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6장 - 마왕 키우기
“화가 많이 난 것처럼 보이네요, 율리아.”
“….”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말해줄 수 있나요?”
율리아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돌아온 건 정확히 클라우스의 목을 노리는 공격이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고 그 직후 목검이 목을 스치고 지나간다.
진검에 비해 목검이 아무리 살상력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날붙이에 비교했을 때 위력이 크지 않다는 소리다.
맞으면 아프고, 더 세게 맞으면 위험하고, 급소를 맞으면 죽는 건 똑같다.
“흐음.”
그런 위험한 공격이 바로 제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자칫 그대로 적중이라도 당했다면 분명 큰 부상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클라우스는 제 목을 쓰다듬으면서도 딱히 화가 난 표정이 아니었다.
담담한 눈빛으로 제 앞에 서있는 율리아를 지그시 바라볼 뿐이었다.
“꽤나 위협적이기는 했는데.”
“….”
“살의가 담겨있지는 않네요.”
교수의 지적에 생도가 움찔 몸을 떨며 정확한 지적에 놀라는 반응을 보인다.
너무 정확하게 짚어서는 이야기를 하니 숨겨야한다는 생각조차 못 한 모양이다.
“율리아의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대화를 해보죠. 다시 묻겠습니다. 율리아.”
휘이익!-
따악!!-
번개 같은 일격에 율리아는 가까스로 검을 내밀어서 클라우스의 공격을 막아냈다.
조금만 늦었어도 그대로 정수리에 공격을 허용할 뻔 했다.
“왜 화가 났죠.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잘 참던 당신이었는데.”
“….”
“그렇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을 생각입니까?”
율리아를 밀치며 거리를 벌린 클라우스는 다시금 세차게 달려들었다.
또 한 번 둔탁한 충격음이 들리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둘 중 하나의 목검이, 아니 둘 모두의 목검이 부러진 건 아닐까 하는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몰라요.”
그 후로도 몇 번의 공방이 이어졌다.
율리아의 입이 열리고 대답이 나온 건 그 때쯤이었다.
“성의 없는 대답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몰라요. 제가 왜 그랬는지는.”
“정말 성의 없는 대답이네요.”
“….”
“정확히 말하자면, 진심이 느껴지기도 하는 성의 없는 대답이랄까.”
부웅!-
한 번 크게 목검을 휘둘러서 율리아를 떼어놓는다.
클라우스는 마왕과 거리를 벌린 후에 슬쩍 검 끝을 바닥으로 향하게 했다.
그러자 율리아 역시 그를 따라서 똑같이 행동했다.
“분명 말하지 않았습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고. 내가 당신을 배신하지도,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는다고 약속했잖습니까. 그런데도 아직까지 아이처럼 굴다뇨.”
“저는 아이처럼 군 적 없어요.”
“네, 그게 바로 아이처럼 군겁니다.”
“그런 적 없어요!”
목소리가 높아진다는 건 애써 진실을 외면하고 싶다는 방증.
특히나 율리아는 흥분을 하면 일단 목소리부터 높아지곤 했다.
그렇다면 흥분을 왜 할까, 그건 정곡을 찔려서, 그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일 것이다.
율리아는 어릴 적부터 힘겹게 살아왔다.
이미 숙부의 힘은 그 때부터 커졌고 반대로 전대 마왕, 그녀의 아버지는 약했다.
아직 어린 율리아는 살아남기 위해서 아이가 아니라 한 명의 후계자가 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전대 마왕이 죽자 이제는 소녀가 아니라 마왕이 되어야 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아이라는 말은 제 약점을 드러내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는 말이었다.
“마법도 괜찮고 근접 전투 능력도 좋고, 머리도 좋아서 안심했는데.”
천천히 검을 들어 올리면서 클라우스가 율리아를 응시한다.
그리고는 가볍게 발을 튕기며 그대로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이 부분이 뜻하지 않게 발목을 잡는군요.”
카가각!-
이번에도 클라우스의 공격을 막아낸 율리아.
가까스로,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이기는 했으나 막은 건 막은 것이다.
보통의 생도들이었다면 ‘어어.’ 하다가 그대로 뒤로 넘어갔을 게 분명했다.
“율리아. 여유를 가지세요.”
“….”
“네, 압니다. 여태까지 그런 여유는 사치였다는 것을. 그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자 중에 최소한 당신은 없었다는 것을. 하지만 이제는 그 사치를 부릴 줄 알아야 합니다.”
