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2장 - 가지고 싶다면 싸워라
전투 마법 강의실을 나선 후, 율리아는 다른 강의를 듣기 위해 이동했다.
자신의 의지라기보다는 숙부와 자신을 감시하는 자에 의해서 짜인 강의 시간표.
제 뜻대로 그 어떤 것도 하지 못 하게 하겠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그렇기에 심히 불만스럽긴 했으나 또 교묘하게 관심을 가지고 있던 강의를 해두었기에 따르지 않을 수도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생도 여러분, 저는 대륙 역사학을 맡고 있는….”
“이번 마법 이론을 맡게 된….”
하지만 그 강의를 듣고 있음에도 율리아는 전혀 집중이 되지를 않았다.
분명 자신이 나름 관심이 있던 강의들인데, 교수들도 괜찮다고 하는 자들인데.
아무리 정신을 집중하려고 해도 도통 그게 되지를 않았다.
‘…그 여자.’
거슬렸다. 상당히, 아주 많이 거슬렸다.
분명 요정 생도였다. 인간 남자를 그렇게도 무시한다는 요정 여인 말이다.
그런 이가 제 매력을 과하다 싶을 정도로 발산하며 클라우스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이 마치 제 연인이나 정인을 대하는 것 같아 율리아는 그게 매우 거슬렸다.
‘요정 여자도 그렇지만 클라우스 교수의 표정이….’
율리아가 이리 화를 내는 건 단순히 나타샤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분명 보았다, 그 요정 여인이 가슴골을 다 드러낸 복장으로 다가갈 때 클라우스의 얼굴이 순간 당황으로 물드는 것을 말이다.
클라우스의 그 모습은 누가 봐도 여인의 갑작스러운 유혹에 기습을 당한 남자의 것.
바로 그 부분이 율리아는 매우 거슬렸다.
자신이 그 요정 여인과 똑같은 복장, 똑같은 분위기로 그를 유혹할 때는 거기에 넘어가주는 척도 안 하지 않았던가.
헌데 왜 그 요정한테는 그런 표정, 그런 분위기였단 말인가.
어째서! 자신 앞에서는 흔들리는 티를 요만큼도 내지 않던 그 남자가 말이다!
‘뭐가 다르냐고! 나와 그 요정, 도대체 뭐가 달라서 반응이 그리도 다른 거야!’
이건 자존심의 문제였다, 여인으로서의 자존심 그리고 마족으로서의 자존심.
스스로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으나 율리아는 자신이 아름답다는 걸 알고 있다.
그걸 무기로 사용한 적도 있고 클라우스에게도 그 부분을 강조하려고 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자신이 그렇게 실패한 마당에 요정은 그 남자를 흔드는 데에 성공하고 말았다.
딱히 크게 차이도 나지 않는 것 같은데 말이다!
‘…혹시 나보다 더 큰가?’
스윽-.
율리아는 복도를 지나다 말고 슬그머니 제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보니 잘 모르겠다 싶어서 유리 앞으로 다가가서는 슬쩍 가슴을 만져본다.
‘딱히 차이가 크게 나는 건 아닌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 요정 여자의 가슴이 조금 더 크기는 했다.
당장 생도복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고 가슴골 사이에 막대 하나만 들어가도 꽉 낄 것 같이 좁아보였으니까 말이다.
혹시 클라우스가 그런 부분에 약한 타입인가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렇다면 자신의 경우에는 왜 반응이 없었단 말인가?
자신도 절대 작은 편이 아닌데? 오히려 마왕으로서 그 어떤 마족 여인보다도 더 당당하다고 할 수 있는 가슴인데?
‘아니면 그 여자가 더 아름다웠나?’
유리에 비친 제 모습을 살피며 율리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그 요정 여인이 아름답기는 했다. 숲에 핀 꽃 한 송이를 보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허나 그런 여인의 매력은 자신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율리아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당장 제 숙부부터 시작해서 마족 측의 귀족들이 은근히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걸 영리한 율리아가 모를 리가 없었다.
마왕이라는 거대한 권력과 함께 그 자리에 걸맞은 아름다움까지 가지고 있으니 그들 입장에서는 반드시 손에 쥐고 싶은 최고의 전리품이 될 것이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아, 혹시?’
다른 가능성이 율리아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것은 다름 아닌 종족의 차이, 즉 클라우스가 제 목숨 걸고 싸우던 종족과 반대로 같이 싸우던 종족이라는 부분이 결정적인 것일 수도 있음이었다.
당장 율리아 본인은 클라우스가 제 부하들을 잃어가면서 싸우던 마족들의 군주.
