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1화 〉5장 - 주말에는 역시 (71/341)



〈 71화 〉5장 - 주말에는 역시

“뭐하고 있습니까? 세실리 생도.”
“….”
“그러다가 차가 다 식겠습니다.”
“….”
“얼른 마시고  이야기 하고 돌아가세요. 물론 난 딱히  말이 없지만.”




명백한 축객령, 그에 세실리가 정신을 차리고는 움찔 몸을 떤다.
그리고는 일단 클라우스가 시키는 대로 찻잔을 들고서 입가에 가져갔지만 조금 홀짝이다가 얼마 마시지도 못 하고 결국 그대로 잔을 내려놓고 말았다.




“혹시 차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이상하군요. 리르도 마족이라 그쪽 취향에 맞지 않는 차를 준비해서 내놓았을 리는 없는데. 흐음. 나중에 한 번  주의를 줘야겠군요.”

주의를 준다, 라는 말이 이렇게나 자극적으로 들릴  누가 알았을까.
클라우스의 그 말에 세실리는 저도 모르게 또   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여태껏 애써 무시하려고, 모른 척 하려고 했던 비밀스러운 뭔가가 계속 출렁거린다.
당장이라도 기울어져서는  쏟아지고 넘쳐 흐를  같이 아슬아슬했다.


“이, 일단.”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고 세실리는 생각했다.
여기서 계속 그의 말을 듣고 있다가는 아까 봤던 장면이 계속 머리를 맴돌 것 같았다.
바닥을 핥던 마족 여인, 그리고  여인의 엉덩이를 때리던 클라우스.

특히나 리르라 불린 마족 여인의 엉덩이에서 붉은 자국이 생겨날 때마다, 그리고 클라우스의 손이 순식간에 여인의 엉덩이를 덮칠 때마다.
세실리는 마치 자신이 엉덩이를 맞는 것처럼 부르르 몸을 떨었었다.




“교, 교수님께 청할 것이 있어서요.”
“이거 의외군요. 패배한 쪽이, 그것도 아주 무참하게 패배한 쪽이 청할  있다고 승자를 찾아왔다? 이거 뭔가 상당히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지 않습니까?”
“클라우스 교수님의 말씀에 십분 이해해요. 하지만, 그 전에 당신은 아카데미의 교수이고 저는 이곳 대륙 아카데미의 생도죠. 교수님은 가르치는 쪽이고 전 그 가르침을 청하는 위치에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의 이 요청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역시 호랑이 새끼도 호랑이는 호랑이라는 말이 딱 맞았다.
레블랑의 가주, 즉 세실리의 아버지 되는 마족은 비록 율리아의 편이 아니라 그녀의 숙부 편에 서기는 했으나 나름 능력도 있고 소신도 있는 남자라고 할 수 있었다.


해서 클라우스도 그를 포섭하기 위해 나름 노력을 하기는 했었으나 이전에도 말했듯, 그를 설득할  없는 부분은 율리아의 숙부가 무조건 역성 혁명을 도모하는 것.
그리고 2차 대륙 전쟁은 결국 발발하고 거기에서 무조건 마족이 승리하는 것과 같은, 절대 바꿀  없는 부분이었다.


‘해서 아쉬운 대로 세실리를 끌어들이는 거지. 막내이긴 하지만 레블랑 가문에서 가장 쓸 만 한 실력을 가진 마족이었으니까. 무엇보다 속살이 가장 야들야들하고 조교하기도 쉽고.’



실은 제일 마지막 두 부분이 결정적인 이유라고 해도 무방했다.
레블랑 가문의 마법 천재로도 충분하지만 거기에 변태 성향을 가지고 있고, 조교만 잘 해주면 매번 매달려서는 제 스스로 보지를 벌리고서 비는 여인이 되기까지 한다.

율리아만큼 모든 부분에서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으나 놓치면 무척 아쉬운 별미.
그게 세실리를 평하는 클라우스의 말이었다.




“제법이네요. 그렇게 나를 몰아붙일 줄도 알고.”
“아, 아니. 이건 그저….”
“아니에요. 생도라면 응당 정당한 요청을 교수에게 할 줄도 알아야죠. 세실리 생도, 당신의 그 말에 박수를 보냅니다. 생각지도 못 한 부분에서  방 먹었군요.”


클라우스의 칭찬에 세실리는 흠흠 헛기침을 했다.
사실 자신이 원한 건 헛소리 말라는 무시무시한 목소리, 그리고 당장이라도 자신을 찢어버릴 듯  날카로운 눈빛이었는데 갑자기 상황이 묘하게 바뀌어버렸다.



꾸욱-.

