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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화 〉4장 - 옛 인연들 (51/341)



〈 51화 〉4장 - 옛 인연들

제아무리 클라우스라고 해도 모든 똥을 다 치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죽으면 다시 살아나는 회귀를 반복한다고 해도, 스킬을 계속해서 쌓는다고 해도.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한 이라고 해도 결국 몸은 하나밖에 되지 않는다.
수도 없이 많은 놈들이 질펀하게 통을 싸지르면 치우는 데에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만들자. 내가 써먹을 수 있는 사람다운 귀족  정도.’



다행히도 인간 귀족이라고 해서 한 놈도 빠짐없이 전원 쓰레기는 아니다.
당장 루스칼 총장처럼 바른 사고를 가진 이들도 적기는 하지만 분명 존재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루스칼 총장이 그리 권력이 강한 가문의 출신이 아닌지라 써먹기가 매우 모호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애당초 위세 높은 가문 출신의 나름 괜찮은 놈을 밀어주면 되는 것 아닐까.
클라우스는 그렇게 생각하고서 왕국과 제국의 귀족들을 탐색했다.


능력도 능력이지만 일단 사람 새끼가 먼저다, 짐승만도 못 한 놈은 설사 재능이 좋아도 무조건 아웃이다, 라는 기준을 정해놓고 물색한 결과 몇몇 이들이 눈에 띄었다.


해서 추려낸 이들 중 하나가 바로 지금 클라우스의 옆에 있는 다넬 키엔마이어 후작.
소설의 대부분 인물들은 키엔마이어 후작이라고만 부르는 남자였다.

‘의리 좋고 배신도 안 하고 능력도 나름 있고 무엇보다 마음 씀씀이가 좋아. 착하기도 하고.’

원래는 그냥 마음 좋은 후작으로서 간신들한테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율리아에게 죽는 안타까운 희생자 1 정도의 포지션을 잡고 있는 키엔마이어 후작이었다.

그런 부분이 확실히 아쉽다고 판단한 클라우스는 대륙 전쟁의 와중에 슬그머니 그를 밀어주어서 그가 귀족들 중에서는  안 되는 승전보를 울린 지휘관으로 만들어주기도 했다.




원래부터 귀족들의 특권 의식에 그리 동조하지 않는 남자였던 터라 친해지는 건 쉬웠다.
거기에 클라우스에게 이런 저런 도움을 받기까지 했으니 지금의 키엔마이어 후작은 강력한 권력을 지닌, 클라우스의 든든한 빽이 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키, 키엔마이어 후작님이 여기는 어찌하여….”

당황해서는 말까지 더듬거리는 귀족 조사단이었다.
분명 요제프 대공은 자신들에게 조사단의 임무를 맡기면서 동시에 평민들을 완전히 깔아뭉갤 명분을 가져오라 비밀스러운 주문을 넣었다.
다른 귀족이 추가로 더 따라올 것이라는 말은 결단코 없었다.


헌데 어찌하여 왕국의 귀족 중에서도 첫손에 꼽힌다는 저 남자가 여기 와있다는 것인가!




“생각해보니 불안해서 말이네. 당장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종족들, 그 중에서도 정말 대단한 자들이 득실댄다는 대륙 아카데미에 조사단이라고 파견한 자들이 몽땅 다 끗발 떨어지는 가문 출신들이라서 말이야. 혹 여기 있는 생도들이나 교수들이 불쾌해할까 걱정되어 몰래 따라왔지. 귀족 회의의 축을 이루는 일원으로서 그럴 자격 정도는 있으니까.”



끗발 떨어지는 가문, 이라는 말에 귀족들의 얼굴이 일제히 굳었다.
명백하게 자신들을 조롱하는 단어였으나  부분에 어떤 반박도 할 수 없었다.
키엔마이어 후작은 현 귀족들 사이에서도 감히 함부로 할  없는 권력을 지는 가문이다.

