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3장 - 슬기로운 아카데미 생활
“상대방의 마법을 파훼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마력을 가속시킬 시간을 주지 않으면 된다는 겁니다. 원거리에서 견제를 한다거나 아니면 근접전으로 이끌어가도 좋겠죠. 허나 그렇게 했음에도 마력 가속을 막지 못 한다면 결국 전투 마법을 상대해야 하는 겁니다. 어떤 식으로든 결국 그리 격전이 벌어진다면 승패는 결국 마력의 제어 능력과 그동안의 경험, 그리고….”
막 시계를 확인한 클라우스는 딱 적당하다는 듯 책을 덮었다.
“강의 시간이 다 되었네요. 다음 설명은 이후 강의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정해진 강의 시간 외에 뭐 더 한다고 돈이 더 나오는 것도 아니다.
열정 페이라는 게 존재하지도 않는 세상에서 괜히 1분 1초 더 써주는 건 아까운 일.
클라우스는 그런 이유로 항상 제시간에 딱 맞춰서 강의를 끝내주었다.
그 부분이 서부 연합의 생도들에게는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다.
반대로 동부의 마족들은 한창 열심히 나가던 강의가 탁! 하고 끊어지니 몇 번이나 맥이 풀린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었다.
“클라우스 교수님!”
결국 참다 못 한 마족 생도 중 하나가 손을 들고서 입을 연다.
막 강의가 끝나려던 찰나에 저런 행동을 하니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다른 생도돌은 잠시 엉거주춤 서 있다가 괜히 나가는 게 자존심이 상해서 도로 앉고 말았다.
“강의가 너무 중요한 곳에서 끊어진 것 같습니다. 다음 강의 때까지 기억을 못 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 차라리 조금만 더 강의를 길게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마족 생도의 말에 몇몇 이들이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마족 측의 생도들이었다.
그 사이로 수인들이나 요정도 몇 보였는데, 인간 생도들 중 귀족 생도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 형국이었다.
‘인간 다 망해라.’
말만 귀족이지 하는 짓들이 죄다 한량, 양아치, 인간쓰레기, 그 외에도 자질구레한 말들로도 충분히 표현이 가능할 정도로 답이 없는 놈들이었다.
저들이 자신의 강의에 들어온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기 위해서.
그래서 그 잘난 전쟁 영웅에게 무안을 주었다는 자랑거리를 얻기 위해서일 뿐이었다.
“나도 강의가 한창 중요한 곳에서 끊어진 것은 참으로 아쉽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강의 시간은 끝이 났고 이 이상 내가 생도들의 시간을 뺏을 권리는 없습니다. 당장 이중에서 한 명의 생도라도 남은 강의를 듣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래서 나가겠다고 한다면 강의를 진행할 수 없습니다. 혹여 나중에 있을 시험에서 불이익을 당했다고 할 수도 있으니까요.”
이건 마족 생도들의 건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서 인간 귀족 생도 몇이 불만을 토로하며 나갔던 때에서 겪게 된 일이었다.
이후 그들은 자신들이 강의에서 조금만 뒤처지는 것 같으면 그 때 마다 그 날 강의에서 나간 것으로 인해 손해를 본 것이라고 징징댔다.
그들이 제 발로 나가기는 했으나 엄연히 따지자면 그들은 원래 정해져 있던 강의는 전부 들었던 것이 된다.
클라우스 독단으로 강의 시간을 늘리고 거기에 반발하여 나갔더니 바로 그 때 중요한 부분을 설명함으로서 자신들을 물 먹이려 했다는 논리가 또 가능해지는 것이었다.
‘내가 다른 놈들이 태클 거는 건 한 번은 넘어가줘도 귀족 새끼들은 절대 못 참는다.’
처음에는 그렇게 저주스러웠던 마족들도 이제는 미운 정이 든 것인지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수인들이야 원래부터 활달하다 못 해 지랄 맞다는 거야 알고 있었고 요정들은 그 자존심만 좀 챙겨주면 그래도 알아서 거래라는 것 정도는 할 줄 아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인간, 특히 귀족들은 정말 답이 없는 놈들이었다.
잘해주면 그게 상대가 자신들을 위라고 인정해서 그러는 줄 아는 자들이다.
말 그대로 호의를 베풀면 그게 권리인줄 아는 놈들, 심지어 계속 호의를 베푸는 것도 아니고 한 번만 베풀어줘도 자만심에 취해서는 그리 거하게 지랄을 떠는 놈들이 바로 귀족이었다.
“하지만….”
마족 생도가 막 말을 하려는 찰나, 이미 귀족 생도들은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제 딴에는 무척이나 고귀하고 우아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그냥 지랄병이 도진 또라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수준이었다.
“그렇다는 군요. 허니 강의는 다음의 정식 강의 시간에 이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상당히 실망했는지 표정이 영 좋지 않으면서도 바로 알겠다고 따르는 마족 생도.
