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화 속 금태양이 되었다-142화 (142/148)

〈 142화 〉 NTO­001 [수정] (기존의 독자님들은 여기부터 다시 읽어주시면 됩니다)

* * *

─뭐야, 카렌이랑 누렁이네? 왜 두 사람이 여기에 있는 거야?! 우리가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두 사람 모두 괜찮아?!

레인저의 앞을 막아선 린과 란이 다그치듯 소리치고,

동시에 네토루와 카렌을 지키듯 레인저의 성기병을 밀쳐내며 싸울 자세를 잡자.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인지한 네토루가 외쳤다.

“···린, 란! 그 녀석이랑 정면에서 싸우면 안 돼! 그건 너희들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뭐?

─응?

엘프란디아의 레인저는 프랑기아로 치면 기사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러니 당연하지만 일반 파일럿이 감당할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뭐? 우리가 이길 수 없는 상대라고? 도대체 이 녀석이 누구길래···.

다행히 경고가 통한 걸까. 린은 곧바로 란의 성기병을 뒤로 물리며 수비적으로 변했다.

티이잉─! 타앙─!

이윽고 한밤중에 창날과 검날이 섬광을 만들어내며 화려하게 맞부딪치기 시작했다. 레인저는 린의 방어를 뚫기 위해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그런데 정작 방어에 몰두하는 린은 레인저의 공격에 별로 힘들어 보이는 기색이 없었다.

─응? 뭐야···. 이 녀석.

오히려 차분하게 방어하던 린이 빈틈을 노려 반격하자 미처 피하지 못한 레인저의 성기병 어깨에 커다란 상처가 생겨났다.

네토루는 그걸 보며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어째서?”

당연하지만 네토루 때문에 힘껏 긴장했던 두 자매도 의아한 목소리를 냈다.

─네, 네토루···. 이 정도면 우리가 이길 거 같은데?

─왜 이렇게 겁을 준거야? 괜히 쫄았잖아!

싸우면서 승기를 느낀 걸까. 란의 성기병이 곧바로 공격적으로 변했다. 순식간에 공세가 바뀌자 레인저의 성기병은 린의 창날을 막아내기 바빠졌다.

티이이잉! 타아앙!

네토루는 그런 린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린이 저렇게 잘 싸웠나?

분명 나쁘지 않은 실력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레인저를 상대로 이길 수 있을 리가.

그러다가 린의 싸움을 자세히 지켜보던 네토루는 곧 무언가를 눈치챈 듯 미간을 좁혔다.

“···이상해. 움직임이 너무 굼떠.”

린을 상대하는 레인저의 공격이 이상할 정도로 서툴렀다. 그건 마치 제대로 사고를 못 하는 어린애한테 무기를 쥐어준 것만 같았다.

속도와 힘은 좋았으나, 어째서인지 공격하는 패턴이 단순하고, 쓸데없이 동작이 컸다.

린 역시 적의 서툰 움직임을 눈치챘는지,

단번에 틈새를 파고들며 창대로 레인저의 성기병을 후려치고는 그대로 바닥에 넘어뜨렸다.

─좋아! 이걸로 끝이야!

─린! 죽이면 안 돼! 어떻게든 살려서 데리고 가야···.

─나도 알아!

린이 쥐고 있던 창을 바로잡으며 바닥에 넘어진 상대를 마무리 하려던 그때였다.

쿠웅···. 쿠웅···.

인근의 어둠 속에서 다른 성기병이 나타났다.

그것은 처음에 네토루와 카렌을 쫓던 레인저의 성기병이었다.

─린! 새로운 적이야!

─뭐?! 아무리 그래도 두 기를 동시에 상대하는 건!

새로운 적의 등장에 싸우고 있던 상대에게서 거리를 벌리며 린이 다급하게 자세를 추슬렀다.

그리고 동시에 적을 인식한 레인저의 성기병이 땅을 박차며 엄청난 속도로 일직선으로 달리더니,

─으아앗! 뭐, 뭐야!

─으앗? 린! 조심해!

