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2화 〉7장 - 붉은 독거미 (92/341)



〈 92화 〉7장 - 붉은 독거미

“클라우스.”


마차 문이 열리고 안으로 프리몬트 백작의 얼굴이 쑥 들어온다.

귀족들만이  수 있는 마차 안에 평민이 타고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평민이 고개만 까딱이면서 인사를 할 뿐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이 없다.

당장  자리에서 끌어내서 때려죽여도 할 말이 없을 부분이건만.
백작을 수행하는 이들은 비교적 젊은 자들은 기가 막히다는 반응을 보였건만.
정작 그 당사자인 프리몬트 백작은 허허허, 하고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프리몬트 백작. 아, 다넬도 없는데 그냥 백작님이라고 부를까요?”
“음? 아니, 아니, 아니!! 그럴 필요 없네. 그냥 여태 하던 것처럼 편안하게 대해주게. 백작 ‘님’ 이라니. 어이쿠,  상상만 해도 징그러워서 소름이 돋는구만!”

프리몬트 백작의 반응에 수행원들은 다시  번 놀라고 말았다.

프리몬트 백작이 친 평민파 귀족도 아니고 오히려 귀족들의 특권을 옹호하는 이인데.
당연히 평민으로서 귀족에게 보여야 하는 예의를 저 남자가 전혀 보이고 있지 않음에도.
노하기는커녕 오히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대하고 있지 않은가!



수행원들은 연신 당황하면서도 일단 제 본분을  하기로 했다.
숙소로 방향을 잡느냐는 질문에 프리몬트 백작이 반사적으로 그러자고 대답을 하려는 찰나.

백작은 아! 하고 탄식을 내뱉더니 말도  되는 소리! 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리고는 맞은편에 앉아있던 클라우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천둥벌거숭이 새끼들이 있는 여관이 도대체 어디냐고 말이다.




“조랑말 여관입니다.”
“들었느냐! 당장 조랑말 여관으로 간다. 그리고 경비대에 가서 내가 하는 일에 절대 끼어들지 말라고 전해라! 알겠느냐!”
“에, 예! 백작 각하!”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 속에서도 수행원들은 빠르게 제 할 일을 찾았다.
마차 문을 닫고, 조랑말 여관을 수소문하고, 경비대로 다시 들어가고, 마차를 몬다.
귀족들의 똥이나 치우는 역할을 한다는 평을 듣는 수행원들이지만 사실 모두가 전문직이다.
눈치도 좋아야 하고 머리도  돌아가야 하며 극한의 인내심도 필요하다.
당연히 작업 능력은 말할 것도 없이 뛰어나야 하고 말이다.

수행원들의 수준에 따라 그 가문을 가늠할 수 있다는 말도 있을 정도다.
그런 말에서 봤을 때 프리몬트 백작가는 클라우스 기준에서 일단 합격이라 할 수 있었다.


끼익-, 덜컹!


마침내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안에는 프리몬트 백작과 클라우스가 남게 되었다.
조랑말 여관까지는 얼마 걸리지도 않는다.
엎어지면 바로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이다.
그럼에도 프리몬트 백작은  찰나가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미쳐버리겠군.’

제 앞에 앉아있는 남자, 전 남부 사령관 클라우스.
전쟁 영웅이라고는 하나 어찌 되었든 그는 평면이고 자신은 귀족이다.
그것도 남작이나 자작도 아니도 백작위에 머물고 있는 꽤나 권세 있는 가문이다.

그런 자신에게 프리몬트 백작, 이라고 부르는 클라우스다.
수행원들이 어이가 없다는 시선을 보내는 부분을 이해하지 못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프리몬트 백작에게는 그리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머저리, 머저리야. 왜 그때 내기를 해서!’



왕국에서 클라우스를 불러들여 지휘권을 박탈하고 귀족 지휘관을 앉혔던 일이 있다.
그리고 바로 직후 그 귀족은 희대의 말도  되는 패전을 당하게 된다.
덕분에 클라우스가 기껏 일궈놓은 남부군이 모조리 증발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6년 가까이 버티던 남부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고 인간들은 바람 앞의 등불이 되었다.


그 상황에서 프리몬트 백작은 절망했다.
이제 저 무시무시한 마족들이 자신들의 목을 베어 창에 꿰고 다닐 것이라고 몸을 떨었다.

