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4화 〉3장 - 슬기로운 아카데미 생활 (44/341)



〈 44화 〉3장 - 슬기로운 아카데미 생활

호로록- 홀짝-.

딱히 커피에 불호가 아닌 나타샤는 잔잔한 미소를 지은 채 꽤나 고상한 자세를 하고서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

확실히 요정이라는 종족이 아름답기는 하다, 그냥 앉아서 커피만 마시고 있는데도 그림 같네.

‘그에 비해서 우리의 마왕님은….’

잘만 마시는 나탸사와는 달리 율리아는 영 뚱한 표정을 짓고 있다.
도대체 이걸 무슨 맛으로 먹는 거냐고 묻듯이 클라우스와 나타샤를 흘끗거리는 건 덤.
몇  도전해보기는 했으나 조금 홀짝거리는 게 전부였다.


저번에 클라우스와 함께 커피를 마신 적도 있으나  때는 우유도 넣어주고 설탕도 아주 듬뿍 넣어서는 엄청나게 달도록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마신 일.



‘갑자기 친구놈 생각나게 하네.’

도대체 아메리카노 먹는 놈들은 이해를 할 수가 없다고 투덜대던 친구가 있었다.
클라우스 본인도 딱히 아메리카노를 엄청 좋아하는 건 아니었으나 커피라면 다 오케이였기에 딱히 거부 반응도 없었다.

“흐음? 율리아 생도. 많이 안 마시는 것 같네요? 혹시 마음에  드는 거라도 있어요? 혹시 요정이 탄 커피는 의심스러워서 마실  없다던가?”
“…설마요.”
“그러면 얼른 마셔요. 제가 정말 정. 성. 을 다해서 탔는데요.”

의도치 않게 나타샤에게 약점까지 들킨 율리아였다.

아니, 솔직히 약점이라고 말하기조차 모호할 지경의 그냥 취향이라고 할 수 있었으나 요정의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으니 율리아는 이게 약점이라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자,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겠고.”



계속 나타샤가 우세하면 모두에게 좋을 것이 없다.
그런 이유로 클라우스는 입을 열고서는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나한테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는데요. 둘 모두  때 있었던 대련에 관해서 말이죠.”
“…아, 그랬죠?”
“…네네! 그랬네요!”



전혀 그럴 생각도 없었다고 아주 티를 팍팍 낸다.

자신들이 상상했던 그림은 클라우스와  둘이 앉아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을 텐데 졸지에 매우 열심인 생도 둘이 되어버린 율리아와 나타샤였다.



‘내가 불쌍해서 이번에는 던져준다. 다음은 없어요, 이것들아.’

깔끔하게 다 마신 커피 잔을 내려놓고서 클라우스는 입술을 떼었다.




“아무래도 그 부분 때문에  생도 모두가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겠죠. 자신보다 한쪽 능력이 더 특출한 이와 싸울  어떤 부분을 공략해야 하는가. 그리고 나는 어느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가.”
“어… 그, 그렇죠? 그렇죠, 나타샤 생도?”
“네? 아, 그러네요. 그러네요! 율리아 생도!”



매우 인위적인 웃음을 지으면서 서로 고개를 끄덕이는 두 여인.
그 모습에 속으로 고개를 저은 클라우스가 말을 이어나간다.




“율리아 생도는 나타샤 생도에 비해서 확실하게 근접전 수행 능력이 떨어졌죠. 나타샤 생도는 그와 반대로 마법 부분에 있어서 율리아 생도와 비교하자면 절대적 열세. 원래라면 지극히 형식적인 답변으로서 율리아 생도에게는 검술 훈련을 더 하고 반대로 나타샤 생도에게는 마법을 다루는 실력을 키워야한다고 말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율리아와는 달리 나타샤는 마법 재능이 끝까지 보통에 머무른다.
그 보통도 클라우스가 특성 개발을 써주어서 그 정도까지 간신히 오른 것이다.

요정임에도 불구하고 마법이나 궁술보다는 창검을 휘두르는 것이 훨씬 뛰어났던 여인.
그래서 벨라루스 가문에서 항상 찬밥 신세를 당하던 이가 바로 나타샤였다.

“율리아 생도.”
“네, 교수님.”
“상대가 생각 이상으로 강하면 부딪쳐주는 것보다는 회피하는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근접전은 단순히 공방이 오고 가는 단순한 싸움이 아닙니다. 공격이 즉 방어이고, 방어가 즉 공격이죠. 마법을 준비하려는  한 순간에 당할 수도 있습니다.”

가끔 가다가 오해하는 자들이 있다.
공격할 때는 공격만 하고 방어할 때는 방어만 한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클라우스 역시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 그리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경험으로, 몸으로 아주 확실하게 알고 있다.


적의 공격이 날아오면 막는 게 아니라 같이 공격을 가한다.

