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1장 - 교수입니다. 전쟁 영웅이 아니라.
세실리 레블랑, 대륙 동부를 아우르는 마족 중에서도 내로라하는 레블랑 가문의 막내 딸.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형제자매들이 여럿 있었기에 차기 가주를 노리는 투쟁에서는 자연스레 밀려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능이 없냐면 결코 그렇지 않았다.
제 막내 동생의 자존심을 세워주려는 목적도 있겠으나 세실리의 형제자매들은 이리 말했다.
그 아이의 마법 재능은 분명 자신들보다 뛰어나다고, 만만치 않은 막내 동생이라고 말이다.
“으앗!!”
그런 레블랑 가문의 이들이 지금 이 장면을 본다면 과연 뭐라고 할까.
아마도 ‘저건 사기야!’ 라고 속으로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당장 세실리처럼 말이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잖아!’
자신의 마법을 눈앞의 인간 남자, 클라우스는 너무나도 간단하게 파훼해냈다.
마법에 재능이 있는 그녀이기에 대번에 눈치를 챘다, 그건 단순히 막아낸 수준이 아니다.
그랬다면 최소한 마력과 마력이 맞물려 폭발이라도 일었을 텐데 그러지도 않았다.
마치 어른이 애들 손목을 꺾어서 제압하듯 그냥 억눌러버렸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에 반해 세실리는 클라우스의 마법을 전혀 막아내지 못 했다.
아무리 두꺼운 마력 방벽을 세워도 마치 그게 전부냐고 비웃듯이 마력으로 뭉클거리는 응어리가 달려들어서는 그걸 완전히 박살내버렸다.
심지어 힘조차 잃지 않은 채 세실리를 노리고 달려들었기에 그녀는 몇 번의 방벽을 세우다가 그마저도 포기하고 이리저리 몸을 틀어 회피하는 데에 전력을 다해야만 했다.
‘우아아아앙!’
자신과 마찬가지로, 클라우스가 꺼내든 마력 응어리는 딱 둘.
하지만 결과는 자신과 정반대, 그 두 개의 마력 응어리가 자신을 철저히 유린하는 중이었다.
“교, 교수! 님!! 자, 잠! 으아아앗!”
숨이 턱 밑에 차오를 정도로 피하고 또 피하는 중이었기에 말하는 것조차 쉽지가 않았다.
자신이 졌으니까, 남부의 악마라 불리던 당신에게 다시는 덤비지 않을 테니까 제발 그만해달라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마력 응어리는 그 말을 할 몇 초의 시간조차 주지 않고 그녀를 몰아붙였다.
단 3분, 클라우스의 공격이 시작 된지 고작 3분 만에 세실리는 그야말로 한계까지 몰렸다.
“아?!”
그러다가 다리에 힘이라도 빠진 것인지 세실리는 균형을 잃었고 마력 응어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녀에게로 날아들었다.
이 다음 벌어질 일은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세실리가 입술을 깨무는 순간이었다.
퍼억!-
“꺄악!”
갑자기 복부에 엄청난 충격이 전해지면서 말로 표현 못 할 고통이 치고 올라왔다.
마족의 명망 높은 레블랑 가문의 막내딸이라는 자리에 걸맞지 않은 새된 비명이 울려퍼졌다.
배에 일격을 허용한 세실리는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다가 간신히 멈출 수 있었다.
“콜록! 콜록! 아흐윽!”
“엄살 부리지 마세요. 만약 마법 공격에 적중 당했다면 바람구멍이 났을 테니까요.”
세실리의 배에 꽂힌 건 마력 응어리가 아니었다.
도대체 어느 틈에 접근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클라우스의 주먹이 대신 꽂힌 것이었다.
덕분에 세실리는 마력 응어리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클라우스는 자신이 날려 보냈던 응어리를 다시 회수해서는 제 마력으로 되돌렸다.
“….”
“….”
생도들은 다시 한 번 침묵에 휩싸였다.
10분도 안 되는 시간동안 클라우스는 한 명의 인간 교수, 한 명의 마족 생도를 침몰시켰다.
심지어 모두가 마법하면 알아주는 실력을 지닌 이들이었는데 가차 없이 박살낸 것이었다.
“이 정도면 제가 그냥 잘 싸우는 병사들 좀 지휘해서 성공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문에 대한 답으로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서 제 강의를 신청할 이유도 생기겠고요. 이런 교수가 가르치는 전투 마법 강의, 생도 여러분들은 궁금하지 않습니까?”
자존심 높은 생도들, 그리고 제 잘난 맛에 사는 교수들.
그들 모두에게 확실한 경고를 날려주었고 자신의 강의 홍보까지 완벽하게 해냈다.
이 정도만 해도 남는 장사라고 할 수 있는데, 거기에 하나가 더 걸려들었다.
“아흑! 흐으윽….”
지금이야 아파서 눈물 쏙 빼고 있지만 나중에 가면 아마 좋아서 눈물을 줄줄 흘릴 것이다.
