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화 〉1장 - 교수입니다. 전쟁 영웅이 아니라. (2/341)



〈 2화 〉1장 - 교수입니다. 전쟁 영웅이 아니라.

대륙력 1570년.

동부와 서부의 정전 협상이 체결되었다.
적대 행위는 금지되었고 동부의 마족과 서부의 연합 세력은 평화의 길을 모색했다.

대륙력 1571년.

협상을 폐기하고 전쟁을 하자 주장하던 자들이 와해되었다.
주동자는 처형되었고 지지 세력은 완전히 흩어졌다.


대륙력 1573년.

서부의 연합, 특히 인간 측에서 전쟁 영웅, 공신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전황의 급박함을 빌미로 귀족, 평민 가리지 않고 받아들여 공을 세운 것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있던 자들이 전쟁에서의 피해를 빌미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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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그렇게 끄적거리는 거지? 나도 좀 알고 싶은데.”


남자는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코가 벌겋게 되어서는 술에 제대로 취한 중년 남성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남의 일에 신경 끄고 술이나 마시지.”
“허어, 젊은 친구가 말하는 싸가지 보게. 이봐, 그렇게 말 함부로 하는  아니야! 어? 내가 누군지 알아?! 대륙 전쟁에서 너희 젊은 것들  길 만들어 주겠다고, 어? 마족이랑 싸운 사람이야, 내가!”
“….”



남자는 그 말에 슬쩍 중년 남성을 살폈다.


어디를 봐도 그 끔찍했던 전쟁에서 입은 상처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정말 그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 진정 생환병이라면 이렇게 허술하지 않다.
이건 어디까지나, 그저 주정뱅이의 헛소리일 뿐이었다.

스윽-.

수첩을 제  안에 넣은 남자는 테이블 위에 동전 몇 개를 올려두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역겨운 알코올 덩어리에게  마디를 툭 내뱉었다.



“헛소리 지껄이는 것도 적당히 해. 들어주기 역겨우니까.”
“뭐, 뭐?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이….”

부웅-.

순간 남성은 온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직후 바닥에 메다 꽂힌 그는 컥! 하고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했다.

“끅! 끄윽! 이,  새끼….”
“내가 하도 많이 죽어서 성깔머리가 그리 좋지 않아. 특히 좆같은 소리 하는 새끼들은 더더욱 싫어해. 그러니까 그 입 다물어. 생환병이니 뭐니 한 번만 더 지껄이면….”

파스스-.

남자의 손끝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모이자 주정뱅이는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이 남자가 생환병이라는 말에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알  있었다.


얼큰하게 돌던 술기운은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고 거기에 남은  오직 생존 본능뿐.
주정뱅이 중년 남성은 찌르르 울리는 등판의 고통마저 잊은 채 공포에 질린 눈으로  손을 모은 뒤에 열심히 빌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

손을  번 털어낸 남자는 몸을 돌렸다.
흘러내린 외투 안으로 가슴 언저리에 달린 훈장들이 보이다가  사라졌다.
엎어치기를 하느라 망가진 옷매무새를 정리한 그는 미련 없이 가게를 나섰다.


다시금 수첩을 꺼내든 그는 발걸음을 옮기면서 마지막으로 뭔가를 적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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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력 1575년.

여전히 지지부진한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동부와 서부는 활로를 모색한다.
각 세력의 왕족, 귀족, 그 외 능력 있는 자들이 모여 앞으로의 관계 개선을 위한 것을 주목적으로 하여 교육의 장을 만들기로 합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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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정말 진심인가?”

한 달 후 정식으로 교문을 열 대륙 아카데미의 총장을 맡은 루스칼은 재차 질문을 던졌다.

평소의 그라면 되묻는 행위를 절대 하지 않을 정도로 철저했던 그였음에도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은, 찾아온 이가 너무나도 뜻밖의 인물이어서였다.



“전투 마법 강의의 교수 자리가 비었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제 특기 분야인 거 아시지 않습니까, 루스칼 님.”
“자네의 실력이야 왕국, 아니 연합의 모든 이들이  테지. 하지만 너무 의외이지 않은가. 전쟁 영웅이 아카데미에서 고작 일개 선생 노릇이나 하다니. 당장 군의 핵심 장교로 활약해야 할 터인데 어찌하여….”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버림 받거나, 잡아먹히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남자의 말에 루스칼은 침음을 내뱉고 말았다.

그 말대로  년 전부터 서부 연합은, 특히나 왕국들은 전쟁 영웅들을 갖가지 빌미를 들어 축출하고 내쫓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모든 이들이 그러한 건 아니었다.
대상자는 전원이 평민이었음에도 마족과의 전투에서 공을 세워 장교로 승급한 이들.
전쟁 영웅이지만 귀족들과는 달리 ‘뒷배’ 가 없는 자들이었다.