아주 간단한 예로 적이 베기 공격을 해오면 그  동작을 이용해서 그대로 찌를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적의 자세가 무너지면 다른 공격도 가능하다.
아니면 단순히 막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검 손잡이 부분으로 안면을 가격할 수도 있다.

‘실전이 아니면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지.’

그래서 그 잘난 귀족 새끼들이 대륙 전쟁 때  많이도 뒈진 거다.

공격  때는 공격만 하면 되는 줄 알고 방어할 때는 막기만 하다가 다시 공세를 잡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멍청한 놈이 그걸 곧이곧대로 봐주겠는가.



“나타샤 생도는… 이런 말을 하기가 좀 미안하지만 마법 쪽으로 많이 부족하더군요.”
“으읏….”

율리아 앞에서 대놓고 부족한 부분을 지적당해서일까.
나타샤는 침음을 내뱉으면서 슬쩍 제 옆에 앉아있는 율리아를 살폈다.


다행히도 율리아는 그런 나타샤를 향해 쌤통이라는 듯 미소를 짓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서로 부족한 부분이 많은 상태이니 서로 함께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품을 뿐이었다.
덕분에 놀림을 당할까 긴장하고 있던 나타샤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요정들이 원래 마법에 뛰어나다는 건 뒤로 제쳐두고라도 어지간한 인간 생도보다도 못 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면 근접 전투 부분에서는 수인보다도 뛰어나다고 할 수 있으니 하루 빨리 마력 제어부터 원활히 하는 게 관건일 겁니다.”
“네. 노력할게요. 클라우스 교수님.”



사실 나타샤의 마력 제어 부분은 상당히 많이 좋아졌다.
클라우스의 스킬, 특성 개발 덕분에 원래는  년이 걸러야 하는 부분이 단번에 상승한 것.


물론 이 이상은 올라가지도 않고 이렇게 해줘도 나타샤의 마력 운용은 여전히 꽝이라 이 이상 크게 성장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었다.



‘어쩔  없지. 나타샤는 어차피 나중에 가서도 마법으로 조지는 스타일이 아니라 순수하게 무력으로 찍어 누르는 스타일이니까.’



아마 율리아만 아니었다면 그녀도 대륙 역사에  이름 당당히 날리는 강자가 되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얼른 소설 끝내고 싶었던 누구 덕분에 ‘사실은 마왕 율리아 아그네사가 너무 강력했다! 죽어! 하고 내지르니 전부 죽었다!’ 따위의 설명을 넣어서 문제였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말입니다.”
“…?”
“네?”
“전투 마법 강의에서 가장 눈여겨보고 있는 생도들입니다. 지금  옆에 앉아있는 율리아 생도, 나타샤 생도, 그리고 이 자리에는 없는 세실리 생도까지.  셋말이죠.”



어디에서 이런 소리했다가는 성추행 아니냐며 끌려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은 말로만 평등 외치는 세상이 아니다.
자신의 실력과 능력, 그리고 해낼 수 있는 수준으로서 평가 받는 세상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당당함으로 인해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두지 말자는 개소리도 없고.


“세실리 생도야 마법 활용 능력이 뛰어나니 그렇다고 쳐도 왜 둘에게 기대를 거느냐? 전투 마법이라는 부분에 가장 근접한 이들이어서 그렇습니다.”
“가장 근접했다고요?”
“이건 학문이 아닙니다. 전투를 위한 것, 막말로 싸움법이죠. 거기에서 순둥이 눈을 하고 있는 자, 흐리멍텅한 눈빛을 한 자, 힘도 없이 평화만 지껄이는 멍청한 것들은 설 자리가 없어요. 솔직히 말해서 내 강의를 듣는 생도 중 반은 내치고 싶을 정도랍니다.”




특히  인간 귀족 생도 새끼들은 꼭 그러고 싶다.
다만 쳐내면 말도 많고 무엇보다 앞으로 한동안은 여기서 나오는 급여로 먹고 살아야 하는데 강의 인원이 적으면 절대 안 되었다.

조금만 참자, 한 몇 달만 이렇게 지내다보면 돈이야 알아서 들어온다.
어차피 대륙 전쟁 당시 그 힘겨웠던 남부 전선을 맡느라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지 않았나.



‘…남부 전선, 남부 전선. 그래. 그러고 보니….’

사박사박-.

딱 이 때쯤에, 그 남부 전선의 부하 녀석을 만나게 되었지.
그리 중얼거리며 클라우스는 내용물들 다 마셔 비어있는 커피 잔을 잡아들었다.



“클라우스 교수님?”

그리고는, 망설이는 기색 하나 없이 바로 몸을 돌려서는 뒤로 힘껏 집어던졌다.

“교수님?!”

