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화 〉1장 - 교수입니다. 전쟁 영웅이 아니라. (6/341)



〈 6화 〉1장 - 교수입니다. 전쟁 영웅이 아니라.

율리아 아그네사, 그 이름을 듣는 순간 클라우스는 수도 없이 마주한 여인임에도 불구하고 미친 듯이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두근거림 중 반은 가장 무섭고 두려운 존재를 만났다는 공포감으로 인한 것.
나머지 절반은 그 어떤 여인보다도 환상적인 맛을 자랑하던 존재에 대한 흥분으로 인한 것.

그 모든  뒤섞여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심장이 뛰고 마력이 요동쳤다.



‘…진정하자, 진정. 이렇게 마주한 것도 벌써  번인데 아직도 이런 반응이 절로 나오다니. 여러모로 참 대단한 여자란 말이야.’


미소로 바들거리는 입술을, 자꾸만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아내느라 고역이었다.
당장이라도 저 여인을 자빠트리고 자신의 물건에 박힌  앙앙거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매일 봐도, 매 시간 봐도,  분 본다고 해도 정말 질리지 않았던 장면들이었다.

같은 마족들조차 벌벌 떨며  눈 밖에 날까 두려워하던 여인을 안는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여인이 품에서 달콤하게 울면서  해달라고 조른다.
 따스하고 끈적한 속살을 자신의 물건으로 파내고 그곳에 자신의 정을 토해낸다.

상상만 해도 짜릿한 과거들이 떠오르니 자칫 평정심까지 잃을 뻔 했다.



“율리아 아그네사라면, 내가 아는 그 여인인가?”

클라우스의 얼굴에 피어오른  미소가 아니라 적의였다.
1차 대륙 전쟁의 서부 연합 남부 사령관, 그것이 저 여자가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일 테니 철저하게 그 모습으로서 시작해야만 했다.




“왕족들도 생도로 여럿 입학했다고 들었지만, 설마 ‘마왕’  들어왔을 줄은 몰랐는데.”
“아직 정식으로 마왕 자리에 오른 건 아닙니다. 클라우스 교수님.”
“어찌 되었든 결국 왕좌에 오르겠지. 전 마왕의 하나뿐인 자식이니까.”
“진정하세요. 전 이곳에서 마왕이 아닌 생도 자격으로 입학한 겁니다.”



싸늘한 눈빛으로 율리아를 응시하던 클라우스는 가볍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1차 대륙 전쟁의 전쟁 영웅에서 대륙 아카데미의 교수로 돌아왔다는  목소리와 말투를 원래대로 되돌렸다.

“생도로 들어왔다면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세요, 율리아 생도. 교수의 방에 함부로 몰래 들어와서 기다리는 생도는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아, 지금 하나 생겼지만요.”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 사정이 무엇인지 한 번 들어볼까요?”



들을 필요도 없다,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저 여자는 지금, 자신에게 붙은 감시를 떼어내고 몰래 찾아온 것이다.
자신의 강의를 듣기 위해서, 자신을 조종하려는 누군가를 피해서.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싶습니다.”
“이상하네요. 분명 아까 강의 소개 시간 때에는 자리에 없었는데.”
“다른 강의실에 있었습니다.”
“시간이 엇갈렸다면 걱정하지 마세요. 기회는 또 있으니까.”
“기회가 많다고 해도 교수님 강의실에는 들어가지 못 할 겁니다.”
“이유가 뭐죠?”
“말 못 할 사정이 있습니다.”

당연히 말 못  사정일 것이다.

명색이 차기 마왕이라는 율리아는 현재,  숙부한테 꽉 잡혀서는 그가 시키는 대로 행동해야만 하는, 그리고 일거수일투족이 모조리 보고되고 있는 굴욕을 겪고 있는 중이었다.

이렇게 자신을 몰래 찾아온 이유도 그렇다.
유리했던 전쟁을 통째로 뒤바꾼 연합의 전쟁 영웅, 클라우스.
그가 아카데미에 왔다는데 그 마족들의 군주가 될 자신이 그 인간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다.


