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화 〉2장 - 가지고 싶다면 싸워라 (17/341)



〈 17화 〉2장 - 가지고 싶다면 싸워라

클라우스는 바로 어제의 나타샤라고는 믿을  없을 정도로 헤퍼진 요정 여인의 모습에 속으로 박수를 치고 역시 우수한 생도라고 찬사를 보냈다.

어제까지만 해도 부끄럽다느니 투덜거리던 여자가 하루아침에 요물이 되어서는 제 맨살까지 드러내면서 대놓고 남자를 유혹하는 그림은 몇 번을 봐도  바람직했다.

거기에 더해서, 나타샤는 모르겠지만 방금 전 그녀는 마왕에게 도전장을 내민 꼴이 되었다.


 클라우스에게 말을 붙이려던 율리아가 그녀로 인해 뒤로 밀려나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요정 세계의 권세 있는 가문의 여인, 그리고 허울뿐이긴 하나 어찌 되었든 마족의 군주.
 둘이 벌이는 신경전은 역시나 회차를 거듭해도 질리지가 않는 명화였다.



‘여기서 한 번 더 부채질을 해볼까.’




자신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율리아다.
그렇다고 하여 다른 여자들을 포기할 생각이냐? 그건 또 절대 아니다.
내가 여태까지 이 고생을 해가면서 마왕 하나로 만족할 생각이었다면 진작 성공했을 것이다.

명색이 이 세상을 만든 창조주인데 내로라하는 여인들 수십은 끼고 살아야지.
그 중에서 첫손에 드는 여인이 율리아일 뿐 오직 그녀만을 바라보는 순애는 또 절대 생각하지 않는 게 바로 클라우스의 속마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율리아보다 나타샤에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타샤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살짝 흔들리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서 요정에게는 되었다! 라는 가능성을, 그리고 마왕에게는 빼앗기겠어! 라는 긴장감을 불어넣어줄 계획이었다.



“나타샤 생도. 복장이 그게 뭡니까. 똑바로 단추 여무세요.”
“어쩌겠어요? 생도복이 너무 작은데. 새로 주문을 하기는 했는데 맞춤 제작이 늦어져서 한동안은 이러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뭐,  맞는 말이니 딱히 뭐라고 할 부분은 없다.
실제로 나타샤의 가슴은 조금만 건드려도 하악질을 해대는 그녀의 성깔과는 달리 무척이나 자비로웠다.


평소에는 생도복에 가려져 있어서 그런 느낌이  났지만, 오늘은 일부러 단추를 풀어서는 꽉 막혀있다는 기운을 다 지워내니  풍만함이 배는 더 강조되었다.


비록 마력을 다루는  초짜라고 할 수 있으나 제 매력을 다루는  요망한 요정들답게, 역시나 평균 이상은 된다고 말할 수 있었다.




“아니면 교수님께서 좀 여며주시겠어요?”
“….”
“제가 하려고 하면 잘 다물어지지 않아서.”



정말 어제  여자와 동일 인물이 맞나 싶다.
밤사이에 독하게 마음을 먹고 반드시 클라우스를 벨라루스 가문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사실은 진작부터 알고 있기는 했지만  때마다 놀라운 장면  하나였다.
나중에 가면  가슴골에 편지도 끼우고 컵도 끼우고 검도 끼우고 참 가지가지했지.

잠시 갈등하던 빛을 보여주던 클라우스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일부러 아주 천천히 손을 내밀어서 달콤한 향기가 나는 여인의 살결을 향해 막 손을 내미는 순간이었다.



홱!-

“어?”

갑자기 나타샤의 몸이 반대쪽으로 휙! 하고 돌아간다.


원래부터 이럴 상황이었음을 알고 있었기에 크게 놀라지 않은 클라우스와는 달리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나타샤가 허둥거리다 말고 곧 자신을 돌려세운 이를 마주하게 되었다.

“다, 당신!”
“교수님께 무례하군요. 요정들은 다 그런가요? 우리 마족들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는데.”



동부 마족들의 군주, 율리아 아그네사.
일부러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은 하나 어쩔 수 없이 모든 생도들이 은연중에 의식하는 바로 그 여자가 무시무시한 눈빛을 띠고서는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

그 바람에 화들짝 놀란 나타샤였으나 바로 뒤에 클라우스가 서있음을 깨닫고는 쿵쾅거리던 심장을 곧 진정시키고는 평소의 그 도도한 표정을 짓고서 입을 열었다.



“무례라뇨. 저는 교수님께 그저 부탁을  건데요?”
“부끄럽지도 않나요? 그런 걸 부탁이라고 말하는 당신이.”
“아뇨? 저는 오히려 이렇게 끼어드는 당신이 더 부끄럽게 느껴지네요. 마왕 전하.”




참고로 아직 율리아의 무서움은 세상 어느 누구도 모른다.
오직 그걸 몇  번이고 당해본 클라우스만이 아는 사실이다.
당장 율리아 본인도 제 안에 그런 무시무시한 본성이 자리하고 있음은 모를 정도였다.

