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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화 〉1장 - 교수입니다. 전쟁 영웅이 아니라. (4/341)



〈 4화 〉1장 - 교수입니다. 전쟁 영웅이 아니라.

강의실을 나서 복도를 걷는 남자.
그 뒤로 수많은 생도들의 시선이 곳곳에서 날아들고 있었다.

누구는 영 불만이라는 기운을 담아서, 다른 누구는 호기심 어린 눈빛을 반짝이며, 또 다른 누구는 꽤나 선망 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중임을 클라우스는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보나마나 인간 생도들은 평민 주제에 나댄다고 생각할 테고 요정 생도나 수인 생도들은 전쟁 영웅이 왜 여기서 교수 짓을 하고 있을까 궁금한 게 전부겠지.’



참으로 웃긴 현실, 그리고 좆같은 현실이다.


분명 자신은 1차 대륙 전쟁에서 인간, 요정, 수인,  연합을 위해 싸운 참전자다.
그런데 이쪽을 향해 호감을 가진 눈빛을 보내는 이들은 연합이 아닌 동부의 마족들이 전부다.


정작 자신이 지켜낸 땅에서 처먹고 싸고 자고 하는 놈들은 자신을 무슨 구시대의 흉측한 유물 보듯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마 지금 이 상황이 처음 겪는 것이었다면 아주 제대로 꼭지가 돌아버렸을 것이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평민이라고 밀어내고, 전쟁 영웅이라고 견제하고, 참 지랄도 이런 지랄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내가 미쳤지. 왜 인간 새끼들한테 그놈의 평민과 귀족 계층을 만들어 줘서는.’



평민은 죽었다 깨어나도 평민, 귀족은 어지간한 큰 죄를 짓지 않는 이상 귀족.
 선을 넘을 수 있는 인간 중에서는 아무도 없다.
설사 마족들의 손에서 서부를 구하고 연합을 구한 이라고 해도 말이다.


어찌나 그 의식이 팽배한지 나름 괜찮은 조연이라고 할 수 있었던 여인들마저 평민하면 당연히 자신들을 위해 희생하고 받치는 존재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내가 굳이 평민으로서 회귀하는 걸 고집하는 이유?’

자신들 잘난 맛에 사는 년들, 그러나 마왕의 발톱에 있는 때보다도  한 년들.
그런 것들에게 더는 신경 쓰고 싶지도 않고 그럴 가치도 느끼지  하니까.

마왕도 자신처럼 인간 귀족들의 그 특권 의식에 역겨움을 느꼈고 귀족들을 적대시했다.
물론 단순히 재수 없고 짜증만 나서가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마왕은 바로 이곳, 대륙 아카데미에서 은밀히 사주를 받은 인간 귀족들에게 붙잡혀 가랑이가 벌어진 채로 조리돌림을 당하게 된다.


그녀가 비로소 진짜 마왕 노릇을 하게 된 후 서부 전체, 특히 인간들에게 병적인 적개심을 가지게 된 건 아마 그 사건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원래 하던 대로 그 새끼들부터 찾아서 조질까.’


그 여자는 나만의 것, 나만의 여자, 나만의 트로피다.
오직 자신만이 그녀를 자빠트릴 수 있고, 그 희고 고운 가랑이를 벌릴 수 있고, 명기라 불려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보지 안에 정액을 뿌려댈 수 있다.


그걸 건드리는 놈은 모가지를 뽑아서 술잔으로 만들 것이다, 여태까지 그렇게 해왔다.



해서 이번 회차에서도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그것들부터 찾아내 족칠까 생각하던 클라우스는 일단  시기를 조금은 뒤로 조절하기로 했다.

적절한 위기는 항상 자신에게 이득으로 돌아왔으니까, 수십 번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으니까.



“클라우스 교수님.”



아까부터 눈치를 살살 보며 뒤를 따르던 여인 하나가 생도들이 비교적 적어지는 복도의 귀퉁이에서 비로소 말을 건다.

