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5장 - 주말에는 역시
눈앞의 상대는 강하다,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마법에서조차 저 남자가 앞서고 있다.
무엇보다 실전 경험의 유무, 그 차이가 그 어떤 것보다도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단순히 연습을 한다고 해서 좁혀질 차이가 아니다, 닿고 싶어도 닿을 수가 없다.
이상이 자신이 맞설 상대, 클라우스에 대한 세실리의 생각이었다.
곱게 자란 레블랑 가문의 막내딸이나 한 명의 마족으로서 상대방의 강함을 가늠하고 자신의 상황을 빠르게 받아들일 줄 안다.
그런 부분에서 보았을 때 클라우스라는 인간 남자는를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세실리의 결론이었다.
‘그래. 이긴다는 생각은 전혀 한 적 없어. 그래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은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그런데…!’
뭔가가 울컥하며 안에서부터 역류하려는 것을 세실리는 가까스로 참아냈다.
고통으로 인해 둥글게 말렸던 몸이 펴지자마자 다시금 날아오는 클라우스의 목검이 보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장 어제도 조금만 더 몸을 날쌔게 놀린다면 피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것들이 여태 착각이었음을, 세실리는 절실하게 깨닫고 말았다.
퍽! 뻐억!-
“꺄악!”
옆구리, 그리고 어깨, 두 군데에서 순차적으로 격통이 전해졌다.
피하기는커녕 공격조차 제대로 보지 못 했다, 검로가 어디로 향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제 클라우스의 속도에 어느 정도 적응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은 헛소리 하지 말라는 듯. 말도 안 되는 생각 따위는 하지도 몰라는 듯 그녀를 비웃고 있었다.
‘말도 안 돼요. 여, 여태까지 진심으로 나선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거잖아요!’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그래도 있었던 세실리였다.
마법에 대한 재능만큼은 어지간한 마족 측 전사들보다도 낫다고 볼 수 있었다.
단순히 자신만의 착각이 아니라 대륙 전쟁을 겪었던 이들의 입으로 들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재능 중에는 상대방의 마력을 읽고 기습이나 다른 뭔가에 대비하는 것도 있었다.
세실리가 굳이 근접 전투에 목을 매지 않았던 이유도, 레블랑 가문에도 그녀에게 근접 전투에 대한 부분을 배우라고 강요하지 않았던 것도 마력을 읽음으로서 충분히 다가오는 적을 파악하고 그에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분명 그러했는데!’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클라우스는 그 부분을 뛰어넘은 후였다.
마력이 채 느껴지기도 전에 공격이 날아왔고, 간신히 공격을 예측하여 몸을 움직이려고 하면 이미 클라우스의 공격이 제 몸에 틀어박히는 중이었다.
도저히 읽어낼 수가 없다, 감지가 된다고 해도 너무 늦다.
자신의 특기이자 재능인 부분이 막혀버리니 세실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기껏 밤새 준비했던 반격 작전의 모든 것이 완전히 박살나고 또 무너져 내렸다.
공격을 읽을 수도 없고 방어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 하고 있는데 무슨 반격이란 말인가.
퍼억!-
“끄흑!!”
다시 한 번 목검이 강하게 그녀의 허벅지를 때리고 지나갔다.
그 충격과 고통에 잠시 몸을 휘청거리던 세실리는 애써 버텨보려고 노력했으나 그마저도 결국 여의치 않았는지 그대로 무너지고 말았다.
원래라면 이 정도에서 대련이 멈췄을 것이다.
상대방이 모든 전투 의지를 잃고서 바닥에 주저앉았다면 더는 싸울 수 없는 상태라고 간접적으로 말하는 것이었으니까.
“일어나세요. 세실리 생도. 대련이라는 핑계 하에 늘어질 생각 말고요.”
하지만 클라우스는 오히려 더더욱 거칠게 세실리를 몰아붙였다.
자리에 넘어진 그녀를 마구 짓밟으며 필요 이상으로 험하게 굴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대우는 정말 처음이었기에 세실리는 무척 당황하고 놀란 기색을 보이면서도 일단 미친 듯이 몸을 굴려서 클라우스의 공격에서 벗어나고자 애썼다.
“하악! 하악!”
간신히 몸을 일으킨 세실리가 가쁜 숨을 할딱인다.
자다가 일어나서 갑자기 대련장으로 끌려왔기에 그렇지 않아도 상태가 엉망이었는데, 단 몇 분 만에 영혼까지 털려서는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기까지 했으니 몰골이 멀쩡할 수가 없었다.
“형편없군요. 실망스럽기 짝이 없어.”
먼지투성이가 된 세실리를 바라보면서 클라우스가 내뱉은 첫 마디는 냉소 어린 평가였다.
