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6장 - 마왕 키우기
이렇게 율리아를 바라보고 있자니 또 슬그머니 욕망이 고개를 치켜든다.
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전쟁 영웅으로 사느라 여인을 안지 못 했고, 그 후로도 맛대가리 더럽게 없는 싸구려나 몇 안았을 뿐이었다.
이미 자신의 뇌리에, 몸에 이 세상 최고의 여인이 박혀있는데 그런 여자들을 상대로 해봤자 구역질만 날 게 뻔했으니 여인의 몸이 고파도 정작 욕망이 일렁이지를 않았다.
허나 이제는 다르다, 자신의 앞에 이 세상 최고의 여인이 앉아있다.
무엇보다 서로가 서로를 아주 강렬하게 원하고 있다, 강제로 범하는 것도 아니다.
율리아의 성감대는 벌써 몇 곳이나 두드려주었기에 그녀도 지금 아마 자신과의 섹스를 생각하면 말 그대로 보지가 떨리는 맛을 경험하고 있을 것이었다.
‘할까.’
이제부터 율리아를 얼마나 안든 상관이 없다.
오히려 안아주지 않으면 율리아 쪽에서 먼저 요구를 해올 것이다.
지금 자신의 외모부터 시작해서 목소리, 말투, 행동 하나하나가 율리아의 취향에 맞춰져 있다.
거기에 재능이나 능력, 그리고 명성도 이미 인간을 넘어섰으니 그녀 입장에서 클라우스 자신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가지고 싶은 그런 남자가 되어 있었다.
때문에 지금 슬쩍 다가가서 가볍게 밀어주기만 해도 앙! 하고 벽에 스스로 부딪쳐줄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의 허리에 다리를 감고서 얼른 안아달라고 보챌 테고 말이다.
‘…아니다. 또 여기서 뒹굴었다가는 오늘 하루 그대로 날린다.’
클라우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언제까지고 여자들만 상대해줄 수는 없다,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움직여야 할 차례다.
일단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율리아의 다 무너져내린 왕권을 다시 확보하는 것.
동시에 아직은 연약하기 짝이 없는 그녀를 사상 최강의 마왕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녀의 세력들을 모아야 한다.
또한 율리아의 숙부, 그 남자의 세력들을 와해시켜야만 한다.
첫 테이프는 세실리와 율리아의 사이 진전으로 끊었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들어갈 계획이다.
“율리아. 다음 강의 있지 않았습니까? 슬슬 가봐야 할 텐데요.”
“아직 30분 정도 남았어요. 그 때까지 여기 있고 싶은데.”
“불편하지 않나요? 어찌 되었든 여기는 교수실, 그리고 남자 방인데. 다른 생도들한테 드나드는 걸 들키면 어쩌려고 그러는 건지요.”
“솔직하게 말해버리죠, 뭐. 이 남자가 내 남자다! 라고 말이에요.”
율리아의 말에 클라우스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주제에 또 폼을 잡고 저런 말을 하고 있는 게 무척이나 우스웠고 또 귀여웠으며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당장 이대로 안아들고서 침대로 가서는 앙앙 울게 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말이다.
“흠흠.”
그런 남자의 마음을 여인도 알아차린 모양이다.
헛기침을 하면서 팔짱을 끼고는 은밀히 가슴을 강조하는 모양새나, 우아하게 다리를 꼬아서는 늘씬하게 뻗은 다리를 과감 없이 보여주는 모습이나.
아주 대놓고 자신이랑 하지 않겠냐고 클라우스를 유혹하는 기운이 확실히 났다.
‘우리 마왕님이 진짜 적극적이긴 해.’
율리아도 저렇게 원하고 있으니 그냥 못 이기는 척 덮쳐도 되지 않을까 싶지만.
아직 아카데미 초창기, 그리고 준비가 아직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괜히 빈틈을 보여서 좋을 게 하나 없었고 시간을 끌어서 이득이 될 것 또한 없었다.
“얼른 가보세요. 율리아 생도.”
“…정말요?”
“나중에 나 때문에 강의에 늦었다느니 그런 투정 부리지 말고 얼른요.”
클라우스의 말에 율리아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는 그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시선을 내려서는 자신의 몸을 한 번 스윽 훑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목까지 잠겨있던 제복의 단추를 하나씩 풀더니 그 안의 셔츠까지 풀어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단추를 다 풀어버린 그녀는 배와 가슴이 아주 살짝 드러나도록 제복과 셔츠를 옆으로 벌리고서는 클라우스를 다시 쳐다보았다.
‘이래도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예요? 이대로 보낼 생각이에요?’
라고 묻는 듯이 말이다.
‘…환장하겠네.’
덕분에 클라우스는 눈치도 없이 불끈 솟아오른 제 우람한 남근을 잠재우느라 아주 혼이 났다.
말로는 괜찮다고 하면서 정작 물건 관리는 전혀 안 되는 꼴을 여자한테 보여주면 과연 어떤 비웃음을 당할지 안 봐도 훤했기 때문이었다.