본인이 알던 요정들은  눈치 안 보고 좋은 말이든 싫은 말이든 휙휙 내뱉던데.
역시 자신이 작성해둔 ‘먹기 좋은 여자 10선’ 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나타샤다웠다.


“무슨 일인가요, 나타샤 생도.”
“수강 신청을 한 생도들의 명단입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남았다가 가져왔습니다.”
“그 자리에 두면 교수들을 보조하는 이들이 와서 제게 전달했을 텐데.”
“전쟁 영웅이신 교수님과 더 많은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요.”



역시 나타샤, 말을 하는 거나 제 의견을 피력하는 데에 있어서 거침이 없는 여자다.
다른 생도들이 보면 학기 첫날부터 교수에게 살랑살랑 꼬리를 흔드는 요정년으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음에도 이러는 걸 보면 확실히 대단하다 싶었다.

“마침 점심시간이네요. 같이 식사라도 하시는  어떨까 하는데요.”
“학기 첫날부터 교수와 생도가 같이 식사를 한다. 보기 좋은 그림은 아닐 텐데.”
“개의치 않습니다. 마음껏 떠들라고 하죠. 참고로 저는 그 역겨운 인간들이 뭐라고 하든, 더러운 들짐승들이 무슨 말을 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요정 생도들 사이에서 감히 제 뒷담을  이는 없으니까 말이죠.”




역시 서부 연합, 아주 콩가루 집안이 따로 없다.
 힘겨웠던 전쟁에서 이긴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고 자빠졌다.

이래서 2차 대륙 전쟁에서 동부 마족들에게 찍소리도 못 해보고 싸그리 뒈졌지.




아마  나타샤가 그저 그런 가문의 여자였다면 대충 상대해주고 멀리했을 것이다.
아무리 먹기 좋은, 야들야들한 살결을 지닌 여자라고 해도 안이 썩었으면 탈이 나는 법.


하지만 이 요정 여자는 몸도 몸이지만 그보다  먹음직스러운 것이 있었다.

‘요정 사회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가문의 일원.’



요정들은 왕이 없다. 대신 각 가문들이 모여서 대표를 선출하는 방식을 택했다.
 수장을 많이 배출해낸 가문이 그들 사이에서 으뜸이라 할 수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벨라루스, 눈앞의 나타샤가 태어난 가문이었다.


마왕을 차지하여 뒤에서부터 조종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기 전부터.
자신은 나타샤를 거의 버리지 않고 항상 알맞게 기용해왔다.


능력도 좋고 외모도 아름답고 적당히 자존심 세우다가 져줄 줄도 알고 무엇보다 자신과의 속궁합도 꽤나 잘 맞는 축에 속하는 여인이었다.
제 물건을 앙, 하고 물며 속살이 꾸물거리는 게 어찌나 쾌감을 주던지 벌써부터 물건에 피가 확 쏠리는 것 같았다.




‘한동안 여자를 곁에 두지 않아서 좀 고픈데, 어찌 할까.’

1차 대륙 전쟁의 전쟁 영웅 코스프레 할 때는 조그마한 틈도 잡히면  되었다.
그런 이유로 여자들을 멀리 했기에 항상 그 때만 되면 타의로 금욕 생활을 해야 했다.

무슨 짓을 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세상에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먹을 만한 년은 죄다 먹어 치우면서 앙앙 울게 만드는 것이었던 만큼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래도 불쾌한 소문이 돈다면 단순히 전쟁 영웅에 대해서 호기심 많은 생도가 질문을 하고자 잠깐 친한 척을 한 것이라고 해명하면 그만입니다. 교수님도 아시잖아요? 지금 이 아카데미에서 어지간한 왕족보다도 더 많은 관심과 눈길을 끄는 이가 바로 당신이라는 것을.”


