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화 〉6장 - 마왕 키우기
어제 몇 번 했더라? 마지막 기억은 열한 번째 사정을 하고 나서 그대로 쓰러진 것 같은데.
클라우스는 제 이마를 꾹꾹 누르면서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다른 건 몰라도 체력 하나만큼은 전성이의 율리아 수준으로 만들어 두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아직 전성기도 아닌데 그 모든 것을 끝끝내 받아들였다.
“으응….”
물론 그 대가로 옆에서 클라우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약간의 소음이 나는데도.
아무 것도 모른 채 단잠에 빠져 있는 상태였지만 말이다.
이전처럼 자고 있는 율리아를 괴롭히지 않는 클라우스였다.
조금은 아쉽지만 당장 오늘과 내일을 이용해서 할 일이 있었다.
대륙 아카데미의 교수들도 출장이라는 것을 다니곤 한다.
정말 어딘가로 볼일이 있어서 잠시 아카데미를 비우는 것일 수도 있고.
반대로 머리 좀 식히기 위해서 출장이라는 핑계 하에 탈출하는 것일 수도 있다.
클라우스의 같은 경우에는 전자와 후자를 다 합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볼일이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드러나서 안 되는 일이기에 잠깐의 탈출이 겹쳤다고 할까.
사르륵-.
방을 나서기 전 클라우스는 율리아의 보랏빛 머리를 한 번 쓸어본다.
그 어떤 비단보다도 이보다 더 고운 느낌을 낼 수는 없을 것이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섹스를 했기에, 그래서 원래는 떡이 져야 마땅할 것인데.
율리아는 여전히 그 눈부신 자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제는 진짜 대단했지.’
두 세 번의 섹스 이후, 잔뜩 흥분한 율리아가 역으로 위로 올라탈 때.
클라우스는 겉으로는 감탄하는 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정말 놀랐다.
제 기억 상으로 율리아는 조금 더 후에야 그리 적극적으로 변했었는데.
아무래도 뭔가 살짝 바뀌거나 어긋난 것이 또 다시 변화를 이끌어 낸 모양이다.
회차를 반복하다보면, 그래서 각종 사건 사고에 개입하게 되면.
그 영향으로 다음 일들이 바뀌는 경우도 종종 생기곤 했다.
클라우스 본인이 원해서, 그리고 흐름을 바꿀 경우 어떤 일이 생기는지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경우에는 이미 대비가 다 되어 있는 터라 문제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때때로 그 회차에서 처음으로 나타나는 변화도 가끔씩은 일어났다.
당장 어제 있었던 일도 바로 그와 비슷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또 홀라당 넘어가서 받아준 게 큰일이군.’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클라우스는 저도 모르게 율리아가 제 위에 올라타는 것을 허락했다.
그 후로 율리아는 교성을 내지르면서 이리저리 허리를 튕기고 흔들어댔다.
출렁거리는 풍만한 가슴, 이지러지는 보랏빛 머리, 꿀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붉은 눈동자.
한 폭의 그림, 아니 그런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 후 다시 율리아를 침대 위에 엎어트리고 위에서부터 찍어 누르듯 자지로 쑤셔준 자신이었지만 어찌 되었든 변화가 일어난 건 확실했다.
“우으응.”
곤히 자고 있는 모습은 청아하기 그지없다.
어제 밤만 해도 색욕의 여신마냥 혀를 날름거리며 다가오던 여인이었는데.
지금은 남녀의 관계도 모르는 처녀처럼 보일 정도였다.
조금만 더 율리아를 지켜보던 클라우스는 시간을 보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 율리아가 일어난 후 당황하지 않도록 이미 그 옆에 쪽지를 남겨둔 후였다.
잠깐 일이 있어서 아카데미를 비운다, 내일 오후 중으로 돌아올 것이니 놀라지 마라.
자리를 비운 사이에 혹 다른 이들과 쓸데없는 마찰을 일으키지 마라, 그 외에 잡다한 이야기를 적어두었다.
혹 율리아가 깰까 아주 조심스레 방을 나선 클라우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자 그는 주변을 둘러보고서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리르.”
스르륵-.
그러자 기둥 뒤편에서 머물고 있던 마족 여인 바로 모습을 드러냈다.
원래는 율리아를 해치기 위해 그녀의 숙부에 의해 고용된 여자.
그러나 지금은 역으로 제 고용주에게 거짓된 정보와 약간의 사실을 보내고 있는 배신자.
무엇보다 클라우스의 자지에 완전히 녹아버려서는 무조건적으로 갈구하게 된 싸구려 보지.