교수라고 해도 항상 동등한 위치에 서려고 하는 귀족들보다야 훨씬 나았다.
물론 우리의 귀족 생도들은 자신들이 단순히 마족 생도는 물론이고 그 대단하다는 전쟁 영웅조차 꺾었다고 생각하는지 으스대듯 미소를 짓고 있었고 말이다.
‘시발 놈들이, 어디서 쪼개고 앉아있어.’
이렇게 당해줄 생각은 역시나 추호도 없는 클라우스였다.
저들이 추가 강의를 거부한다면 다른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덤으로 그 다른 방식이 차후 자신들에게 불리한 점으로 적용되었다는 말도 막을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말이다.
“대신, 저번 대련을 보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 서로의 실력 편차가 천차만별이라 평균을 잡고서 가르치기가 조금 난해하다는 점이었습니다. 해서 자신이 생각하기에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되는 생도. 전투 마법 강의를 도저히 따라올 수 없다고 생각하는 생도에 한해서 보충 강의를 조금 할까 합니다만.”
그 말에 처음 의견을 냈던 마족 생도, 그리고 그 의견에 동조했던 이들이 반색한다.
지금 클라우스는 강의를 연장하거나 추가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부족한 이들에게 평균으로 걸칠 수 있도록 보충 학습을 해주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는 말.
자존심을 굽히고 평균 이하의 실력을 가졌다고 스스로를 인정해야 하겠지만 그만큼 배움에 목이 마른 자들은 망설이지 않고 그리 할 것이다.
“아니, 그게 무슨….”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어디까지나 ‘보충’ 입니다. 부족하고 못난 생도가 다른 생도들의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해서 제 도움을 받는 겁니다. 뭔가를 더 심도 있게 배운다거나 미리 뭔가를 알려주는 일은 전혀 없다고 보면 됩니다.”
인간 귀족 생도들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일 것이다.
기껏 클라우스와 다른 생도들 기 좀 죽여 놓았다고 생각했더니 뜬금없이 클라우스가 보충을 운운하면서 결국에는 마족 생도의 뜻을 받아주고 말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또 반발하자니 뭔가 그림이 묘하다.
추가로 강의를 하는 게 아니라 정말 ‘못나고 부족한’ 이들에게 특별히 베풀어주는 것이란다.
그런 클라우스의 의견에 또 반발한다면 잘난 귀족 주제에 그리도 마음씨가 글러먹었느냐는 소리부터 시작해서 온갖 견제를 다 들어먹을 수도 있음이었다.
‘더해서 태클도 걸지 못 할 테고. 어디까지나 보충인데 그것으로 인해 자신들이 손해를 봤다고 하면 그 못나고 부족한 생도보다도 더 못나고 부족한 자신들이라는 걸 인정하는 꼴이 되니까. 하여튼 꼬투리 잡기 좋아하는 놈들은 다 꼬리뼈를 뽑아 죽여야 하는데.’
이 정도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냐고 클라우스가 입을 열었다.
그에 마족 생도들은 물론이고 여태껏 잠잠하던 다른 생도들, 수인들과 요정들도 인간 측 귀족 생도들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클라우스의 말대로라면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는데 딱히 안 된다고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느냐, 뭐 이런 눈빛을 띤 채로 말이다.
“…알겠습니다, 클라우스 교수님.”
“그 보충인지 뭔지, 부족한 이들을 잘 부탁합니다.”
죽어도 그 부족하고 못난 이는 되고 싶지 않은 모양.
그래서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보충 강의를 듣겠다고 하는 이들은 없었다.
다른 생도들도 자존심 문제 때문인지 많이 남지는 않았다.
꽉 차있던 강의실이 점점 비워지고 이내 자리에 남은 이는 스무 명도 채 되지 않았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건 역시나 마족.
당장 의견부터 낸 쪽이 그들이었으니 다른 종족보다 적게 남는다면 그것대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 외에 수인들 몇에 요정 몇, 그리고 의외로 인간 생도도 둘이 있었다.
‘평민이군.’
그 같잖은 자존심인지 뭔지 때문에 귀족들은 죽어도 이 자리에 남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칭한다면 그것으로 인헤 권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머저리들이다.
진정 권위 있는 자는 스스로를 굽혀도 모두가 그를 따라서 같이 몸을 굽혀 결국에는 그가 가장 올곧게 서있도록 해주건만, 이 세상의 인간 귀족들은 그런 놈이 거의 없다 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역시나 다 있네.’
마족 생도들 앞에는 율리아가 앉아있었다.
율리아의 뒤에는 세실리, 그리고 그 줄로 맨 뒤에 남성 생도로 위장한 리르.
마지막으로 요정 쪽에 껴있는 나타샤까지.