‘도대체 연합이 어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려고 하는지. 쯧….’



혀를 차며 루스칼은 옆에 두었던 서류를 펼쳤다.
그리고는 비어 있던 공간, 전투 마법 강의를 맡을 교수의 이름이 들어갈 곳에 잉크를 묻힌 펜을 가져다 대고는 입을 열었다.



“알겠지만 아카데미에는 연합 측의 이들만이 아니라 동부에서도 온다네.”
“알고 있습니다.”
“마족들이 온다는 소리야.”
“동부가 마족들의 땅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자네가 그렇게도 쳐죽였던 자들의 동족이란 말일세.”
“….”
“쉽지 않을 거야. 경계할 테고, 적대시할 테고, 불만을 드러낼 테지. 교수 임명은 어디까지나 내 소관이나 그 이상은 어쩌지  해. 혹시나 그들 중에 누군가가….”




자네를 해코지하려고 하면 어쩔 셈인가, 따위의 멍청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 강한 마족들이라고 해도, 기습을 가한다고 해도 눈앞의 남자는 죽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런 것으로 죽는 남자였다면 진작 전장에서 전사했을 테니까.

“충분히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리를 맡으려고 하는 이유는?”
“급여가 좋으니까요.”
“…뭐라고?”
“제게 남은 건 몇 가지 짐에 가슴팍에 달린 이것들이 전부입니다. 땅 사고  짓고 그래도 어떻게 살려면 돈이 필요한데, 전장에서 뒹굴던 놈이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외투 안에 있던 제복을 가리키는 남자.

가슴팍에 주렁주렁 달린 번쩍이는 훈장들은 그가 어떤 처절한 혈전을 벌이며 여기까지 왔는지 고스란히 알려주고 있었다.


“농담이라기엔 고개가 끄덕여지고 진담이라기엔 너무 슬프군. 어쩌다가 그대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뱉은 루스칼은 결정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스슥, 슥-.

비어있던 전투 마법 강의의 교수 칸에 남자의 이름이 적혀졌다.




“받게.”

펜을 내려놓은 루스칼은 남자에게 열쇠를 내밀었다.
이게 뭐냐는 뜻으로 남자가 그걸 쳐다보니 루스칼은 당연한  아니냐며 입을 열었다.



“아카데미 교수들에게 주어지는 방과 연구실 열쇠야. 앞으로 자네와 함께 할 인간 교수들 중 평민 출신은 하나도 없어. 전부가 다 귀족이지. 당연히 제 개인적인 공간하고 말이야.”
“좋군요. 마침 지낼 곳이 없어서 난감하던 차인데.”
“입학식은 일주일 후네. 그동안 거기서 지내면 될 거야.”
“감사합니다.”

남자는  말을 끝으로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루스칼의 방을 나가버렸다.


순식간에 사라진 남자의 뒷모습이 있던 곳을 바라보며 하, 하고 기가 막힌 탄식을 내뱉은 루스칼은 다시금 입학하는 인원들에 대한 서류를 살피기 시작했다.

“…끄응.”




하지만, 아무리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집중이 되지를 않았다.
결국 의자의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기댄 그는 두 눈을 감고서 조금 전 자신을 찾아와 교수직을 부탁하던 남자를 떠올렸다.

‘아무래도, 입학식 날부터 일대 풍파가 불어 닥치겠군.’


총장의 입장으로서 전혀 달갑지 않은 일임에도 자꾸만 미소가 터져 나왔다.
일주일 후가 무척이나 기대되었다.




* * * * *  *  * * * *



“…그리고 여러분들은 이 대륙의 평화를 위한 위대한 첫걸음을 떼는 분들이니, 부디 행동 하나, 하나  한 마디, 한 마디에 주의하기를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다시 한  여러분들의 대륙 아카데미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아카데미 1대 총장, 루스칼의 축사가 끝이 났다.
인간, 요정, 수인, 그리고 마족들까지.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들과 아카데미의 관계자들은 박수를 치며 그의 축사에 감사를 표했다.

“다음은 각 강의를 맡아줄 교수 발표가 있겠습니다. 가장 먼저 역사 부분에….”

인간, 요정, 수인, 그리고 마족. 모든 종족에서 교수들이 뽑혀 자신의 자리에 배치되었다.


 종족의 화합과 평화를 기원하며 만들어진 아카데미답게  분야에서 모두에게 인정받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교수진이라 할  있었다.


교수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생도들이 박수를 쳤다.
인간 교수라고 해서 마족들이 무반응으로 일관하지도 않았고, 마족 교수가 호명되었다고 해서 인간 생도들이 차가운 시선을 띠지도 않았다.