“클라우스님.”
“잠깐 자리를 비울 거다. 그동안 혹 율리아 곁에 다른 뭔가가 붙지 않는지 감시토록 해라.”
“혹 그런 목적을 지닌 자와 조우하게 된다면….”
당연히 그럴 일 따위 없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율리아에게 해를 가할 놈이 아카데미에 남아있다면.
그게 아니더라도 조만간 들어올 것이라면 클라우스가 미쳤다고 아카데미를 비우겠는가?
지금 그는 다만 그녀를 한 번 시험해볼 뿐이었다.
그 어떤 조건 앞에서도 무조건 자신만, 정확히는 제 자지만 바라볼 수 있는가.
성실히 제 임무에 임할 수 있는 노예가 맞는가, 그걸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율리아를 지켜라.”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러다가 죽으면 어쩔 수 없겠지만 혹 살아남는다면. 내가 내린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다는 걸 보인다면 그 때는 오붓하게 널 즐겨주도록 하지. 어때?”
클라우스의 말에 리르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동시에 움찔 몸을 떨더니 허벅지를 꼬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아주 그냥 기대가 되어서 미치겠지. 보지가 떨리도록 좋겠지.’
죽을 수도 있다는 걱정은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만 율리아의 곁을 살펴라, 수상한 놈이 있는지 없는지 세세하게 확인해라.
그러면 다녀와서 네게는 과분하다 싶을 정도의 상을 내려주마.
오직 그 말만이 리르의 귓가에, 그리고 머릿속에 아른거릴 뿐이었다.
“최선을 다할게요. 다녀오세요, 클라우스님.”
비록 율리아에게 해코지를 가하려던 마족이지만.
원래는 당장 잡아서 사지를 뭉갠 다음 뒷골목에 버려서 정액 받이로 만들어야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자신은 리르를 어느 정도 기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 지겨운 회차를 반복하면서 인간성은 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오직 본인만의 이득을 위해서 움직이는 이기적인 놈이 된 줄 알았는데.
그래도 결국 인간이라고 아직 일말의 동정심이 남아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본인은 만든 적도 없는 캐릭터다. 리르라는 이름도 처음 듣는다.
저 마족 여자의 사연은 몇 번이고 저 여자를 죽이고, 고문하고,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몇 번 더 조우하다보니 한 번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여자의 동생이 참…. 그러고 보면 리르도 꽤나 불우한 생을 살았지.’
비록 고문과 최면으로 인한 조교라고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저 여자가 처음으로 머금은 남자는 자신이다.
제 침이 묻은 저 보지를 다른 남자 놈들이 탐하게 두고 싶지는 않다.
죽여도 본인이 죽일 거고, 살려서 써먹어도 나만이 써먹을 거다.
클라우스는 그리 생각하면서 몸을 돌려 아카데미를 나섰다.
가까운 인간 측 도시로 향하는 마차는 상시 대기 중이다.
마족들의 땅인 동부로 향하거나 요정들과 수인들의 영토로 가는 마차도 있었지만 그건 미리 요청을 해두어야만 했는데 이유는 역시나 거리 때문이었다.
‘아카데미에서 말을 달려서 반나절이면 큰 도시가 나온다.’
애당초 아카데미라는 교육 기관의 시초는 인간 측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기에 이곳은 상대적으로 인간 측에 가깝게 자리할 수밖에 없었다.
해서 몇몇 생도들이나 교수들은 인간 측의 입김이 작용하는 것에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장 이번에 다른 종족들에게는 말도 없이 자체적으로 조사단을 보낸 것도 그런 부분이었다.
클라우스 역시 인간 귀족 놈들이 자꾸 자신에게 시선을 쏟는 게 영 짜증났다.
본국의 평민들을 완전히 눌러놓기 위해서 명분이 필요한 자들이다.
그리고 그 명분은 평민들의 최고 영웅인 클라우스를 깎아내리는 순간 만들어진다.
해서 귀족들은 클라우스의 잘못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고 할 정도로 움직여댔다.
당장 클라우스의 부관이었던 카엘라에게 왕국의 준 귀족 자리까지 주면서.
그리고 겉으로는 나름 대접을 해주면서 불러들인 걸 보면 말 다한 셈이었다.
물론 안에서는 여전히 짐승 년이라고 무시를 하고 있고, 무엇보다 애당초 카엘라가 그 안으로 들어간 건 클라우스의 명령이 있어서였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들의 시선은 여러모로 불편한 것이었다.
