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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화 〉6장 - 마왕 키우기 (76/341)



〈 76화 〉6장 - 마왕 키우기

세실리를 이용해서 레블랑 가문과 제 숙부의 사이를 이간질 시킨다.
율리아는 클라우스의 계획이 그러하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자식 앞에서 매정한 부모가 있기 힘들고, 적과  수하의 자식이 붙어있는 꼴을 보고도 조용히 넘어갈 권력자가 또한 있기 힘들다.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율리아는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제 숙부가  영악한 남자가 모든 것이 자신과 레블랑 가문을 이간질 시키려는 수작임을 모를 리가 없고 넘어가줄 리도 없다.

‘결코 쉽사리 넘어가줄 위인은 아니야. 그런 수에 넘어갈 정도로 단순했다면 내 손발을 다 잘라내고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아카데미로 내쫓듯 몰지도 못 했겠지.’

자신의 아버지에게는 조금도 없던 그 영악함을 혼자 다 가져간 남자.
추악한 마음을 가졌으면서 또 머리는 어찌나 좋은지 율리아로서 어떻게 해볼 수도 없이 당해본 상대가 바로 제 숙부였다.

방심해서는 안 된다, 그는 상대방의 작은 틈을 물고 늘어지는 영악함으로 악명이 높다.
아무리 클라우스라고 해도, 대륙 전쟁의 빛나는 영웅이라고 해도 전쟁과 정쟁(政爭)은 그 방법이나 경우가 완전히 다르다.
오히려 그런 진흙탕 싸움에서는 클라우스보다도 제 숙부가 훨씬 더 뛰어날 수도 있다.

‘너무 자신만만해. 저런 모습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만약이란 게 있을 텐데….’



클라우스를 바라보면서 율리아는 불길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눈앞의 저 남자가, 남부의 악마가 제 숙부를 상대로 질  같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방심했다가 괜히 곤란한 상황에 쳐할까 율리아는 그게 걱정이었다.



물론, 클라우스 입장에서는 그녀의 숙부가 무슨 짓을 하든 상관이 없었다.

그가 무슨 계획을 어떤 방식으로 꾸미고 있는지, 곁에 어떤 이를 두고 있고 율리아의 심장에 비수를 꽂기 위해서 누구를 배신자로 만들어 포섭해두었는지 모조리 꿰차고 있다.

 마족 놈이 하는 모든 일은 클라우스의 손바닥 위에서 빨빨빨 기어 다니는  마리 벌레의 움직임과 다를 바가 없다는 소리였다.



“물론 그렇게만 해서는 통하지 않을 확률이 높겠죠. 하지만 내가 거기에서 끝이라고 할  같나요? 당연히 다른 곳으로도 율리아의 숙부를 흔들어서 의심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도록 만들 생각입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려고요?”
“요즘 들어서 은밀하게 마족과 요정 사이에  차례 회담이 진행되었다고 하더군요.”

클라우스의 말에 율리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그게 무슨 말이냐며 반문했다.

자신 역시 마왕가의 몇 안 되는 충성파들이 전해주는 소식으로 짐작은 하고 있었다.
제 숙부가 한 때는 마족들의 적이었던 요정과 손을 잡고 뭔가 일을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마족과 요정 사이에 쌓인 앙금은 쉽사리 사라질 게 되지 못 한다.
당장 정전 협상을 체결할 때도 요정과 마족 사이의 기류가 워낙 험악해서 이러다가 다시 전쟁이 나는  아니냐고 서로가 긴장까지 하지 않았던가.

때문에 율리아는 아직까지는 여유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제 숙부가 어떤 후한 조건을 내밀어도 요정 측에서는 반드시 꼬투리를 붙잡고 늘어질 것이다.
반대로 그녀의 숙부 역시 요정들에게 후한 조건을 내어주기는 또 싫어할 테고 말이다.


그런 이유로 둘이 손을 잡으려면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벌써 회담까지 진행되었다고? 그 짧은 사이에?’




마왕인 자신조차 금시초문인 일이었다.
헌데 클라우스는, 이제 인간 측 사령관도 아니고 아카데미의 일개 교수에 불과한 그는 마치 바로 옆에서 소식을 들은 것마냥 아주 정확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첫 번째 회담은 불발, 두 번째는 서로가 날이 잔뜩 서있던 터라 역시 5분 만에 파토. 하지만  번째 회담이 그래도 괜찮은 분위기에서 끝이 났다고 하더군요.”
“…도대체 그걸 어떻게  거죠? 나도 처음 듣는 소식이에요.”
“내가 비록 사령관 직에서 물러나고 아카데미의 교수로 있다고 하지만 내 사람들 전부가 돌아선  아니니까요. 무엇보다 그동안에 새로이 내 밑으로 들인 조력자들도 있지요.”

