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9화 〉4장 - 옛 인연들 (49/341)



〈 49화 〉4장 - 옛 인연들

“이번에는 전방위에서 날아오는 공격에 대비하는 마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적이 항상 앞에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며 때에 따라서는 방어 마법에 우위를 조금 더….”



오후 강의가 다시 시작되었다.
클라우스가 강단에 서서 강의 내용을 말하고 생도들은  강의에 집중한다.

뒤쪽에 앉은 귀족 생도들은 딱히 관심이 없는 모양새였으나 최소한 시험을 망쳐 귀족 이름에 먹칠을 할 수는 없었기에 나름 주의해서 듣고 있는 중이었다.


“….”



적당한 자리에 앉아 강의를 듣고 있던 마왕, 율리아 아그네사.
원래 전투 마법 강의의 그 누구보다도 강의에 열중하는 우수한 생도였던 그녀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도저히 강의에 집중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크릉.”



뒤에 서서 다른 곳은 일체 보지 않고 오로지 율리아의 뒤통수만을 노려보는 호랑이 수인.
 눈길이 어찌나 차갑고  으스스하던지 지금처럼 아예 시선을 마주하고 있지 않음에도 율리아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그 수인의 명백한 적의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생도도 아니고 교수는 더더욱 아니다. 심지어 아카데미 관련 인물도 아니다.
오히려 뒤에 서있는 저 호랑이 수인은 인간 측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아카데미 안에서 있던 일에 대해 다른 종족들에게는 미리 언질조차 하지 않고 들이닥친 자들.
율리아에게 있어서 절대 잊을 수 없는 그 끔찍한 일에 관여가 되었을 수도 있는 이들이었다.



인간 귀족 생도들이 저항 불가능한 상태가 된 마왕을 범하려고 했다.
그러한 일이 바깥으로 알려진다면 인간 측은 마족에게는 물론이고 같은 서부 연합 소속인 요정이나 수인들에게조차 사회적 질타를 받을 수도 있음이었다.
만약 이번 일이 알려진다면 꽤나 소란스러움이 일 텐데도 저런 행보를 벌인 것이었다.

‘…아니지. 그 놈들이 나를 노린 걸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볼  있겠어.’



이전에 있었던  일들은 분명 제 숙부가 사주한 것이다.
거기에 인간들과의 이야기가 되어 있지 않을 리가 없다, 또한 요정들과도 은밀하게 무슨 대화를 나누었을 수도 있다.
애당초 마족들은 제 숙부의 손에 반절 이상이 들어 가있으니 이견을 제시할 이도 거의 없다.

해서 율리아는 저 호랑이 수인에게 자신 역시 적의를 품었었다.
수인인 주제에 인간 귀족 밑에 들어가서 그 뒷구멍이나 핥는 짐승으로 보였으니까.

분명 뭔가를 많이 챙겨주겠다, 뭐 그런 식의 유혹에 빠져서 수인들이 그리도 중시하는 명예까지 전부 벗어던진 채 인간들의 애완동물이 되었다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허나 클라우스의 소개에 율리아는 아, 하고 탄식을 내뱉고 말았다.
동시에  그녀가 만나자마자 자신에게 그리도 큰 적의를 가졌는지도  수 있었다.



‘강의 시작에 앞서 일일 손님을 소개토록 하겠습니다. 대륙 전쟁 당시 내 부관으로 지내던 카엘라 티거입니다. 모종의 이유로 잠시 이곳 강의실에 있겠다 하니 여러분들은 잠깐 신경 쓰다가 바로 관심 꺼주고 강의에 집중하면 되겠습니다.’




대륙 전쟁 당시 클라우스의 부관이었단다.
전쟁 영웅, 남부의 악마로 불리며 그 적이었던 마족에게조차 동경 어린 시선을 받았던 남자.
클라우스의 가장 믿음직했던 수하라는 소리였다.

당장 생도들은 카엘라를 향해 꽤나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 클라우스에게 많은 유능한 부하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나  중에 수인이 있었다는 소리는 한 번도 듣지 못 했고, 그 수인이 수인 사회에서도 가장 강력하며 또 가장 자존심 강하다는 호랑이 수인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카엘라 티거. 혹시 여기 있는 생도들에게  말이라도 있습니까?’

클라우스의 질문에 카엘라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크르릉, 하고 불만 가득한 울음소리를 내면서 손에서 손톱을 살짝 뽑을 뿐이었다.
카엘라의 그런 반응에 클라우스는 ‘없다네요. 강의나 열심히 하고 또 들으라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강의를 시작할까요.’ 라고 말하면서 강의를 시작했다.



 후로 계속 저런 상황이었다.

강의가 지속되는 한 시간이 훨씬 넘는 시간동안 카엘라는 다른 생도들에게는 단 한 번도 눈길을 돌리지 않은 채 율리아의 뒤통수만 계속 노려보았다.
마치 사냥감을 점찍고서 빈틈만 보이면 목을 물어뜯겠다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도대체 저 여자가 왜 저래! 미친 거 아냐?!’

