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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화 〉4장 - 옛 인연들 (46/341)



〈 46화 〉4장 - 옛 인연들

수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일단 머리 위에 솟은 귀, 그리고 엉덩이에 붙은 꼬리다.
이 세상을 만든 작가는 다른 므흣한 소설들의 영향을 받았기에 당연히 수인을 넣었고, 그 두 곳이 침대 위에서 명확한 약점이 되는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상기할 만한 부분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충성심.
아무한테나 충성하는 건 아니고 자신을 이끄는 리더에게, 무리를 총괄하는 대장에게 바치는 충성심이 아주 어마어마하다고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클라우스는 왠지 모르게 장난이 치고 싶어졌다.



“아이고, 갑자기  그러십니까. 카엘라 티거님.  무릎을 꿇고 그러세요. 어서 일어나시죠.”
“….”
“조금 전만 해도 제 목에 당장이라도 송곳니를 박으실 것처럼 윽박지르지 않으셨습니까? 아니면 손톱을 휘둘러서 절 죽이려고 했다던가….”



클라우스의 입에서 ‘나를 죽이려고 하는 줄 알았다.’ 라는 느낌의 말이 나오는 순간.
그의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최대한 납작 엎드려있던 카엘라의 몸이 움찔 떨렸다.

제 입술을 살짝 깨문 그녀는 한쪽 손에서 갑작스레 손톱을 빼들었다.
그리고는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칼날 같은 무기를 휘둘렀다.



타악!-

미소 따위는 진작 지워버린 얼굴로 클라우스는 카엘라의 손을 막아냈다.
조금만 늦었다면 그녀의 손톱이 카엘라 본인의 목을 그대로 그어버렸을 것이었다.

“뭐하냐.”
“아시지 않습니까.”
“모르니까 묻고 있는 거야.”
“당신에게 의심을 받았습니다. 나의 사령관, 나의 대장, 나의 리더. 그 목숨을 빼앗으려 했냐는 게 아니냐는. 배신하여 등을 노리려는  아니냐는 그런 의심 말입니다.”
“….”
“죽어서 증명하겠습니다. 제 충성심을.”



그렇게 말하면서 정말 카엘라가 제 목을 긋겠다는  손에 힘을 준다.
호랑이답게 팔의 힘이 정말 무지막지하게 강하다.

아무리 클라우스라고 해도 순수한 힘 싸움에서는 카엘라를 압도할 수 없다.
마법을 쓰지 않는 이상 싸움으로서 그녀를 말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만해라, 카엘라 티거.”
“….”

하지만 그런  따위는 필요 없이 바로 그녀를 제압할  있는 방법이 있었다.

“명령이다.”


클라우스의 입에서 명령, 이라는 말이 나오니 카엘라는 바로 손에서 힘을 풀었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는 절대적인 복종을 내보였다.
한 번 인정한 자신의 사령관에게, 대장에게, 자신이라는 무리를 이끄는 남자에게 말이다.




“고개 들어. 그리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네.”



절도 있게 자신의 앞에 서는 카엘라를 바라보며 클라우스는 한숨을 내뱉었다.
율리아도, 나타샤도, 세실리도, 하다못해 리르에게도 장난 정도는 치는 게 가능했는데.
이 여자는 그 차이를 전혀 분간하지 못 했다.


아니, 정정하겠다. 그냥 분간할 생각 자체를  하고 살았다.
무조건 명령이니 따라야 하는구나,  남자가 이렇게 생각하니 내가 그렇게 행동해야겠구나,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던 충실한 부관이었던 것이다.



“너 진짜 죽으려고 했지.”
“네.”
“내 손에 죽고 싶어? 내가 설마 너를 의심할까? 장난이라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 했어?”
“제게는 그저 당신께 의심을 받았다는 사실만이 중요했습니다.  충성심을 믿으실 수 없다면 세상 누구라도 단 하나만 가지는 목숨이란 가치를 내놓고 결백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아서라, 그런 증명. 아니면 나 죽는 꼴 보고 싶으면 그렇게 하던가.”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카엘라 티거, 부관으로서는 정말 100점 만점이라고 할 수 있는 전사다.
전투면 전투, 보좌면 보좌, 호위면 호위,  하나 부족한 부분이 없었다.

다만 문제점을 꼽자면  장점들이 때때로 너무 과도해져서 탈이라는 것.
조금 전에도 율리아에게 대놓고 살의를 보내지 않았던가.

‘너무 과할 정도로 충성심이 강한 여자라서 처음에는 안는 것도 꺼렸지.’



침대에서조차 ‘명령을 내려주시길.’ 따위의 말을 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런 딱딱한 여자 안는 것만큼 재미없고 답답한 일도 없으니까.




물론 그 걱정은 단순한 기우임이  밝혀졌다.