그런데 그와 어느 정도 안면이 있던  귀족은 무척이나 담담한 표정이었다.
바로 그가 키엔마이어 후작이었는데, 그를 바라보면서 프리몬트 백작은 말했다.
인간이 멸망하고 모두가 죽기 직전인 상황인데 어찌 그리 담담할 수 있냐고.
그러자 키엔마이어 후작이  대답을 백작은 아직도 잊지  한다.


- 안 죽네. 클라우스가 다시 남부 사령관으로 내려가지 않았는가. -


프리몬트 백작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도  때만 생각하면 여전히 어이가 없는  마찬가지였다.
요정의 군대도 수인의 전사들도 박살을 내던 게 바로 마족 군대였다.


 강병들을 상대로, 심지어 3만이 넘어가는 대병력을 상대로 고작 천 여명이었다.
망할 귀족 지휘관이 남기고 간 남부군은 고작 천 여명이었고 그게 클라우스가 지휘할  있는 마지막 병력이었다.



기가 막혔다, 웃음만 나왔다.
키엔마이어 후작이 클라우스라는 평민과 어울리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아무리 그가 전투를 잘 치른다는 지휘관이라지만 병사 없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천  명과 3만이 넘는 자들의 전투.
심지어 수가 적은 쪽은 직전에 대패까지 당했고 수가 많은 쪽은 기록적인 대승을 거두었다.

누가 봐도 남부군의 완전 궤멸, 그리고 클라우스의 전사가 확실해보였다.
그런데도 키엔마이어 후작은 클라우스가 이길 수밖에 없다는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해서 프리몬트 백작은 그냥 던지는 말로 이렇게 외쳤었다.
정말 그 클라우스라는 평민 지휘관이 이긴다면 평생 그를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귀족으로서, 백작으로서 일개 평민을 형으로 모신다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프리몬트 백작은 그리 하겠다고 맹새까지 했다.
절대 이길 수 없을 테고, 그래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 좋네. 그러면 내가 증인이 되는 걸세. 그리고 백작은 조만간 형님이 생길 테고. -



설마 했다. 설마 했는데, 이게 웬걸.
 설마가 진짜가 되어버렸다.


‘괴물.’


클라우스를 바라보면서 프리몬트 백작은 그리 생각했다.
고작 천 여 명으로 3만이 넘는 마족 병사들을 물리쳤다.
그것도 고작 수십의 피해에 그치는 대승리로 말이다.

덕분에 프리몬트 백작은 꼼짝없이 클라우스를 형님으로 모시게 되었다.
장난이었다고, 진심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하필 그 말을 들은 게 키엔마이어 후작.

그는 반은 장난, 반은 진심으로 어서 맹세를 이행하라 백작을 압박했다.
졸지에 평민을 형님으로 모시게 된 프리몬트 백작이 어쩔  몰라하는 순간.
당시 아직 사령관 자리에 있던 클라우스는 이렇게 말했었다.



“형님 대신 그냥 친한 사이로 지내자. 님자 호칭까지 제외해서 부르겠다.”
“으, 으응?”
“갑자기 그 때가 생각나서 말입니다.”



클라우스의 말에 프리몬트 백작은 허허허, 웃으면서 고개만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형님이라 모시는 대신 클라우스가 자신을 편하게 대하는 것으로 일단락이 되었던 것이다.


“불편하다면 지금이라도 말하세요. 다넬도 없는데 솔직히 그런 맹세, 넘어가도 괜찮습니다.”

 말에 프리몬트 백작은 아니라면서 손까지 내저었다.
단순히 클라우스에 대한 어려운 뭔가가 있는  아니었다.




‘무서운 놈. 정말이지 무서운 놈!’




방금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클라우스는 키엔마이어 후작을 굳이 ‘다넬’ 이라고 불렀다.
왕조차도 본명을 부르는 게 실례라고 여길 수 있는 대귀족 중의 대귀족을.
성도 붙이지 않고 그냥 옆집 친구 이름 부르듯 부르고 있는 것이다.


저게 지금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뻔하지 않은가.
키엔마이어 후작과 자신의 가까운 사이를 다시 한 번 보여주는 것이다.
비록 자신은 군부에서 물러났으나  친구는 여전히 귀족 세계의 엘리트라고.
네가 한  실수할 때마다 괴로운 일이 하나씩 생겨나는 것이라고 말이다.



“아, 아닐세! 아니야! 내가 한 맹세를 그대가 그리 줄여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네. 그리고 이건 순전히 내가 그대에게 보이는 존경심 같은 것이니 신경 쓰지 말게. 다른 자들이 뭐라고 보든 상관하지 마! 마음대로 불러도 좋아!”

