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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화 〉4장 - 옛 인연들 (50/341)



〈 50화 〉4장 - 옛 인연들

율리아와 카엘라가 서로 만남의 시간을 가지도록 배려(?)한 클라우스.
제아무리 제 말이라면 죽는 척도 한다는 카엘라이나 마족들과 피터지게 싸우면서 그에 대한 반감이 없을 수는 없으니 빠르게 현 상황을 알려주고서 그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것이었다.

수인들 특성  서열이 한 번 정해지면 정말 어지간해서는 서열을 함부로 거스르지 않는다.
제 명예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그 서열이니까 말이다.


카엘라에게 있어서 클라우스는 절대 뛰어넘을 수도 없고 뛰어넘어서도 안 되는 존재.
그 클라우스가 자신의 새로운 주군으로 인정한 율리아이니 이제 카엘라도 율리아에게 적대감이나 의심 따위는 버리고 클라우스의 윗사람으로 대할 것이었다.




‘카엘라 특성 상 지금부터 관계 개선이 안 되면 계속 부딪치게 된다. 율리아와 불편한 사이가 되면 서로 손해이니 얼른 친해지는 게 좋아.’



방법이 조금 과격하기도 했지만 합사 전 서로를 파악하는 경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항상 클라우스를 독점하려고 눈에 불을 켜는 다른 여인들과는 달리 카엘라는 설사 발정기라도 해도 클라우스가 ‘허락’ 하지 않는 이상 먼저 달려든다거나 가랑이를 벌리지 않는다.

바로 이 부분이 율리아가 카엘라를 경계하거나 불만 가득한 눈길로 보지 않는 이유였다.



한 번 서열이 정해지면 절대 기어오르지도 않고 자신이 클라우스와 한창 섹스 삼매경에 빠져있을 때 새치기를 한다거나 떨어지는 콩고물을 먹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사납고 드세다는 호랑이 수인이나 종족 특유의 절대적인 충성심으로 인해 클라우스에게 해가 되는 그 어떤 행동도 자의로는 하지 않는다는 여인이기도 하다.

이러니 율리아 입장에서는 클라우스 옆에 하나 정도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물론 여자라는 건 변하지 않으니 무조건 반길 수도 없는 일이지만.’


어디까지나 허락은 해주겠다는 말이지 함부로 까부는 건 절대 용납지 않는 마왕님이다.
클라우스라는 남자는 어디까지나, 무조건 자신의 것이다. 자신만 독차지할 수 있다.
그게 차후 율리아가 보일 집착 강하고 질투심도 많은 여인의 모습이었다.



‘아무튼 율리아와 카엘라는 잠깐 이야기 좀 나누고 헤어질 테고.’

현재 클라우스는 한창 한 편의 소설 짜깁기를 하고 있을 귀족 놈들을 보러 가는 중이었다.



이미 카엘라와 이야기를 나누었다시피 그들은 아카데미를 혼란케 하거나 이번 일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서 온 것이 결코 아니었다.

어떻게든 이번 일의 원흉을 평민으로 지목하여 인간 사회의 평민들을 전쟁 전의 상태로.
감히 숨조차 쉬지 못 하는 그런 상태로 되돌리겠다는 목적을 띠고 있는 것이었다.

병실에 다다른 클라우스는 슬쩍 귀를 기울였다.
안에 있는 놈들은 자신들이 워낙 조용한 목소리로 소곤거리고 있으니 이쪽의 대화 내용을 어느 누구도 들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결코 쓸 수 없다는 스킬, 바로 그걸 클라우스는 쓰고 있다.
그 중에는 당연히도 청력을 몇 배로 높일 수도 있는 스킬도 있었다.



- 스킬, ‘청력 강화’  발동되었습니다. -

“…그러면 정리해봅시다.  기억은  나지만 누군가가 공격을 한  같다. 이런 말이죠.”
“네, 네. 생각해보니 그런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런  같아요.”
“당연히 그래야죠. 설마 우리 고귀한 귀족들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짓들을 하면서 멍청하게 제 입으로 다른 이의 물건을 물어뜯는 짐승 같은 짓을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당연히 그렇죠.”
“이렇게 되면 누군가가 마치 뒤에서 사주를  것 같다는 의심을 버릴 수가 없군요.”
“사주라 하시면….”
“이리 비참한 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웃어댈 자들이 누구겠습니까? 당연히 하늘 높은  모르고 자꾸 기어올라 그곳을 더럽히려고 하는 천하디 천한 평민들일 겁니다.”



지랄 염병을 떨고 자빠졌군. 역시 이놈의 새끼들은 갱생 가능성이  1도 없다.
저 인간들을 포기하고 마족 쪽에 붙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 최고로 현명한 일이었다.


스무 번의 회귀 동안 온갖 노력을 했으니 이제는 양심에 찔리는 일도 하나 없다.
저런 놈들이 앞으로 몇 천, 몇 만이나 뒈지던 이제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해준 것도 없는 자들에게 본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을 해주었으니까.

아카데미 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쌓아둔 인간 세상의 주춧돌을 본인이 하나씩 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즐거워지는 클라우스였다.


