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7장 - 붉은 독거미
불쌍한 남자가 경비대에게 끌려간 이후, 리어만과 피오는 여성 종업원, 제니를 앞세워서 여관에서 가장 좋고 또 가장 안쪽에 위치한 방으로 이동했다.
평민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으나 어차피 한 번 먹고 버릴 것이니 상관은 없었다.
당장 저 야들야들한 살결을 한껏 범해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우람해지는 남근이었다.
“이, 일단 제가 가서 두 분께 드릴 물이라도 떠올….”
어떻게든 자리를 벗어나려고 애쓰는 제니.
하지만 한 번 잡은 먹잇감을 결코 놓아줄 생각이 없는 승냥이들이었다.
양쪽에서 제니의 팔을 붙잡은 두 귀족은 음흉한 웃음을 흘리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아!”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거칠게 침대 위로 내던져지는 여인.
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으나 곧 우악스러운 두 손길에 의해 꼼짝도 할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
“제, 제발요. 이러지 마세요. 귀족님들. 저, 저는 그냥 일개 평민이에요. 두, 두 분의 손이 더럽혀지는 일이니 제발 그만 해주세요.”
“그래. 네 말대로 너를 이렇게 만지고 있으니 우리 손이 더러워지는 일이긴 하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걸 알고 있다면 사죄의 의미에서 조용히 있는 게 좋지 않을까.”
그리 말하면서 뭐가 그리 좋은지 낄낄대는 두 귀족들이었다.
곧 양쪽에서 들이닥친 거친 손길이 제니의 가슴을 하나씩 붙잡는다.
“아읏!”
여인에 대한 배려 따위는 없는, 무척이나 거친 손길.
쥐어짜듯 꽉꽉 움직이는 두 귀족의 손길이 꽤나 아팠는지 제니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누가 들어도 흥분해서 내는 것이 아닌, 치욕과 고통으로 인해 흘리는 소리였지만.
그게 오히려 이 두 귀족에게는 그 어떤 교성보다도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내 말이 맞지? 꽤나 먹음직스러운 안주라니까.”
“이번에는 네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겠다, 피오.”
“이 친구의 말도 여태 못 믿었던 거냐. 섭섭하군.”
피오는 그리 말하면서 가슴을 움켜쥐던 손을 내렸다.
그러자 리어만 역시 웃으면서 네가 뭘 할지 다 알고 있다는 듯 똑같이 행동한다.
직후 순식간에 제니의 치마가 훌러덩 벗겨지고 두 다리가 귀족들에게 의해 쫙 벌어져서는 단단히 고정되었다.
“아, 아아! 아, 안 돼! 안 돼요! 제발, 제발….”
“그렇게 더 울먹거려. 듣기 아주 좋아.”
단순히 여체를 탐하는 것만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
이 둘이 나름 가깝게 지내는 데에는 성적 취향도 비슷하다는 게 한 몫을 했다.
그건 바로 여인을 강압적으로 대하고 괴롭히고, 거기에서 나오는 고통스러운 신음들에 흥분하는 그런 취향이었던 것이다.
“아, 아으으….”
허벅지 안쪽을 쓸어대는 두 남자의 손길에 제니는 다시 한 번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여인의 그 반응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는지 두 귀족은 이번에는 그녀의 상의까지 한 번에 거꾸로 올려서는 순식간에 속옷만 입은 채로 만들어버렸다.
여인의 두 눈동자가 공포로 가득해진다.
하나에게 당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치욕적이고 또 충격적인데.
둘을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야말로 이성이 나가기 직전의 모습 같았다.
제발 이러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저어보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평민이란 건 결국 귀족들에게 착취당하기 위해 있는 계층이니까.
아무리 발버둥 쳐서 살아보려고 해도 그들 말 한 마디에 무너지는 자들이었으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여인의 반항이 점점 소극적으로 변해간다.
“그래, 그래. 그렇게 축 쳐져있어. 어차피 조금 있다가는 다 아프다고 난리를 칠 테니까.”
“흑, 흐윽….”
“우리 귀여운 강아지가 낑낑대는군. 아무리 개새끼라지만 그래도 사람 머리를 달고 있으니 눈치는 있을 거야. 자, 이제 무슨 말을 해야 그나마 덜 아프게 갈 수 있을까? 얼른 말해봐라.”
아까 전처럼 제니의 턱을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리는 리어만.
그는 음흉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로 답을 종용했다.
눈앞의 이 남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리가 없다.
제니는 절망감에 사로잡힌 눈동자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랄 염병을 떨고 있네.”
어?
“…?”
순간 리어만과 피오는 꿈이라도 꾸는 줄 알았다.
아까 전과 똑같이, 여인의 목소리가 아니라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심지어 경비병들에 의해 잡혀간 바로 그 생환병 말이다!
“뭐야.”
피오의 말에 리어만은 제니를 향해있던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막 문을 열고 서있는 한 남자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이, 리어만. 저 놈 아까 그 미친놈 아닌가? 네게 무례를 저질렀던 평민 말이다.”