기껏 억누른 욕망이 다시금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한다.
이제 더는 참을 필요도 없는데, 저 여인을 강제로 범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반대로 저 여자가 먼저 하자고 유혹까지 하는 중인데 그냥 지는 척 넘어가도 되지 않겠느냐 속삭인다.
“두 번 말 안합니다. 가세요. 나도 할 일 많습니다.”
“그렇게 많지 않아 보이는데요?”
“우리 마왕님께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왕좌를 드려야 해서요. 그 계획 좀 세우게 혼자만의 시간을 줬으면 하는데요. 이러면 설명이 충분하지 않을까 싶은데.”
이건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이다.
당장 율리아가 나가면 어딘가에서 보지 물을 질질 흘리면서 자신이 부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마족 여인을 부를 생각이었으니까 말이다.
“흐음.”
하지만 율리아는 오히려 그 말에서 다른 뭔가를 느낀 모양이다.
수상하다는 눈빛을 보내면서 클라우스를 빤히 쳐다보던 그녀는 붉은 입술을 열고는 속삭였다.
“당신의 마음을 의심하는 건 아니에요. 확실히 나를 마왕의 마땅한 위치에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같고요. 그런데 말이죠? 그 방법 중 하나가 나 말고 다른 여자들을 품에 안으면서 해야만 하는 계획이라면 달갑지 않을 것 같은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대충 예상이 가잖아요. 나타샤 벨라루스도 그렇고 세실리 레블랑도 그렇고. 클라우스, 당신을 바라보는 눈길이 그냥 호의만 품은 자의 것이 아니에요. 내가 잘 알아요. 같은 여인이니까, 호의를 넘어서서 호감, 아니 연심을 품은 이성을 바라볼 때 그런 눈을 한다는 걸 말이죠.”
역시 율리아, 말 그대로 이 세상의 창조주라 할 수 있는 클라우스도 가끔 진땀을 빼게 만드는 세계관 최강자의 눈치였다.
아마 이게 회차를 진행한지 몇 번 되지 않은 때에 일어난 일이었다면 클라우스라고 해도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 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허둥거렸을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율리아가 마음 상해하지 않을까, 저런 말을 하면 호감도가 확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온갖 걱정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지금 클라우스는 자그마치 30회차에 들어선 고인물 중의 고인물이었다.
이전 회차들도 때려 친 이유가 조그마한 어긋남에서 귀찮은 일들이 많이 생겨났기에, 그것들까지 싹 다 고쳐보겠다고 회귀한, 고인물 수준을 벗어난 석유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율리아의 말은 내가 당신을 두고 한눈이라도 팔까 그게 걱정이라는 말이군요.”
“마족이든 인간이든 결국 남자는 다 똑같은 법이죠. 발가벗은 여인을 앞에 두고 본능을 억제하지 못 하는 거. 이미 후일을 약속한 여인이 있든 없든 말이에요.”
“….”
“아니라고 말하고 싶으면, 내게 증거를 보여주세요. 내가 아닌 다른 여인에게는 일말의 관심도 없다는 것을. 오직 나에게만 미쳐서 나만 원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줬으면 해요.”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네. 있어요. 클라우스, 당신은 내 남자에요. 내 것이라고요. 아주 조금도 다른 여자한테 나눠주기 싫어. 당신한테는 나라는 여자만 있으면 충분해.”
율리아의 두 눈동자에서 소유욕이, 아니 독점욕이 번들거린다.
철없는 여인의 투정이 아니다, 이유를 알게 되면 누구라도 저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왕 율리아 아그네사. 여태껏 제 숙부에게 빼앗기기만 했던 가련한 여인.
부모고 신하고 권력이고 기회고 모조리 빼앗겨서는 한 번을 원하는 대로 해보지 못 했다.
심지어 제 몸마저 숙부에게 빼앗길 뻔 했으니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여태까지 어느 누구도 감히 손에 넣을 생각을 하지 못 했던 남자.
대륙 전쟁의 영웅이자 마족조차 남부의 악마라고 부르며 두려워하고 경외하던 이가 다가왔다.
클라우스, 불세출의 영웅, 그의 적들조차 찬사를 보낸 인간.
그 남자가 자신에게 다가왔고 충성을 다하겠다며 자신의 귓가에 속삭였다.
가장 힘든 순간에 다가온 남자는 아무 것도 없던 자신을 무척이나 따스하게 안아주었다.
율리아는 그 순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리고 생각했고 결심했다.
이 남자를 붙잡자, 그래서 내 남자로 내 사람으로 만들어서 옆에 두자.
세상 그 누구보다도 더욱 믿음직한 이가, 오직 나만을 위한 이가 되어줄 것이다.
타닥-.