마침내 앉아있던 교수 모두가 자기소개를 마치고 마지막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전투 마법 강의를 맡아주실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루스칼의 말에 가장 뒤에 서있던 남자가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생도들의 앞에 서는 순간 인간, 요정, 수인, 마족 생도들 전원이 놀라고 말았다.


특히 마족 생도들은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어지간해서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바깥으로 드러내지 않는 자들이라고는 믿을  없는 반응이었다.

“다른 인간 교수 분들과는 달리 ‘평민’ 출신이시기에 성은 없습니다. 클라우스 님입니다.”
“….”
“….”
“….”


누가 보면 평민 출신이라는 말에 대부분이 귀족 자제이거나 왕족, 그게 아니더라도 유서 깊은 가문의 자제들인 생도들이 교수를 대놓고 무시한다고 착각이라도 할 만한 상황이었다.

생도들의 박수도 없었고, 환호도 없었고, 반기는 기색조차 없었다.
그저 두 눈만 껌뻑거리며 멍한 표정으로 클라우스라 불린 남자를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클라우스의 입이 열리자 경직되어 있던 이들이 움찔 몸을 떤다.

“전투 마법 강의를 맡게 된 클라우스라고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짝짝짝!-


루스칼 총장이 가장 먼저 나서서 박수를 쳤다.
그러자 멍한 기색의 생도들도 하나둘씩 정신을 차리고는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특이한 점은, 원래는 인간 교수라 하면 그래도 같은 인간 생도들이 조금 더 반겨주는 기색이 보여야 하는데 이상하게 이번에는 마족들이 더 열정적으로 교수를 환영해준다는 것이었다.




살짝 고개를 숙이며 그런 생도들에게 감사를 표한 클라우스는 슬쩍 눈동자를 굴렸다.
그리고 마족 생도들이 서있는 곳, 가장 앞줄에 서서 종족을 대표하여 서있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인을 눈에 담았다.


‘…찾았다.’

지금으로부터 7년 후, 제 2차 대륙 전쟁의 불길을 쏘아 올리는 여자.
1차, 2차 대륙 전쟁을 통틀어 가장 강하고 가장 뛰어났던 마왕.


그녀의 손에 의해 서쪽 대륙 위에 있던 인간, 요정, 수인들은 완전히 갈려나갔다.
그 어떤 영웅도, 용사도 그녀를 막을  없었고 그 절대적인 여인 앞에 결국 대륙 전체가 통일되며 모든 것은 끝이 나게 된다.




마족들의 승리는 예견되어 있다, 이 모든 세상을 창조한 신이 결정한 결과다.
그리고 그 마족들을 적대시하던 대륙 서부의 그 어떤 이성체도 살아남지 못 한다.
그 또한 빌어먹게도 세계를 만든 멍청한 신이 정해둔 미래였다.


이 빌어먹을 정해진 미래 속에서 자그마치 29번을 죽었다.
그렇다. 29번, 29번 뒈졌다.

인식 저해 스킬이 있음에도 몇 번이나 미칠 뻔 했다.
갖가지 방법으로 죽고 또 죽으며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이길 수 없다면  존재의 편에 선다, 그리고 이왕 마족 편에  것이라면 떨거지나 따까리가 아니라 뒤에서 모든 것을 쥐고 흔드는 자가  것이다.

그게 그나마 이 세상의 창조주라 할 수 있는 자신이 찾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자존심이었다.



‘저 여자를 완벽하게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27, 28, 29회차를 소모했다. 준비는 끝났어.’

귀족으로서 다가가면 당연히 의심을 살 것이다.
의심이 많은 여자니까, 그 어떤 이에게도 함부로 마음을 놓지 않던 강자니까.

요정이나 수인은 마족들의 관심을 끌지  한다.
마족과 상대적으로 가장 비슷한 종족은 바로 인간이니까.


평범하게 다가간다고 해서 평범한 놈이 될 필요는 없다.
평범하면 그저 무시만 받을 뿐이니까.




그래서 평민 출신의 인간으로, 그러나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1차 대륙 전쟁의 전쟁 영웅으로.
공신 숙청에서 밀려나 먹고 살기 위해 아카데미로 들어온 이가 되어 그녀 앞에 나타났다.
그러기 위해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후일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며 버텼다.

‘그 지랄,  고생을 떨었으면   정도는 성공해야지.’

자리에 앉은 클라우스는 미소를 지으며 마족 여인을 바라보았다.
저 고고하고 자존심 드높은 여인이 앞으로 어찌 변할지 상상하니 벌써부터 즐거워졌다.




마왕 길들이기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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