그런 이유로 생도들은 물론이고 세상의 모든 이들은 율리아를 그저 운이 좋아서, 부모  만나서, 재능이나 능력 따위는 전혀 없이 어쩌다 보니 왕의 자리에 오른 여인으로만 볼 뿐이다.
당연한 결과이지만 그녀를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

이곳이 평범한 아카데미였다면 방금 전 나타샤의 행동은 확실히 무례한 것.
하지만 이곳 대륙 아카데미는 다른 교육 기관과는 상황이 완전히 다른 곳이다.



생도 하나, 하나가 아카데미에 소속되어 있는 교수보다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다.
아니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감히 교수들은 말도 못  자들이 많다.

당장 나타샤는 벨라루스 가문의 여인, 세실리는 레블랑 가문의 막내딸.
그 외에도 여러 생도들은 저마다 제 종족에서 한 권력 한다는 곳의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왕족 출신의 생도들도 여럿 있다. 물론 율리아처럼 왕이 직접 생도로 들어온 경우는 전무후무한 일이었지만.



어찌 되었든 생도와 교수라고 해서 무조건적인 상하 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
서로를 존중하되 교육 기관이니 생도측이 먼저 예의를 차리는 것이고 교수들은 그 예의에 맞춰 자신들 역시 가르치는 이로서 최선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함부로  몸에 손대지 마시죠. 어디 감히 마족 따위가.”
“뭐라고요?”
“혹시 마왕이니 어쩌니 하면서 무례하다고 말할 생각은 접어둬요. 아카데미에 들어오는 조건 중 하나가 자신의 출생을 과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설마 기억 못 하는 건 아니겠죠? 당신은 여기서는 마왕이 아니라 그냥 마족 생도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마족이면 마족답게 가만히 찌그러져 있어요. 그렇게 자신만만하더니 결국 먼저 정전 협상을 제의한 주제에.”



순간 율리아의 눈썹이 무섭게 위로 치켜졌다.
숙부한테 조종당하는 허울뿐인 마왕이라지만 그녀도 결국 마족이다.
자신과 동족들을 얕보는 자들, 특히 자신이 강한 것도 아니면서 까부는 놈들에게는 그야말로 엄청난 적의를 숨김없이 토해내는 자들이란 말이다.

“어이가 없네요. 마치  정전 협상을 이끌어낸 자가 당신들인 줄 알겠어요.”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건 서부 연합이 승리해서….”
“웃기는 소리 마요, 요정. 당신들은 패망하기 직전이었어. 당신 뒤에 서있는 저 남자가 남부에서 버티지 않았다면 마족들의 보급선은 탄탄대로였을 테고 그대로 모든 방어선이 돌파 당했겠지. 당신들이 승리한 게 아니야. 클라우스 남부 사령관이 승리한 거야.”

저 대화도 몇 번은 들었는데 아직도 손발이 다 오그라드는 느낌이다.
다른 이가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 이야기를 하는 걸 듣는다는 기분은 항상 이렇다.
뭔가 기쁘다거나 뿌듯해야 정상인데, 묘하게 절로 헛기침이 나오면서 부끄러워지는 그런 것.


그러는 사이 율리아는 몇 걸음 더 나타샤 앞으로 다가왔다.
누가 보면 ‘저러다가 얼굴에 주먹 한 방 꽂는 건 아니겠느냐.’ 라고 걱정을 해도 모자랄 정도로 둘의 사이가 가까워질 무렵.




“그리고 당신 말대로, 아카데미 안에서 자신의 출생을 과하게 드러내는 건 안 된다는 거 나도 확실히 알고 있어요. 그래서 말하는 겁니다, 나타샤 벨라루스 생도. 당신도 생도면 생도답게 처신해요. 아무리 봐도 지금 당신의 모습은 가르침을 얻기 위해  생도가 아니라.”



달칵-.

나타샤의 생도복 단추를 꽤나 거친 손짓으로 여며주는 율리아.
표정은  상태로 멱살을 잡든 목을 조르든 할 것 같은데 거기까지는 나가지 않은 채 다만 단추만을 끝까지 거친 손길로 채워가고 있는 마왕님이었다.


“음탕하기만 한 요정으로 밖에 보이지 않네요.”
“뭐, 뭐라고… 캑!”

마지막 단추는 일부러 나타샤의 목을 살짝 조르면서 채워주는 율리아.
덕분에 말을 하다 말고 목젖이 눌린 나타샤는 캑캑거리며 제 목을 붙잡아야만 했다.
율리아는 그렇게 꼬리를 치는 음탕한 요정을  방에 격침시킨 이후 무척이나 불쾌하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강의실을 나섰다.

“오늘 강의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교수님. 다음 강의도 참 기대되네요.”

물론 클라우스에게 슬쩍 눈빛을 주는  잊지 않고서 말이다.


드르륵, 탁!-



‘…확실히 이때부터 무서운 여자긴 했지.’

율리아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한창 캑캑대던 요정 여인이 꽤나 화가 난 듯 붉게 변한 얼굴을 하고는 눈을 부라린다.




