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2장 - 가지고 싶다면 싸워라
이튿날, 아카데미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인간 귀족 생도 넷이 한 방에서 발견되었는데 모두가 차마 입에 담기 무안한 부위가 잘린 채, 그리고 그 부위를 저마다 제 입에 문 채였던 것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람? 갑자기 뭔 일이냐고!”
“듣자하니 그 네 놈 모두가 남색가였다는데. 처음 발견한 인간이 말하는 걸 얼핏 들었는데 막 저들끼리 물고 빨다가 확 물어뜯은 것 같다고 말이야.”
“미친놈들인가? 아니, 왜 그런 짓을 한 거지?”
“방에서 정신을 혼미하게 해주는 것들이 발견되었다더군. 아무튼 인간 놈들은 이해를 할래야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어.”
인간을 제외한 요정, 수인, 마족들은 저마다 모여서 수군거리기 바빴다.
평화 협정을 맺고 아카데미에 들어올 때 서로를 적대시 여길 만한 그 어떤 언행도 자제해야 한다는 약속까지 했으나 서로에 대한 앙금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런 와중에 딱 물어뜯기 좋은 일이 발생했으니 아주 물고 뜯고 씹고 난리도 아니었다.
아카데미 측은 당장 조사에 착수했으나 그 어떤 다른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완전히 성 기능이 망가진 네 명의 생도가 말하는 증언만이 유일한 증거라고 할 수 있는 상황.
그 와중에 다른 인간 귀족 생도들은 얼른 이번 일이 끝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네 명의 귀족 생도가 엄청나게 대단한 가문의 자제들도 아니고 그저 그런 놈들이다.
그런 자들 때문에 인간 귀족들이 싸잡아서 비웃음을 당하고 있으니 얼른 저놈들이 하자가 있는 것이지 귀족이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한동안 아카데미의 분위기가 무척 좋지 않을 겁니다. 교수님들은 혹 생도들이 동요하거나 서로가 서로에게 날을 세우지 않도록 더 큰 주의를 바라겠습니다.”
루스칼 총장은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듯 이마를 부여잡은 채로 말했다.
원래는 인간 측에서 제대로 된 조사를 요구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빨리 묻자고 닦달이다.
유일한 증거라 할 수 있는 피해자들의 증언이 하나 같이 서로 남의 몸을 탐하다가 약에 쩔어서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에서 콱! 깨물어댔다고 하는 게 전부인 상황.
괜히 시간을 더 끌어봤자 귀족들의 명예만 더럽히는 꼴이니 이쯤에서 조용히 끝내자고 인간 측에서 의견이 나온 것이었다.
‘평시는 물론이고 전시에도 그 변태 성향들을 못 버렸으니 찔리는 게 많겠지.’
참으로 허술한 위장이나 귀족놈들도 떳떳한 것이 단 하나도 없기에 가능한 일이다.
마족 전쟁 포로부터 시작해서 심지어 아군이라고 할 수 있는 요정이나 수인 측의 피난민들도 여럿 붙잡아서는 남몰래 노리개로 부려먹던 놈들이 바로 귀족들이었다.
거기에도 만족하지 못 한 몇몇 놈들은 아예 남색까지 할 정도였는데 아마 그 부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니 얼른 덮고 싶은 게 놈들의 현재 상황이리라.
다른 이들은 죽어라 싸우는 와중에도 여전히 제 배 불리고 제 욕망만 채우고 있던 놈들.
그게 바로 클라우스가 만들어낸 이 세계의 인간 귀족이었다.
‘내가 만들었지만 참 답도 없어요, 시발 놈들.’
이런 놈들을 데리고 살아보겠다고 그 고생을 한 자신이 참으로 한심스러울 정도였다.
아무튼 그 머저리 귀족 네놈은 확실하게 조져두었고 그림자 중 하나인 리르는 하룻밤 사이에 완전히 개조가 되었다.
이제 오늘 중으로 남은 두 그림자까지 확실하게 조져두면 율리아에게 드리워져있던 그 변태 숙부의 감시망을 전부 치워내는 데에 성공하는 것이었다.
‘그 숙부라는 놈은 율리아를 얕봐도 너무 얕보고 있으니까. 대충 역정보만 흘려줘도 생각 끊고 착실하게 자신의 세력을 모으는 데에 집중할 거다.’
모을 수 있으면 어디 한 번 모아봐라.
네가 세력을 모을 때마다 그 안에 숨어들어가는 폭탄도 점점 더 많아질 테니까.
속으로 놈을 한껏 비웃으면서 클라우스는 강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
“….”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자리에 앉아있던 율리아, 그리고 나타샤가 클라우스를 바라본다.