벌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한창 열심히 소곤거리고 있던 귀족들이 화들짝 놀라서는 클라우스의 눈치를 보고 또 고자가  생도 놈들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눕는다.

한 것도 없이 주둥이만 놀리던 놈들이니 평민의 위치에서 그 어떤 귀족도 해내지 못 한 일을 해낸 자, 받지 못 한 호칭을 받아낸 클라우스를 부담스러워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조금 전에는 사령관도 아니고 일개 교수였기에 세게 도발을 하긴 했으나 지금처럼 허튼 짓을 꾸미다가 딱 걸렸으니 이제는 당당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다.

“크, 클라우스 사령관… 아, 아니 교수! 놀라지 않았소!”
“노크도 없이 막 들어오다니. 여기는 병실이오! 그대가 아무리 귀족들을 막 대하는 자라고는 하나 환자들이 있는 공간에 그리 막 들어오다니 예의가 없어도 너무 없는 것 같소만?”

클라우스는 그 말에 정말 육성으로 터지고 말았다.
저 말도 안 되는 개소리는 언제 들어도 항상 개그 그 자체였다.

예의가 없다는  저놈들이 할 말이 아니고, 저들 말대로 자신이 귀족  대하는  알면 저들끼리 알아서 몸을 사려야지 왜 자꾸 도발을 하는 것이란 말인가.



“병실이니까 목소리나 낮추죠. 그런 기본적인 예의도 없는 겁니까?”
“뭐, 뭐라?”
“그보다 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은  같은데요.”
“무슨….”
“내가 알고 있는 조사라 함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고, 듣고,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주관적인 의견이 들어가지 않은 채 위로 올리는 보고라고 알고 있습니다. 헌데 조금  들은 당신들의 이야기는 아무리 봐도 그 ‘조사’    있는 것이 아니더군요.”
“조사가 아니라니. 이들에게 그 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 묻는 것이 조사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라는 말입니까?”
“모릅니까? 아아, 그러면 내가 알려주도록 하죠. 그걸 바로 ‘소설’ 이라고 하는 겁니다. 있음직한 일을 꾸며내서 만드는 이야기 말입니다. 이제 제대로 알겠습니까?”

명백하게 비웃는 어조가 어린 클라우스의 대답이었다.


그에 귀족들이 인상을 일그러트리며 뭐라고 쏘아붙이려고 했으나 클라우스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부 들었다고 생각하니 어떤 방식으로 일이 커질지 몰라 애써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분명 저들은 내부 조사 때 자신들이 남색을 저지르고 쾌락을 더해주는 약에 취해서 흐느적거리다가 그 기운에 못 이겨 아주 미련한 짓을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증언에 한 치의 거짓도 없다는 귀족들의 명예를 걸기까지 했고요. 그렇지 않습니까, 귀족 생도 여러분?”
“그건….”
“설마 모른다고 할 건 아니죠? 이미 아카데미 측 기록관이 그 당시의 증언 기록과 그 말에 대한 기록도 전부 써서 가지고 있을 겁니다.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귀족, 명예는 항상 걸어도 부족함이 없는 귀족,  그렇게 소문이 퍼지고 싶다면 할 말은 없지만요. 아니면….”


클라우스는 씨익, 하고 조소를 입에 머금은 채 남자라면 무조건 격노할 수밖에 없는 말을 꺼내주었다.


“혹시 더는 남자가 아니라서 지킬 명예도 없다, 이런 겁니까? 그러면 이해해줄 수도….”
“그만! 그만 하시오, 클라우스! 정도가 지나치오!”
“당신이 비록 전쟁 영웅이라고는 하나 지금은  어떤 직위도 없이 그저 아카데미의 일개 교수! 작위는 고사하고 군부의 지위조차 없는 몸 아니오! 평민 주제에 감히!!”
“하찮은 평민이니 직접 귀족님들께 알려드리고 있는 거잖습니까. 거기서 말 바꾸면 귀족 명예 스스로 걷어차는 꼴이 되니 부디 잘 선택하라는 그런 충언 말입니다.”
“….”
“….”




충언인지 아니면 도발인지 알 수 없기는 하나 어찌 되었든 맞는 말이기는 하다.
귀족의 명예를 걸고 증언을 했는데 그걸 뒤집는다면 그건 귀족으로서 가장 수치스러운   하나이니까 말이다.


“자, 자. 아까 당신들이 나누던 이야기나 마저 말해볼까요? 마치 누군가가 사주를 해서 여기 있는 생도들을 이 지경으로 만든  같다, 뭐 그런 식으로 말하던 그 말 말입니다.”

가장 민감한 부분을 클라우스가 제대로 걸고넘어진다.
당연히 화들짝 놀란 귀족들은 전보다 더욱 흥분해서는 무슨 소리냐고 지껄여댔다.

자신들은 다만 모든 가능성을 두고서 조사를 하는 것인데 설마 클라우스 본인이 평민 출신이라 하여 자격지심을 가지고 허튼 소리를 하는  아니냐고.
아마 카엘라나 다른 남부군 소속 병사들이 들었다면 흥분해서는 목을 쳐버리겠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그들이었다.

