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2장 - 가지고 싶다면 싸워라
“상대방의 마법을 막아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같이 마법 공격을 가해서 본인에게 오기 전에 연쇄 반응을 일으켜 폭발시키는 것. 다른 하나는 방어 마법으로 막는 것. 당연한 말이지만 방어는 움직임이 제한되고 무엇보다 상대방에게 계속 공세를 유지시켜준다는 부분에서 딱히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방어가 최선일 때도 있겠으나 나는 방어보다는 반격 내지는 역공에 무게를 두고 강의를 진행하겠습니다.”
역시, 역시 남부의 악마다운 말이다. 방어보다는 공격으로 나서겠다니.
율리아와 세실리, 그리고 여러 마족들은 동시에 그렇게 생각했다.
단순히 군대의 지휘 능력만 뛰어났다면 마족 내에서 명백한 적인 클라우스를 추앙하는 세력이 결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군 지휘 능력은 그것대로 뛰어나고, 거기에 전선에서 적과 싸우는 실력도 출중하다.
강함의 척도를 순수한 무력에 두는 마족들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최고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남자가 바로 클라우스였다.
“율리아 생도. 당신에게 세실리 생도의 마력 화살이 날아왔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그 공격을 막았을 겁니까?”
“…저 역시 마력을 운용하여 제게로 날아오는 화살들을 터트렸을 겁니다.”
“상대방의 마법이 닿기 전에 터트린다, 그 말이죠?”
“네. 전투 마법에 사용되는 마력은 빠른 속도와 적절한 파괴력을 지니면 되기에 구성이 완벽하다 할 정도로 치밀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어느 정도 충격을 받으면 마력들이 연쇄 반응을 일으켜 폭발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세실리 생도와 내가 부딪쳤을 때에는 달랐죠. 폭발한 게 아니라, 그냥 마력이 완전히 부스러졌으니까요. 혹 그 이유는 알고 있습니까?”
율리아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원래 마법과 마법이 충돌하면 내부의 마력들이 얽혀 폭발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왜 그 날 세실리의 공격이 완전히 바스러졌는지, 율리아도 의문이었다.
“상대방의 마법을 도중에 막아내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소모한 마력과 비슷한 정도의 마력으로 반격하여 막아내는 것이 당연한 것이죠. 하지만 난 아주 최소한의 마력만 사용했습니다. 상대방의 몸에 적중한다고 해도 해봤자 타박상에서 끝날 정도의 밀도로요.”
“그게 가능한가요? 자칫 역으로 마력이 흡수되어서 최악의 경우 상대의 마법이 더 강해질 수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해서 중요한 건 상대방의 마력이 어떤 구조, 얼마만큼의 밀도를 가지고 있느냐. 그것을 파악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마법의 중심부를 타격하는 겁니다. 상대방이 자신의 마력을 뽑아내 생성하고 날려 보낸 마법을 그보다 훨씬 더 적은 마력으로 무위로 돌리는 겁니다.”
무척이나 간단하게 들리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님을 율리아와 세실리, 그리고 마법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생도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상대방의 공격이 자신에게 날아오는 데에 한 세월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길면 10여 초, 짧으면 수 초 이내로 바로 날아오는 게 마법이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방의 마법을 파악하고, 간파하고, 그 중심부를 노려 공격까지 한다는 건 재능, 노력, 그리고 엄청난 경험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세실리 생도의 마력 화살이 폭발하지 않고 바스러진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 마법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중심부에 타격이 가해졌고, 연쇄 반응이 일어날 마력들이 깨졌으니 당연히 부스러기가 되어 흩날릴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런 엄청난 고난이도의 기술을 클라우스는 전혀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듯.
너희들도 노력만 한다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듯 평온한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특히 율리아. 너는 아마 머지않은 시간 내에 이걸 마스터하겠지.’
사실 이 기술은 율리아가 처음 고안하여 이후 마족들이 2차 대륙 전쟁에서 써먹던 것이다.
눈썰미가 좋으며 마법에도 능통한 재능 있는 이가 엄청난 훈련을 거쳐야만 할 수 있는 일을 기어코 준비시켜 전쟁에 내보냈고 그들은 서부 연합을 박살내는 데에 큰 공을 세운다.
그렇다면 왜 지금의 율리아는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냐고?
이 기술은 그녀가 숙부의 사주로 인해 끔찍한 일을 당한 뒤 눈에 핏발을 세우고 이를 갈며 복수하기 위해 만든 수많은 방법 중 하나였으니까.
아직 대륙의 평화이니, 서부와 동부의 연합이니 생각하는 이 시절에는 고안조차 하지 않은 시점이다, 이런 말이었다.