조력자, 라는 말을 듣는 순간 율리아는 참으로 우습게도 한 명의 요정을 떠올렸다.

나타샤 벨라루스. 자꾸만 클라우스에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던 그 요정 여인.
하는 짓이 자꾸 임자가 있는 남자를 노리는 앙큼한 도둑고양이 같았던 지라 대놓고 적개심을 드러내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미 클라우스가 이야기가 끝났고 그에게 요정 측의 정보를 비밀리에 넘겨주고 있다면 과연 자신은 그녀를 계속 적대시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만 마음을 풀어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 조력자가 혹시….”
“누구일 것 같습니까?”



일부러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율리아와 나타샤의 관계 호전을 위해서는 일단 율리아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
그리 하면 나타샤도 처음에는 뭐하는 짓이냐고 툴툴대다가 결국 클라우스의 눈치를 보면서 나름 괜찮은 사이를 유지하게 된다.


그렇기에 클라우스는 일부러 명확한 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 스스로 상상을 혹은 오해를 하게 만들어서 종국에는 그리 믿도록 만들 뿐이었다.




‘…혹시 나타샤 벨라루스. 그 요정이 무슨 언질을  것일까?’




클라우스의 예상대로, 역시나 율리아는 먼저 나타샤를 떠올렸다.
그녀가 알고 있는 요정 중에서 클라우스와 가장 가까운 사이이기도  나타샤.
무엇보다 그녀가 자꾸만 클라우스 주변을 맴도는 것이 단순히 그를 유혹하는 게 아니라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슬슬 생각하던 시점이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자신이 대놓고 유혹을 했음에도 클라우스는 장난치지 말라면서 한  되돌려 보냈다.
그런 남자에게 고작 요정 따위가 무슨 짓을 했을 리는 없고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클라우스가 나타샤의 뭔가를 약점으로 잡아서 정보를 빼내고 있는지도 몰랐다.

오해였지만, 말도 안 되는 상상이었지만 율리아는 자신의 예측이 오히려 맞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까지 했는데 그만큼 대륙 전쟁의 영웅, 남부의 악마가 주는 명성은 대단한 것이었다.


도저히 수가 없는 상황에서도 방법을 찾아내고 이길  없는 순간에도 혈로를 뚫어 기어코 승리하던 남자, 불세출의 영웅, 클라우스.
그 남자가 자신에게 믿으라고 말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혹시 나타샤 벨라루스가 자꾸만 당신 옆에 오는 걸 굳이 밀어내지 않은  그와 상관이 있는 건가요, 클라우스?”



율리아의 말에 클라우스는 됐다, 라고 손가락을 튕겼다.


자신이 답을 알려주는 것보다 은근히 답에 가까이 가도록 언질을 주는 것이.
그래서 자신이 직접 예상을 하고 그게 맞지 않느냐, 라고 클라우스에게 반문하는 바로  순간이 그가 원하는 가장 바람직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남이 가르쳐주는 답보다 스스로가 예상을 하고, 가정을 지어 예측을 하는 것.
그래서 이렇지 않느냐, 라고 말했을 때 맞다는 대답을 듣게 되는 것.
바로 그 부분이 훨씬  상대방을 설득하는 게 쉽다는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우리 마왕님은 자신을 치켜세워주는 걸 또 은근히 좋아하니까.’

여기서 중요한 건 ‘은근히’ 다.
너무 대놓고 비행기를 태워주면 거기에 본능적으로 반발하게 되어 있다.


마왕으로서 아부나 아첨에 거부감을 보이는 모양이었는데 덕분에 초창기 율리아와 호감도를 쌓을 때에는 고생 꽤나 했었던 클라우스였다.




“그렇다면 설마 내가  요정한테 홀딱 넘어가서 헤벌쭉 웃고 있었을까요.”


이 다음 말을 하기 전, 클라우스는 슬쩍 의자를 돌렸다.
그리고는 율리아와 시선을 전혀 마주하지 않은 채 다만 말을 할 뿐이었다.
딱 그런 분위기, 네 앞에서 말하는 게 엄청 부끄러운데 해야 한다, 라는 느낌을 받을  있도록 말이다.



“그쪽으로는 딱히  돌릴 생각도 없습니다. 성에 차지도 않을 텐데 말이죠.”
“…?”



눈치가 빠른 율리아답게 클라우스의 반응이 이상함을 바로 느낀 그녀였다.
듣고 있으면 그리 중요한 말도 아닌데 몸을 돌리고 있는 것이나 자신과 시선을 마주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은근히 보이는 것이나.