그런 이유로 그의 강의를 허락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숙부는 당연히 거부.
정해진 강의만 들어가서 적당히 교육만 받으라는 것이 그의 뜻이었다.

‘그걸 따른다면 우리의 마왕님이 절대 아니지.’

숙부는 아카데미에 없다, 그리고 강의는 일단 한 번 선택하면 되돌릴 수 없다.
율리아는 그걸 이용해서 일을 벌인 것이다.
감시자들의 눈을 피해 직접 교수를 만나 강의를 신청하고 수락을 받아낸다.
그리 되면 그녀는 클라우스의 강의를 들을 수밖에 없다.

만약 그녀의 숙부가 거기에 반대하여 강의를 포기한다?
그렇게 된다면 당장 마족을 물어뜯고 싶어 하는 서부의 인간들과 수인, 요정들이 다 달려들어서는 예의도 모르는 무식한 종족이라며 실컷 까 내릴 것이 뻔했다.


“다만 교수님의 강의에 관심이 있는  확실합니다. 저도 전투 마법 강의를 듣고 싶습니다.”
“거절하겠습니다.”
“…이유가 뭐죠? 혹시 제가 마왕이라서 그런 건가요?”
“당신에게만 특혜를 줄 수 없습니다. 강의를 듣고 싶다면 다른 강의 수강처럼, 그리고 다른 생도들처럼 직접 강의 소개 시간에 내어지는 신청서에 이름을 쓰면 됩니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 그것조차 곤란하다는 겁니까?”
“그럴 만한 사정이….”
“무슨 사정이기에  대단하다는 마왕이 이리도 비밀스럽게 움직이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혹시 누군가에게 감시라도 받고 있습니까? 마치 겁먹은 토끼 같군요.”



그녀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 중 하나는 그녀의 마음에 들기 위해 그녀에게 유한 모습을 보인다거나 특별한 대우를 한다는 것이었는데 오히려 그런 행동은 역효과를 많이 불러냈다.

율리아는 마족이다. 그것도 마족들의 정점에 서는 군주, 마왕이다.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아부하는 쓰레기와 달라붙어서 단물 좀 빨아먹으려는 자를 골라낸다.

그리고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그 마왕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번째 상황이었다.
네 사정이 뭐든 상관없다, 마왕이 아니라 생도로 이곳에 왔다고 했으니 생도로 대우한다.

“내 강의를 듣고 싶다면 다른 생도들처럼 종이에 이름을 적으세요. 그러면 됩니다.”
“….”

거부를 당했다, 심지어 비웃음과 조롱에 가까운 것까지 얻었다.
어지간한 마족이라면 분노를 참지 못 하고 으르렁거리거나 그냥 나가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율리아는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상대를 바라보던 그녀는, 어느 순간 몸을 날리더니 순식간에 클라우스에게로 달려들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정말 깔끔한 움직임이었다.


이대로 공격을 가한다면 치명상을 허용할 수도 있었으나 클라우스는 여유만만이었다.
율리아가 노리는  제 목이 아님을 많은 경험을 통해 진작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샤락!-

한 줄기 바람이 일고 잠시 후 가볍게 바닥에 안착한 율리아의 손에는 조금 전 클라우스가 들고  수강 신청생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가 들려있었다.

일부러 가져가기 어렵게 하려고 책과 책 사이에 껴두었음에도 용케 그걸 채갔다.



“이름을 적으라, 분명 그리 말씀하셨죠.”
“그래요.”
“그러면 교수님의 강의를 들을 수 있다고요.”
“맞습니다.”

 말까지 들은 율리아는 거침없이 자신의 이름을 적어서 클라우스에게 내밀었다.


아마 오늘의 일로 인해 숙부의 험악한 반응을 살 것이고, 그로 인해  노골적인 위협과 경계심이 담긴 눈길을 받을 텐데도 율리아가 이런 결정을  이유는 오직 하나.

