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6장 - 마왕 키우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두 번째 주말을 넘기고, 다시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클라우스는 교수라는 직함을 달고 있기에 강의에 최선을 다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율리아, 그 다음이 다른 여인들, 그리고 자신의 이미지 관리다.
전쟁 영웅이라는 놈이 제 일에 소홀하다는 말이 퍼지면 그게 어떤 식으로 와전될까.
아마 귀족 놈들은 좋다고 달려들어서는 개떼처럼 짖어댈 것이다.
그런 잡소리를 듣는 건 당연히 사절하고 싶었다.
제 성질머리가 더러움을 잘 알고 있기에.
그런 말을 들으면 알레르기 반응마냥 다 죽이고 다닐 듯 싶은 게 이유였다.
“오늘은 중간 점검 시간입니다. 이전에 상대했던 이를 상대로 다시 대련을 진행할 테니 상대를 찾아서 서주면 되겠습니다.”
클라우스의 말에 전투 마법 강의를 수강하는 생도들이 저마다 짝을 찾는다.
강의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그냥 클라우스를 물어뜯기 위해 들어온 귀족 생도들을 제외한다면 다들 나름 열심히 대련을 했던 것인지 분위기가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그런 이들 사이에서도 딱 눈에 띄는 그룹은 역시나 율리아와 나타샤.
1주가 조금 넘는 시간 사이에 몰라보게 확 분위기가 바뀐 율리아.
그리고 그런 율리아의 변화에 경쟁심을 느끼고 더욱 날카로워진 나타샤까지.
두 여인의 기세가 이전과는 확연히 다름이 한 눈에 보일 정도였다.
오죽하면 다른 생도들도 그 둘에게 은근히 관심의 눈길을 두고 있었다.
“둘도 둘이지만… 나는 세실리의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도 궁금하네요.”
“으읏….”
율리아와 나타샤의 실력이 눈에 띄게 상승했다.
하지만 지금 클라우스 앞에 서있는 이 마족 여인.
레블랑 가문의 막내딸, 세실리도 그들 못지않게 성장했다.
원래부터 기본 베이스가 깔려있고 그 위에 쌓인 것도 제법 있었던 율리아니.
비록 마법은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으나 그걸 근접 전투술로 커버하는 나타샤와는 달리.
세실리는 여태까지 제대로 검을 휘둘러본 적도 없는 여인이었다.
그런 여자가 율리아, 나타샤, 그리고 클라우스에게 돌아가면서 교육을 받았다.
이래도 늘지 않는다면 그건 말이 안 되는 법이었다.
“율리아한테 많이 혼나고, 나타샤한테도 한 소리 들었죠.”
“네, 네.”
“그리고 나한테는 말도 못 하게 많이 맞았고요.”
체벌 수준으로 맞은 게 아니었다.
그냥 폭행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세실리는 클라우스에게 시달렸다.
그래도 선을 지키는 율리아나 손을 대지는 않는 나타샤와는 달랐다.
클라우스는 세실리의 몸뚱이가 아쉬워 할 때마다 아끼지 않고 고통을 얹어주었다.
“여, 여기서 기대 이하가 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뭘 어떻게 됩니까. 꿈도 희망도 없음을 인정하고 내가 때려치울 겁니다.”
“때려치운다고요?”
“세실리를 더는 교육하지 않겠다는 것이죠.
“안 돼요!”
겁을 집어먹은 모습을 보이던 세실리가 갑자기 돌변해서는 소리친다.
그런 여인의 눈동자에는 열망의 불꽃이 세차게 이글거리는 중이었다.
지금 저게 괴롭힘을 받고 싶어 안달이 난 여인의 눈임을 알고 있다.
덕분에 클라우스는 허, 하고 속으로 기막힌 웃음을 내뱉어야만 했다.
저 변태 마족을 몇 번이나 이렇게 만나고 있는 것이지만.
정말 볼 때마다, 그리고 괴롭힐 때마다 이해가 안 가는 캐릭터다.
도대체 뭐가 그리 좋다고 괴롭혀달라고, 때려달라고, 아프게 해달라고 하는 건지.
“클라우스 교수님께 교육을 더 받고 싶어요!”
“그러고 싶다면 최선을 다 하세요. 그래서 내가 희망을 계속 품게 만들어요.”
“최선을, 최선을 다 할게요!”
세실리의 눈동자에서 피어난 불꽃이 더욱 붉게 타오른다.
저 정도면 단순히 취향 정도가 아니라 병인 것 같은데.
클라우스는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깊게는 생각하지 않았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했던가.
덕분에 자신은 세실리를 마음껏 이용하고, 세실리는 마음껏 괴롭힘을 당하고.