반대로 그 여자는 서부 연합의 편에서 힘껏 싸우던 요정족이다.
원수 그 자체인 자신과 그래도 전우라고 볼 수 있는 상대라면 클라우스는 무조건 그 전우를 선택할 것이라고 율리아는 생각했다.
‘그 여자가 클라우스 교수를 꾀어내려고 하는 요정인가 보구나.’
경쟁자의 정체는 아까 전 그녀의 단추를 잠가주면서 얼굴을 보고 알아냈다.
나타샤 벨라루스, 요정 세계에서 알아주는 벨라루스 가문의 여인.
도대체 왜 제 잘난 맛에 산다는 요정 여인이 인간 남자에게 그리 매달리는 것인지.
그냥 자기들이 평소 하던 대로 철저하게 무시나 할 것을 전쟁 영웅이라고 다르게 대접하는 꼴은 율리아 입장에서 상당히 짜증이 치미는 부분이었다.
요정이 서부 연합의 일원으로 대륙 전쟁에서 싸우기는 했으나 클라우스와의 접점은 없다.
그들은 주로 북부와 중앙 전선에서 싸웠으니 남부를 맡고 있던 인간들과는 연관성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인간, 그리고 남자를 그리도 깔보는 요정 여인이 그런 모습을 보이니 율리아로서는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인간들은, 그리고 남자들은 요정들에 대해서 환상이 많지. 당장 우리 마족들도 요정 여인 노예를 특등품으로 치는 이들이 많았잖아. 클라우스 교수라고 해서 다르지 않을 수도 있어. 결국 그도 사람이고 남자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율리아는 분하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제 숙부가 요정들과 몰래 이야기를 나누는 관계라면, 클라우스를 요정 측이 영입하여 자신들의 세력을 공고히 하고 제 숙부와 손을 잡는다면 자신에게는 기회가 없다.
왜 율리아가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냐고?
당장 요정들이 주축이 되어 서부 연합 측이 동부의 마족들을 모든 사태를 책임지고 마왕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대륙의 평화를 이끌 수 있는 새로운 마왕이 서야 한다고 흔들게 된다면 제 숙부는 거기에 흔들리는 척 연기를 할 것이다.
그리고는 마족들을 흔들어서 끔찍했던 시대를 상징하는 마왕을 몰아내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왕을 세워야 한다고 선동을 할 것이다.
‘마왕가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일이야. 선조들을 뵐 낯이 없어.’
전쟁이 끝나기 전에 전대 마왕이자 율리아의 부친이 사망했고 그 뒤를 이은 마왕은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
즉 서부 연합 입장에서는 그 율리아가 전쟁 초창기에 오른 마왕이든, 끝물에 올라선 마왕이든 전쟁에 관여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니 모든 책임을 안고 물러나는 게 맞다고 떠들 것이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은근히 그런 기류가 돌기는 했어. 그나마 그 때까지는 아버지 때의 충성파들이 좀 남아있어서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지만….’
마왕이란 자리는 분명 마족들의 군주를 뜻하는 고귀하고 대단한 자리.
어떤 마족도 그 앞에서 감히 고개를 들 수 없는, 말 그대로 동부 지존이라 할 수 있었다.
허나 그 마왕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의미도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참 많이도 퇴색되었다.
특히 율리아의 부친이 마왕이던 시절에 여러 귀족 가문들의 힘이 급격히 커지고 반대로 마왕의 권위가 많이 위축되면서 이전의 강력함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 와중에 당연히 마왕가의 편이라고 생각했던 율리아의 숙부가 앞장서서 마왕을 견제하는 바람에 가장 든든한 패를 잃어버린 마왕은 거의 유폐된 꼴로 지내다가 병사했다.
뒤를 이어 마왕으로 즉위했으나 ‘왕’ 이라고 부르기도 모호한 이가 바로 율리아였던 것이다.
‘서부 연합은 아직까지 우리 마족들의 상황을 모르니까 마왕인 나를 견제하려고 하겠지. 애당초 실권이고 세력이고 다 빼앗기고 조각이 나서는 제 한 몸 지키기도 어려운 나인데.’
율리아는 이를 악물었다.
그야말로 땅에 떨어진 마왕의 권위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마족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줄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다.
누구는 그것을 경제 정책으로, 또 누구는 내부 정리로, 그리고 어떤 이는 새로운 전쟁으로서 메우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율리아는, 그걸 서부 연합과 동부 마족간의 진정한 평화 및 화해 분위기 조성 이후 새로운 자원 개발 쪽으로 하여 마족들의 민심을 돌리려고 노력하려고 했었다.
그래서 더더욱 클라우스를 제 밑으로 끌어들여야만 하는 율리아였다.
