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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화 〉6장 - 마왕 키우기 (89/341)



〈 89화 〉6장 - 마왕 키우기

“젠장, 젠장, 젠장.”




왕국 측 귀족 가문의 일원인 리어만은 현재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다시 대륙 아카데미의 편입은 좌절되었지.
아버지는 배 다른 동생에게 후계자 자리를 넘겨주겠다 으름장을 놓고 있지.
그나마 믿을  있었던 뒷배인 외가 쪽도 슬슬 발을 빼려고 하고 있지.
마지막 희망이었던 혼인 동맹마저 영 진전이 없었다.




‘이러다가 정말 후계자 자리고 뭐고 다 빼앗기고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어.’


한탕을 노리려고 도박판에 무리수를 던진 게 최악의 실수였다.
그 소식이 제 아버지의 귀에 들어가자 제 부친은 격노를 터트렸다.
잘난 것 하나 없는 놈이 헛짓거리만 하면서 가산을 탕진하고 있다고.
무너진 명예를 회복하기는커녕 더 무너트리고 있다고 외치면서.

그렇지 않아도 이전에 있었던 사건으로 대륙 아카데미 행이 좌절된 것 때문에 가문의 철부지에서 구제 불가능한 망나니로 찍힌 리어만이었다.
이번에  사고를 쳤으니 이제 후계자 자리도 위태롭기 그지없는 상황이 되었다.



“빌어 처먹을.”




리어만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 걸음을 옮겼다.
자신이 잘 나갈 때만 해도 옆에 들러붙어서 콩고물이라도 좀 주워 먹으려던 놈들.
그런 것들이 소식을 들었는지 오늘따라 단  놈도 보이지 않는다.


개새끼들, 이라고 속으로 다시 한  욕을 하면서 리어만은 걸음을 옮겼다.
속이 뒤틀려서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있을 수가 없었다.
어디  곳에 처박혀서 술이나 좀 퍼마시고 잠이나 자고 싶었다.



하지만 수중에 돈이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이미 자신의 단골집에는 외상값이 하도 많이 달려 있고 무엇보다 가문에서 쫓겨나기 직전이라는 사실까지 알고 있을 테니 가는 게 병신이라고 할  있었다.



‘시발, 시발, 시발.’

리어만은 다시금 욕을 퍼부으면서 길을 걸었다.
귀족으로서 수행원 하나 없이 이리 걷고 있는 게 참으로 한심스러웠다.
자신의 잘못을 이유로 아버지가 수족들까지 전부 빼앗았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났다.


입술을 연신 씹어대면서 길을 걷고 있던 그는 앞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걸 확인했다.



“여어, 리어만.”
“갈 길 가라.  말장난 받아줄 기분 아니다.”
“뭐라는 거야. 그래도 빈털터리가 된 네놈을 이리 보러 온 건 나밖에 없잖냐?”



킥킥 웃음을 터트리면서 다가오는 이는 리어만과 마찬가지인 중견 귀족의 자제, 피오.
상당히 시끄럽고 특히 사람 정신을 빼놓는 말재주가 특기인 남자였는데 리어만조차 은근히 버거워하는 귀족이라고 할  있었다.



“친구 좋다는 게 뭐야. 응?”



피오의 말에 리어만은 큽, 하고 짧은 웃음을 내뱉었다.
친구, 친구라. 그래, 일단 그렇다고 부를 수는 있을 것이다.
둘 모두 귀족 가문의 자제, 어울려도 서로의 가문에 문제될 것은 없다.


더해서 귀족이 우월하다는 것에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친구라고는 하지만 막 어깨동무를 하면서 우정을 나누는 그런 사이까지는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끼리끼리 놀다보니 가까워진 사이.
친구이지만  선이 그어져있는 그런 벗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또  잔 걸치려고 하는 거겠지?”
“뭐 좋은 곳이라도 알고 있나?”
“솔직히 술이야 다 거기서 거기지. 이런 외곽 지역은 말이야.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참. 그놈의 대륙 아카데미 편입만 목이 빠져라 기다리면서 이게 뭐하는 짓일까.”
“어쩌겠어. 요정 놈들이나 짐승들, 역겨운 마족들이 있는  심히 화가 나지만 거기에 내로라하는 귀족 자제들도 많은데 말이야.”




누구는 대륙 아카데미가 이런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고 꿈꾸었을 것이다.
이후 자신들의 세력을 이끌 미래의 인재들이 서로 화합하는 그런 장소로.
하지만 리어만와 피오, 그리고 많은 이들은 전혀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최고의 이들이 모이는 곳이니 거기에서 인맥을 쌓는 데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종족간의 화합이니 대륙의 평화이니 그런 건 뒷전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자신들의 이권이 오래도록 계속 유지되는 것, 오직 그뿐이었다.