“뭐 저딴 여자가 다 있어? 이래서 마족들이란!”
“관두세요. 설마 했는데 대놓고 강의실에서 그런 짓을 한 당신 잘못입니다, 나타샤 생도.”
“당신이 말한 대로 한 건데 뭐가 문제에요!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말고 공략해라! 맞잖아요!”
“응용하겠다는  좋은데 내가 말하는 장소와 시간은 이렇게 다 보는 눈이 있는 곳을 말하는  아니었습니다. 생각을 좀 하세요, 생각을.”
“강의실에 생도들 다 나갔거든요? 마지막이 저인 줄 알았는데 저 빌어먹을 마족이….”
“아카데미 안에서 상대 종족을 무시하는 발언은 절대 금기입니다. 설마 잊었습니까?”



정색을 하면서 얼굴을 싸늘하게 굳힌다.
그러자 한창 화가 나서 투덜거리던 나타샤는 그 기세에 눌려서는 제대로 말도 못 하고 다만 ‘당신이 하라는 대로  건데 뭐가 문제에요.’ 라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클라우스는 참으로 나타샤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앙칼진 모습 때문에 뭔가 철두철미하고 냉정한 뭔가를 보여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타샤 벨라루스는 은근한 허당기를 갖춘 여인, 의지는 좋은데 결과가 그만큼 따라가주지 못 하는 그런 뭔가를 가진 요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장 지금도 자신이 클라우스를 유혹하고 있다, 내게 빠지게 해서  건방진 태도를 고쳐줄 거다, 이런 식으로 날을 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역으로 그녀가 점점 클라우스라는 진창에 빠져들고 있는 중이라고 할 수 있었다.
후일 그걸 주변 사람들은 그 사실을 다 알게 된다.
정작 나탸사 본인만 절대 아니라며, 내가 왜  남자에게 빠지고 있냐며 식겁을 하겠지만.


“나타샤 생도. 나와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 네, 맞아요.”
“분명 벨라루스로 향하면 그쪽에서 날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 아주 정확하게 나열하려는  같은데. 맞습니까? 나타샤 생도?”
“…네.”



그건 또 어찌 예상했냐는  자신을 쳐다보는 나타샤.
 부분은 회귀고 회차고 상관없이 뻔히 예상이 가능한 부분이었다.


 며칠 나타샤와 그렇고 그런 일들이 있었는데 이 여자가 정말 잡다한 이야기나 나누자고 가슴골  드러내고 조금만 움직여도 팬티가 다 보일 것 같은 하의를 입은  팔랑거리며 제 옆으로 다가왔겠는가?

다들 서로가 원하는 게 있다.
여기는 아카데미가 맞으나 다른 아카데미마냥 배움의 장이 아니다.

세상 그 어떤 욕망보다도 더 진하고 음습하며 추악한 것들이 날뛰는 곳.
위에 서있는 자들이 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혹은 낮은 곳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그런 곳이었다.

“그러면 뭐, 간단하게 차나 커피라도  잔 하면서 이야기 나눌까요?”
“아뇨. 저번처럼 제 방에서요.”
“…아직 해가 중천에 떠있는데요, 나타샤 생도.”
“제가 다른 이야기라도 했나요? 그냥 제 방에서 단 둘이 조용히 이야기만 나누면 좋겠다. 그렇게 말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혹시 뭘 상상하고 있었나요, 클라우스 교수님?”




무슨 목적으로 제 방으로 초대하는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저렇게 말을 돌린다.
 딴에는 이쪽을 도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리   같은데 아쉽지만 이쪽은 지금과 같은 상황을 몇 번이고 반복하는 쪽이었다.



“뭐, 좋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은 강의가 많이 없으니까요. 어떤 비밀스러운 이야기인지 참으로 기대가 되네요. 이번에는 내가 혹할 만한 조건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걱정 마요. 당신이 아주 좋아할 만한 그런 ‘조건’을 가져왔으니까.”



이거 참으로 기대되네. 사실 이쪽은  조건이 뭔지 이미 다 알고 있거든.
그리고 잠시 후 그녀가 생각했던 그림과는  반대의 상황이 펼쳐진다는 것도 알고 있지.


클라우스는 속으로 웃어대면서 다른 생도들한테 또 걸리면 피곤하니 주의해서 가자고 나타샤의 말에 넘어간 모습을 취해주었다.


‘좋아, 그렇게 방심하고 있어. 내가 순식간에 유혹해줄 테니까!’




방심하고 있는 남자보다 더 홀리기 쉬운 건 없다고 했다.
나타샤는 그렇게 생각하며 앞장 서서 제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조금은 부끄럽고, 수치스럽기도 했으나 벨라루스와 자신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남는 장사라고 스스로를 위한하면서 말이다.


‘역시 허당.’



방으로 가는 동안만이라도 헛된 망상 품는 것 정도는 괜찮잖아. 내가 봐줄게, 나타샤.
행복 회로 많이 돌려. 그래야 조금 있다가 더 괴롭히는 맛이 좋으니까.

생각만 해도 너무나 재미있을 잠시 후의 쇼를 생각하면서, 클라우스는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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