시간이 흘러도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자신을 노려보는 통에 율리아는 미칠 것 같았다.
애써 그 시선을 무시하고 강의에 집중하려고 해도 그녀 역시 나름 실력이 있는 여인이다.

자신의 뒤에서 쏟아지는 그 적의 어린 눈길을 무시할 정도로 감각이 무디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언제 어디서 자신을 노리는지  수 없는 상황에서 저런 눈길을 무시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지낸다는 건 그녀에게 있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숙부의 강제가 아니라 자신의 뜻으로 듣고 있는 유일한 강의.
그리고 비록 반칙에 가까운 방법을 쓰기는 했으나 자신만의 힘으로 끌어들인 제 사람.
그 앞에서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데 자꾸 뒤에서 저리 방해를 하니 이제는 부담감을 넘어 슬슬 화가 나는 율리아였다.




“…다음에는 오늘 강의에 이어서 방어로 끝나는  아니라 전방위에 대한 공격을 어떻게 가해야 하는가,  부분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클라우스가 강의 종료를 알리자 생도들도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섰다.
클라우스가 가장 먼저 발걸음을 떼어 강의실을 나서니 그 뒤를 역시나 세실리가 졸졸 따르기 시작했고 강의 도중에 지적을 한 번 받았었던 리르가 잔뜩 겁을 먹은 표정으로 그 뒤를 이었다.


다른 생도들이 강의실을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나타샤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있었다.
아까 전 클라우스에게 들었던 부분을 한 번 확인해보기 위해서, 그리고 그로 인해 어느 정도 마력을 다룰 수 있게 된 자신의 실력을 가늠해보기 위해서 율리아에게 다시 한 번 대련을 해보자고 청할 생각이었다.




턱-.


하지만 나타샤는 그 뜻을 행할 수가 없었다.
생도들 전원이 거의 다 강의실을 나서자 그때까지도 말없이 뒤에 서있던 카엘라가 슬그머니 다가와서는 그녀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쥔 것이었다.

어찌나 강한 악력으로 어깨를 잡고 있는지 나타샤는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거의 적의를 드러내는 수준의 힘이라 나타샤는 인상을 일그러트리고는 입을 열었다.


“이봐요. 뭐하는 거죠?”
“나가주었으면 하는데.”
“네?”
“할 이야기가 있고, 너는 들을 필요가 없어.”
“지금 협박하는 건가요? 아니면 부탁하는 건가요.”
“….”
“뭐가 되었든 나는 이곳 아카데미의 생도에요. 반대로 당신은 외부인이고. 손님 수준도  되는 자라고요. 협박을 할 생각이라면 집어치우고 부탁을 할 거면 곱게 하세요. 당신 같은 자가 클라우스 교수님의 부관이었다는 사실로  분의 명성에 먹칠하지 말고요.”
“사령관님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하는 건가? 당신은 요정인데.”
“당연한 거 아닌가요? 마족들도 교수님을 높게 평가하는데 서부 연합의 일원인 요정들이 왜 교수님을 함부로 보겠어요. 아무튼 적당히….”

카엘라는 나타샤의 어깨를 틀어쥐고 있던 제 손에서 힘을 뺐다.
그리고 정자세로 서더니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입을 열었다.



“허면 정중히 청하겠습니다. 저기 있는 마족 여자와 잠시 나눌 이야기가 있으니 자리를 비켜주시기 바랍니다.”



갑자기 무척이나 정중한 어조로 그리 말하는 카엘라였다.


클라우스에 대해서 아주 좋게 평하는 모습을 보니 당연히 기분이 좋아진 호랑이가 그런 모습을 보이자 나타샤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눌 건지 모르지만 빨리 끝내주세요. 나도 율리아 생도랑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요.”
“유념하겠습니다.”

 이상한 여자네, 라고 중얼거리면서 나타샤까지 강의실을 나섰다.
이제  안에 남은 건 율리아와 카엘라, 이 둘 뿐이었다.




뚜벅뚜벅-.



“….”




율리아는 점점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발소리를 묵묵히 들으면서 필기도구들과 책들을 치웠다.

강의 내내 그리도 싸늘하도록 날카로운 눈길을 보내던 여자가 이런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는 진작부터 예상하고 있는 중이었다.

클라우스의 부관이었던 여자다, 아까 보아하니 그와 사이가 뒤틀린 것처럼 보이긴 했으나 마족에 대한 그 강렬한 적의만큼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장 아까 전 만났을 때도 조롱하는 기색이 가득한 어조로서 마왕 전하라고 비웃듯이 말하지 않았던가.

‘설마 싸우려는 건가? 아카데미에서?’



