱-. 딱-.

상대의 소리까지 확인한 제니는 뒤로 물러섰다.
그와 동시에 위에서 덜컹, 하고 출입구가 열리더니 후드를 뒤집어 쓴 이들이 제니를 맞이했다.



“조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보고 날짜가 아닌데.”
“손님이 계셔. 바로 단장님께 안내해야  터이니 주변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마.”



갑작스러운 손님의 방문이다.
해서 제니를 맞이한 이들이 그에 대해 충분히 의문을 표할 수 있음에도.
그녀들은 알겠다는 듯 고개만 끄덕이고는 제 위치로 돌아갈 뿐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클라우스는 역시 대단하다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귀족 새끼들이 이끌던 사병 집단은 뭐 조그마한 소리만 들려도 적습이니 지랄을 해대면서 다 흩어지는 꼴을 보이곤 했는데 오직 여인들로만 이루어진 이들은 훨씬 더 철저했다.

그렇다. 오직 여인들로만 이루어진 곳. ‘붉은 독거미’.
심지어  여인들도 전원이 평민들로 구성된 집단이다.
귀족들의 손짓  번에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을 정도로 연약하기만 하던 이들이.
실상은 왕국의 뒷골목을 꽉 쥐고 있는 붉은 독거미의 일원들이었던 것이다.



‘하는 일도 다들 제각각이지. 누구는 정보 수집, 누구는 자금 조달, 누구는 첩자,  누구는 암살. 심지어 아예 대놓고 양지에서 활동하는 일원도 있다고 했던가.’



귀족들이 알면 아마 대경실색을 했을 것이다.
자신들이 짐승 취급을 하던 평민들이, 그것도 그 중에서 가장 만만한 여인들이.
실상은 이렇게 지하에서 비밀 조직을 만들고서 꾸준히 세를 불리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얼마 후면 이들은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평민들, 특히 여인들을 겁탈하던 귀족들을 암살하는 것을 시작으로.
지방에서 머무르는 비교적 권세가 약한 귀족들에게 접근하여 미모나 약으로 그들을 홀린 다음 조종하여 아예 평민들을 대대적으로 무장시킬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아마 귀족들도 꽤나 당황하는 순간이 오지. 막판에 이들의 머리라 할 수 있는 단장이 밀고자에 의해 발각되어서 처형당하고 집단이 완벽하게 와해되긴 하지만.’

처음에는  집단에 딱히 관심이 없었다.
너무 급진적이고 또 음지에서 활동하는 터라 위험 부담도 꽤 크다.
무엇보다 이들은 귀족들만큼이나 마족들도 싫어하니 거기에 붙게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우호할 수도 없는 그런 상황이다.


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딱히 마음을 두지 않았지만.
원래 어느  분야에서 가장 높은 경지까지 닿게 되면, 고인물이 된다면.
자신이 손을 대지 않았던 부분에도 궁금증이 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붉은 독거미를 버리지 않고 내가 적절히 써먹으면 어떨까 했는데 이게 웬걸.
클라우스와 율리아를 무척 난처하게 만들던 자금 부분이 아주 자연스레 해결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협박을 해서 자금만 쏙 빼먹고 갔다가 나중에는 적절히 이용했고, 최근 회차에서는 아예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도 했지. 하지만 역시 가장 편한  상하 관계야.’




여태까지는 딱히 접점을 만들어두지 않아서 협력 관계 그 이상으로   있는 뭔가를 만들어두지 못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이번 회차에서는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대륙 전쟁 초기에 죽음을 각오하면서  피난민 집단을 살리는 데에 성공하고 말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무리 안에는 지금 이 붉은 독거미의 단장인 여인이.
얼마 후면 암흑가의 여왕이라 불리는 꽤나 고혹적인 이가 섞여 있었다.


“잠깐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클라우스를 멈춰 세운 제니는 역시나 후드를 뒤집어  이들을 지나쳤다.
그리고 한  안으로 들어갔는데, 저곳이 바로 암흑가의 여왕이 있는 곳이었다.

“….”
“….”