평소에는 그리도 충실하고 냉철한 부관이 전쟁 이후 클라우스가 군에서 이탈하고 평범한 신분으로 돌아간 후 처음으로 안아주니 완전히 발정 난 고양이가 되어서는 달라붙은 것이었다.


특히 수인이어서 그런지 다음 세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즉 새끼를 배어야 한다는 본능이 엄청나게 강했는데 그야말로 정액 한 방울까지 아주 쪽쪽 빨아대던 카엘라였었다.

밤만 되면 발정해서는 달려드는 고양이, 아니 호랑이를  적이 있는가?
아무리 그 호랑이 수인이 미녀라고는 해도 오싹한 건 오싹한 거였다.
차라리 상대가 내 목숨을 노리고 있다면 맞서 싸우면 되는데, 이 호랑이가 노리는 건 오직 자신의 몸 안에 뿌려질 남자의 씨였다.


그 후로도 정말 줄기차게 관계를 요구하던 터라 그 집착욕 강하던 마왕 율리아조차 ‘와, 쟤는  아닌 것 같은데.’ 라고 스스로 물러설 정도였다.

그런 이유로 현재는 카엘라를 처녀 상태로 두고 있는 클라우스였다.
어차피 나중에 대충 자리가 마련되면 불러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
자신이 어디에 있든 명령 한 번만 내리면 만사 다 내팽겨 치고 달려올 수인이니까 말이다.



‘아무튼, 카엘라 티거에 대해서 정리하자면.’



발정기만 아니면 항상 냉철하고 어떤 일을 있어도 믿고 맡길 수 있는 부관.
그렇게 정의할 수 있었다.


“사령관님.”
“더는 사령관이 아니라고 아까부터 말했다.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거냐?”
“하지만 사령관님도 아시다시피 당신을 대체할 수 있는 이는 없습니다.”
“이미 대체되었다. 새로운 사령관이 자리에 앉았잖아. 그리고 너는 부관 자리에서 탈출해서 수인의 몸으로 군부의 고급 지휘관이 되었고 말이다.”
“그들이 제멋대로, 그 귀족이라는 작자들이 마음대로 던져준 것일 뿐입니다.  그게 마음에 걸리신다면 다 집어던지겠습니다. 옆에서 따르게라도 해주시길 간청 드립니다.”
“왜 자꾸 부관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건지 이유를 모르겠다. 무엇보다 몇 번을 말하는 거냐. 사령관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난  이상  상관이 아니란 말이다.”

클라우스의 단호한 어조에 카엘라가 입술을 깨문다.

그녀는 잠시 이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가 클라우스가 몸을 돌리면서 얼른 총장실로나 가자고 말을 하니 결국 저도 모르게 내뱉고 말았다.



“사령관님께서는 분하시지도, 억울하시지도 않으십니까? 그렇게 피땀 흘려서, 목숨 바쳐서 지켜낸 자들이 당신을 밀어내고 웬 이상한 자를 후임이라고 앉혔을 때. 정말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으신 거냔 말입니다!”
“카엘라.”
“어쩌면 사령관님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을 따르던 저는, 그리고  없이 많은 전우들은 다릅니다! 당신이 없는 저희는 어찌 하라고!”
“전쟁은 끝났다, 카엘라. 너희들 앞가림은 너희가 스스로 해야 해. 또한 이제 전쟁에서 활약했던 이들은 물러나고 새로운 이들이 그 자리를 차지할 때다. 세대교체는 당연한 거야.”



물론 클라우스 본인도 카엘라가  저리 화를 내는지 잘 알고 있다.
지금 자신이 붙이는 이유들도 따지고 보면 다 개소리에 불과할 뿐이다.


7년의 세월동안 남부군은 그 어떤 지원도 받지   채 그저 클라우스 밑에서 싸웠다.
다른 귀족 놈들이 지휘를 맡았던 군대는 여기저기서 마족들에게 사정없이 짓밟혔다.
하루가 멀다 하고 패퇴, 전멸 소식이 들려오던 상황에서 유일하게 승리를 거두던 곳이 바로 남부 전선, 그 중에서도 클라우스가 이끄는 군대였다.

때문에 그들은 그 어떤 대상보다도 클라우스라는 지휘관에 대한 신뢰가 높았다.
전쟁이 끝나도 군은 유지되어야 하기에 그들은 이왕 더 군에서 있어야 한다면 클라우스의 휘하에 남고 싶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니고 할 정도로 말이다.


헌데 자신들의 사령관이, 전쟁 영웅이라 불리던 이가 군부에서 밀려났을 때 그들이 가지는 당혹감, 그리고 귀족들에 대한 반발과 적개심은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세대교체 부분도 사실 귀족들의 헛소리에 불과하다.
클라우스가 내일모레 하는 늙은이도 아니고 아직 30대 초반에 머물고 있는데, 오히려 군의 핵심 인물이 되기에 충분한데 무슨 세대교체란 말인가!