당연한 말이지만 대륙 아카데미에서는 교육 목적이 아닌 이상 전투는 절대 불허한다.
대륙의 평화를 이유로 만들어진 곳에서 서로의 우월함을 뽐내며 다투기 시작한다면  불길은 삽시간에 사방으로 번져서 결국에는 간신히 일어나던 모든 것을 태워버릴 것이 확실하니까.
생도들이야 대련이라는 이유를 핑계 삼아 싸울 수도 있지만 지금은 상황이 아예 다르다.


아카데미의 정식 생도인 자신과는 달리 카엘라라는  수인은 아무 것도 아니다.
외부인, 인간 측의 인물, 아카데미와는 관련이 단 하나도 없는 완벽한 타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 여인이 만약 자신을 공격한다? 그리 하면 이건 바로 전쟁 직전으로 치달을 수도 있는 문제였다.

‘제발 그러지 마. 그러면  돼. 당신도 알잖아! 여기서 당신이 그런 짓을 벌인다면 아카데미도 아카데미이지만 당신의 상관이었던 클라우스 교수님이 난처해져!’


초조한 기색으로 입술을 깨물면서도 율리아는 겉으로는 애써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어찌 되었든 자신은 동부 마족의 수장인 마왕이니 고작 수인 앞에서 긴장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어찌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아까 전 상황을 되돌려보니 카엘라라는 저 여인, 자신의 부관이었다는 클라우스의 설명과는 달리 정작 그 클라우스에게 반갑다는 기색을 전혀 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적을 보는 것과 같은 모습에 혹 큰 사건을 일으켜서  클라우스의 명성을 깎아 먹으려는 그런 짓을 하려는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율리아 아그네사 마왕.”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율리아는 언제든지 마력을 끌어올릴 준비를 하면서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안광을 번뜩이면서 당장이라도 손톱을 휘두르고 송곳니를 보일  으스스한 모습을 하고 있는 호랑이 수인, 카엘라 티거가 서있었다.



“….”
“….”

숨 막히는 침묵이 계속되었다.
승패가 문제가 아니라 싸운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 상황이다.
부디 제 예측이 틀리기를 바라나 저 눈빛을 보아하니 헛된 희망인 듯 하다.

자신을 계속 노려보는 카엘라를 바라보며 율리아는, 이제 내가 이 여자를 죽이지 않고 제압할 수 있을까  부분에 대해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방은 그 클라우스의, 마족들에게 ‘남부의 악마’ 라고 불리던 남자의 부관이다.
그 클라우스가 설마 자격 미달의 인물을 제 옆에 두었을 리도 없고 분명 뭔가가 있을 것이다.

거기에 카엘라는 수인들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는 호랑이 수인이다.
방금 전에도 그 나타샤가 어깨를 한 번 붙잡히니 자존심이고 뭐고 아파서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쏘아붙이지 않았던가!




‘이길 수 있을까? 이긴다고 해도 소란이 나지 않게 제압할  있을까?’




카엘라는 대륙 전쟁의 수많은 싸움으로 단련된, 그 치열했던 남부 전선 출신 역전의 용사다.
자신이 약하다고는 절대 생각지 않으나 실전 경험은 결코 무시할  없는 것이다.
그런 부분을 잘 알기에 율리아는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해서 전투 준비를 마쳤다.

만에 하나 카엘라가 달려든다면 바로 마법을 전개하여 일단 거리를 벌린 후에….

“아까  무례는 사과드리겠습니다.”
“…?”

순간 자신이 뭘 잘못 들었나 싶었다.

자존심 강한 것으로는 요정들 뺨친다는 종족이 바로 수인이다.
거기에 자신은  수인들과 혈투를 벌이던 마족들의 군주인 마왕이다.
그녀의 상관이었던 클라우스도 마족들과 전투를 치르느라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해서 자신에게 보이던 적의를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고 지금도 상대가 달려든다면 어떻게든 흘려내는 방식으로 시간을 끌면서 진정이라도 시키려고 할 생각이었다.

“이야기는 전부 들었습니다. 사령관님께서 마왕 전하의 손을 잡으셨다고요.”
“어, 네…. 교수님께 들으셨다니 다행… 에? 아니, 그 이야기를 클라우스 교수님이 하셨다고요? 당신에게?”



자신과 손을 잡았다는 건 다른 이들에게는 비밀로 하기로 하지 않았나?


아까 전만 해도 클라우스를 상대로 적대감을 폴폴 풍기던 여자가 그 이야기는 어찌 알고 있는 것이고 클라우스는 왜 자신을 배신한 것처럼 보이는 부관에게 어찌하여….



‘아.’




율리아는 눈치를 채고서는 탄식을 흘렸다.

설마 그 클라우스가 말실수를 했을 리는 없고, 믿어야 할 이와 믿지 말아야 할 이를 구분치 못 할 리도 없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단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클라우스 교수님께서 미리 언질을 주신 모양이군요.”



그 말에 카엘라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클라우스가 자신의 고양이, 아니 호랑이에게 새로운 서열을 알려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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