슈욱! 웅!
따악! 딱! 따다다다닥!!-
불과 1분여 만에 수십 번의 공격이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율리아도 정말 놀랐는지 땀을 흘리면서 공격들을 막아내다가 결국 뒤로 물러섰다.
“하아, 하아….”
검을 나눈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벌써 호흡이 거칠어진다.
율리아의 체력이 약하다거나 과하게 긴장한 것도 아니다.
이건 그냥 그녀가 상대하는 남자의 공격이 그만큼 매서워서일 뿐이었다.
“성공하는 자와 실패하는 자의 차이가 뭔지 알고 있습니까?”
이대로는 계속 휘둘리기만 할 뿐이다, 이러다가 아무 것도 못 해본다.
그 생각에 율리아는 그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다가 역으로 달려들었다.
목검이 바람을 가르면서 웅웅 하고 섬뜩한 소리를 낸다.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가격 당한다면 제대로 된 보호 장비도 없는 상대가 크게 다칠 수 있음에도 그녀는 검을 멈추지 않았다.
따악! 딱! 카가각!!-
한창 공격을 퍼붓던 율리아는 순간 휘청거렸다.
찰나의 틈을 노린 클라우스가 검을 짧게 잡고서는 그녀의 검을 채어 자신 쪽으로 강하게 끌어당긴 것이었다.
“성공한 자는 여유를 부릴 순간을 압니다. 반대로 실패하는 자는 여유를 부려야 할 때 조급해하고, 여유를 부리지 말아야 할 때 여유로운 척을 하죠.”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건가요?”
“여유를 가지고 조금 더 넓게 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온통 돌밭으로만 보이는 황무지 위에서 보석 원석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율리아는 그 말에 강하게 클라우스를 밀어내면서 그와 거리를 벌렸다.
다만 재차 공격에 들어오지는 않고 조금 전의 클라우스처럼 검을 내리는 모습을 보였다.
“당장 또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요. 저번처럼 끔찍한 일을 당할 수도 있어요.”
“….”
“간신히 얻은 내 사람을 또 빼앗길 수도 있어요!”
“그럴 일 없습니다.”
율리아의 외침에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입을 여는 클라우스.
그는 목검을 부드럽게 휘두르면서 당연한 것 아니냐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율리아가 나를 잃을 일은 없어요. 그럴 만한 짓을 할 놈이 있다면 내가 죽일 겁니다.”
“…다, 다른 여인들은….”
그래, 바로 저게 문제였다.
여태까지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했지만, 이전 대화에서 율리아도 느꼈을 것이다.
결국 클라우스는 자신 이외에도 수도 없이 많은 여인들에게 유혹을 받고 있다고.
멀리 볼 것도 없이 당장 나타샤 벨라루스라는 좋은 예시가 있지 않은가.
최근에는 세실리 레블랑까지 합류한 것 같아서 심히 불안한 율리아였다.
그나마 나타샤는 어찌된 일인지 생각을 바꿔서는 클라우스와 자신을 돕고 있다.
또한 세실리는 딱히 클라우스를 채갈 생각이나 자신을 견제할 생각도 없어보였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
그러다가 만에 하나 클라우스가 돌아선다면 자신은 정말 혼자 남겨지게 된다.
마왕성의 몇 안 되는 충성파들도 손발이 다 묶여서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노력으로 만들어준 제 사람이 돌아서는 모습을 보는 건.
율리아에게 있어서 정말 모든 희망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는 그리도 당당한 모습을 보이더니, 이제는 투정이라니요.”
“….”
“그래서 당신이 아이라는 겁니다, 율리아.”
그녀의 걱정을 이번 기회에 싹 다 날려버려야 한다.
소유욕, 독점욕, 뭐 다 좋다 이거다.
어차피 자신도 율리아를 독점할 생각인데 서로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문제는 그 욕심이 과해져서 물러날 때를 구분치 못 하는 것이다.
어차피 나중에 가면 다른 여인들과는 가끔 만나서 하룻밤의 섹스를 즐기는 사이가 전부다.
율리아가 제대로 왕권을 차지하고 동부를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때는 클라우스 주변의 여인들이 그녀 때문이라도 알아서 몸을 사릴 것이다.
당장 클라우스도 율리아가 전성기에 들어간 이후에는 그녀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을 정도였다.
그러니 더더욱 지금 여유를 가져야 한다.