“클라우스, 당신은 모릅니다! 현재 평민들이 얼마나 거칠게 변했는지! 마음에 조금이라도 들지 않는다면 사람을 시켜서 귀족들을 해하려고 한단 말이오! 당장 민란을 보시오!”
“가능성일 뿐이지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자면 평민이 아니라 다른 종족일 수도 있죠. 그리고  생도들은 이미 자신들 입으로 저들이 한 거라고 다 말하기까지 했는데요.”
“협박을 받았을 수도 있소!”
“도대체 어떤 미친놈들이 그런 협박까지 하면서 저들을 살려둔단 말입니까? 죽일 거였으면 깔끔하게 죽여야 정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 겁니까? 뭐가 예뻐서 남자 구실만 못 하게 하고 그 외에는 손조차 대지 않았다는 건지 난 아직도 모르겠군요.”


정곡을 찌르는 부분이었다.
저들 말대로 정말 평민들이 이번 일을 사주했다면, 귀족들에게 앙심을 품었다면 죽여 달라고 암살 요청을 넣지 왜 고환만 잘라서 그들 입에 넣어주는 요상한 의뢰를 한단 말인가.

치욕을 주고 싶다고 해도 그렇게 고이 잘라 입에 넣어준 후에 목을 따서 죽여도 아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저들은 고환 커팅만 당했을 뿐 목숨은 부지했다.

“조사를 할 거면 당신들 말마따나 광범위한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할 터인데. 무조건 평민들이 사주를 했을 것이다, 라는 결론을 미리 내려두고서 입을 맞추고 있군요.”
“그런 적 없소이다!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지.”
“아아, 네. 네. 그러십니까?”
“뭔가 상당히 불만이 많다는 얼굴이구려?”
“불만이 없을 수가 있겠습니까.”
“클라우스 교수. 그쯤 해두시오, 당신이 평민이라 우리 귀족들에게 불만이 많은 건  알겠소. 허나 당신은 이제 남부군의 사령관도 아니고 다만 아카데미의 일개 교수일 뿐이오. 우리들이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조사를 하든 당신이 관여할 것은 없단 말이오!”


확실히 저 지적이 맞는 부분이긴 하다.
저 귀족 말대로 현재 클라우스 본인은 아카데미의 교수일  아무 것도 아니다.

전(前) 남부군 사령관이라는 자리는 이제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 하고 가지고 있던 실권도 전부 잃었으며 따라서 더는 왕국 내부에서 목소리를 낼 수도 없다.

아카데미의 일개 평민 교수, 그게 현재 클라우스가 가진 전부라 할 수 있다.
그런 교수가 귀족들로 이루어진 조사단에게 뭐라고 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
최소한 총장 정도는 되어야 저들에게 큰소리를 내면서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의 클라우스는 저들에게 비판의 목소리를 가하되 그걸 고칠 수는 없었다.


저들 정도는 가뿐하게 씹어 먹고도 남을 그런 권력을  이가 온다면 또 모를까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제 인간  군대를 이끄는 사령관도 아니고 군부의 실세도 아니며 왕국에서도 이탈하여 아카데미에 쳐박힌 교수 나부랭이이니 더는 관여하지 말라. 이런 소리입니까?”
“흐음. 그리 말한 적은 없는데 그리 들렸소?”
“유감이구려. 과거의 전쟁 영웅이 그리 되다니!”


껄껄대며 슬그머니 클라우스의 신경을 긁는 귀족 놈들이다.
과거라고 해봤자 꼴랑 몇  전 일이다, 저놈들도 그걸 알고 있다.
하지만 사령관도 아니고 군부의 사람도 아님은 이제 확실하다.
더는 클라우스가 귀족을 함부로 대한다고 해서 방패가 될 수 있는 게 없다.


귀족들은 그걸 노리고 이제는 한 명의 평민이 된 클라우스를 몰아붙일 명분을 쥐기 위해서 자꾸만 도발을 하는 것이었다.

쯔쯧, 혀를  클라우스는 슬쩍 옆으로 비켜서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
“키엔마이어 후작.”
“…?!”
“뭐, 뭣?!”

귀족들의 얼빠진 비명 소리를 들으면서 한 남자가 클라우스의 뒤에서 나타났다.
그가 비록 귀족들 하면 학을 뗄 정도로 싫어하기는 했으나 모두를 멀리  건 아니었다.


귀족이라고 해도 ‘사람’ 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언제든지 환영이었다.



“참으로 재미있는 상황이군. 클라우스.”
“그러게 말이야. 다넬. 저 치들이 나한테는  꺼져달라는데 어떻게 생각하지?”
“물러나게. 아무래도 이런 전장에서는 자네보다는 내가 더 유리할 듯 싶어.”



왕국 실세 중의 실세, 군부에서도 좋게 평가를 내리는 몇  되는 참된 귀족.
바로 이럴 때를 대비해 사귀어둔 클라우스의 든든한 귀족 친우.

다넬 키엔마이어 후작이 앞으로 나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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