클라우스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타샤는 한 발자국 더 다가왔다.
그리고 식사는 철저히 인간인 클라우스의 식성에 맞춰 자신이 따를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속삭이면서 동시에 은근하게 자신의 매력까지 어필한다.


일부러 풀어낸 건지, 아니면 답답해서 잠시 풀어둔 것인지 모를 상의 위쪽으로 탐스러운 흰색 가슴이 언뜻 보이고  살결에서 야릇한 향이 피어오른다.
슬쩍 머리를 뒤로 넘기니 드러나는 고운 목덜미는 당장이라도 부드럽게 깨물어 이 여자가 내 것이라는 표시를 남기고 싶을 정도의 욕망을 선사하고 있었다.


“…궁금하다는 이야기가 과연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군요.”

물론 방심하지는 않는다.
어찌 되었든 나타샤는 벨라루스 가문의 일원이며 속에 능구렁이 몇 마리는 있는 요정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안아서 완벽하게 제 것으로 만들기 전까지는 남자를 은근히 깔보던 여인이니 미쳤다고 호감이 들어서 자신에게 다가왔을 리는 없다.


‘꿍꿍이가 있는 거지.’



전쟁 영웅이니까, 교수이니까, 부탁할 수 있고 빼먹을 수 있으니까 접근하는 것이다.


그리고 클라우스는 매번 그 접근을 허락해주었다.
어차피 잡아먹는 건 그녀가 아니라 자신이니까.


“점심을 먹으면서 천천히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과거의 전쟁 영웅이자 현재의 아카데미 교수.
그리고 요정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가문의 여인인 생도.
두 남녀는 발걸음을 옮겨 복도를 지나 야외로 향하기 시작했다.




“….”



그 모습을 한 마족이 유심히 지켜보다가 이내 생도들 사이로 사라졌다.
한창 나타샤와 이야기를 나누던 클라우스는 그 기척이 사라진 것을 깨닫고는 속으로 혀를 찼다.

‘허술하다, 허술해.’



꼬리가 붙었음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쥐새끼는 일단 잡아 족치는 게 그의 신조이나 이번에는 특별히 넘어가 주기로 했다.

따지고 보면 방금 사라진 놈은 단순히 자신을 귀찮게 하는 쥐새끼라기보다는 아주 탐스러운 여인을 자신에게로 데려다 놓는 미끼 역할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앉으시죠.”

대륙 아카데미의 생도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다.
수인들은 전원이 끗발 있다 하는 부족의 후계자들이었고 요정들 역시 이름 있는 가문들의 이들이었으며 마족들도 대부분이 귀족이고 인간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인간 생도 사이에 아주 드물게나마 평민이 몇 있으나 그들 중 또 대부분은 1년을 버티지  하고 스스로 이탈하고 만다.
이유는 당연히, 인간 귀족 생도들의 따돌림, 무시, 폭력, 협박 등이었다.


지금도 점심시간이 되니 다들 정원이나 풀밭 위에 간이 의자를 두고 앉아서, 혹은 미리 마련된 테이블에 모여서 점심식사를 즐기거나 티타임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보였다.
알게 모르게 서로를 견제하면서,  누구와 손을 잡고 누구를 몰아낼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이게 대륙 아카데미를 만든 이유가 아닐 텐데. 하여튼 머저리 새끼들.’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대륙에 평화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지배층 간의 교류가 필수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래를 이끌 젊은이들이 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뜻을 같이 하고 손을 맞잡으며 함께 걸어 나갈 계획을 구상해야 한다.


바로 그게 대륙 아카데미가 만들어진 이유, 즉 대륙 아카데미 ‘희망’ 편이라고 볼 수 있었다.

문제는 그게 정말 희망만 가지고서 생각한 이유라는 것.
서부 연합과 동부 마족들이  쟁쟁한 이들을 보애기는 했으나 정작 이 대륙 아카데미에 그들이 몰려든  그따위 평화 헛소리나 늘어놓기 위함이 아니었다.