율리아는 그런 클라우스를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프훗, 하고 웃고 말았다.


‘그래.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네.’



숙부의 끝도 없는 견제와 무제한적으로 보이는 탐욕, 그리고 추악한 욕망.
그리고 모든 부분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것 하나 없이 거세게 돌아가는 정세 때문에 잠시 자신감을 잃었던 것뿐이다.

율리아 본인도 자신이 꽤나 재능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또한 남자들이 홀딱 넘어가도 충분하다 싶을 정도의 미녀라는 사실도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클라우스를 찾아와서는 몸으로라도 그를 유혹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던가.


‘저 남자는 내 거야. 아무에게도  줘. 안 줘. 그리고 저 남자도 나에게서 더는 벗어나지 못 해. 그렇게 만들 거니까. 내게  빠져서 절대 헤어나가지 못 하게 만들 테니까.’

당장 클라우스가 애써 아무렇지도 않다는  담담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부분부터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상황이라고 할  있었다.
비록 처음은 자신의 몸으로 끌어들이기는 했으나 이제는 자신만의 매력으로, 그리고 군주로서의 능력으로 클라우스를 더욱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둘 생각이었다.

그의 능력이나 명성이 탐이 나는 것이야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는 클라우스의 충성을 받고 싶다는 열망이 더 강렬했다.

모두가 그를 품기는커녕 의심하고 질투하느라 바빠 그를 밀어냈다.
그런 상황에서 율리아는 더더욱 그를 품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재능이나 능력 부분은 말할 것도 없고, 외모도 저 정도면 부족하지 않아. 무엇보다….’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율리아가 클라우스와의 일만 떠올리면 얼굴을 붉히다가도 또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던 이유.
좋아도 이리 좋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황홀했던 그와의 관계 때문이었다.



때때로 속궁합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말이 있곤 했는데 율리아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부끄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면서 화를 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보니, 여인의 입장에서 남자를 받아들여보니 그게 그냥 나온 말이 아님을 아주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당장 클라우스와의 섹스를 떠올리면 가랑이 사이가 간질거리면서 저도 모르게 허벅지를 비빌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이었다.
더해서 혼자만 애가 탔다면 또 모를까, 앞에 앉아있는 남자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상대방에게 아주 제대로 취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일단은 넘어가드리죠.”


넘어가긴 뭘 넘어가. 내가 아니면 언제 숙부한테 당해서는 그대로 끌려갈지 모르는 상황인데.
라고 클라우스는 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겉으로는 그냥 흠흠, 헛기침을 해주었다.
우리 마왕님이 그만큼 기분이 좋으시다는데 조용히 넘어갈 줄도 알아야 했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가서,  숙부가 거기까지 진척을 이루었다는 말이군요.”
“무슨 대단한 조건을 걸었기에 요정 측이 여태까지의 적대감을 뒤로 하고 손을 잡은 건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어요. 더해서 요정 전체가 마족 편에 서서 서부 연합을 배신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몇 개의 가문들이 비밀리에 합류했다고 하는데 그 가문들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이죠.”
“…그냥 확 요정 측에 알리는 건 어떤가요?”
“율리아가 보기에는  방법이 좋아 보입니까?”

클라우스의 반문에 율리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생각해봐도 요정 측에 지금의 상황을 알려봤자 이득이 될 게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이쪽이 알고 있는 정보들을 사실대로 말해주었을  과연 요정들이 그 말을 믿어줄지가 일단 첫 번째 의문.
두 번째로 설사 요정들이 이쪽의 말을 믿는다고 해도, 그래서 바로 조사에 착수한다고 해도 정확히 누가 마족 측과 손을 잡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다들 꼬리를 자르고 내뺄 것이다.

조금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정보를 가져다주는 나타샤 벨라루스라는 요정 여인의 도움이 무척이나 절실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절로 한숨이 흘러나오는 율리아였다.
아쉬운 쪽이 먼저 고개를 숙여야 하는 법이라는데, 그 요정에게는 절대 먼저 숙이고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다.


‘마치 나타샤에게 클라우스를 빼앗기는 것 같잖아!’

슬그머니 입술을 깨물면서 고민에 빠지는 율리아.
그런 마왕님을 바라보면서,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미 다 알고 있는 클라우스는 속으로 몇 번이고 배를 부여잡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걱정 마, 마왕님. 나도 나를 제외한 다른 누구한테 네가 머리 숙이는 거 보고 싶지 않아.’



율리아는 아마 모를 것이다, 절대 모를 것이다.
자신이 클라우스에게 가지는 소유욕 그 이상으로 그가 자신에게 가지고 있는 소유욕이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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