당장 그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붙일 수 있는 이는 국왕이라던가 왕자, 요제프 대공, 그 외에 약간이 전부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범위를 제국까지 넓히면  수는 더욱 많아질 테지만 제국과 왕국은 서로를 견제하고 있는 중이니 논외로 치고 말이다.



“왜 대답들이 없나. 혹시 내 말에 불만 사항이라도 있는 건가?”

있으면 말이나 해봐라. 내가 들어는  테니까.
그런데 그렇게 말한 이후 그 뒷감당은 알아서 책임지고.
딱 그런 감정을 담은 눈빛이 번쩍이니 귀족들은 바로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아, 아닙니다.”
“없습니다, 후작님.”
“그래. 없어야지. 당연히 없어야지. 그런데 난 자네들에게 불만이 많아. 아주 많고말고.”



잔잔한 미소를 지은 채로 그리 말하는 키엔마이어 후작을 바라보며 조사단으로 파견된 귀족들이나 기사들은 물론이고 고자 생도들도 바짝 얼어있었다.


자신들이 조금 전 누구를 향해 도발을 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눈앞의 저 명망 높은 귀족, 키엔마이어 후작이 자신들이 조롱한 일개 평민과 무척이나 절친한 사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사실인가? 이미 결론을 지어놓고 조사를 진행하려 했다는 말말일세.”
“후, 후작님, 그건….”
“난 대답을 원하고, 그 외에의 소리는 듣고 싶지 않네. 이건 부탁이 아니라 지극히 보잘 것 없는 너희들에게 내리는 명령이야. 아카데미에서까지  권한을 쓰고 싶지는 않으니 솔직히 대답해주게. 그게 서로에게 편해.”

단순히 작위만 높은 게 아니다.
키엔마이어 후작은 승전보를 울렸던 귀족 지휘관이다.

따라서 전쟁이 끝나고 자연스레 밀려났던 평민 출신의 이들과는 다르게 군부에서도 계속 성장하여 이제는 거의 정점에 올라섰다고 해도 무방할 수준이다.



그가 클라우스와 무척이나 절친하다는  정도는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를 밀어내자니 같은 귀족을 밀어내는 것이고 후작 가문을 건드릴  있는 이는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으며 승전을 거두었던 인물이라 군부의 지지도 높다.


때문에 귀족들은 키엔마이어 후작이 제발  가라앉은 클라우스보다는 다른 귀족들이 내민 손을 붙잡아주기를 간절히 바랬었다.


‘응, 좆까.’



그게 딱 적절한 단어라고 할  있었다.
클라우스가 군부에서 밀려나고 아카데미 교수직이나 가지고 있다고 해서 손절을 할 키엔마이어 후작이었다면 애당초 클라우스가 밀어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돌아들 가게.”
“예?”
“후, 후작님!”
“더 더러운 꼴 보이지 말고 돌아가도록. 그대들이 그렇게도 찾는 그 잘난 귀족들의 명예, 본인들이 더럽히지 말고 어서.”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저희는 귀족 회의에서 나온 결론대로 요제프 대공님의 명령을 받아서 온 대표입니다. 아무리 키엔마이어 후작님이라고 해도 여기까지 오셔서 저희들에게 강압적으로 대하신다면 다른 귀족들은 물론이고 대공께서….”
“다른 귀족들이 뭐 어쩐다는 거지? 대공이 뭐 어쩌겠다고?”



자칫 모든 귀족들을 적으로도 돌릴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저건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다,   내질러본 말도 아니다.
키엔마이어 후작은 그럴 만한 힘과 권력을 가진 대귀족이었다.


‘빌어처먹을!’

귀족들은 입술을 깨물면서 옆에 서서 낄낄대는 클라우스는 바라보았다.
키엔마이어 후작 본인이 가진 힘도 엄청나지만 그가 저리도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클라우스와 절친한 벗이라는 부분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남부군 출신의 베테랑들은 물론이고 평민들도 후작을 좋게 평했다.
다른 귀족들과는 다른 분이니 우리의 영웅 클라우스 사령관님께서 벗으로 두고 가까이 하시는 거 아니겠느냐! 뭐 이런 이유로 말이다.