잠시 제니를 기다리는 사이 클라우스는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이들을 살폈다.
전부가 여인이지만, 그리고 평민이지만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꽤나 쓸 만했다.
평민이라고 하여, 여인이라고 하여 무조건 전투적 감각이 떨어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무척이나 쓸 만함에도 그 멍에 때문에 제대로 쓰이지  한 재능들이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저들의 우두머리, 붉은 독거미의 단장은 그 재능들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들을 모아서 암흑가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집단까지 키우는 데에 성공했다.
머리는 그렇다 쳐도 사람의 능력을 파악하는 건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평범한 여인일 수는 없지. 나도 처음에는 놀랐을 정도니까.’

클라우스가 그렇게 생각할 무렵, 제니가 돌아왔다.
그녀는 자신을 따라온 남자를 방문 바로 앞까지 안내한 후 거기에서 멈췄다.
 이상은 당신 혼자 들어가서 이곳을 찾은 목적으로 바로 말해달라는 뜻이었다.

“여기까지 안내해줘서 고마워. 그런 의미에서  가지 충고 해줄까 하는데.”
“충고라고요?”
“조금  자신을 다듬어야 할 거다. 아까 그 두 머저리가 네 얼굴을 부여잡을 때. 아주 찰나였지만 살기가 번뜩였거든. 그 멍청이들이야 허우대만 멀쩡한 놈들이니 당연히 눈치를 채지 못 했을 테지만  바로 알아차렸다.”
“…그래서 나선 것이었나요?”
“그것도 있고, 다른 이유도 있고.”



실상은 다른 이유가 한 97퍼센트였지만, 그 부분까지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제니는 이후 붉은 독거미와의 접점 때문에 몇  더 마주하게 된다.
그러니 우호적인 분위기는 하등 손해볼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었다.


클라우스가 제 말을 숙지했냐 반문하니 제니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클라우스님을 직접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라고 무척이나 예의 바른 목소리로 속삭였다.
애써 아닌 척은 했지만, 지금 자신이 안내한  남자는 평민들에게 있어서 거의 전설과도 같은 인물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제니와 작별한 클라우스는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역시나 냄새, 정확히는 담배가 타들어가는 향이었다.
암흑가의 여왕이라는 이명답게 이  안의 주인은 상당한 애연가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애연가가  수밖에 없기도 했지만.’

이곳의 단장, 안젤리카라 불리는 여인은 담배를 태우는 제 모습을 적절하게 이용했다.
매서운 눈매, 진한 화장, 고혹적인 자태, 그리고 느릿하게 태우는 담배까지.
그 모든  적절히 어울려서 여왕이라는 과분한 칭호를 달고 있게 만들었다.




“이쪽입니다. 손님.”


차가운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달리 생각해보면 무척이나 색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하는 목소리였다.
클라우스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이 방의 주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제니가 손님을 데리고 왔다 하기에 무슨 일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설마 그 손님이 전혀 상상치도 못 했던 분일 줄은 몰랐네요.”



의자를 돌린 채 연신 담배를 태우며 연기를 폴폴 날리던 여인.
느껴지는 목소리만으로도 그녀의 끈적한 색기가 확 느껴지는 것 같았다.
마침내 클라우스가 책상 건너편까지 당도하자 여인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클라우스님.”



아주 잠깐이었지만, 암흑가의 여왕 ‘안젤리카’  말을 늘어트렸다.
 이유를 잘 알고 있는 클라우스였지만 절대 그 부분에 대해서 내색은 하지 않았다.

바로 그 부분을 이용하기 위해서 10년도 더 전에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까지  피난민 무리를 구출한 것이었다.


“당신이 그 유명한 붉은 독거미의 주인인 모양이군요.”
“주인이라기보다는 그냥 머리 아픈 일, 뒤처리가 중요한 일을 하는 여인일 뿐이죠.”
“그러니 더더욱 주인 되는 사람일 텐데요.”
“굳이 말하자면 그렇겠네요. 그보다 말씀 낮추세요. 제가 거북해서 그렇답니다.”



안젤리카의 말에 클라우스는 미소를 짓고는 그리 하겠다고 답했다.

그 후 그녀의 권유에 따라 앞에 놓여 있던 소파에 몸을 앉힌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굉장히 비밀스러운 곳이군. 지하를 통해 와서 여기가 당최 어디인지 감도 안 잡혀.”
“머리가 좋은 이들은 이동하는 시간과 태양의 위치 정도만으로도 대략적인 장소를 예측하곤 하거든요.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을 숨기는  가장 중요하죠.”


아, 그렇구나. 그런데 이걸 어쩌나? 이미 여기 위치도 다 알고 있는데.


클라우스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