서로 윈윈이라고 할 수 있으니 문제 될 거야 하나도 없다.
세실리가 제 아버지를 베어야 하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그녀를 안고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제 같은 것이다.
어찌 되었든 세실리도 그 레블랑 가문의 마족이다
마왕에게 등을 돌리고 그 자리를 노리던 자에게 붙은 레블랑 가주의 딸이란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율리아에게 충성을 증명하는 방법은.
레블랑 가문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가주를 가문이 직접 처단하는 것.
당장 클라우스 옆에 남고 싶어 하는 세실리로서는 당연히 거쳐야 하는 부분이었다.
“가겠습니다!!”
여기서 인정을 받아야 더 많은 괴롭힘을 받을 수 있다 생각하니 힘이 난 모양.
세실리는 원래 자신의 그 활달한 모습을 유감없이 내보이면서 클라우스에게 달려들었다.
그 외침을 신호로, 저마다의 간이 대련이 시작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승패는 결정되었다.
비록 세실리가 천재이긴 해도, 율리아와 나타샤, 그리고 클라우스에게 교육을 받았다곤 해도.
하직 클라우스를 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하우우….”
이번에도 바닥에 엎어진 채 엉덩이를 쓰다듬고 있는 세실리.
꽤나 매서운 공격들이었고, 괜찮은 방어를 보여준 그녀였다.
하지만 변칙 공격에는 여전히 취약한 모습을 보였고, 결국 뒤를 잡힌 세실리에게 클라우스는 그래도 고생했다는 뜻으로 엉덩이를 때려주었다.
다른 생도들이 보지 못 하는 각도에서 손으로 직접 말이다.
“히이잇….”
참고로 꽤나 세게 때렸다.
클라우스 본인의 손바닥이 다 얼얼할 정도로 말이다.
그렇다는 건 세실리에게 가해진 충격이 꽤나 크다는 것.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고통의 흔적 따위 찾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몽롱한 기운을 보이면서 헤헤 웃고 있는데 누가 봐도 제정신은 아니었다.
클라우스와 세실리의 대련이 끝난 것을 기점으로 해서 또 승패가 결정 나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실력 차가 나는 클라우스 쪽과는 달리 생도들은 딱 적당한 수준에서만 나섰다.
그래서 이렇게 승부가 빨리 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혹 다치거나 하면 단순히 망신살만 뻗치는 게 아니라 다른 이와의 관계도 불편해지니까.
‘리르 녀석, 그 와중에 또 어떻게든 점수 따려고 노력했군.’
남성 마족으로 위장한 리르는 승자의 위치에 서있었다.
암기를 다루는 특기를 최대한 줄이면서 정면 싸움에서 상대를 꺾었다.
보지가 저릿할 정도로 쾌락에 찌든 여인 치고는 꽤나 우수하다고 할 수 있었다.
살려둔 후 생각날 때마다 먹어주니 그래도 제 값을 하는 여자다.
계속 저런 상태를 유지한다면 이번에는 끝까지 데리고 갈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으와, 저게 뭐야.”
“저거 말려야 하는 거 아닌가…?”
“뭘 말려요. 재미있기만 한데.”
어디선가 생도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들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보면서 떠들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거기에는 율리아와 나타샤가 한창 목검을 부딪치며 싸우는 중이었다.
사전에 합의된 상황이라도 되듯 정말 둘의 공방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내뱉게 만들 정도로 막힘이 없었다.
상단이면 상단, 하단이면 하단, 중앙이면 중앙.
마치 합이라도 맞춘 것처럼 서로가 서로의 공격과 방어를 교차하면서 검을 휘두르는데 눈썰미가 좋지 못 한 이들은 그 움직임일 따라가는 것조차 버거울 지경이었다.
주변의 다른 생도들은 전부 대련이 끝났는데, 그리고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율리아와 나타샤는 그 부분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다만 눈앞의 제 상대에게 온 신경을 기울여서 상대하고 있을 뿐이었다.
‘좋네, 아주 좋아. 하지만 이쯤해서 슬슬 멈춰둬야지.’
너무 많은 것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
율리아도 나타샤도 제 세상에서 겉을 맴돌던 여인들이다.
이제 와서 본 실력을 보여준다면 눈치만 살살 보던 쓰레기들이 꼬여든다.
가공되지 않은 원석일 때는 길가의 돌멩이 취급을 하던 것들.
그러다가 가공이 되어서 조금씩 빛을 발하니 그제야 모여드는 놈들이다.
클라우스는 그런 역겨운 놈들한테 제 보석을 넘겨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율리아 생도! 나타샤 생도!”
목소리에 살짝 마력을 담아서 내뱉는다.