그 시선을 느낀 것인지 클라우스가 슬쩍 고개를 돌리니 두 여인이 거의 동시에 고개를 돌리는데 그 몸짓이 어찌나 다급해보이는지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곧 두 여인은 다른 반응을 보였는데 율리아는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도 다시 고개를 들고는 클라우스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과는 달리 나타샤는 끝내 클라우스를 마주보지 못 했다.
‘성격 차이 바로 나오네.’
오늘도 나타샤 조교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번에는 어떻게 괴롭혀줄까 즐거운 고민을 하며 클라우스는 가볍게 교단을 두드리고는 입을 열었다.
“다들 반갑습니다. 강의 시작에 앞서 아카데미 안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는 건 생도 여러분들도 대강의 소식을 들어 알고 있을 겁니다. 괜한 갈등으로 서로 간에 얼굴 붉히는 일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다행히도 클라우스의 강의에는 물리적 거세가 된 네 마리의 돼지 놈이 없다.
괜히 강의물 흐릴까 놈들이 근처에도 오지 못 하게 손을 써두었으니 당연한 일.
애당초 뼈 속까지 귀족 의식에 찌든 놈들인데 평민이 맡는 강의에 관심을 보일 리도 없었다.
“오늘은 잠깐의 이론 수업 후 밖으로 나가서 간단한 실습을 해볼 겁니다. 전투 마법이라 하여 마법만 다루는 게 아님은 잘 알고 있겠죠? 간단한 무술부터 각종 병기를 이용하며 그것들과 합을 맞춰 사용하는 게 여러분이 알고 있는 전투 마법의 개념이니까 말입니다.”
클라우스의 말에 생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 마법이라 불리는 이름 그대로, 마법이 중점이 아니라 전투에 중점을 맞춘 것이다.
때문에 여기에 모여 있는 생도들 전원은 저마다 최소한의 실력을 지닌 이들이었고 그곳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자 전투 마법 강의를 택한 것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단순히 대륙 전쟁의 영웅, 남부의 악마라 불리던 클라우스가 궁금해서,
혹은 그를 몰래 자신들 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이 강의를 택했다던가.
“일단 그 전에 앞서 간단한 조사를 하겠습니다. 자신이 병기를 쓴다면 어떤 것을 주로 쓰는지 적어주시면 됩니다. 만약 따로 운용하는 게 없다면 무술이라고 써도 되고요.”
강의실의 생도들이 앞에 놓여있던 종이에 뭔가를 끄적이고는 서로의 것을 거두어서 앞쪽으로 제출한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니 인간은 인간끼리, 요정은 요정끼리, 수인은 수인끼리, 그리고 마족은 마족끼리 모아서는 가져다주고 있는 상태였다.
‘서로 부딪치지 말라고 했더니 더더욱 서로 선을 긋고 있군.’
어차피 2차 대륙 전쟁은 막을 수 없는 일이고, 또한 막을 생각도 없다.
율리아가 험한 꼴을 당하지 않아서 2자 대륙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분명 있었다.
그러나 본인이 정해둔 끝대로, 대륙 전쟁은 다시 발발하고 그 전쟁에서 연합은 끝내 마족을 상대로 패배하고 마는 결말로 일은 흐르게 된다.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심지어 율리아가 죽어도 결국 마족은 승리하고 연합은 패배한다.
그게 이 세상을 창조한 자의 결론이었기에 바꿀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건 나중의 이야기다.
당장 클라우스는 자신의 강의실에서만큼은 각 종족들이 대립하는 걸 금할 생각이었다.
각 종족 간의 화합 뭐 이딴 이유가 아니라 그냥 꼴 보기 싫었다.
‘저것들이 친해지는 데에는 역시 그 방법이 최고지.’
각자의 특기를 적은 종이들을 받은 클라우스는 간단한 이론 강의를 시작했다.
이후 생도들 전원에게 실습을 위해 밖으로 나갈 것을 명령했다.
클라우스는 아카데미에 마련된 넓은 공터에 들어서자 생도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생도 여러분 본인들도 인정하고 있겠지만 여러분들은 아이가 아닙니다. 이미 마법, 혹은 무술이나 병기를 다루는 것에 익숙한 나름의 실력자들이죠. 그러니 걸음마를 배우는 게 아니라 전력질주 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적당할 겁니다.”
“….”
“예상한 생도들도 있겠지만, 오늘 실습은 1:1 대련입니다. 실제 병기는 지급되지 않으나 전투 마법은 직접 사용해도 좋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상대에게 유효타를 먹이면 됩니다.”
그 말 직후 품 안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드는 클라우스.
안에는 각 생도들의 이름이 다른 이름과 대칭되어 적혀있었다.
“여러분들이 적어 낸 특기에 따라 상대를 미리 정해두었습니다. 서로의 수준에 대해서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 부분까지 전부 고려해서 만든 대진표이니까요.”