‘자신의 힘으로 숙부를 제끼겠다는 거지. 하여튼 전투 종족 마족답다, 다워.’



언젠가 제 품에서 앙앙거리는 그녀에게 그날 일에 대해서 물었더니 율리아는 당신에게서 전투 마법을 익혀  손으로 숙부를 죽이려고 했었다, 그렇게 답했다.

차라리 자신을 유혹해서 써먹으려는 계획이라고 했다면 훌륭하다고 박수라도 쳤을 텐데.
숙부한테 워낙 당한 게 많아서 복수는 반드시  손으로 하겠다던 율리아였다.



“쓸데없는 참견 내지는 의미 없는 걱정일 수도 있겠는데.”
“…?”
“네 그런 행동으로 인해 너를 경계하는 누군가는 더욱 노골적인 적대감을 보낼 거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힘들어지는  너 하나뿐만이 아니야. 그나마 남은 네 사람들도 힘들게 하지. 참고로 이건 경험자로서 해주는 말이다. 클라우스 교수가 아니라, 너희가 기억하는  악마, 서부 연합의 클라우스 사령관으로서 하는 말이라고.”


위에 있는 것들은 제 뜻대로 아래가 움직여주지 않으면 분노한다.
클라우스 본인도 그와 똑같은 일을 1차 대륙 전쟁에서 벌였고 또 겪었다.

물론 그들 눈에 나서 강제로 전역 조치되어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벌인 일이고 또 감수한 부분이기는 했으나 어찌 되었든 독단적인 언행은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이상이 전쟁 영웅 놈의 참견질이었습니다. 이제 다시 아카데미 교수로서 마지막으로 확인하겠습니다, 율리아 생도. 정말 제 강의를 들을 생각입니까? 마왕으로서 부담이 있을 텐데요.”
“마족 생도들도 많이 신청했다고 들었습니다.”
“마족과 마왕은 다릅니다. 느낌부터가 달라요. 그들은 한 때 가장 강력했던 적에게 뭔가를 배워서 동족을 위해 쓴다는 말이라도 할  있지만 당신은 다릅니다. 왕이란 존재는 아무리 뛰어난 적이라도 함부로 띄워주지 않아야 해요. 그걸 모를 정도로 미련해보이지는 않는데.”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강행하는 걸 보면 이유가 있겠죠. 뭐, 좋습니다. 나야 내 강의를 듣는 생도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받는 급여가 더 세지니까요.”


급여가 세지다,  말에 율리아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진다.
율리아가 품고 있는 의문도 이미 알고 있던 클라우스는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왜요. 전쟁 영웅이란 놈이 돈이나 밝히는 장면이 충격입니까?”
“….”
“어쩔  없습니다. 쓸모없으면 버림받는 건 당연하니까.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더는 인간 왕국이 필요하지 않다고 여겼기에 내쳤으니 살 길을 찾아야죠. 전쟁 영웅이라고 해서 돈이 썩어나는  아니니까요. 오히려 더 가난뱅이라고 해야 맞을 수도 있겠군요.”

클라우스는 율리아가 내민 종이를 받아서는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볼일이 끝났으면 이제는 그만 나가달라고 축객령을 내렸다.



“….”

율리아는 별 다른 말없이 발걸음을 옮겼고 문고리를 잡았다.
그러다 말고 잠시 고개를 돌려서 클라우스를 바라본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아뇨, 아닙니다. 없습니다, 교수님.”
“그러면 그만 나가보세요, 율리아 생도.”


그 말에 율리아는 천천히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섰다.
곧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점점 멀어지는 여인의 발걸음 소리를 확인한 클라우스는 여태 참고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을 웃어대던 그는 마족 여인이 사라진 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아아, 진짜  여자 흔드는 건 언제 해도 재미있단 말이야.”