둘은 자존심보다는 배움에 대한 갈망이 컸고 다른 하나는 클라우스가 완전히 짓뭉개두었으니 혹 다른 짓 하고 있다고 의심을 받고 싶지 않아서 남은 것이었으며, 마지막으로 나타샤는 율리아를 경계하기 위해 남은 것이라고 보면 되었다.
“나갈 생도는 다 나간 겁니까?”
“….”
“다 나간 모양이군요. 그렇다면 길게는 하지 않을 짧은 보충 강의. 그걸 듣겠다고 하신 우리 ‘못나고 부족한’ 생도 여러분, 다시 한 번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남은 생도들을 자극한다거나 비웃으려고 한 말이 아니다.
지금이 자리에 일종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지.
스스로를 부족한 이라고 하면서 보충 강의를 청했고 그걸 교수가 받아들였다.
거기에서 다른 이들이 뭐라고 더 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 부분이 타당하지 않거나 불공평하다고 누가 주장할 수 있겠는가?
“생도 여러분들을 위해서 다시 한 번 천천히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전투 마법이라 하는 것은 각종 전투에서 마법이 그를 보조하여 사각을 메우는 것으로….”
처음에는 정말 지극히 기초부터 다시 가르치는 듯한 내용이 흘러나왔다.
생도들은 혹시 정말 그런 부분만 가르치는 것일까 하고 걱정하는 눈치이긴 했다.
하지만 곧 머리가 좋은 이들답게 클라우스가 의도적으로 원래는 상당히 난해한 부분들을 마치 기초를 가르치듯 아주 세세하게 풀어내서 가르치고 있음을 알아낼 수 있었다.
‘이 안에 스파이가 있으면 어쩌냐고? 내가 그것도 모른 채로 이런 짓을 벌일까.’
이미 몇 번이나 반복했던 일이다.
얼굴조차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 엑스트라들은 몰라도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던 자들, 반대로 자신에게 해를 끼쳤던 년놈들의 얼굴 하나는 확실하게 기억하는 클라우스였다.
스킬 덕택도 있지만, 은혜고 원수고 반드시 갚아준다는 철칙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그렇게 약 30분에서 40분 간 보충 강의라는 명목 하에 명백한 우군이 될 수 있는 생도들에게 강의를 끝낸 클라우스는 혹 또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보충 강의를 요청해도 좋다는 말을 끝으로 끝을 고했다.
“고생하셨습니다, 교수님.”
클라우스에게 가장 먼저 의견을 내밀었던 마족 생도를 시작으로 대부분의 생도들이 강의실을 나섰고, 안에 남은 건 율리아와 나타샤, 세실리, 그리고 리르였다.
그 중 리르는 클라우스가 고갯짓을 해보이니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먼저 발을 떼었다.
직후 세실 리가 ‘오늘 오후! 대련 또 어떠신가요!’ 라고 또 대련 타령을 하다가 꿀밤을 한 대 더 맞고 우씽! 하고 툴툴거리면서 퇴장했다.
“….”
“….”
이제 강의실에 남은 건 율리아와 나타샤, 이 둘뿐이다.
사실 이 둘이 라이벌 구도를 가지는 건 아카데미 안이 끝이다.
당장 이곳을 벗어나면 서로가 가는 길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무엇보다 이후 율리아는 나타샤는 물론이고 클라우스조차 넘을 수 없는 괴물이 된다.
이 또한 안타깝게도 멍청하기 짝이 없는 창조주가 부른 결과물이었다.
“클라우스 교수님.”
역시나 먼저 입을 여는 쪽은 율리아였다.
그녀는 자신을 계속해서 흘긋거리는 나타샤에게는 관심을 끈 채로 오직 클라우스만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점심 이후 잠시 시간이 되신다면 커피나 한 잔 하시면서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은데요.”
“…?!”
율리아는 아직 모르겠지만, 나타샤 입장에서는 대놓고 자신을 도발하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다른 종족도 아니고 마족이, 클라우스에게 그렇게나 시달리던 마족이 개인적인 만남을 청하고 있다?
심지어 다른 이도 아니고 마족들의 군주인 마왕이?
“이유를 묻고 싶은데요, 율리아 생도.”
“어제 있었던 대련과 관련해서 교수님께 개인적으로 질문을 하고 조언을 얻고 싶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에 클라우스가 막 그러자고 답을 하려는 찰나.
율리아의 옆에서 나타샤가 다급히 손을 들고서는 외친다.
“저, 저도요!!”
“나타샤 생도?”
“저도 어제 있었던 대련에 관해서 의견을 여쭙고 싶은 게 있어요!”
“…나타샤 생도. 미안하지만 내가 먼저 교수님께 청한 거예요. 당신은….”
“서로가 서로의 상대였잖아요? 그러니까 공평하게 같이 묻고 같이 듣자고요. 어때요?”
“난 싫은데요.”
벌써부터 신경전이라니.
아, 역시 싸움 구경이 세상에서 너무나도 재미있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