세실리가 저도 모르게 바보 같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옷깃을 잡아 쥐는 걸, 클라우스는 놓치지 않고서 눈에 담았다.
역시 리르를 이용해서 직접 불을 붙여준 것이 제대로 타오르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좋습니다. 이렇게 되었으니 당신의 청을 거절할 수 없겠네요. 뭡니까? 내게 청할 것이.”
“…저를 조금  집중적으로 봐주셨으면 해요.”
“이미 매일 같이 대련을 해주고 있는데요.  이상 간섭하는 건 생도인 당신에게, 레블랑 가문의 직계인 당신에게 불필요한 것 아니었습니까?”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하지만… 아무래도 제가 부족한 것 같아요. 그리고 자만했던  같아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절 막 괴롭혀주세요! 당신이 원하는 대로! 아주 험하고 사납게 굴려주세요!
라는 말을 도대체 어떻게 돌려서 말해야 할까 고민하는 티가 아주 팍팍 난다.


그러는 와중에도 세실리는 어떻게든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선에서 또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서 낑낑대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던 클라우스는 그런 마족 여인을 바라보면서 자꾸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아주 고역을 치르고 있었다.

“그, 그러니까!”
“네. 그러니까 뭐요. 말을 하세요, 세실리 생도.”
“그러니까… 그러니까… 기초부터 다시 저를 가르쳐 주셨으면… 하는데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기초부터 다시 가르쳐달라니. 무슨 뜻이죠?”

뻔한 소리다, 지금 세실리가 하고자 하는 말은, 정말 단순한 것이었다.


현재 클라우스가 세실리를 상대로 가르치고 있는 것은 전투 마법 강의다.
한동안은 몸에 직접 고통이란 걸 새겨주기 위해서 일부러 검만 들었지만 결국 그 이후의 모든 것에는 항상 마법이 들어가게 될 것이다.


어차피 근접 전투는 다른 강의에서 배워 올 테니까, 거기에서 얻은 전투 능력을 토대로 하여 난전 상황에서 어떻게 마법을 사용하고  그것을 활용하여 어떤 방식으로 새로이 활용할 수 있는지 가르침을 받는  클라우스가 맡고 있는 강의의 주된 내용이었다.



그런데 지금 세실리는 클라우스에게 전투 마법이 아니라 검이라던가 하다못해 격투술이라도 직접 가르쳐달라고 대놓고 요청하는 것이었다.
검술 강의를 맡은 교수에게가 아니라, 전투 마법 강의를 맡은 클라우스에게 말이다.

“대련을 하면서 알았어요. 아카데미의 그 어떤 교수님이라고 해도 클라우스 교수님만큼 살벌하면서도 실전을 방불케 하는 날카로움을 보이신 분이 없었어요. 네, 클라우스 교수님의 말씀이 맞아요. 저는 온실 속 화초 같은 존재죠. 실전 부분에서  한 톨의 경험도 없어요. 그러니 교수님께 더더욱 기본적인 부분부터 새로이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즉 나한테 그런 거친 부분을 그대로 경험해보고 싶다, 이 말이군요.”

클라우스가 슬쩍 세실리가 가장 원하고 있을 부분을 미끼로 던진다.
거친 부분을 그대로 경험해보고 싶다, 라는 말은 그냥 거칠게 다뤄도 되겠냐는 질문.

당연하게도 세실리는 클라우스가 던진 미끼를 그대로 덥석 물었다.



“네, 네. 맞아요. 정확해요, 교수님. 제가 청하는 게 바로 그거에요.”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이미 세실리 생도는 자체적으로 근접 전투에 도움이 될 만한 강의를 듣고 있는 거 아니었습니까? 검술 강의도 있고, 다른 것도 분명 있을 텐데요.”
“강의에서 보고 배웠던 것과 클라우스 교수님의 모습을 비교해봤어요. 그리고 얻은 결론은, 그 강의를 백 번 듣는 것보다 교수님과 한 번 대련으로서 얻은  더 많았다는 것이었죠.”

저 말은 진심이다.
실제로 아카데미의 검술 강의는 형편없기 짝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검술은 당연히 전투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아주 중요한 무력이다.
당장 얼마 전 대륙 전쟁이라 하는 엄청나게 큰 전쟁이 있었고,  전쟁에서 많은 굉장한 실력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정작 검술 강의를 맡은 이는 인간 귀족.
그것도 전장에 별 나서본 적도 없는 이상한 놈이 덜컥 그 자리를 차지했다.



실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남들을 가르칠 만한 수준이 되느냐? 그건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도 어떻게 교수직을 맡았느냐.


애당초 검과 친하지 않은 요정과 수인 교수는 제외.
마족 출신의 교수들이 이미 몇 개의 근접 전투 관련 강의를 맡고 있었기에 검술까지 내줄 수는 없다고 판단한 서부 연합 측이 인간을 교수직에 올려둔 것이었다.




‘세실리가 실망해도  다른 문제가 없을 정도긴 하지. 그건 나도 인정한다.’

당장 검술에 어느 정도 실력을 지닌 자들은 첫 강의를 보고서 바로 그 강의를 듣지 않았을 정도로, 아카데미의 검술 강의는 쓸모없기 짝이 없었다.



‘염병할 새끼들. 존 윅 형님은 그 시간에 한 명이라도 더 죽이라고 말할 거다.’

검을 들고 휘둘러서 어떻게 적을 하나라도  죽여야 하는지, 그걸 가르쳐야 하는데.
 인간 귀족 놈은 어떻게 검을 쥐어야 더 아름다운지, 그리고 검을 잡으면 어떤 예의를 지키고 어떤 마음가짐을 지녀야 하는지 그 따위 것이나 가르치고 자빠졌다.