여자를 후리는 스킬을 얻기 전까지, 율리아 아그네사는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무슨 수를 써도, 어떤 짓을 해도 그녀가 대륙을 집어삼키는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서부의 모든 생명체를 싸그리  죽이는 것도 또한 막을  없었다.


절대 넘을 수 없는 벽, 결코 지나갈 수 없는 괴물, 그게 바로 율리아였다.



그런 여자를 몇 회차 전부터는 신나게 흔들고 또 따먹고 있다.
제 품에서 달콤하게 허덕이고, 멍청한 놈 모가지를 썩둑썩둑 자르는 무시무시한 폭군임에도 자신의 ‘벌려’ 한 마디에 바로 두 다리 쫙 벌리고  물건을 받아내는 여인이 되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몇 번에 걸친 확인 작업도 끝이 났다.
실패할 이유는 없다, 일부러 실패할 가능성까지 만들면서 모든 상황을 겪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대륙을 손에 넣은 여자를 뒤에서 조종하는 비선실세가 되리라.


‘일단 율리아를 내 강의에 넣는 데에는 성공했고. 조만간 그 소식을 들은 숙부인지 병신인지 하는 놈이 왕국 측에 은밀하게 사람을 보내겠지. 건방진 마왕 따먹을 기회를 주겠다고. 마족들은 침묵할 테니 알아서  즐겨보라고.’


아마도 그가 원한  인간들에게 강간당하고 완전히 망가져버린 인형 왕이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완전히 눈깔이 돌아가서는 인간 모가지는 무조건 싹둑 치기 하는 무시무시한 여자가 아니라 말이다.



‘그 새끼들은 일단 차차 조지도록 하고. 아직 정식으로 강의 시작도 안 했다.’

수준 낮은 저능아들이 불알 껄떡거리며 내 여자한테 들이대는 상상만 해도 구토가 치민다.
당장 생도들을 헤치고 가서 그 놈들을 손수 거세해주고 싶은데, 그리 하면 나름 중요한 이벤트가 사라지는 법이니 참아야만 했다.
이것도 전부 미래를 위한 일, 여러 번의 회차를 거치며 얻은 분기점이었다.




‘일단 당장 생각해야  일은… 내일 있을 전투 마법 시연 정도려나.’

강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건 사흘 후다. 그 사흘 동안은 생도들도 교수들도 자유 시간.

 타이밍에 몇몇 교수들은 자신의 우수성을 입증하기 위해 갖가지 지랄을 하게 되는데 그 중 한 귀족 출신의 인간 교수가 자신에게 시비를 걸게 된다.
대충 정리하자면 군을 지휘하는 사령관으로서는 인정할 수 있어도 전투 마법 부분에서는 허풍이 있는 것 같다고, 자신이 한 번 확인해야겠다고 염병을 떨었다.

당연한 것이지만 클라우스는 그런 등신 새끼에게 아량을 베풀 생각이 없었다.
한 번은 그 자리에서도 죽여 봤고 팔이나 다리를 평생 못 쓰게  적도 있었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해보면서 가장 적당한 처벌을 도출해낼 수 있었는데, 등뼈를 부러트려 그냥 깔끔하게 사지마비 걸리게 하는 것이었다.



‘뒈지면 귀족 죽였다고 시끄럽고, 팔다리는 복수하겠다며 자꾸 나타나서 귀찮게 하니까. 죽이지는 않되 작살을 내놓아야 직성이 풀리지.’

더해서, 율리아의 반응도  교수가 까불다가 등뼈가 아작 나서 게거품을  때가 가장 좋았다.

주제도 모르는 놈의 인생이 나락에 쳐박히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구경거리였다.




‘대충 그거 외에 다른 일이… 하나 남았군.’

아마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열병에 시달릴 한 요정 여인.
전쟁 영웅이라는 인간 남자를 제 가문으로 데려가려고 했다가 역으로 자신이  남자에게 채여서는 완전히 애완동물이 되어버릴 벨라루스 가문의 도도하신 아가씨.


나타샤 벨라루스를  한 번 즐겨볼 시간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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