“그런 것 같은데. 네놈, 뭐냐. 어떻게 된 거냐.”
“보다시피. 그쪽들에게 한 마디 해주고 있습니다만.”
두 귀족은 다시 한 번 어이가 없음을, 기가 막히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귀족에게 무례를 범하여 경비대에게 끌려갔던 놈이 또 귀족한테 무례를 범하는 것도 그렇고.
애당초 끌려가서 벌을 받아야 했던 놈이 멀쩡히 돌아온 것도 무척 이상했다.
해서 그들이 다시 한 번 어떻게 된 일이냐고 막 질문을 던지려는 찰나.
“…이게 무슨. 하, 진짜 지랄 염병을 하고 있군.”
남자의 뒤로 중년 남성이 하나 들어왔다.
딱 봐도 예사롭지 않은 복장을 입고 있는 중년 남성이었지만.
안타깝게도 클라우스에 의해 반 넘게 가려진 상태였으며 무엇보다 또 그놈의 지랄 염병을 들은 두 귀족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 하고 바로 입을 열고 말았다.
“이것이 감히 귀족 앞에서 그런 무례를!”
“네놈은 또 뭐냐. 뭔데 감히!”
…지금 나보고 한 말인가? 중년 남성, 프리몬트 백작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천둥벌거숭이인 줄은 예상했지만 저리 미친놈들일 줄은 몰랐다.
이런 여관에 자신들보다 훨씬 더 위에 있는 귀족이 올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단 건가?
“끌어내.”
“예!”
뒤에서 얌전히 대기 중이던 수행원들이 일시에 들이닥친다.
갑작스레 건장한 남정네들의 공격을 받게 된 리어만과 피오.
“뭐, 뭐냐. 네놈들! 뭐하는 짓! 억!”
“무례, 무레하다!! 으억!!”
분명 귀족임에도 수행원들의 손속에는 자비가 없었다.
팔을 꺾고 다리를 누르고 그대로 바닥에 엎었다가 다시 일으킨다.
그렇게 두 청년의 정신머리를 쏙 빼둔 후 고개를 붙잡아 정면을 바라보게 만든 수행원들.
짜악! 짝!-
직후 프리몬트 백작은 두 귀족 자제들의 뺨을 있는 힘껏 후려쳐주었다.
귀족들의 몸에, 그것도 얼굴에 손을 댄다는 건 정말 엄청난 일.
해서 말 그대로 지랄 발광을 하던 두 청년은 곧 뭔가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이제 보니 이들의 행색이 경비병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화려했던 것이다.
“이름.”
“에, 예?”
“예? 예에에에??”
두 눈을 살벌하게 뜨면서 그리 반문하는 프리몬트 백작.
그는 인정사정 볼 것도 없이 더욱 세찬 손길로 다시금 둘의 뺨을 후려쳤다.
짜-악!!- 짝!-
어찌나 힘껏 때렸는지 단 두 번 만에 입술이 터지고 피가 흐르는 리어만과 피오였다.
이제야 상황을 파악한 그들은 흔들리는 눈으로 상대방을 응시했다.
“누, 누구십니까?”
“누구? 하, 하하! 이것들이 정말 무슨 깡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도통 알 수가 없구나!”
이번에는 한 명당 세 대에 해당하는 귀싸대기가 날아갔다.
그렇게 쳐맞고 나서야 질문 대신 대답을 할 마음이 생긴 모양이다.
피오를 시작으로 리어만까지, 제 이름과 제 가문을 낱낱이 설명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말을 전부 들은 프리몬트 백작은….
“귀족이라 부르기도 아까운 가문의 떨거지들이었군.”
라고 말하면서 그들의 권위를 한 번에 뭉개버렸다.
백작은 그들의 턱을 붙잡고서 차가운 눈빛을 띤 채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배짱도 크구나. 영지 같지도 않은 영지 조금 쥐고 있는 가문의 애새끼들 주제에. 감히 프리몬트 백작가의 가주인 내게 무례를 범한 것이더냐.”
“에, 예?”
“평민이 귀족에게 무례를 범하면 처벌을 받는 것처럼, 낮은 지위의 귀족이 더 높은 지위의 귀족에게 무례를 범해도 또한 처벌을 받게 되어있다. 그런 의미에서 네놈들은 두 곳이나 되는 가문에 무례를 범했구나. 프리몬트, 그리고 키엔마이어까지 말이다.”
계속해서 날아드는 충격적인 말들에 둘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프리몬트는 왜 나오고, 키엔마이어는 또 왜 나온단 말인가.
하나, 하나가 그들에게는 감히 닿기도 두려운 그런 대귀족 가문들이다.
헌데 그 두 곳에 자신들이 무례를 범했다니? 도대체 언제?
“기대하는 게 좋을 거다. 오늘의 무례를 내 잊지 않고 네놈들 가문에 이런 서신을 보낼 것이다. 프리몬트 백작가는 두 가문에게 영지전을 선포할 것이라고 말이다.”