그런 놈이 교수라니, 세상 참 말세라고 할  있었지만 생도들은 침묵했다.
어차피 이곳에서 진짜 의미릐 가르침을 얻어가려는 놈은 소수였으니까.
그들에게 있어 대륙 아카데미는 정세를 파악하고 정보를 얻고 아군과 적을 구분하면서  다시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에 미리 준비하는 곳일 뿐이었다.


“검술 강의를 맡고 있는 교수님이 들으면 썩 반길 답은 아니군요.”
“하지만 그게 사실에요. 당장 그 교수님이 어떤 강의를 하는지 보신다면 클라우스 교수님께서도 엄청나게 화를 내실  분명해요.”
“흐음.”
“전 교수님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렸어요. 그래서 꼭 변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러니까 그걸 원하는 게 아니잖아, 이 여자야.
 알고 있는 상황에서 저런 귀여운 거짓말을 듣고 있자니 괜스레 답을 해주지 않고 다만 질질 끌고 싶다는 생각이 진해졌다.

하지만 어차피 괴롭힘 당하는 게 이 여자의 목적이고, 그런 여인을 한껏 괴롭혀서 오직 자신에게만 매달리도록 만드는 게 클라우스 본인의 목적이라면.
괜히 뜸을 들여서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도록 할 필요는 절대 없었다.

“…세실리 생도도 알다시피 난 절대 만만한 인간이 아닙니다.”
“알고 있어요.”
“아니, 그런 말로는 턱도 없이 부족하겠군요. 오늘 경험했던 고통이나 치욕과는 비교도  될 만큼의 끔찍한 미래가 펼쳐질 겁니다. 진짜 의미의 싸운다는  무엇인지 알려줄 테니까요. 중도 포기 따위는 받지 않을 겁니다. 만약 도중에 포기하겠다, 그런 말을 한다면….”
“가문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저 세실리 레블랑은 클라우스 교수님의 가르침을 성실히 따를 거예요. 레블랑의 이름에, 그리고  피에 걸고 맹세할게요.”




마족이 저 정도로 나온다면 더는 의심할 게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굳이 그런 사실이 아니더라도 이미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다 알고 있던 클라우스에게는 저 말이 나온 이상 더는 시간을 끌 필요도 없었다.




“좋아요. 결심을 한 것은 당신이고, 미련한 결정을 내린 것도 당신이니 혹 원망을  거라면  대신 세실리 생도 스스로를 원망하세요. 알겠습니까?”
“네. 그럴게요. 물론 원망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요.”




당연히 그렇겠지. 이제부터 넌 그냥 즐길 생각으로 가득할 테니까. 이 변태 마조 마족.
클라우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그나마 세실리가 한껏 변태 짓을 즐기면서도 클라우스 본인이 때려 박는 가르침을 거의  흡수해서 실력이 금방금방 뛰었기에 괴롭혀주는 수고를 하는 거다.

마조 성향 숨길 생각도 없이 마음껏 괴롭힘을 당하면서 실력은 실력대로 하나도 오르지 않았다면 미친 년, 하고 침을 뱉은 후 무시했을 것이다.



“정말이지, 그냥 철없는 여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레블랑 가주마냥 제정신은  절대 아니군요. 그 아비에  딸이라고 해야 하나.”




클라우스는 고개를 내젓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세실리 역시 그를 따라서 반사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난다.


“원하는 대로 해주겠습니다. 이왕 결정한 거 지금부터   시험해보죠. 정말 세실리 생도의 결심이 그리도 굳을지, 내가 하라는 대로 전부 할  있을지 말입니다.”
“어… 그러면 대련장으로 갈 준비를….”
“아뇨. 오늘은  방에서. 그것으로 충분할 겁니다.”
“네? 이 방이요? 교수실 안에서요?”

그렇게 되물으며 세실리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본다.
확실히 대륙 아카데미의 교수가 머무는 공간이어서 그런지 그 넓이가 꽤 되었다.
당장 안에서 춤을 춰도 부딪칠 게 하나 없는 넓은 공간이 보이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혼자서 뭔가를 할 때의 기준이다.
지금 세실리가 생각하는 장면은 클라우스에게 이곳저곳을 맞으면서 바닥을 뒹굴고 그런 남자에게 밟혀서는 부끄러운 꼴을 당하는 그런 아름다운 그림인데.
아무리 봐도 이곳은 그런 그림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곳이라고   있었다.

‘걱정 마, 이 변태 마조 마족. 네가 원하는 거  알고 있다.’




속으로 고개를 내저으면서 대충 넓은 곳으로 세실리를 안내한 클라우스.
그리고는 시작부터 바로 매콤하게 볶아주기로 했다.


“벗으세요.”
“…네?”
“벗으라고요.”
“아… 저, 겉옷 말인가요?”
“전부 다요. 겉옷은 물론이고 안에 입은 것까지 전부 다. 속옷이고 팬티고 다 벗으세요.”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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