“너무 어렵다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돌려서 보면 최고의 기술입니다. 전투 마법에서 더 적은 양의 마력으로 더 큰 마력을 잡아먹는 것만큼 좋은 게 없으니까요.”
“….”
“물론 여러분들에게 이걸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보여준 것, 그리고 설명해준 부분은 어디까지나 전투 마법의 최고 효율을 알려주기 위한 일환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생도 중 대부분은 아직 전투 마법과 친하지도 않은 이들이 많으니까요.”
언뜻 들으면 생도들에 대한 무시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몇몇 생도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딱히 별 다른 생각이 없는 표정이었다.
눈앞에 서있는 교수가 보통 교수인가? 전투 마법으로 마족들과 일선에서 싸우던 클라우스다.
당장 상대방의 마력 화살을 조그마한 응어리 하나로 바스러트린 남자다.
자신들을 무시할 자격이 있다, 그래도 되는 남자다, 그럴 만한 오만함이 허락된 자다.
강의실에 앉아있는 생도 대부분은 클라우스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했다.
‘건방진 평민 주제에 감히.’
물론 소수의 인간 귀족 생도들은 여전히 평민 주제에 전장에서 공 좀 세웠다고 오만불손하기 짝이 없는 남자라고 여겼지만 말이다.
“시간이 벌써 다 되었군요. 첫 강의 시간이기도 했으니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생도들이 자리에서 일어서서는 강의실을 나선다.
종족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발걸음을 옮기며 그들은 전쟁 영웅 교수에 대해서, 그리고 그가 오늘 설명해주었던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뭐야, 이게 가능해? 아무리 화력이 약한 전투 마법이라지만 그 짧은 시간에. 찰나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그 시간에 상대방의 마력을 읽고 그 중심부에 타격을 가한다니.”
“…허풍이라고 보기에는 이미 증거가 확실하잖아요.”
“맞아. 설마 마족이 그 클라우스 사령관… 아니, 클라우스 교수를 상대로 설렁설렁 했다던가 입을 맞춰서 일을 벌였을 리도 없고 무엇보다 그 세실리 레블랑, 한 성격 하는 여자잖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자칫 중심부를 격파하지 못 한다면 시간을 낭비하게 되고 그대로 상대방의 마법 공격에 적중 당하게 되는 것, 그게 클라우스의 기술이 실패했을 때 감당해야 할 리스크라고 할 수 있었다.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냥 상대방과 비슷한 강도의 마법을 날려서 파괴하면 훨씬 더 안전할 텐데.
‘그렇게 해서는 죽어도 성장 못 한다, 머저리들아.’
1차 대륙 전쟁에서는 그래도 어떻게 버티긴 하던 서부 연합이 왜 2차 대륙 전쟁에서는 손도 못 써보고 영혼까지 털리는 굴욕을 당했을까.
위험을 감수하고 강해지려는 놈이 단 한 놈도 없어서였다.
그런 부분에 있어 클라우스는 마족들이 훨씬 더 낫다고, 그들에게 100점 만점을 주고 싶었다.
당장 자신이 일러준 이 기술도 율리아는 완벽하게 마스터하고 세실리도 꽤나 훌륭하게 펼쳐내며 마족들의 우수함을 그에게 증명했었다.
그 외에도 은근히 많은 수의 마족들이 서로가 서로의 연습을 도와주며 기본을 쌓게 되었고 이후 그걸 본국으로 돌아가 더 발전시키게 된다.
반대로 서부 연합은, 처음에는 생도들이 나름 열심히 하기는 했다.
마족들에게 밀리기 싫으니까, 전쟁 영웅이 하는 말이니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허나 클라우스의 영향력이 커지는 걸 거의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싫어했던 인간 측, 특히 왕국과 제국의 귀족들이 갖은 수를 쓰며 그걸 깎아내렸다.
저명한 마법 전문가들에게 그의 기술이 허무맹랑한 것이라며, 특출한 몇몇 이를 제외하고는 실행하는 것이 자살 행위와 다름이 없다고 하며 흠집을 내기 바빴다.
‘그래서 내가 서부 연합을 쿨하게 포기한 거지. 이것들은 답이 없어.’
어쩌겠는가, 이것이 자신이 소설에 박아둔 설정인데.
서부 연합은 글러먹었고, 동부 마족들은 반대로 팔자 필 운명이다.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파도다. 저항하고 싶어도 결국 쓸려가게 된다.
‘너희는 억울해하면 안 돼. 내가 너희들 한 번 구해보겠다고 몇 번을 뒈졌는데. 결국 돌아오는 건 배신, 배신, 또 배신이었지.’
속으로 혀를 차며 클라우스가 막 복도로 나가는 순간이었다.
“클라….”
“클라우스 교수님.”
* * * * * * * * * *
율리아는 클라우스의 첫 강의부터 큰 충격을 받았다.