마왕인 자신이 나서 전쟁 영웅을 밑으로 둔다면 자신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
그럼으로 인하여 마족들의 민심이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면 가장 먼저 걸림돌이 되는 숙부와 그 세력을 축출하고 진정한 평화 분위기로 향할 생각을 품고 있는 현 마왕이었다.
‘힘이 필요해. 그리고 절대적인 명성과 권위도 필요하고. 대륙 전쟁의 참전자들은 절반은 숙부와 연합하고 있고 나머지들도 중립을 지키며 눈치만 살피고 있어. 아주 극소수만이 마왕가에 충성하는 자들이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나의 힘과 권위를 보여줄 뭔가가 있어야만 한다.’
율리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오늘의 마지막 강의까지 다 들은 후 제 방으로 돌아갔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 클라우스를, 남부의 악마를, 대륙 전쟁의 영웅을 끌어들일 수 있을까.
그 부분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말이다.
“…어?”
그러다가 율리아는, 제 방문이 살짝 열려있음을 확인하고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허나 딱히 느껴지는 건 없었고 방 안에서도 수상한 기척이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뭐지? 혹시 내가 오늘 아침에 나가면서 문을 제대로 닫지 않았나?’
하지만 곧 그녀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듯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이미 자신에게 숙부가 보낸 감시자가 여럿 붙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들은 아마도 제 생활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하여 보고를 올리는 중일 것이다.
만약 그 감시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면 더 큰 의심과 경계를 살 것이 분명했기에 여태까지 율리아는 일부러 그들에게 노출되는 생활을 지속해 왔다.
그러나 클라우스를 영입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들의 감시를 두 번 정도 뿌리쳤었다.
아마 그 부분이 악재로 작용하여 지금의 일이 벌어진 것일 수도 있었다.
끼이익-.
조심스레 문을 열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마력을 끌어올린다.
하지만 여전히 따로 느껴지는 기척은 없었고, 방도 자신이 나가기 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율리아가 문을 닫고 막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이었다.
휘릭-.
퍼억!
* * * * * * * * * *
“…얼른 벗기라고.”
“좀 기다려. 일단….”
“와, 이년 젖통 봐라. 왕이라더니….”
“…정말 괜찮겠어? 이거 무슨 문제 생기면….”
“괜찮아. 그쪽에서 알아서 한다고….”
귓가에서 들려오는 낯선 이들의 목소리.
그리고 흐릿하게나마 비치는 모습들.
율리아는 천근만근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올렸다.
그냥 이대로 잠들어버리고 싶다는 유혹이 일었으나 그녀의 이성이, 그리고 본능이 얼른 정신을 차리지 않는다면 더 큰일이 날 것이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무, 무슨….”
“오. 일어났다.”
“엄청 예쁜데? 어지간한 대귀족 여식들보다 더 예쁜 거 같아.”
“여자하면 요정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마족도 괜찮은 것 같군.”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당신들은 누구인지, 여기는 어디인지.
온갖 질문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입가에 맴돌았으나 정작 그녀의 입에서 나간 건 그런 질문이 아니라 다른 것이었다.
“아흥!”
시, 신음 소리? 갑자기 왜 이런 멍청한 소리를 내고 있는 거야!
당황해서 바동거리던 율리아는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 입고 있던 옷은 다 어디 갔는지, 지금의 자신은 이 정체불명의 남자들 앞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이 되어서는 손발까지 결박당한 채 널브러진 상태였다.
“가슴 부드러운 것 봐. 야야. 얼른 만져봐. 그 냄새 나는 평민 여자들보다 훨씬 낫다.”
“그러네. 와아… 마족 여자가 이렇게 우수한 줄 알았으면 진작 몇 년 사보는 건데.”
“뭐, 뭐하는 거야! 만지지 마! 만지지 말라고! 아, 아읏!”
남자의 손이 율리아의 젖꼭지를 잡고는 강하게 당기면서 낄낄댄다.
덕분에 율리아가 몸을 비틀며 허리를 들자 다른 남자의 손이 그녀의 음부를 빠르게 쓸고 지나갔다.
“하긍!”
“야. 거기는 아직 손대지 마라. 아까 정했잖아? 내가 먼저라고, 내가.”
잔뜩 화가 난 목소리에 그녀의 음부를 노리던 남자는 칫, 하고 뒤로 물러선다.
그 후 남자들은 율리아의 곁에 모여들어서는 보지를 제외한 몸 곳곳을 핥고 빨며 그녀를 천천히 농락하기 시작했다.
“하, 하지 마! 미친놈들! 내, 내가 누구인줄 알고! 당장 꺼져!!”