이미 자신과 세실리 사이에는 재능으로도 아직 넘어서기 힘든 경험의 차이가 있다.
그걸 고려해서라도 적당히 해줄 만한데 그는 반대로 아주 철저히 박살내는 중이었다.
“나는 여태까지 세실리 생도, 당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패배할 걸 알면서도 계속 도전하는 것, 대련을 청하는 부분에서 대단하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뭔가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대련을 청하는데 정작 그 안에 강해지고 싶다는 간절함도, 이기고 싶다는 열망도, 하다못해 나의 적에게 느끼는 적의도 없더군요.”
“무, 무슨 말씀을….”
“세실리 생도에게 있어 대련이라 하는 것들 전부가 마치 장난처럼 느껴진다는 겁니다. 언젠가 당신의 피와 목숨을 대신해줄 이 노력과 시간을, 단순히 세실리 생도의 흥미 충족 시간으로 대신하고 있다, 이 말입니다.”
생각지도 않은 말에 마족 여인이 크게 놀란다.
자신은 단 한 번도 그리 생각한 적이 없는데, 언제까지나 대련은 실전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왔는데 어찌하여 이런 평가를 듣는 것이란 말인가.
“트, 틀려요! 교수님! 아니에요! 제가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는….”
“해봤자 소꿉놀이나 열심히 하고 있는 철없는 아이로 보일 뿐입니다. 내게는 말이죠.”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러면 내가 틀렸다는 겁니까? 수도 없이 많은 사선을 넘으면서 단 몇 번만 상대해 봐도 상대방의 마음이 어떠한지, 어떤 공격을 할지, 어떤 간절함을 담고서 나를 해하려고 하는지 이제 다 알 수 있는 내가? 당신들이 말하는 남부의 악마가 지금 다른 부분도 아니고 전투 부분에서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까?”
클라우스가 왜 대륙 전쟁에서 그리도 뼈 빠지게 고생하며 기어코 전쟁 영웅이 되었는가.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율리아와 관련된 모든 것에 이로운 부분이 있다는 것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른 부수적인 요인 역시 당연히 존재했다.
그 중 하나는 대륙 전쟁 이후 가장 더럽게도 못 싸웠던 인간들 사이에서 반대로 특출하게 보인다면 그 효과가 몇 배로 더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
특히나 강자라 하면 설사 적이라도 해도 대우를 해주는 마족들에게 있어 강력한 플러스 요소가 되는 부분을 노린 부분이었다.
당장 모욕적인 언사를 들은 세실리가 아무런 반박도 못 하고 있다.
전투에 관해서는 어지간한 마족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 할 수 있는 클라우스가.
그들이 ‘남부의 악마’ 라는 이름까지 붙여주며 두려워하고 동시에 경외하는 이가 그리 말하고 있으니 반박할 용기를 내지 못 하는 것이었다.
‘상대방이 율리아와 같은 상대였다면 통하지 않을 확률이 더 높지만, 지금 내가 다루는 건 세실리 레블랑. 강하게 밀어붙이면 넘어지고, 넘어져서 밟히면 오히려 좋아하는 여자. 당연히 논리적이든 억지스럽든 강하게 나가면 알아서 무너질 게 뻔하다.’
아무리 세실리가 변태 기질이 있는 여자라곤 하지만 그녀도 어찌 되었든 마족이다.
상대방이 약하다면 그 상대가 자신을 깔아뭉갤 때 쾌감이 전해지겠는가?
진심으로 그녀의 모든 것을 끄집어내고 조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녀보다 압도적으로 위에 서있다는 걸 알려주면서 그걸 이용해 철저히 짓밟을 수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현재, 경험이면 경험, 무력이면 무력, 사회적 명성이면 명성, 모든 부분에서 클라우스가 세실리를 압도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제 모든 노력이 부정당했음에도 세실리가 분노하기는커녕 당황해서는 절대 아니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대련은 결국 실전을 위한 것. 당신이 흘릴 피를 땀으로 대신하는 순간입니다. 그런 중요한 순간을 혹 레블랑 가문의 막내딸로서 장난으로 응한다거나 흥미를 채우기 위한 놀이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겁니다.”
“….”
“지금부터 더 강하게 나갈 겁니다. 정신 차리고, 마음 굳게 먹고, 당신의 ‘적’을 마주하세요. 어중간한 마음 말고요. 알겠습니까?”
클라우스의 무시무시한 목소리에 세실리는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마음속에 가득하던 대련을 한다는 기쁨과 흥분은 사라지고 그곳에 남은 건 남부의 악마를 마주한 한 명의 마족으로서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압박감이었다.