“저, 클라우스 교수님. 질문이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제가 알기로 저희 강의의 수강 생도 수는 홀수입니다. 한 명이 남을 터인데요.”
관찰력이 좋은 생도, 역시나 수인다운 눈썰미였다.
다른 생도들에게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서도 재빠르게 강의실 내의 숫자를 스캔하고는 사냥감을 추려내는 맹수처럼 움직인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 부분에 대해서 생도 여러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자 했습니다.”
양해라는 말에 생도들의 표정이 궁금증이 서린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클라우스 교수가 자신들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생도 여러분 중 한 명은 나와 겨루어야 할 것 같습니다.”
“….”
“….”
클라우스의 말에 생도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은 둘.
하나는 마법 강의를 맡아야 했던 교수가 게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장면.
다른 하나는 역시나 마법에 꽤나 능통하다던 세실리 레블랑이 쓰러진 모습.
둘 모두 클라우스의 압도적인 전투력이 부각되던 바로 그 상황이었다.
심지어 상대방의 마법을 단순히 동일한 양의 마력을 소모하여 도중에 폭발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현저히 적은 양으로 중심점을 정확히 타격하여 완전히 소멸시키는, 극강의 재능과 엄청난 경험, 그리고 피나는 노력이 없다면 꿈도 못 꾸는 그런 방법을 선보이지 않았던가!
‘저 괴물 같은 남자와 붙으라고? 무슨 망신을 당하라고!’
그 생각이 요정, 수인, 심지어 인간 귀족 생도들의 머릿속에 가득해졌다.
이건 이겨도 본전인데 패배하면 어떻게 박살이 나도 얼마만큼의 망신을 당할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더 문제는 애당초 이길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된다는 것이냐, 바로 그것이었다.
“….”
“….”
세 종족 측 생도들이 슬그머니 클라우스의 시선을 회피한다.
이건 호승심 따위의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잘못하면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인식하는 다른 생도들 앞에서 개망신을 당할 수도 있다.
아니, 최악으로 상정하면 망신은 둘째 치고 한동안은 스스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두들겨 맞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웅성웅성-.
마족 생도들조차 함부로 나서지 못 하는 중이었다.
물론 그들은 다른 생도들처럼 다치는 부분이나 망신을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건 아니다.
아예 그 부분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에 비해서는 덜 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데도 마족 생도들조차 망설이는 이유는 그가 클라우스, 남부의 악마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마족들 눈치 보는 거지. 자신들이 동경하는 대상에 과연 덤빌 이가 누구일까. 과연 그럴 만한 실력을 가지고서 앞에 섰던 것인지 아니면 그저 그런 놈일지 평가를 받을까봐.’
시간이 지나도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이대로 가면 율리아가 나설 수도 있다.
하지만 클라우스는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으로 누군가를 기다렸다.
아마 몇 초 뒷면 슬슬 그 여자가 손을 번쩍 들고서는….
번쩍!-
새카만 검은 머리, 거기에 주황색의 눈동자가 무척이나 인상 깊은 여인이 손을 든다.
그녀의 모습을 확인한 다른 생도들은 ‘어어?’ 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클라우스와 1:1 대결을 해보겠다고 나선 이가 다름 아닌 세실리 레블랑이었던 것이다.
“…혹시 다른 생도 없습니까?”
의도적으로 세실리에게 눈길을 주지 않으며 의견을 구하는 클라우스.
그에 살짝 입술을 깨문 세실리가 다시금 힘차게 손을 들고서는 자신을 강조했다.
“아무나라도 참 좋을 텐데요.”
탓! 번쩍!-
그 아무나가 바로 여기 있다는 듯 몇 번이고 손을 흔드는 세실리였다.
어찌나 스스로를 강조하는지 다른 생도들이 클라우스에게 슬쩍 눈치를 줄 정도였다.
저 마족 생도가 저렇게나 강렬하게 원하는데 왜 대놓고 무시하냐는 듯 말이다.
“…후우.”
일부러 들으라는 듯 한숨을 내뱉은 클라우스.
그리고는 이마를 긁적이며 어쩔 수 없다는 기운이 느껴지도록 중얼거렸다.
“알겠습니다. 세실리 레블랑 생도.”
“네, 클라우스 교수님!”
“당신은 나와 1:1 대련을 합니다. 부디 저번처럼 볼썽 사납게 쓰러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요.”
“노력하겠습니다!”
아마도 이 장면이 다른 생도들의 눈에는 남부의 악마라 불리던 공포의 대상을 한 번이라도 이겨본다거나 하다못해 인정이라도 받기 위한 마족의 몸부림이라고 비칠 것이다.
하지만 사실을 알고 있는 클라우스에게는 오직 이렇게 보일 뿐이었다.
‘더 괴롭혀주세요! 더, 더 아프게 해주세요!’
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