“다 아니까 조용히 하고 있으세요, 마왕 전하.”
“야, 이거 대단한 업적 아니냐? 그 마왕을 우리들이 따먹는다는 게.”
“대귀족 가문 자제들은 물론이고 왕족도 못 할 일들을 우리가 하는 거지. 이거야말로 가문에 길이 남을 공훈이란 말이야? 캬하하하!”
“하지 마! 하지 마! 그, 그만! 아, 아긍! 가, 가슴 안 돼! 아아아!”
사나운 맹수에게 산 채로 잡아먹히는 초식 동물마냥.
율리아는 꼼짝도 못 한 채 다만 몸을 비틀며 애처로운 몸짓을 계속할 뿐이었다.
손발이 묶였으니 육체적인 저항은 불가능하다, 남은 건 마법뿐이다.
허나 어찌 된 일인지 마력도 도저히 모이지를 않았다.
마치 뭔가에 의해서 마력 응집이 방해받고 있는 듯 마력들이 모이다가 퍽! 하고 부스러졌다.
“저항 그만 하고 그냥 받아들여. 너 오늘 어차피 밤새도록 먹힐 거야.”
“안 돼! 안 돼! 하지 마, 하지 마!!”
“거 참. 야, 이 년 다리 좀 붙잡고 벌려라. 아무래도 안 되겠다.”
그 말에 남자 둘이서 율리아의 다리를 붙잡고 양 옆으로 힘을 가해 벌린다.
덕분에 어떻게든 숨기려고 했던 여인의 음부가, 가랑이 사이에 핀 연분홍빛 꽃이 자리에 모인 남자들에게 다 드러나게 되었다.
“아, 아아…! 아아아….”
이 비침하고 끔찍한 상황에 여인이 절망한 목소리로 신음을 흘린다.
꿈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이대로 기절해버리고 싶었지만 그리 할 수도 없었다.
“한 번도 안 쓴 것 같네. 이야, 그러면 마왕의 처녀를 먹는 게 우리들인건가?”
“역사서에 길이 남겠는데? 마왕이 인간 귀족들에게 처녀를 바치다! 푸하하하하!!”
율리아는 억장이 다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으나 몸은 결박당했고 안의 마력은 봉인되었으며 마왕인 자신은 이런 잡스러운 인간 귀족한테 조리돌림을 당하기 직전이었다.
소리를 지를 수 있음에도 제 입을 막지 않은 걸 보면 이미 주변에 자신을 도와줄 이는 아무도 없다는 뜻임을 율리아는 슬프게도 바로 알아차리고 말았다.
“안 돼, 안 돼. 제발, 제발. 이러지 마요. 제발, 이, 이건 아니야. 이건….”
자신을 욕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던 숙부 앞에서도.
마왕 전하라고 부르면서 전혀 존중하는 눈빛이 아니던 마족들 앞에서도 당당했던 여인.
그러나 이렇게 갑작스럽게, 그리고 비참하게 맞이한 상황에서는 제아무리 율리아라고 해도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두려움, 공포, 비참함, 수치스러움, 그 외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며 그녀의 머릿속을 완전히 진창으로 만든다.
율리아가 그 진창 속에서 완전히 넋을 놓아버린 무렵, 인간 귀족 생도들은 신이 나서는 서로 낄낄거리며 말했다.
“그러면 슬슬 우리 마왕 전하 개통식 한 번 해볼까?”
“야야, 그 전에 이년 속옷 좀 줘봐라. 너무 시끄러울 것 같으니 입 좀 막아두자고.”
앞으로 겁탈 당할 여인의 입에 제 팬티를 물리는 장면을 상상하니 절로 짜릿해진다.
인간 귀족 생도들은 그렇게 생각하며 얼른 누구 하나가 그녀의 팬티를 가져오기를 기다렸다.
턱-.
“뭐야, 뭐가 이렇게 묵직… 흐어어어어억?!”
갑자기 기절초풍, 식겁을 하며 뒤로 물러나는 귀족 생도.
제 손 위에 올라온 건 여인의 속옷이 아니라, 피로 범벅이 된 남자의 고환이었던 것이다.
꿈에 나올까 무서운 상황에 생도들이 당황해서는 다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풀썩-.
도대체 어느 틈에 들이닥친 것인지, 남자 하나가 서있었다.
그 뒤로는 하의가 온통 피범벅이 된 생도 하나가 게거품을 물고 널브러져 있었고 말이다.
“나머지 쌍방울도 따볼까.”
저놈들이 어떤 비명을 지를지 참으로 기대가 된다는 듯.
클라우스는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천천히 그들에게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