때문에 왕국의 어느 인물도 그런 키엔마이어 후작에게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를 공격한다는 것은  클라우스를 공격한다는 것이고,  말은 즉 대륙 곳곳에 있는 클라우스의 추종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선전포고를 한다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귀족 회의 때는 얌전히 있기에 이제는 클라우스와 선을 긋는 줄 알았다만!’



요제프 대공을 위시한 귀족들이 이번 일을 빌미로 평민들을 찍어 누르려고 했던 이유.
지금처럼 키엔마이어 후작과 같이 평민들에게 유화적인 모습을 보이는 귀족들을 명분으로 찍어 누르고 그동안 잃어버렸던 귀족들의 영광을 다시 되찾기 위함이었다.


평민 출신의 영웅이었던 클라우스를 완벽하게 쫓아내었고  추종자들도 이제는 뿔뿔이 흩어져서 한지로 발령이 나거나 군부에서 방출되거나 몇몇은 회유가  상황.
이제 더는 망설일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한 번 일을 진행한 것인데 그 클라우스 앞에서 아주 보란 듯이 개망신을 당하게 되었다!



‘우리들이야 어떻게 아니라고, 오해라고 잡아뗄  있다 치자. 하지만 이 멍청한 놈들은….’

침대 위에 누워서 죽은 척 하고 있는 이 머저리들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게 병신이다.
귀족 조사단은 입술을 깨물고는 여기서 괜히 더 우겨봤자 자신들만 손해임을 깨달았다.
물러설 수밖에 없는 상황, 더는 어떻게 뭘 해볼 수가 없는 때라고 볼  있었다.




결국 조사단은 도망치듯 병실을 빠져나가고 말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키엔마이어 후작은 아주 나긋한 어조로 고자 생도들에게 말했다.


더 부끄러운 꼴 당하고 싶지 않다면 그냥 입 다물고 조용히 있으라.
괜한 짓으로 인해 서로 곤란해지면 누가 더 손해일지 잘 생각해보라.

“….”

명백한 협박에 귀족 생도들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귀족 회의도 무섭고 요제프 대공이라는 이름도 무서웠지만 그보다는 역시 대륙 전쟁에서 나름 승리한 적도 있는 키엔마이어 후작이 훨씬 더 두려웠다.



그렇게 ‘인간 귀족’ 측 조사단을 ‘인간 귀족’ 으로 물리친 클라우스는 키엔마이어 후작과 함께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차라리 그냥 나한테 다 맡기지 그랬나.”
“뭐가.”
“왜 침묵하라고 해놓고 그 후에 내게 이곳으로 은밀히 오라고 한 겐가? 그냥 귀족 회의 때 내가 나서서 막았다면 자네가 저딴 쓰레기들에게 모욕을 당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그게 불만인 거냐?”
“당연하지! 내 벗을 그리 모욕하는데 누가 참을 수 있단 말인가!”



역시 호구 잡히기 딱 좋은 놈이란 말이야, 이거.
너 나 아니었으면 다른 귀족들에게 제대로 봉 잡혀서는 쪽쪽 빨아 먹혔을 거다, 자식아.
클라우스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대륙 전쟁 당시 데리고 다니면서 정신 교육도  해주고 세상 만만치 않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니 꽤 괜찮은 놈이 되어서는 조력자 역할을 아주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그리 했다가는 역으로 네가 곤란해졌을 거다, 다넬 키엔마이어 후작.”
“무슨 소리지?”
“귀족 회의에서 네가 대놓고 반대를 했다고 생각해 봐. 자리에 모인 귀족들이 너를 좋게 바라볼 수가 있겠어? 귀족 주제에 이상한 사상에 빠져서 평민들 편이나 드는 멍청한 놈이라고 뒤에서 열심히 까 내리기에 바쁘겠지.”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아.”
“신경 써야지. 네가 곤란해지면 나도 곤란해지거든.”
“하지만 귀족 회의에서 반대를 하지 않았다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아카데미까지 몰래 찾아와서 훼방을 놓았으니 다른 게 없지 않나.”
“다르지. 다르고말고. 그것도 아주 많이.”