왜 저런 생각을 아무도 하지 않았을까? 그냥 적의 마법을 터트리면 된다고, 그게 가장 효과적이고 안전해서 그렇게 고정이 되었던 것일까?
클라우스가 고안하고 사용하던 기술은 위험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다.
상대가 50의 마력을 뽑아내 공격을 할 때 원래는 최소한 40의 마력을 소모해야 막아낼 수 있었다면 클라우스의 기술은 20, 아니 10으로도 충분히 그 과정을 대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천재, 하늘이 내린 천재다. 인간으로 태어나면 안 됐는데! 마족으로 태어나야만 했는데!’
분했다, 너무나도 분했다.
저 남자를 평민이라고 천대하고 무시하는 인간 귀족들이 당장 제 곁에 앉아있다.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그 주둥이를 찢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해졌다.
복에 겨운 줄도 모르고, 하늘이 너희에게 선물을 줬음에도 그걸 모르고 있다.
자신은 그걸 아는데, 저 남자가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인물임을 아는데.
어떻게 자신의 곁으로 들일 방법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마왕을 취하게 해준다는 조건에도 무슨 애를 보듯 반응했던 클라우스이지 않은가.
‘…아니, 아니야. 차라리, 차라리 잘 된 것일 수도 있어.’
마족으로 태어났으면 숙부의 눈에 먼저 띄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왕이 아니라 마왕의 숙부를 주인으로 모시며 자신을 적대시하는 자로서 틈만 나면 자신을 죽이려고 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차라리 인간인 것이, 평민인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 척 하고 있지만 분명 저 남자도 자신처럼 안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존재할 것이다.
능력이 있음에도, 재능이 있음에도, 공을 세웠고 그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데도 기어코 자신을 밀어낸 인간들에게, 왕국에게 좋지 않은 마음이 있을 것이 확실하다.
‘무조건, 무조건 내 사람으로 만들 거야.’
어쩌면 이틀 전 바보 같은 모습을 보였던 자신을 순순히 보내준 이유는.
아마 자신과 클라우스 본인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의 모습, 거기에서 동질감을 느꼈던 것일까.
“시간이 벌써 다 되었군요. 첫 강의 시간이기도 했으니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클라우스가 강의 종료를 알리자 율리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확신이 든다, 저 남자를, 저 인간을 반드시 내 사람으로 두어야만 한다는 것.
그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다. 그 어떤 마족보다도 더욱 충실하게 자신을 보좌할 것이다.
설령 클라우스는 그런 마음이 없다고 해도 자신이 그렇게 만들어야만 한다.
충성의 대상이 자신이 되어야만 한다, 다른 누군가가 되는 꼴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욕심이 난다. 탐이 난다. 가지고 싶다, 미치도록 가지고 싶다.
일단 한 번 발동하면 무시무시하다는 마족들의 탐욕, 그 욕망에 불이 붙었다.
마왕이라서 당연히 다가오는 이들, 혹은 충성을 바치겠다는 이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가 이렇게 강렬히 원했던 이는 거의 없었다, 아니 아예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가지고 싶었다. 저 전쟁 영웅을 자신의 밑에 둔다면 그 파장은 엄청나리라!
“클라우스 교수님….”
대부분의 생도들이 강의실을 빠져나가고 이제 클라우스도 막 강의실을 나서려고 한다.
그에 율리아가 클라우스의 이름을 막 부르려는 순간이었다.
“클라우스 교수님.”
자신보다 더 큰 목소리, 그리고 자신과는 다르게 아예 클라우스에게로 나는 듯이 다가가는 여인이 하나 있었다.
‘뭐야.’
어안이 벙벙했다, 자신이 노리고 있던 뭔가를 눈앞에서 가로채가는 자라니.
율리아는 어이가 없어서는 고개를 돌려 클라우스에게로 다가가는 여성 생도를 바라봤다.
생도복이 꽉 끼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에서 실행한 것인지.
이틀 전의 자신처럼 생도복의 단추를 가슴골이 다 보이도록 풀어낸 여성 생도.
거기에 굉장히 짧은 치마는 여인의 육감적인 하체를 고스란히 다 드러내고 있는 중이었다.
“…뭡니까, 나타샤 생도.”
“잠시 나눌 이야기가 있는데, 괜찮으신가요?”
반짝이는 금발이 찰랑거리며 사르르 녹아내린다.
화사한 미소를 지은 채 그렇게 말하는 이는 분명, 분명 요정이었다.
그렇게도 도도하고 또 재수 없다는 요정 여인이 아주 그냥 살살 녹아내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
율리아는 두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두 눈동자에서 시퍼런 안광을 번뜩였다.
저 귀쟁이 년이 감히 누구한테 집적거리는 거야! 라고 속으로 외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