율리아, 그리고 나타샤가 당황해서 소리치든 말든 그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한편, 클라우스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화들짝 놀란 두 여인은 혹 날아간 커피 잔에 누가 맞아서 크게 다치지는 않았을까 살피려는데, 뭔가 이상했다.
누군가의 비명소리는 고사하고 잔이 깨지는 소리조차 나지 않은 것이었다.


사박사박-.

곧 두 여인은 누군가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구인지 모르겠다, 다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아카데미의 생도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서부 연합에 소속되어 있는 군부 측의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달칵-.

테이블 위에 클라우스가 던졌던 커피 잔이 멀쩡한 상태로 올라왔다.




“여전하시군요.”
“뭐가 여전하다는 건지 모르겠는데.”
“머리 끝까지 화가 나시면 항상  하나씩 깨부수던 거요. 대륙 전쟁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때 아무 곳이나 휙휙 던지시는 통에 제가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모르실 거예요.”
“왜. 네가 맞아서 다치면 어쩌나 싶어서?”
“아뇨.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이 사령관님을 폭력적이고 제 화 못 참는 이라고 오해할까 봐요. 실상은 곯고 곯아 터지기 직전의 상처를 그렇게라도 표출하고 있는 것뿐인데 말이죠.”



그 말에 클라우스는 비로소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클라우스의 시야가 닿는 곳에는 서부 연합 측 군복을 입은  여인이 서있었다.

몸에서부터 풍겨져 나오는 정갈한 기운은, 그녀가 보통 인물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한쪽 눈을 잃은 것인지 왼쪽 눈에는 검은 안대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더욱 더 가라앉은 군인의 느낌이 진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누구지, 이 여자?’


율리아는 아무리 봐도 서부 연합의 군복으로 보이는 옷을 입고 있는 여인을 노려보았다.
대륙 아카데미에는 그 어떠한 경우에도 외부 압력이 들어오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왜 군복을 입은 낯선 이가 갑작스레 들이닥친 것이란 말인가.

‘인간? 아니, 아니야.’

인간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귀가 제 위치에 보이지 않았다.
대신 머리 위에 솟아오른 한 쌍의 동물귀가 연신 쫑긋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더해서 볼에 자리 잡고 있는 줄무늬는 마치 동물의 위장과도 같은 모양새를 띠고 있었다.


“설마 했는데 정말 왕국으로 귀화한 거냐? 수인들이 엄청 싫어할 텐데.”
“친척은 물론이고 부모님마저 저와 연을 끊으셨습니다.”
“왜 그런 미련한 짓을 했어. 수인이면 그냥 수인 땅에서 살면 되는데 말이다.”
“당신은 인간의 땅에서 살고 있었으니까요. 클라우스 사령관님.”
“이제 사령관 아니다. 거기에서 나온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사령관 소리냐.”
“그런가요? 그렇군요. 허면 이제 제게 하대하는 것도 그만두시죠. 당신이 더는 나의 지휘관이 아니라면, 나 역시 당신의 부관이 아닙니다. 클라우스.”

율리아와 나타샤는 이 수인 여인이 갑자기 클라우스의 이름을 막 부르는 것에서   놀랐고 그 다음 부관이라는 말에 다시  번 놀라고 말았다.

수인이 부관이었다고? 요정과 거의 비슷하게 도도하고 자존심  수인이 인간의 밑에서 스스로를 낮추면서 지냈다고??


“옆의 생도 분들이 놀란 모양이네요.”
“그렇겠지. 네 존재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니까. 지원군 형태로 남부로 내려왔다가 복귀를 거부하고 내 밑에서 종군했지. 수인 측에서 그렇게 돌아오라고 했음에도 네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남부 전선에. 내 밑에 남겠다고 했었나?”
“그랬죠. 그래서 당신이 저를 직접 부관으로 임명했고요. 그런데  자꾸 하대죠? 사령관이 아니라고 말할 거면 나도 더는 부관이 아니니 예의를 지키라고 말했을 텐데요?”
“아아. 미안하게 되었군. 아닌가? 이거 정말 죄송합니다, 카엘라 티거. 이 미천한 평민이 뭣도 모르고 현재 왕국의 군부에서도 실세 중의 실세라는 분에게 결례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



클라우스가 정말 진지하게 대답을 해주니 오히려 이 호랑이 수인, 카엘라 티거의 표정이 더더욱 일그러졌다.
마치 강한 불만을 애써 숨기고 있다는 그런 표정일까.

“그보다 카엘라님께서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군부의 일이 바쁘실 텐데요.”
“…부탁을 받고 조사차 아카데미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카데미 총장이 허락한 정식 조사입니다.”
“정식 조사?”
“네. 무슨 조사인지 혹 궁금하십니까?”


아니, 딱히. 이미 다 알고 있는 건데.
호랑이 여인 카엘라를 바라보면서 클라우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만 그걸 전혀 모를 카엘라는 상당히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얼마 전 있었던 인간 귀족 생도들에 대한 공격, 에 대한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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