그러자 두 여인의 검이 막 허공에서 얽히다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뒤로 물러선다.
직후 목검을 내리고는 자신을 부른 남자가 서있는 곳을 바라본다.
“그만하면 충분합니다. 거기까지.”
클라우스의 말에 두 여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세를 바로 한다.
그러면서 나중에는 반드시 자신이 이기고 말겠다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두 눈을 반짝이면서 서로를 쳐다보고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는 게 증거였다.
“다들 실력이 성장하는 걸 보니 기쁘기 그지없군요. 물론 몇몇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교수로서 기쁩니다. 강의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습니다.”
클라우스의 말에 생도들은 곧 사방으로 흩어졌다.
얼른 씻고 싶다고 투덜거리는 요정 생도, 땀이 식기 전에 더 붙어보자는 마족 생도.
먼지투성이가 되어서도 장난스럽게 뒹굴러대는 수인 생도들까지.
인간 생도들은 평민과 귀족이 너무 극과 극이라 딱히 설명할 게 없었다.
오늘 있던 강의를 마친 클라우스는 바로 제 교수실로 향했다.
원래라면 나타샤라던가 세실리를 불러서 뭐라도 해주었을 테지만 오늘은 아니다.
그녀들에게는 참으로 아쉬운 일이겠지만, 그리고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오늘은 자신에게 찾아올 선객이 예정되어 있었으니까 말이다.
클라우스는 뒤에서 조용히 자신의 뒤를 따르는 이의 기척을 느꼈다.
짐짓 모른 체 하면서 교수실 앞에 다다른 그가 방문을 여는 순간.
“실례할게요.”
그의 뒤를 몰래 따라 와서는 교수실 안으로 들어간 여인은 다름 아닌 율리아.
그녀는 마치 이곳이 제 방인 것처럼 아주 산뜻한 발걸음으로 쳐들어와서는 다짜고짜 옷을 훌러덩 벗어버린 후 욕실로 들어갔다.
나타샤와의 대련으로 인해 땀을 흘렸을 테니까, 먼지투성이일 테니까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남자의 방에 들어왔는데 부끄러워하는 모습은 이제 다 사라진 듯 했다.
‘진짜 무서운 마왕님이라니까.’
농담이 아니다, 말 그대로 정말 무섭게 변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금은 초조해하고, 여린 모습을 보이던 율리아.
하지만 클라우스가 확신을 주니 여유를 가지게 되었고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 부분은 자연스레 율리아의 실력 향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여유와 자신감은 실력 향상에만 도움을 준 것도 아니었다.
‘큰 거 하나 오겠군.’
잠시 후 있을 마왕의 아찔한 자태를 떠올리니 절로 하체에 피가 확 쏠린다.
아직 주인공은 등장하지도 않았는데, 욕실 안에서 씻고 있을 뿐인데 혼자 이 지랄이라니.
클라우스는 혀를 차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율리아가 나올 시간에 맞춰 커피를 타러 갔다.
당연히 그녀의 것에는 설탕과 꿀을 듬뿍 넣은 달달한 것으로 말이다.
율리아가 나올 시간에 맞춰 최대한 여유롭게, 그리고 느긋하게 커피를 준비한다.
마법으로 해도 되는 것을 굳이 불로 직접 물을 데우는 작업을 시작으로.
그 불에 원두를 볶아내는 로스팅부터 손수 가루를 내어 물을 우려내는 것까지.
커피에 관한 부분만큼은 정말 열과 성을 다하는 클라우스였다.
달칵-.
잠시 후 욕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 딱 커피가 완성되었기에 클라우스는 양 손에 커피 잔을 들고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교수실 내부, 자신의 업무용 책상이 있는 곳에 다다른 그는.
“내일 강의 없는 날이에요. 그러니까 오늘은 잔소리하기 없어요.”
라고 자신에게 속삭이면서 우아한 자세로 책상 위에 걸터앉아있는 마왕과 마주하게 되었다.
율리아 특유의 분위기와 마력이 마치 양옆으로 펼쳐진 검은 날개를 보는 듯 하다.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받으면서 반짝거리는 머리칼, 루비마냥 빛나는 눈동자.
무엇보다 오늘은 정말 날을 잡고 온 듯 미리 준비한 복장마저 야하기 짝이 없다.
간신히 가슴만 가리는 천 쪼가리나 툭 건드려도 끊어질 것 같은 팬티까지.
“당연히 제 건 달콤한 걸로 준비하셨겠죠?”
마왕의 질문에 남자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정작 여기서 가장 달콤한 건 율리아 본인일 텐데 저런 말까지 하는 여유라니.
역시 누가 뭐라고 해도 마왕님이 최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