얼른 엉덩이를 때려달라고, 보지를 마구 두드려 달라고, 욕하고, 거칠게 밀치고, 그렇게 막 대해달라고 반쯤 빌면서 말이다.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레블랑 가문의 막내딸, 고귀한 가문의 여식이라는 저 세실리라는 여자가 사실 진성 마조히즘 환자라는 사실을.’
가족도, 친우도, 심지어 세실리 본인조차 몰랐던 사실이다.
그 성적 취향이 깨어나고 또 각성하는 건 어디까지나 클라우스가 개입하여 그 성벽을 완전히 뒤틀려서 분출시킬 때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세실리를 품기로 결정한 회차에서 클라우스는 그런 마조 성향을 한 번도 놓치지 않고 일깨워서는 매일 밤마다 그녀를 살살 괴롭혔다.
다른 이도 아니고 매번 자신을 죽이던 마족을, 그것도 내로라하는 명문가의 여식을 마구 괴롭히는 건 상상 그 이상의 짜릿한 쾌감을 가져다주었기에 클라우스도 대만족이었다.
지금도 굳이 배를 가격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 벌인 일이었다.
교수로서 먼저 대련을 신청한 생도에게 ‘교육’을 하는 자리이기에 아무 문제없는 행위.
그러면서 그녀 본인도 몰랐을 성적 취향을 두드려서 깨워주는 것까지.
‘완벽하다, 완벽해. 아주 예쁜 그림이야.’
원래 그는 이번 회차에서는 율리아에게만 집중하려고 했다.
마왕이니만큼 자신이 원하는 남자를 혼자만 독차지하려는 경향이 강했으니까.
잘 조교해두지 않으면 질투심에 눈이 돌아가서 다 죽일 가능성이 매우 높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이런 좋은 스킬을 가지고 순애물 찍는 건 등신 머저리 새끼나 할 짓이지.’
25회차에서 우연히 얻은 스킬, ‘훌륭한 선생’.
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각종 보조 스킬만으로도 여인들을 후리는 게 가능했다.
당장 나타샤에게 걸어둔 ‘열병’ 부터 미약 제조도 가능한 ‘연금술’, 그 외에도 아주 많다.
거기에 자신에게 완전히 의지하고 기대게 할 수 있는 최종 완성형 스킬인 ‘훌륭한 선생’ 까지.
이런데도 특출한 여인들을 차곡차곡 모으지 않는다? 이거야말로 고자 새끼라고 할 수 있다.
“흐윽, 흐끅….”
다른 교수들이라면 이제라도 세실리를 일으켜 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클라우스는 의도적으로 그녀를 무시한 채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던 생도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재차 말을 이었다.
“조금 전 세실리 생도의 마법이 전부 바스러진 이유. 마력과 마력이 만나면 그 반작용에 의해 크든 작든 폭발을 일으킨다는 기초적인 결과가 깨진 이유. 그게 궁금하다면 내 강의를 들으면 됩니다. 사흘 후 있을 첫 번째 강의에서,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주도록 하겠습니다.”
클라우스는 그 말을 끝으로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웅성거리는 생도들의 소리, 그 사이에 들리는 자신을 부르는 말에도 일체 반응하지 않는다.
이 이상 떠들고 약을 팔면 역으로 기껏 주입한 약빨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적당한 여운, 그리고 돌아서는 뒷모습이야말로 그 어떤 수식어보다도 훨씬 더 효과가 좋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휘적휘적 걸어가는 클라우스를 바라보며 특히 몇몇이 아주 깊은 눈길을 보낸 것이다.
인간 귀족 생도, 그리고 몇 없는 평민 생도, 요정, 수인, 그리고 마족 생도까지.
그 중에서는 당연히 마왕 율리아 아그네사가 가장 강렬한 눈빛을 띠고 있었다.
‘역시 사실이었구나. 오직 전투만을 위한 마법 운용의 실력자. 우리 마족들조차 함부로 할 수 없다던, 지휘 및 통솔부터 전투에 이르기까지 진정한 의미의 악마.’
그리고 의외로….
“끄으윽….”
아주 처참하고 비참하게, 영혼까지 탈탈 털린 세실리 레블랑.
명망 높은 가문의 마족으로서 다른 생도들이 보는 앞에서 이런 굴욕을 당했다면 분노와 치욕이 먼서 샘솟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런데 지금 세실리는 그 분노와 치욕, 그리고 고통보다도 더 강한 뭔가, 자꾸만 가슴 언저리에서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쾌감’ 으로 인해 혼란을 겪고 있었다.
‘크, 클라우스 사령관, 남부의 악마….’
분한데,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대놓고 수치스러운 일을 당했는데, 왠지 모르게 자꾸 웃음이 피어올랐다.
‘전투 마법 강의….’
다른 마족 생도들의 의견을 한 번씩 들어보고 결정하려고 했던 강의다.
이미 자신은 마법에 자신이 있으니 일단 부족한 부분을 메꾸기 위해 마법을 제외한 다른 강의에 집중하려고 했었던 세실리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도 모르던 뭔가에 눈을 떠버린 이상, 그리고 그걸 처음으로 자신에게 안겨준 이를 마주하게 된 이상 더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아직도 욱신거리는 배를 부여잡은 채로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선 세실리는 결정을 내렸다.