자리에서 일어난 율리아는 미처 클라우스가 말릴 새도 없이 그의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그의 허벅지에 제 음부를 살살 문지르면서, 이미 다 흘러내려서는 뽀얀 살결이 다 보이는 상체를 유감없이 들이대면서 클라우스에게 속삭였다.
“참지 마요. 그럴 필요 없어. 그냥 나한테는 다 보여주세요. 나도 당신한테 다 보여줄게요. 그러니까 오로지 나만의 것이 되어주세요. 클라우스.”
몇 번이고 마주했던 장면이다, 몇 번이나 봤던 마왕의 유혹이고 애달픈 몸짓이다.
하지만 클라우스는 순간 두 눈이 뒤집힐 뻔 한 것을 또 한 번 느끼면서 침음을 내뱉었다.
사기다, 정말 사기적이다. 이 여자는 가끔 가다가 정말 무서울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스윽, 스으윽-.
자신이 허벅지에 쓸리는 율리아의 속옷, 그리고 그 마찰로 인해 점점 더 붉게 달아오르는 율리아의 얼굴을 보고 있는 건 정말이지 고문 수준으로 치명적이다.
그녀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어깨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는 옷들이 살랑거리면서 그녀의 속살이, 그리고 풍만한 가슴이 언뜻언뜻 모습을 보이는데 그게 또 어찌나 야한지!
할 일 많다, 참자. 무엇보다 여기서 그냥 안아버리면 너무 쉬운 남자가 된다.
원할 때마다 안길 수 있는 남자가 아니라 자신이 매달려야만 간신히 안아주는 그런 이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여태까지 일부러 참았던 것이 아니던가.
“얼른요. 얼른… 흐믓!”
귀엽게 재촉하던 여인의 입술을 그대로 키스로 막아버린다.
그러자 잠깐 몸부림을 치던 율리아가 얼른 혀를 내밀면서 더 해달라고, 더 황홀하게 만들어달라고 투정을 부리면서 더욱 안겨 들어온다.
더듬거리면서 클라우스의 상의 단추를 찾아 헤매는 것이 꽤나 위험한 단계다.
이대로 두면 정말 이 자리에서 해버릴 것 같았기에 슬슬 끊을 때라고 할 수 있었다.
“율리아 생도.”
잠깐의 키스 후 꿀이 뚝뚝 흐를 것 같은 달콤한 눈빛을 해 보이는 율리아.
그런 그녀에게 생도라는 단어를 붙였기에 그녀도 이제는 눈치를 챘을 것이다.
자신이 아무리 이런다고 해도 클라우스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을 받아줄 생각이 없음을 말이다.
“나는 당신을 반드시 정당한 왕좌에 올려둘 겁니다. 생각보다 내가 무척 고지식한 사람이라서, 주제도 모르고 자꾸 기어오르는 놈을 봐주는 게 무척이나 힘들거든요.”
“….”
“당신을 노리는 그대의 숙부, 치워낼 것이고 당신을 배신한 자들, 모조리 쳐낼 겁니다. 당신의 옆자리는 무조건 내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초조해하지 마요. 나중에 싫다고 해도 절대 안 비킬 생각이니까. 그 때 가서 후회하지나 마요.”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그리 말하니 율리아는 잠시 동안 클라우스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결국 그녀도 후훗, 하고 밝은 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역시, 만만치 않은 분이네요. 괜히 우리 마족들이 남부의 악마라고 부르는 게 아니었어요.”
“으음. 그렇게 잔혹하게 마족들을 대했던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상당히 억울하네요.”
“알아요. 그래서 더더욱 악마라고 불렸던 것일지도 몰라요. 적인데도 뭔가 묘하게 마음을 당기는 게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호칭이 붙었을 수도 있죠.”
율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화사한 빛으로 웃다가 ‘그래도 하던 거는 마저 할래요.’ 라고 속삭이면서 클라우스가 자신을 밀어내기 전에 얼른 키스를 마저 해나갔다.
서로의 입술부터 숨결까지 모든 것을 달콤한 사탕이라도 핥아먹듯 남김없이 탐하던 두 남녀.
그러다가 다시금 멀어지니 클라우스는 작게 고개를 내젓고는 장난으로 중얼거렸다.
“…마왕으로서의 체통을 지켜야죠.”
“전쟁 영웅으로서의 모습부터 지키면요.”
“난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거짓말. 지금도 엄청 흥분했으면서.”
“솔직히 지금 율리아의 모습을 보고 멀쩡하다면 그건 남자가 아닌 거 아닐까요.”
“다른 남자들이 그런 말을 했다면 기분이 참 더러웠을 텐데. 당신이 그런 말을 하니까 묘하게 뿌듯하네요. 이거 지금 내가 이상한 건가요?”
“아뇨. 전혀요. 그냥 너무 예뻐요.”
지극히 단순한 말, 그러나 이런 부분에 율리아가 약하다는 걸 클라우스는 알고 있다.
아마 이 마왕은 무조건 자신을 제 남자로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지만 실은 그녀가 한 남자의 여인으로 변해가고 있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