귀족들이 다른 귀족에게 모욕을 당하면 처리 방안은 크게 둘이다.
하나는 개인 간의 결투, 또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영지전.
물론 귀족들은 서로가 아군이기에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긴 했다.
하지만 일단 결투든 영지전이든 선포가 되면 그 때부터는 알 수 있게 된다.
누가 더 사람 관리를 잘 했고, 누가 더 아군을 많이 만들어 두었는지 말이다.
프리몬트 백작가는 굳이 따지자면 2등급의 귀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리어만과 피오가 소속된 가문들은 해봤자 4등급, 혹은 5등급의 최약체 가문이다.
이 상태에서 영지전이 선포된다? 당연히 귀족들은 프리몬트 백작가의 편에 설 것이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지 뻔히 보일 상황인데 무조건 실패할 모험을 하려고 하겠는가?
“배, 백작 각하! 프리몬트 백작 각하! 도대체, 도대체 왜 그러십니까!!”
“죄송합니다, 저희가 백작님을 뵌 적이 없어 미처 알아보지 못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죄드리겠습니다. 허니 너그러니 넘어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열심히 빌고 또 매달려보는 리어만과 피오.
하지만 프리몬트 백작은 어림도 없다는 듯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래? 그러면 프리몬트 백작가 대신 키엔마이어 후작가와의 영지전은 어떠냐.”
“허억!”
“왜, 왜 키엔마이어 후작가가….”
“궁금한 게냐? 그러면 여기 있는 남자를 자세히 한 번 보거라. 그러면 알 수 있을 거다.”
당연한 말이지만, 클라우스를 한 번에 알아볼 리가 없다.
평민 따위에게 신경도 안 쓰는 젊은 귀족 세대들이다.
대륙 전쟁도 그냥 귀족들이 열심히 싸워서 잘 막았다고만 알고 있는 놈들이다.
한 전쟁 영웅의 위대한 여정은 그들에게는 그냥 허구성 짙은 이야기일 뿐이었다.
“이런 놈들이 대륙 아카데미에 들어가려고 한다니. 미치겠네.”
더 보기도 싫다는 듯 프리몬트 백작은 손짓을 했다.
그러자 수행원들은 그 둘을 그대로 붙잡고서는 질질 끌고 나가기 시작했다.
리어만과 피오가 무슨 말로 빌어도 전혀 개의치 않고서 말이다.
“자네를 몰라보는 놈들이 벌써 나오는군.”
버러지 두 새끼가 사라진 이후, 프리몬트 백작은 진심으로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자신도 딱히 클라우스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평민들의 위치가 점점 상승하여 귀족들의 권위가 흔들리는 건 달갑지 않지만.
그래도 최소한 있었던 일에 대해서 알고는 가야 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귀족이었다.
대륙 전쟁을 거쳤으면서 어떻게 이 남자를 몰라볼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분위기를 바꾸고 복장도 예전 같지 않고 스타일도 바뀌었다고 하지만.
그가 대륙 아카데미에서 교수로 있다는 소식도 이미 다 돌았는데 말이다.
“이번 일은 내가 처리하겠네. 그러니까….”
“걱정 마세요. 다넬에게는 비밀로 하겠습니다.”
“고맙군.”
이미 프리몬트 백작은 영지전이라는 단어까지 꺼내서 자신의 최선을 보여주었다.
당장 방금 전 끌려나간 두 버러지들의 가문과 프리몬트 백작가는 정 반대편에 있다.
애당초 영지전의 성립 자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백작이 영지전을 언급한 건 그만큼 강력하게 저들을 혼내주겠다는 뜻.
클라우스도 그의 진심을 알았기에 이쯤에서 그만 두기로 했다.
“그리고….”
한바탕 폭풍이 몰고 간 후의 방.
그 안에 몸을 가린 채 덜덜 떨고 있는 여성 종업원.
프리몬트 백작은 쯧, 하고 혀를 차고는 클라우스에게 저 여인 좀 챙겨 달라 부탁했다.
자신은 그 건방진 놈들을 한 번 더 잡으러 간다는 말과 함께 사라진 백작이었다.
“….”
마침내 방 안에 딱 둘이 남게 되자, 클라우스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잔뜩 겁을 집어먹은 여인에게로 다가갔다.
“괜찮습니까?”
“네, 네. 괜찮아요. 괜찮아요….”
“다행이군요. 괜찮아서 정말 다행이요.”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내미는 클라우스.
그에 제니가 막 그의 손을 붙잡는 순간.
그는 더욱 더 짙은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서 괜찮다면, 붉은 독거미를 보고 싶은데.”
순간, 제니의 두 눈동자 속에서 아주 차가운 빛이 언뜻 머물다가 사라졌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곧 겁을 먹은 여인의 눈동자로 돌아왔지만.
이미 클라우스에게는 다 들킨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