당장 내일 전투 마법 강의 소개 시간 때 수강 신청 종이에 자신의 이름을 적겠다고.
‘반드시 한 방 먹여주겠어!’
정말로 한 방을 먹여주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한 방 먹이려다가 제대로 한 번 더 맞고 싶은 것인지, 본인조차 확실하게 알지 못 하는 상황에서 다만 그렇게 결심하는 세실리였다.
한편, 클라우스는 당장 총장실로 불려가서 꽤나 호된 질책을 들어야만 했다.
귀족 교수를 병신 그 자체로 만든 것 때문에 자신의 위치가 흔들릴까 봐서? 아니면 명망 높은 마족 가문을 건드린 것 때문에 외교적 문제가 생길까 해서? 아니, 둘 다 아니었다.
루스칼 총장이 매우 화가 나서는 클라우스를 질책하는 이유는 이러했다.
“조심해야 할 것 아닌가! 자네의 실력은 내가 잘 알고, 자네가 더 잘 알아. 그나마 그 썩을 놈의 귀족 새끼는 사지마비로 끝이 났고, 세실리 레블랑 생도는 큰 부상이 없으니 망정이지! 아카데미 이틀부터 상대방을 해치면 안 되네! 여기는 전장이 아니란 말일세!”
“죄송합니다.”
“자네는 이제 아카데미의 교수일세. 손속에 적당함을 두게. 어찌 되었든 이 대륙 아카데미는 동부와 서부의 평화를 모색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야. 전장이 아니니 제발 클라우스 사령관. 아니, 클라우스 교수도 과한 날카로움은 버리게.”
과한 날카로움을 버려라, 참으로 어려운 주문이었다.
29번 뒈지고 이제 30회차에 들어섰다. 이쯤 되면 여유만만일 수도 있겠지만 아주 조그마한 틈이라도 자칫 방관하면 삐끗하고 어긋나기에 두 눈을 부라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귀족에게 당한 게 얼마고, 마족들에게 죽임을 당한 게 몇 번이며 요정과 수인들에게도 뒤통수 맞은 적이 꽤나 있는지라 긍정적으로 뭘 생각하거나 바라보는 건 사치에 가까웠다.
“후우.”
한숨을 내뱉은 루스칼 총장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내가 자네를 아카데미에 허락한 이유는 단순히 자네가 전쟁 영웅이어서, 전투 마법의 실력자여서가 아니야. 이곳에서 그대를 진정 받아줄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아보라는 이유에서 그대가 아카데미에 들어오는 걸 허락한 것이지.”
알고 있다, 루스칼 총장이 왜 자신을 아카데미에 들어오는 걸 허락했는지.
귀족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신분에 묶여 추한 자가 고귀한 척 하고 고귀한 자가 추해야만 하는 현실에 염증을 느껴 스스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온 이가 바로 루스칼이다.
그렇기에 그는 평민임에도 전쟁 영웅이 되었고, 전쟁 영웅임에도 결국 모든 것을 박탈 당한 클라우스를 돕고 싶어 했다.
몇 안 되는 진정한 귀족, 그게 루스칼에 대한 클라우스의 평이었다.
“오늘 사건으로 인해 자네에게 경계심을 품은 이들도 있을 테고 반대로 강렬한 호기심을 느낀 이도 있겠지. 나쁜 일이지만 동시에 좋은 일일 수도 있겠어. 전쟁 영웅의 과거가 단순히 헛소문이 아님을 자네 스스로가 밝혀주었으니까 말일세.”
“앞으로의 강의 내용에 대해서 간단하게 보여준 것이니 수강생들도 늘어나겠죠.”
“…그 전쟁 영웅이, 남부의 악마가 돈에 혈안이 되었다는 걸 어느 누가 믿을까.”
“아무도 안 믿겠죠. 제 명령이라면 죽음이라도 불사하던 부하들조차 안 믿을 겁니다.”
클라우스의 농담에 루스칼 총장은 껄껄껄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잠시 그렇게 웃던 총장은 미소를 입가에 띤 채로 말했다.
“귀족 교수가 그리 된 건 걱정 말게. 내가 알아서 처리해줄 테니.”
“감사합니다.”
“대신 앞으로는 적당히 해주게. 안전 문제는 아카데미에 있어서 나름 민감한 사안이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일부러 군례를 올려 보이니 루스칼 총장은 ‘에끼! 이 사람아!’ 라고 장난 어린 질책을 했다.
그렇게 총장과의 면담을 마치고 총장실에서 벗어난 클라우스는 조금 전 생도들이 몰려있던 곳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다 있었는데, 그 여자만 없었지. 슬슬 열이 올라와서 방에서만 끙끙거리고 있겠군.’
과육이 알맞게 여물 때까지 기다리기가 좀 지쳐서, 살짝 자극을 가했다.
아마 지금쯤이면 그 자극으로 인해 아주 먹기 좋게 무르익었을 것이다.
더 놔두면 땅에 떨어져서 더러워질 테니 늦지 않게 그 과일을 따서 양껏 베어 물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