몇 안 되는 극소수의 진짜 지휘관, 더해서 대규모 전투를 치러본 경험이 있는 이를 더 중요 요직에 앉히는 것도 아니고 아예 군부에서 내쫓아버리다니!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귀족 나부랭이들!’

자신이 인간 측으로 귀화한 수인이기에 그나마 참고 있는 카엘라였다.
괜한 말썽을 부리면 자신은 물론이고 전우들,  나아가 클라우스의 명성에 자칫 금이 갈 수도 있었다, 그런 이유로 카엘라가 분노를 곱씹으며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저는 이번만큼은 사령관님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인간 측을 전복시킬  있습니다. 현재 인간 쪽의 정규군중 최고의 실력과 실전 경험을 자랑하는 자들은 대부분이 사령관님 휘하에 있던 남부군 출신입니다. 귀족 나부랭이들이  베테랑들이 모이는 것을 막는다고 하여 전국에 흩뿌려두기는 했으나 오히려 그들의 영향력만 더 넓어지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셔서 귀족 회의 측의 결과에 따를  없다고 하신다면….”
“그러면 뭐. 사방에 퍼져 있는 내 휘하 놈들이 거기에 동조할 거다?”
“그렇습니다.”




참고로 진짜 저런 적도 있었다.

카엘라와 전쟁 이전에 더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면 이야기가 이상하게 전개된다.
귀족들이 자꾸만 클라우스를 견제하고 밀어내려하자 그에 분노한 카엘라가 대규모 쿠데타를 준비하자고 틈만 나면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의미 없다, 의미 없어.’

율리아를 미리 제거한다고 해도, 인간 귀족들 치워내고 권력을 잡는다고 해도, 결국 동부의 마족이 일어서고 서부 연합이 가라앉는  막을 수 없다.
그게 자신이라는 이 세상의 창조주가 내려놓은 결론이다, 거기에서 아무도 피할 수 없다.

전쟁은 어떤 방식으로든 일어날 것이고 어떤 저항을 해도 결국 마족이 승리할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이 없다는 걸 클라우스는 20회차가 넘어서야 인정할 수 있었다.


그 후로 생각했다, 이런 방식이라면 차라리 마족 편에 서는 게 낫지 않겠나.
어차피 마족 편에   자신을 무조건 믿을 만한 절대자 옆에 있는 게 좋지 않겠나.
그 절대자가 세계관 최강자에 경국지색에 또 은근히 다루기 쉬운 여인이라면 금상첨화다.


그래서 클라우스는 율리아 곁에 서서 그 여자를 내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녀를 이용해서 인간의 몸임에도 마족 세상에서 떵떵거리며  먹고  산다, 로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인간 세상에서 권력을 쥐고 항복해도 의심만 받아. 율리아는 자신이 아무 것도 없던 때에 마찬가지로 아무 것도 없는 이와 함께 성장하면서 가지는 감정이 제일 중요하거든.’

 때는 전쟁 영웅이었으나 결국 초라하게 밀려난 남자.
마왕이나  숙부와  충성파에게 밀려 죽을 고비를 넘기는 자신.
율리아가 이후 클라우스에게 동질감 비슷한 것을 느끼면서 제 옆에 두려고 하는 것은 바로 그 부분을 노린 클라우스 때문이었다.


“카엘라 티거.”
“예, 사령관님.”

다만 이런 클라우스의 뜻을 전혀 모르는 카엘라는, 그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니 혹 그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아닐까 조금은 기대하는 눈치였다.

물론 다음 떨어진 말은 그녀의 기대를 산산조각 내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대가리 박아.”


척, 척!-

카엘라는 열중쉬어 자세로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에 머리를 박았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움직임.
단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그야말로 완벽한 자세.
이런 부분까지 완벽할 수가 있나, 정말이지 태생부터가 군인인 여자였다.



“기상.”



기합은 얼마 주지 않았다.
어차피 목적은 그녀를 괴롭히려는 게 아니라 헛소리 하지 말라, 라는 자신의 뜻을 분명히 보여주기 위함이었으니까.



“카엘라 티거.”
“네, 사령관님.”
“이리 와.”

클라우스의 명령에 카엘라는 조심스레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다가오니 남자는 쯧, 하고 혀를 차면서 그녀의 머리를 툭툭 털어주기 시작했다.

“다시는 그런 헛소리 하지 마라. 알겠나?”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카엘라의 대답에 클라우스는 한숨을 내뱉고는 잠시 더 그녀의 머리를 털어주었다.



그르릉, 그르르릉-.


그런 남자의 손길이 무척이나 좋다는 듯, 카엘라는 평소의 냉철한 모습은 다 어디가고 골골송을 노래하느라 아주 정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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