“오늘은 술보다는 안주 어떠냐.”
“…뭐 좋은 안주거리라도 있나보네.”
“있다마다. 아까 상인들 몇 놈  좀 찔러주다보니 어떤 여관에 괜찮은  있다고 하더라고. 뭐 야들야들한 맛도 좋지만 때로는 매운 맛도 좀 필요하지 않겠어?”



그러자 리어만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눈앞의 이 주둥이 가벼운 놈이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아도, 가끔은 흡족할 때도 있다.
그 중 하나는 이렇게 자신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고 뭔가를 제안할 때라   있었다.


피오가 말하는 ‘안주’ 라 함은 여인임을 단번에 파악한 리어만은 앞장서라 말했다.
원래 자신이 가던 이곳 도시들의 고급 술집 같은 경우에는 보는 눈도 눈이지만 그걸 제 이름으로 다 가릴 수가 없어서 껄끄러운 부분이 많았다.
당장 자신 이외에 다른 귀족들도 많을 텐데 그들을 위협을 해봤자 통할 확률은 없으니까.


하지만 대부분이 지극히 평범한 손님들인 여관은 다르다.
가서 놀기도 좋고  끝난 후에 조심하라며 입을 막아두기에도 좋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어차피 평민들이 전부인 곳이다.

귀족인 자신에게 함부로 해코지를 할 수 없는 자들로 가득하다.
양떼 무리 속에서 사자가 날뛰는 격이니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어디로 가는 거지?”
“조랑말 여관.”
“이름 참 추잡스럽군.”
“그래도 여기 도시에서는 괜찮은 여관이라고 하던데. 돈 없는 거지새끼들이 가는 곳이 아니라 나름 돈 좀 있는 것들이 간다고 하더라고.”
“그래봤자 평민 나부랭이들이다. 귀족들이 머무는 숙소는 따로 있잖아.”
“그렇긴 하지. 아, 저 앞이다.”




두 귀족은 입가에 미소를 그린 채 그곳으로 향했다.
고급 여관이라곤 하지만 결국 주인도 손님도 모두가 평민인 곳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죽고 싶지 않고서야 함부로 대할 수 없을  당연한 일.

무엇보다 머물고 있는 손님들이나 여관의 주인에게 돈 좀 쥐어주면 알아서 입을 다물 것이다.
오히려 마음껏 즐기라면서 등을 떠밀지도 몰랐다.

“어서 오세요!”



리어만이 딱 여관으로 들어섰을 때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는 한 여인.
그 여자를 보는 순간 그는 피오가 말한 안주가 바로 저 여자임을 직감했다.


상당히 반반한 외모에 굴곡진 몸매, 가슴도 크고, 엉덩이도 크다.
특히 저 웃는 얼굴이 참으로 아름다웠는데 그걸 바라보면서 리어만은 저 여자의 웃는 낯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울게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강렬하게 들었다.


리어만과 피오는 그 여성 종업원을 그대로 지나쳐서 테이블에 앉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꽤나 시끌시끌하던 여관 안이었지만,  둘이 등장하자 별안간 모든 소리가 뚝하고 멎었다.
모두가 알아차린 것이다, 지금 안으로 들어선  남자가 귀족임을.

‘다들 눈치는 빠르군. 그래, 추잡한 것들이 눈치라도 좋아야 살아남지.’



자신들이 걸치고 있는 망토의 원단은, 평민이 평생을 벌어도 가져보지도 못 한다는 비단.
그 비단을  개나 써서 만든 망토에는 화려한 자수까지 들어가 있다.

법이 제정되어 있는  아니지만 이런 화려한 망토는 오직 귀족들만 사용할  있었다.
혹 평민 주제에 이런 화려한 망토를 입고 다닌다?
 날로 주변 귀족의 귀에 들어가면 망토 째로 둘둘 말아서는 몽둥이찜질이 예약되었다.



“너.”



리어만이 정확히 그 여성 종업원을 지목해서는 제 앞으로 부른다.
그러자 여인이 몸을 움츠리고서는 조심스레 그 곁으로 다가왔다.


“방 하나를 잡고 싶은데. 반나절 정도면 될  같군.”
“저, 저기.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 혹 숙소를 잘못 찾아오신 건 아닐까 여쭤보고자 하는… 우웁?!”



순간, 갑자기 여인의 얼굴을 우악스럽게 틀어쥐는 리어만.
덕분에  앞으로 끌려온 종업원은 그를 뿌리치지도 못 하고 다만 바동거릴 뿐이었다.


“지금 평민 주제에 귀족을 무시하는 거냐? 설마 내가 그것도 헛갈려서 여기로 왔을까?”
“으으읍! 아이니다! 재, 재가 크 시수를…!”



꽤나 아름다운 종업원을 양아치 같은 두 남자가 위협한다.
원래라면 이쯤에서 나서는 이가 있어야 맞는 상황이겠지만.
여관의 어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시선을 피하느라 바빴다.

저들이 자신들은 감히 꿈도   비단 망토를 아무렇게나 두르고 있으니까.
평민 몇 함부로 대한다고 흠집도  가는 자들,  무서운 귀족들이니까!