지금도 자신에 대한 욕망이 이글거릴 테지만 그보다는 클라우스라는 남자를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클라우스 본인도 적절하게 부려먹으라고 전쟁 영웅, 남부의 악마 타이틀을 얻은 것이다.
물론 자신이 유용하게 써먹기 위한 부분도 없잖아 있었지만.
사실은 그 목적이 거의 80퍼센트에 육박할 테지만 율리아를 위한 부분도 분명 있었다.
“여유를 가져요. 조급해하지 말고 자신만만하게, 거의 오만하다 싶을 정도로.”
율리아는 분명 천재다, 그것을 넘어서서 창조주가 내린 세계관 최강자다.
그런 그녀가 처음에 두각을 보이지 못 한 이유는 그 발목을 잡고 있던 조급함.
마왕의 각성 조건은 누군가의 죽음이나 배신이 아니었다.
오히려 진정 편안한 상태에서 마주하는 여유, 그 속에서 미친 듯이 성장해나가는 것이 바로 율리아의 각성 조건이라고 할 수 있었다.
“후우….”
그리고 그녀는, 결코 어리석은 여인이 아니었다.
클라우스의 말을 받아들여 두 발자국 더 뒤로 물러선 그녀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는다.
조금이나마 흐트러졌던 자세를 바로 잡고 역시나 느슨하던 목검을 고쳐 쥔다.
방금 전까지 조급함으로 날뛰던 여인이 이제는 흔들림이 거의 없는 마왕으로 돌아왔다.
검 끝에서 희미하게나마 살의가 피어오름을, 그녀는 전혀 모르고 있겠지만 마음에 여유를 가지면서 반대로 그녀의 몸은 최고조에 이름을 알려주고 있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도대체 내가 뭘 만든 걸까 싶다. 젤나가 맙소사.’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긴장하라고, 눈앞의 저 상대를 마냥 만만하게 보지 말라고 말이다.
7년이나 전장을 뒹굴면서, 아니 그 전에 수십 번의 회차를 거치면서 쌓이고 쌓인 클라우스가 그리 느낄 정도라면 율리아는 정말 괴물이라는 소리였다.
다만 그걸 아무도 몰랐을 뿐이다, 심지어 본인조차도 몰랐다.
“그 말 절대 잊지 마요.”
“안 잊습니다.”
“약속해요. 끝에 결국 내 옆에 있겠다고.”
“믿어도 된다니까요.”
“아뇨, 약속해줘요. 도중에 무슨 일이 있다고 해도, 어떤 일로 인해 잠시 엇나간다고 해도. 결국 마지막에 돌아올 곳은 내 옆이라고. 그렇게 약속해주세요, 클라우스.”
여전히 자세는 흐트러짐 하나 없는 완벽하나, 눈동자가 잘게나마 떨리고 있다.
마지막 망설임까지 전부 지우기 위해서는 이 대답이 필수적인 요소임을 클라우스는 알고 있다.
“약속하겠습니다. 율리아의 말대로 사정이 생겨 잠시 엇나갈 수는 있어도, 끝에는 율리아의 곁에 남아서 그대만을 보좌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한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애당초 2차 대륙 전쟁은 발발하고 승자는 마족이 된다.
그리고 그 승자가 된 마족들 사이에서 1인자가 바로 마왕, 율리아 아그네사다.
율리아의 곁에 있기 위해 얼마나 많은 회차를 겪고 고통스럽다 못 해 이제는 지겹기까지 한 고생을 했는데 미쳤다고 떠나겠는가.
나타샤, 세실리, 카엘라, 그 외에도 여럿 생길 여인들.
그들 모두가 별미 중의 별미였지만 정실은 이미 정해져 있다.
여인들 모두가 저마다의 매력이 있고 아름답기 짝이 없는 수준이긴 하나.
그녀들을 뛰어넘는 단 하나의 여인이 바로 앞에 있다.
“…고마워요, 클라우스.”
그 여인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심장이 다 줄줄 녹아내릴 것 같은 미소를 지었다.
이것으로 마음속에 남아있던 일말의 불안감까지 일거에 지워버린 율리아.
이제 남은 건,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것뿐이었다.
“감사의 뜻으로, 진심을 다해서 제대로 한 번 가볼게요.”
율리아의 말에 클라우스는 미소를 지었다.
속으로는 ‘실수하면 쪽팔리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망하는 거다.’ 라고 중얼거리면서 대비를 해야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