세실리가 조금 더 진심으로 나설 준비가 끝났음을 확인한 클라우스는 미소를 지었다.
이런 방식으로 그녀의 한계까지 끌어내고, 그 한계마저 박살을 내주어야 이 여자가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의 것이 될 수 있었다.
단순히 육체적 고통을 주는 것, 두들겨 패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치욕을 안겨주고 모욕을 주며 조롱하고 조소를 머금음으로서 정신적 학대까지 하는 것.
그게 바로 세실리의 본성을 이끌어내는 일종의 트리거라고 할 수 있었다.
‘슬슬 구경꾼들도 모이는 것 같고.’
일부러 대련장을 마족 생도들이 머무르는 기숙사와 가까이 있는 곳으로 정했다.
주말이니 몇몇은 자리를 비웠을 수도 있겠지만 서부 연합의 생도들에 비하면 비교적 학생 같은 모습을 보이는 마족들인지라 많은 수가 아직 방에서 머물고 있는 중이었다.
클라우스는 바로 그 상황에서 세실리를 철저하게 무너트릴 생각이었다.
많은 이들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처참하게 패배하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그리고 그 고통으로 인해 세실리가 어떤 부분에 눈을 뜨게 되는지 그는 잘 알고 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내 공격을 막아내세요. 막지 못 한다면, 다칠 겁니다.”
저것도 굉장히 순화시켜서 ‘다친다.’ 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세실리 역시 클라우스의 저 다친다, 라는 말에 들어간 위협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다.
슈슈슛!-
세실리가 마력을 일으켜 준비를 마치자마자 클라우스의 신형이 사라졌다.
이번에도 미처 마력을 읽을 틈조차 주지 않고, 자신과 주변의 마력을 흐트러트려 세실리가 자신의 위치를 쉽사리 예측할 수 없도록 만든 후에 말이다.
덕분에 레블랑 가문의 마법 천재는 이번에도 클라우스를 따라잡는 데에 실패하고 말았다.
동체 시력이라던가, 청력이라던가, 상대방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것조차 미비한 결과.
마력에만 의지하다보니 정작 그게 막혔을 때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여인이었다.
순식간에 세실리의 뒤를 점한 클라우스가 그녀의 등을 거칠게 차버린다.
그나마 마지막 순간에 간신히 위치를 찾았는지 마법 공격이 날아오기는 했지만 이미 육체가 흔들린 터라 정확한 조준이 되었을리 없었다.
“끄흑!”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지는 세실리.
그래도 나름 천재 소리를 듣던 마족답게 클라우스가 자신을 공격했던 위치로 다시금 마법을 날리며 반격을 꾀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아까 전처럼 공격 몇 번에 정신이 꼭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모습보다야 훨씬 나아졌다 할 수 있었다.
‘아직 한참 멀었지만.’
현 세실리의 가장 큰 약점은 역시나 실전 경험이 전무하다는 것.
율리아야 하도 암살 위협을 많이 받던 터라 나름 쌓아온 게 있고 나타샤도 마법을 다루지 못 한다는 부분을 근접 전투로 메우려고 했기에 요정 측 참전 전사들에게 가서 직접 진검을 들고 살벌하게 싸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세실리는 레블랑 가문의 딸, 가주 직계에 가장 많은 예쁨을 많이 받는 막내라서 그런 살벌한 경험을 했을 리가 없었다.
그런 부분이 조금씩 쌓이다보니 중요한 순간, 결정적인 때에 이리 발목을 잡게 된다.
고통을 이기지 못 하는 것, 넘어지면 패배하는 수준이 아니라 ‘죽는다.’ 라는 생각이 없는 것.
그 외에도 많은 부분에서 아직 부족한 세실리였다.
“아.”
세실리의 눈동자에 절망이 기운이 가득해졌다.
분명 클라우스의 발차기에 날아가면서도 거리를 벌려 어떻게 한 번의 반격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어느 틈에 자신의 바로 앞에 그가 다가온 것이었다.
퍼어억!!-
다시금 남자의 주먹이 여인의 배를 강타했다.
이번에는 마력까지 머금고서 날린 일격이었기에 단순히 고통만으로 끝날 게 아니다.
한동안은 내부 마력이 아주 진탕이 되어서 그 고통으로 인해 함부로 마법을 쓸 수 없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끄르륵!!”
배를 움켜쥔 채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는 세실리.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 하면서 다만 꺽꺽 소리를 내는 여인이 조금은 안쓰럽기도 했지만, 딱히 이런 방법 외에는 따로 떠오르는 대안이 없었다.
이 여자는 상냥히 대해주는 것보다 거칠게 다뤄주는 걸 더 좋아하는 성향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