클라우스의 말에 키엔마이어 후작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귀족 회의에서 반대표를 던지는 것과 이렇게 아카데미까지 와서 그 회의에서 파견된 조사단을 돌려보내는 것이 뭐가 다르다는 것인지 자신은 도통 모르겠다는 뜻으로.

그에 클라우스는 ‘답답한 친구야.’ 라고 그의 등판을 후려쳤다.
평민이 귀족을, 그것도 자그마치 후작 자리에 있는 남자의 몸에 손을 대다니, 원래라면 당장 목을 쳐도 부족하다고 다른 귀족들이 게거품을 물고 자빠질 일이었다.




“억.”



하지만 키엔마이어 후작은 다만 짧은 비명소리를 내는 게 끝이었다.
오히려 그는 도대체 뭐가 다른 건지 얼른 설명  해보라고 보챘다.



“잘 들어. 네가 그 자리에서 계속 반대표를 던졌다고 생각해봐. 그 자리에 모인 귀족 놈들이  꼴을 좋다고 보겠어? 정신이 나가서는 귀족 놈이 평민  들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무엇보다 귀족 놈들만 가득한 자리이니  안에서 어떤 말이 어떻게 오고 갔는지 이상하게 와전될 수도 있고 말이다.”
“…그건 그렇지.”
“하지만 이렇게 아카데미까지 몰래 뒤를 밟아서는 이 조사단 놈들이 하라는 진상 조사는  하고 그냥 평민들 잡아 족치겠다는 명분만 얻으려고 했던 것을 막았다! 라는 말이 나온다면 그건 또 다르지. 무턱대고 평민 편을 들은 게 아니라 귀족의 명예를 지키려고 했다, 역시 대륙 전쟁에서 활약하던 그 영광스러운 키엔마이어 후작다운 행동이었다!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나돌 거다.”


귀족 회의에서 반대를 했든, 이렇게 몰래 쫓아와서는 훼방을 놓든 결국 결과는 귀족들의 평민 억압을 막아낸다, 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귀족들에게 대놓고 욕을 먹느냐 아니면 역으로 사회적 명망을 더 얻느냐 이런 차이가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키엔마이어 후작은 그런 클라우스의 말을 들으면서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잠시 클라우스의 눈치를 본  슬쪽 본심을 드러냈다.



“왕국으로 돌아올 생각은 아예 없는 건가?”
“내가 나가고 싶어서 나갔나? 나가라고 해서 나간 거다.”
“….”
“차라리 고마운 일이지. 있는 정 없는 정 다 떨어지게 만들어줘서.”
“아직 나나 다른 몇몇 이들은 그대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고 있어.”
“그러다가 다른 귀족들한테 정치적으로 당하지 말고 조용히 지내. 괜히 너 흔들리면 나까지 곤란해진다.”

키엔마이어 후작은 나중에 클라우스가 빼낼 주춧돌 중 하나다.



인간이면 그게 갓난아기든 늙은이든 가리지 않고 모조리 죽이던 마왕, 율리아 아그네사.
피에 굶주린 미친 악귀라고 불리던 그녀였으나 이전 분기점에서 인간 귀족 생도들을 물리 거세 시켜주었기에 연쇄 살인마가 되는 건 일단 막아냈다.


그렇다는 건 인간 측에서 검증된 이들의 항복 정도는 받아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율리아가 역사에 길이 남을 폭군 소리 들으면 슬프잖냐.’



그녀가 죽이는 건 자신이 적어놓은 살생부, 그것으로 충분했다.
어차피 모가지가 잘릴 귀족들이야 아주 차고 넘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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