백작의 대답에 클라우스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맙다고 대답을 했다.

정작 그 미소는 ‘응, 그럴 줄 알았단다.’ 라고 말하듯 묘하게 뒤틀려 있었지만 말이다.

‘젠장, 젠장, 젠장!’

자식들 보러 왔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프리몬트 백작은 절로 이가  갈렸다.


만약 지금 일이 키엔마이어 후작의 귀에 들어간다고 하면.
정말 상상하기도 싫은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 뿐이겠는가? 시간이 지나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생환병들이 일거에 결집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음이었다.
자신들은 건드려도 그 위대한 영웅, 자신들의 사령관인 클라우스만큼은 절대 못 건드린다.
 분 덕분에 살아남아서 배불리 처먹고 자란 새파랗게 젊은 귀족이  분을 몰라보고 폐를 끼쳤다고 정말 들고 일어날 수도 있었다.



‘이 빌어먹을 놈들. 똥통에 빠트려서 죽일 놈들!’



그의 분노는 곧 상황을 이렇게 만든 두 귀족 자제들에게 향했다.
이런 외진 곳에 귀족 자제들이 모여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뿐이다.
대륙 아카데미에 기회만 되면 어떻게든 들어가기 위해서.

강제성이 없는 곳이기에 때때로 아카데미를 이탈하는 생도들이 있었다.
피치 못  사정으로, 혹은 내부의 싸움을 견디지 못 하고 떨어져 나가는 형식으로.
그런 빈자리를 노리고 달려드는 놈들은 이 도시 어디에도 있을 것이다.

헌데 정말 대륙 아카데미에 들어갈 생각이라면.
그 안에 어떤 무서운 자들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아야 할 것 아닌가.
생각을 조금만 해봐도 상황이 이상하다는 거야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지  주도 아니고 한 달도 아니고 5년이 지났다.
그동안 생환병들의 자세가 여전히 뻣뻣할 수가 있겠는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귀족들이 재수가 없다고 죄다 잘라버렸는데?
그런 상황에서 귀족 자제임이 분명함에도 시비를 거는 자가 있다면 그건 반드시 뭔가를 노리고 있다는 소리요 믿음직한 뒷배가 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심지어 대륙 아카데미가 마차로 몇 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곳이다.
아카데미에서 오는 마차들이 있으니 그 안에 어떤 대단한 이가 타고 있을 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최소한 상대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안전한 것이 확인된 후에야 일을 저지르면 좀  되느냐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많이 해본 이들이야 눈치를  수도 있겠지만 애송이들에게는 무리였을 것이다.
그냥 자신들의 특권에 취해서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 끌어가라고 소리나 쳤겠지.
그리고서 귀족임을 자랑하며 해서는 안 될 짓까지 하려  테고 말이다.



“저, 클라우스.”
“네, 프리몬트 백작.”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경비대에 잡혀온 건가.”
“들으셨다시피 귀족들에게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끄응… 그러면 안 되네. 자네도 알잖은가. 평민은 귀족에게 무례를 범해서는 안 돼. 아무리 자네라고 해도 마찬가지야.”
“알고 있습니다. 전 그냥 혼잣말을 한 겁니다. 헌데 그런 이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는지 바로 달려들어서는 멱살까지 쥐더군요.”
“멱살까지?!”



다리가 후들거리는 프리몬트 백작이었다.
이 자리에 키엔마이어 후작이 있었다면, 그는 바로 영지전을 선포했을 것이다.
자신의 벗에게 감히 손찌검까지 한  곧 자신을 모욕한 것과 다름이 없다고.
키엔마이어 후작가에 정식으로 도전한 것이니 응당 거기에 맞는 대우를 해주겠다고 말하면서.



“그것들이 당최 무슨 일을 저질렀기에….”



막 프리몬트 백작이 일의 전말을 물으려던 찰나.
마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다가 곧 자리에 멈춰 섰다.




“백작 각하! 말씀하신 조랑말 여관이라는 곳에 당도하였습니다!”



그 말에 프리몬트 백작이 마차 문을 잡으니 클라우스는 그를 따라 내릴 준비를 했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마침 도착했으니 직접 들어가셔서 보시죠.  귀족 자제들이 과연 어떤 일을 하려고 이렇게 평민들이 대부분인 여관에 와서 제게 혼잣말까지 들어야 했는지 말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