“아이고! 아이고! 귀족 분들. 죄송합니다. 오늘 새로 온 녀석이다 보니 접대에 실수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노여움 푸시지요. 넓은 아량으로 한 번만 용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름 좋은 곳이라 하여 일부러 찾아왔는데 시작부터 기분을 잡치게 만드는군.”

여전히 여인의 얼굴을 강하게  채 리어만은 그녀의 얼굴을 좌우로 휙휙 흔들었다.
그에게 양 볼을 강하게 붙잡힌  다만 몸을 덜덜 떨고 있던 종업원은 눈물을 흘리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이보게, 주인장.”



리어만을 대신해서 맞은편에 앉아있던 피오가 입을 열었다.


“이런 건방진  여인 하나 정도 당장 죽여도 문제가 없어. 그런데 살아 있잖나? 그러니 걱정 말고 볼일 보도록 하지 그러나.”
“아, 알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바로 방부터 안내를….”
“안내는 저 여자가 하면 될 거야. 그리고 우리가 머무는 동안 시중도 좀 들고.”
“시중까지 말입니까?”
“귀족을 능멸했는데 손이나 발을 잘라도 모자란다. 그런데도 넘어가주겠다는 건데  불만이라도 있는 건가? 있다면 저 여자를 지금 당장 처벌할 수도 있어.”


그 말에 여관 주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종업원 입장에서는 억울하겠지만 자신들은 평민이고 저들은 귀족이다.
거기에 이런 곳에 찾아와서 대놓고 행패까지 부리는 걸 보면 나름 이름이 있는 가문의 자제일 확률이 굉장히 높았다.


도시의 경비병들이 와도 소용없을 것이다.
평민 하나를 위해서 귀족 가문 둘과 적대시하고 싶은 이는 아무도 없을 테니.
여기서 괜히 거스르다가는 모두가 불벼락을 맞을 수도 있음이었다.



‘하, 하지만 제니를….’


문제는 눈앞의 귀족이 말한  ‘시중’ 이라는 것이다.
여관에서 오랫동안 일했기에 주인은 바로 눈치를 챘다.
지금 이 귀족들이 원하는 게 다름 아닌 종업원 제니라는 것을.
그냥 기분이 나빠서 행패를 벌이는 것처럼 보이는 이 모든 게 실은  계획된 것이란 걸.




“리어만. 그러다가 죽겠어. 슬슬 놓아주지. 그래야 우리들을 방으로 안내할 거 아닌가?”
“고작  붙잡았다고 죽을 리가. 짐승도 아니고 말이지.”


마력을 일으키면서까지 붙잡은 주제에 그리 말하는 리어만이었다.
낮은 웃음을 터트리던 그는 붙잡고 있던 여인 종업원, 제니를 그대로 내던졌다.


콰당!-




“흐읏!”


자리에 주저앉은 여인의 눈가에서 당혹과 서러움으로 인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모습에 오히려 더더욱 흥분했는지 리어만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소란을 피운 것 같아 마음이 쓰이는군. 주인장.”
“네, 네!”
“여기 있는 자들에게 이걸로 마실 것이나 전부 돌려라. 남는 돈은 그대가 가지고.”




철그럭!-

꽤나 묵직해 보이는 주머니가 주인의 앞에 나타났다.
떨어지는 순간 들린 둔탁한 소리는 그 안에 꽤나 많은 돈이 들어가 있음을  수 있었다.

그러자 바짝 얼어붙은  시선을 회피하던 이들이 순간적으로 두 눈을 반짝인다.
귀족이 사는 공짜 마실 것이라니, 소란을 일으켰다고 대접을 해주겠다니.




‘역시 개돼지들. 조련하기  쉽군.’



리어만을 바라보면서 피오는 속으로 낄낄 웃어댔다.
자신들에게는 술값도 안 되는 푼돈이지만, 저것들에게는 눈이 돌아갈 거금이다.
귀족들이 싫다고 하면서도 자신들이 던져주는 돈에 개와 돼지처럼 달려드는 놈들.
그게 바로 평민들이었고, 그들의 추잡스러운 민낯이었다.




“자, 그러면 남은 건 하나인가?”
“흐익!”
“제니라고 했나? 넌 방이나 안내하고.”


손님들도, 심지어 주인도 눈앞에 떨어진 돈 꾸러미에 온 신경을 빼앗겼다.
덕분에 혼자 남게  여인은 제 어깨를 슬그머니 감싸오는 리어만의 몸짓에 바들바들 떨었다.

“저, 저으….”
“귀족을 능멸한 주제에  치대는 거냐? 가족들까지 전부 잡아주랴?”
“아, 아닙니다! 그, 그건….”
“그래, 그러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지?”


마치 개를 달래듯 턱을 손가락을 살살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리는 리어만.
얼른 대답을 해보라 재촉을 하는 손짓에 여인이 두 눈을  감고 입술을 떼었다.



“지랄 염병을 떨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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