누구는 상대방을 견제하기 위해서, 누구는 중앙 정계로 진출할 줄을 찾기 위해서.
또 누구는 영원히 적일 자들의 약점을 찾고 정보를 빼돌리기 위해서.

 외에도 온갖 더러운 이유들로 점철된, 대륙 아카데미 ‘절망’ 편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이들이 좀 있기는 했지. 곧 다 포기하긴 했지만.’

믿을 수 없겠지만 그 마왕도 처음에는 대륙 아카데미 희망 편을 믿었다.

서부 연합은 최후의 승리자가 되었다고 해도 피해가 극심했고 동부의 마족들은 어찌 되었든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더는 싸워서 득이 될 게 없으니, 1차 대륙 전쟁과 같은 길고 참혹한 전쟁이 한 번  일어난다면 전 대륙이 망할 것이 분명하니 이제는 서로가 싸움을 멈추고 평화를 모색해야 한다, 마왕은 그렇게 믿었단다.

하지만 그 희망은 여인의 순결과 함께 아주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요정들의 식사가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살구 잼이 올라간 케이크와 과일이 곁들어진 샐러드, 작은 새를 꼬챙이에 꿰어 통째로 구운 요리, 거기에 요정들이 마신다는 이슬주까지.
생도들 입장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것일 테지만 평민 입장에서는 아주 지랄 맞게 화려한 점심식사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아주 멋진 식사입니다, 나타샤 생도.”


클라우스의 말에 나타샤는 미소를 지으며 식사를 시작하자 손짓을 했다.
가볍게 잔을 부딪친 후 정원에 앉아서 점심을 먹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린 건지 주변에 있던 생도 몇이 수군거리며 이쪽을 주시한다.
요정 생도가 벌써부터 전쟁 영웅에게 꼬리를 치고 있다고 떠들고 있을 것이다.



“주변에 생도들이 많군요.”



그들이 이쪽을 보며 아주 신나게 뒷담을 까고 있다 알려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타샤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샐러드를 아삭거리며 입을 열었다.

“단도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클라우스 교수님. 아니, 클라우스 전(前) 남부 사령관님. 저희 벨라루스 가문으로 오세요. 그 어떤 인간보다도 귀한 대접을 받게 해드리겠습니다.”
“….”
“멍청한 인간들이 당신을 매몰차게 내쳤음을 이미 알고 있어요. 은혜도 모르는 멍청한 것들, 어떻게 당신을 그렇게 대접할 수 있는지 아직도 의문입니다.”
“….”
“당신에게 이런 아카데미 교수직은 어울리지 않아요. 저희 가문으로 오신다면 당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게 해주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아삭!-


일부러 소리가 나게 샐러드에 곁들여져 있던 과일을 깨물어 먹는다.
그제야 클라우스가 자신의 말에 딱히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린 나타샤는 말을 멈추고 상대방을 쳐다보았다.

“…클라우스 사령관님.”
“교수님입니다. 호칭 신경 써주세요, 나타샤 생도. 여기는 아카데미이지 전장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전쟁은 끝났고 나는 진작 남부군에서 물러난 사람입니다.”
“자의로 물러선 게 아니라 강제로 내려앉혀진 것이지 않습니까.”
“그래보였습니까? 유감이군요. 나는 정말 자의로 내려온 것인데.”
“아무래도 좋습니다. 클라우스 사령관, 아니 교수님. 저희 가문으로 오세요. 그러면….”
“제 능력과 재주를 마음껏 펼칠 수 있다고,  뜻을 실행할 수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이미 몇 번이나 들은 제안이지만 들을 때마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자신이 원하는 건 남을 위해서 춤춰주는, 끈에 매달린 인형 따위가 아니다.


바로 그 인형을 조종하며 모든 것을 쓸어 담는 이가 되기를 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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