되도 않는 찌꺼기들이 자꾸만 꼬여드니 짜증이 날 법도 하다.
하지만 지금 클라우스는 오히려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럴 때에는 대륙 아카데미가 인간 영토 근처에 지어진 게 참 좋다니까.’
사실 아카데미가 바로 이 위치에 지어진 것도 알게 모르게 그의 입김이 작용했다.
이후 자신이 알차게 이용하는 한 집단이 이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도시에 거점을 잡고 활동하는 게 그 이유였다.
‘율리아를, 우리 마왕님을 키우기 위해서는 수련만으로는 부족해. 명색이 왕인데 주변은 고사하고 본인마저 초라하면 권위가 안 서잖아, 권위가.’
권력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따르는 사람, 자신의 이름을 외쳐주는 지지자들이다.
그리고 그 자들을 모으는 데에 있어서 가장 좋은 것은 딱 하나다.
인망? 명예? 자애로움? 아니, 다 아니다.
그런 것이 부가적인 이유가 될 수는 있지만 결코 주된 이유가 되지는 못 한다.
‘돈.’
그렇다, 돈. 자금.
그게 없으면 있던 사람도 다 떠나기 마련이다, 붙잡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된다.
혹자는 돈보다는 신의로서 움직이는 자들이 최고의 좋은 자산이 아니냐고 묻지만.
그런 이들은 정말 세상을 이 잡듯 다 뒤져야 몇 나올까 말까 할 것이다.
당장 대륙 전쟁이 끝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
곳곳에 전쟁의 상흔이 가득했고 그로 인한 피해는 복구는커녕 손도 대지 못 한 곳이 많았다.
승자는 없이 오로지 패자들만 있는 싸움이었다.
인간 측은 귀족들의 명예가 땅바닥을 뚫고 들어갔으며 요정은 그 대단했던 가문들이 흔들렸으며 수인은 전사들의 태반을 잃었다.
마족들 역시 서부 연합과 비슷하게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데에는 무엇보다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서부와 동부, 양측 모두가 이미 전쟁으로 거의 모든 자금을 소모한 상태다.
심지어 뚜렷한 승자도 없기에 배상금으로 그를 채우는 것도 불가능했다.
허면 그 많은 돈들은 현재 다 어디로 갔을까.
설마 금화고 은화고 전부 녹여서 무기로 만들었을 리는 없겠고.
그렇다는 건 결국 그 돈들이 어느 한 곳으로 흘러갔다는 소리였다.
‘이런 때에 돈줄을 쥐고 있는 놈이, 막대한 자금을 가지고 있는 이가 최강자가 되는 거다.’
클라우스는 그 돈줄 중 하나를 정확히 꿰고 있다.
대륙 전쟁의 혼란한 정세에서 수완을 발휘하여 미친 듯이 돈을 긁어모은 자를 알고 있다.
그 자를 만나기 위해서, 이렇게 아카데미를 비우고서 길을 나선 것이었다.
“교수님, 곧 도시에 도착합니다.”
“알겠습니다.”
마차를 끌던 마부가 곧 당도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세력 구축과 실력 향상, 그리고 섹스에 이어서.
클라우스의 마왕 키우기는 지금도 계속되는 중이었다.
이번에는 그녀를 진정한 마왕으로서 있게 해줄 자금 차례였다.
“알고 계시겠지만 아카데미 행 마차는 3시간 간격으로 있습니다. 단 밤에는 마차를 운행하지 않으니 혹 오늘 중으로 돌아오실 게 아니라면 아침부터 저녁때까지의 마차 운행을 이용해주시면 될 겁니다.”
마부는 그 말을 끝으로 마차를 몰아 클라우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몸을 돌린 클라우스는 미리 챙겨온 외투를 위에 걸쳤다.
딱 적당한 것으로, 너무 후줄근하지도 않고 너무 눈에 띄지도 않는 것으로.
‘이쯤이었는데.’
도시에 많고 많은 여관을 두고 굳이 한 것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는 클라우스.
그는 곧 ‘조랑말’ 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이름이 붙은 여관 안으로 들어섰다.
이름은 참 촌스럽기 그지없었지만 안으로 들어서니 오히려 무척이나 세련된 곳이다.
보통 여관이 아니라 부유한 이들이 잠시 머무는, 그런 곳이라고 할까.
안으로 들어선 클라우스는 일단 자리에 앉아서 적당히 마실 것 하나를 시켜두고는 기다렸다.
사건을 벌려줄 고마운 놈들들, 세상 물정 모르는 귀족 애송이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