번뜩이는 섬광. 한순간에 거리를 좁히고 치달아오는 날카로운 움직임에 놀란 린이 뒷걸음치며 간신히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공격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본래라면 수많은 사람이 오갔을 널다란 포장도로.

그러한 도로 위에서 검을 쥔 녹빛 거인이 새하얀 거인을 일방적으로 공세를 이어나갔다.

카앙! 캉! 카아앙!

몇 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엄청난 섬광을 만들어내며 창과 검이 여러 차례 맞부딪친다. 하지만 싸움의 승세는 누가 봐도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방금 전에 상대했던 레인저의 성기병하고는 그 움직임이 너무나도 다르다.

─으읏!! 잠시만, 이 녀석은 뭐 이리 강해?!

─리, 린! 이러다가 우리 당하겠어!

어떻게 보면 저것이야말로 네토루가 알고 있는 레인저의 진정한 모습이었지만,

그러면 방금 전에 린이 싸웠던 레인저는 무엇인가.

기사끼리도 실력 차이가 존재하는 것처럼 같은 레인저끼리 실력 차이가 있는 건 이상할 게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수준의 차이가 너무 크지 않은가.

그러한 의문 속에서.

─린! 자리를 옮겨야 해! 여기서 계속 물러나면!

─크윽! 하지만 지금은 무리야······!

방어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걸까. 반격도 하지 못한 채, 란의 성기병이 점점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린은 레인저와 어떻게든 최대한 거리를 벌리며 침착하게 버텨보고 있지만,

쿠우웅!

─꺄아앗? 이, 이런!

끝내 뒤로 물러나기만 하던 란의 성기병이 근처에 있던 건물 벽에 등이 닿았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것이다.

“네, 네토루···. 저러다가 린하고 란이···.”

그런 위태로운 린과 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카렌의 안색이 덩달아 나빠졌다.

당연하지만 네토루 역시 점점 표정이 굳어만 갔다.

이대로 있다가는 레인저한테 린과 란이 당한다.

하지만 성기병을 타고 있는 게 아니라면 지금 여기서는 네토루도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란의 성기병에 타고 있는 게 나였다면.’

일방적으로 레인저한테 공격당하고 있는 린을 지켜보며 네토루는 강하게 주먹을 쥐었다.

역시 린이 혼자서 레인저를 상대하는 건 무리다.

저건 단순히 린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이건 그저 압도적인 전투 경험의 차이였다. 이제 겨우 19살 소녀가 온갖 전장을 경험했을 레인저를 상대하는 건 처음부터 말이 안 됐다.

조금의 여유라도 좋다. 만약 린과 자리를 바꿀 수 있다면 이 형세를 역전할 수 있을 텐데. 네토루의 능력이라면 린의 조종석에 대신 앉아 란과 커플링하는 것도 별문제가 아니었다.

카아앙! 카앙! 끼이익!

─윽! 윽! 잠시만···! 이, 이제 무리!

─으윽! 린, 뒤에 있는 건물이 무너질 것 같아!

이윽고 한계까지 몰린 두 사람에게서 절망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심지어 기대고 있던 건물 외벽에 균열이 거미줄처럼 번지더니, 맹렬한 공격을 버티지 못한 란의 성기병이 점점 뒤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쿠우우웅──!

─꺄아아앗?

─으아아앗!?

끝내 여러 차례 가해지는 충격과 무게를 버티지 못한 건물 외벽이 무너지고, 건물과 함께 란의 성기병이 뒤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후두둑···! 기울어지며 무너진 건물 잔해가 그대로 란의 성기병 위에 내려 떨어진다. 덕분에 잔해에 반쯤 파묻힌 란의 성기병에서 애처로운 목소리라 흘러나왔다.

─흐윽···. 린? 린?! 정신차려!

···혹시 린이 기절이라도 한 걸까. 쓰러진 란의 성기병은 더 이상 움직임이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레인저의 성기병은 망설임 없이 검을 높이 쳐들었다.

그건 패배한 적을 향해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위한 자비 없는 준비였다.

