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0장 - 30회차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 머리통이 보였다.
어떻게 손 쓸 새도 없이 마족들에게 또 밀렸고, 또 죽었다.
이것으로 29번째 죽음,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결국 대륙 전쟁에서 연합은 승리하지 못 했다.
‘좆같은 새끼들. 말 진짜 지지리도 안 들어 처먹어.’
자신의 목을 창대에 꽂고 낄낄거리는 마족 병사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처음 저들에게 죽었을 때만 해도 저주를 퍼부었던 자신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진정한 개새끼라 할 수 있는 건 바로 이쪽이었다.
‘연합은 이제 가망이 없어. 시발 놈들, 인간이고 요정이고 수인이고 머가리 터진 것들. 어떻게 한 번을 제대로 안 따라주니. 밥상 차려서 떠먹으라고 해줘도 못 처먹어요.’
- 사망 회귀가 발동합니다. -
모가지 잃은 몸뚱이도, 마족 병사들도, 불타고 있던 자신의 성도 멀어져간다.
그리고 앞에 나타난 건 잠시 거쳐 가는 회색 공간이었다.
‘이제 어쩐다.’
자신이 장난삼아 썼던 소설 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눈 뜨자마자 바로 머리가 터져 죽었다.
이유도 알 수 없는 죽음, 그게 바로 첫 번째 인생이었다.
다음 삶은 전장에 선 병사였다.
그제야 지금 상황이 연합과 마족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임을 알 수 있었다.
그거 알고 바로 마족 기수들에게 짓밟혀서 으깨져 죽었다.
그 후로 인간, 요정, 수인, 평민, 귀족, 노예 등등 온갖 것을 거치며 죽고 또 죽었다.
차라리 마족으로 걸려서 승자 쪽으로 살고 싶었으나 그건 또 불가능했다.
덕분에 미쳐버릴 것 같았는데 한 10번쯤 죽으니 스킬이 생겼다. 인식 저해라던가?
그것 덕분에 최소한 죽음으로서 받는 정신적 충격은 덜 수 있었다.
충격이 적어지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뒈져야만 하나.
그래도 명색이 내가 이 소설 쓴 작가인데, 이 세계를 만든 창조주인데 이건 좀 아니지. 시발.
제대로 살아보려고 했다, 모든 것을 총동원해서 강해졌고 명성을 드높였다.
물론 그렇게 발버둥 치다가 또 마족군에 패배해서 목이 잘렸지만.
12회차에서는 ‘죽음 끝의 깨달음’ 이라는 스킬을 얻었다.
원하는 대상으로 원하는 때에 회귀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존나 사기적인 스킬이었다.
이것만 있으면 이제 살 수 있어! 시발 새끼들! 다 뒈졌다!
하고 제국의 황자로 회귀했다가 1년 후에 바로 암살당했다.
이런 시부럴, 하고 마족으로 회귀해서 살아나 보자! 했더니 마족은 지원하지 않는단다.
그 후로 적당한 조연 캐릭터 골라서 별 짓을 다 해보았다.
명망 높은 장군도 해보고 예언력 개쩌는 선지자 코스프레도 해보고 연합과 마족 사이의 이견을 조율하는 협상가도 해보고 정말 갖은 지랄은 다 떨었다고 자신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결과는….
‘폭망.’
결국 마족과의 전쟁은 터졌고, 연합은 몰살당했다.
더 슬픈 건 그게 소설의 원 내용이라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개새끼 풀 뜯어 잡수는 헛소리냐고?
쓰다가 귀찮아서 그냥 모두가 죽고 ‘흑흑! 너무 슬퍼요!’ 하는 엔딩이었으니까.
아무리 멘탈 보호 스킬인 인식 저해가 있다고 해도 이건 삼진 에바였다.
너무 좆같아서 니미럴, 다 좆까. 하고 25회차에 그냥 망나니로 한 번 살아보았다.
그동안 쌓인 게 소설 속 인생 짬밥인데 여자 긁어모으는 거야 아주 쉬웠다.
나중에 이름 좀 떨친다는 여자는 전부 다 제 밑으로 들여서 아주 살뜰하게 교육해주었다.
주인님, 주인님, 앙앙! 거리는 것들을 바라보며 여기가 바로 하렘이구나, 하면서 곧 터질 대륙 전쟁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스킬 하나가 생겼다.
- 스킬, ‘훌륭한 선생’ 을 획득하였습니다. -
- 이성을 완전히 끌어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 확률이 대폭 상승합니다. -
- 스킬 보유자의 소유물이 된 이성은 절대복종할 것입니다. -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었다.
그리고 다음 회차인 26회차에서 그 스킬은 엄청난 것임이 증명되었다.
단순히 여자 조교가 끝이 아니라, 그걸 이용해서 지지리도 말 안 듣던 연합을 일부나마 움직이는 데에 성공했던 것이다.
‘하지만 병신은 죽어도 병신이고 살아도 병신이며 딸쳐도 병신이지. 결국 못 이겼어.’
연합에도 훌륭한 여성 캐릭터는 많았으나 마족 측에는 그걸 다 뛰어넘는 미친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를 어떻게 하지 않는 이상 대륙 전쟁에서 살아남는 건 불가능했다.
이렇게 되면 결국 답은 하나였다.
27회차, 28회차, 그리고 29회차까지. 오직 하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준비했다.
그리고 30회차로 들어서면서 마침내 준비가 끝났다.
- 스킬, ‘죽음 끝의 깨달음’ 으로 인해 회귀할 대상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
연쇄 살인마, 피에 굶주린 미친 악귀.
…아무리 생각해도 마왕, 그 여자를 챙겨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