그렇게 레인저의 검이 내려 떨어지려던 찰나였다.

─으아앗! 누군지 모르겠지만, 둘에게서 떨어져!

카아아앙!

뒤늦게 도착한 다른 성기병이 모습을 드러내며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던 레인저의 공격을 막아냈다.

덕분에 간신히 죽다 살아난 채 바닥에 쓰러져 있던 란이 화색 어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페르아···! 쿄쿄!

─아니, 두 사람 모두 뭘 그렇게 혼자 앞서가요!

─페르아 말이 맞아요! 덕분에 저희가 따라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미, 미안···. 그런데 우리 아니었으면 카렌이랑 네토루가 위험했을 거야!

─예? 두 사람이 여기에 있는 건가요?

레인저와 검을 맞대며 힘을 겨루고 있던 페르아의 시선이 네토루와 카렌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그러한 시선도 잠시.

끼이이이익!

페르아는 점점 자신을 밀어내는 레인저의 성기병을 보며 경악 어린 목소리를 흘렸다.

─뭐, 뭐야! 이 녀석 힘이 뭐 이렇게!

─페르아···! 추, 출력이 너무 높아! 흐윽!

─쿄쿄, 미안! 그런데 이러지 않으면 버틸 수가···!

출력을 높이고 있음에도 포장된 도로 위에 기다란 구덩이를 새기며, 페르아가 타고 있는 쿄쿄의 성기병이 밀려나고 있었다.

끝내 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달은 페르아가 뒤로 물러서자, 레인저는 그런 페르아를 맹렬하게 쫓아 달려들었다.

당연하지만 린보다 나이가 어린 페르아 역시 레인저를 감당하기 어려운 건 매한가지였다.

레인저의 공격을 몇 번 받아내기 무섭게 중심을 잃은 페르아가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심지어 방금까지 린한테 제압당해 쓰러져 있던 다른 레인저 역시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네토루는 그걸 보며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페르아와 린이 과연 저것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아무리 빨리 움직인다고 해도 여기서 부대로 돌아가서 성기병을 타고 오기에는 너무 늦는다.

그랬다가는 그사이에 레인저한테 페르아와 린이 당할 판국이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문득 잊고 있던 걸 깨달은 네토루는 뒤를 돌아보았다.

“······”

그러자 어느새인가 망연한 얼굴이 된 나츠오가 위험에 빠진 부대원들을 쳐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후회. 죄책감···. 그런 감정이 숨김없이 흘러나온다.

그걸 보며 네토루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저기에 서 있는 건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아닌, 나츠오 본인이었다.

다행히 완벽하게 지배당한 건 아닌 걸까.

이윽고 네토루와 시선이 마주친 나츠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던 그때였다.

네토루는 결심한 듯 카렌에게 나직이 말했다.

“···카렌. 다행히 지금은 나츠오가 정신 차린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떨어져 있어.”

“네토루···?”

“지금부터 나는 란의 성기병에 탈 거야. 저대로 있다가는 네 사람 모두 레인저한테 전부 죽을지도 몰라.”

“···응. 알았어.”

카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토루는 곧바로 란의 성기병을 향해 달렸다.

이 순간에도 여전히 란의 성기병은 건물 잔해에 깔린 채 움직일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건 린이 지금 성기병 조종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 있다는 증거였다.

네토루는 쓰러져 있는 성기병의 콕피트를 두들겼다.

“란. 콕피트 열어.”

─네, 네토루? 갑자기 왜?

“빨리.”

─네···.

예상대로 콕피트가 열리자 안에는 정신을 잃고 기절한 린이 있었고, 란이 그런 여동생을 흔들며 깨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네토루는 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우연일까. 현재 사용하고 있는 린의 머리끈은 마침 며칠 전에 네토루가 선물로 준 머리끈이었다.

네토루는 그런 린의 몸을 품에 안으며 대신 조종석에 앉고는 란에게 말했다.

“···란. 조종석에 앉아.”

“···네?”

“지금부터 너랑 커플링 할 거야.”

“······네?!”

커다란 파문과 함께, 란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