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 NTO001
* * *
“···그러면 살아남은 제1독립기동부대의 사람들은 모두 신성제국으로 넘어간거야?”
“뭐, 그렇지.”
“······그렇구나.”
다행히 전부 전멸했던 건 아니었나 보다.
그건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네토루의 동료들에 대해 이야기를 전부 듣고서 카렌은 씁쓸한 감정을 느꼈다. 나라를 버리고 도망친 이들이 원망스럽기보다는 그저 안타까웠다.
네토루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동안 별로 좋은 취급을 받지 못한 듯했으니까. 어떻게 보면 카렌 역시 똑같았기에 그들의 심정을 이해 못 할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정말 떠나는 이들이 있을 줄이야.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고 자국을 떠나는 그들은 도대체 어떤 느낌이었을까. 해방감이었을까, 씁쓸함이었을까.
“···그런데 왜 여왕을 죽이고 간 거야? 갈 거면 그냥 갈 수도 있던 거 아니었어?”
“그야, 우리가 여왕을 죽이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테니까. 전선이 밀려나고 있던 상태였거든. 아마 거기서 우리가 끝내지 않았으면 싸움이 길어졌을 거야.”
“······아.”
뭘 당연한 걸 묻냐는 듯한 네토루의 무덤덤한 목소리에 카렌은 탄식에 가까운 탄성을 흘리고 말았다.
결국, 그들은 떠나면서도 사람들을 걱정했던 건가.
카렌은 무릎 위에 올려놨던 손을 꼬옥 쥐었다. 겨우 참았던 눈물이 다시 나올 것만 같아서였다.
부조리한 임무. 하지만 자기 목숨을 걸고서 사람들을 위해 싸우고는 홀연히 사라진 부대.
과연 그들의 희생을 누가 알아줄까.
······그리고 393부대 역시 그러했다.
사람들은 과연 우리들의 노력을 알아주고 있을까. 그걸 생각하니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딱히 누군가한테 인정받기 위해 싸우는 건 아니었지만···.
“그 사람들···. 무사히 도착했을까?”
“글쎄···. 잘 도착하지 않았을까. 모두 실력은 뛰어났으니까.”
카렌의 걱정은 이상한 게 아니다. 다른 나라로 넘어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당장 프랑기아만해도 자국의 국토 안에 침투한 버그들을 토벌하는데도 힘이 벅찼다. 심지어 국토의 상당수를 빼앗긴 상태다.
그리고 이건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나라와 이어진 국경을 넘는다는 건 버그들이 점령한 땅을 돌파한다는 소리였다.
아무런 지원도 바랄 수 없다. 어쩌면 겨우 도착한 곳이 이미 버그들에게 무너져내린 곳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사령관의 관측도 없는 상태. 그야말로 어둠 속을 헤쳐 지나가는 위태로운 도박이다.
그런데도 제1독립기동부대는 떠났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어질 때쯤이었다.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카렌은 흠칫했다.
모두 이야기해주면 좋겠지만, 네토루의 이야기는 중간에 뚝 끊겨 있었다.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왜 이걸 생각 못 하고 있었지.
네토루는 제1독립기동부대의 유일한 생존자이다. 그러면 그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모두가 신성제국으로 넘어갔으나 홀로 남아버린 사내.
설마 싶은 생각에 카렌은 네토루를 흘겨보았다.
“네토루···. 너는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제1독립기동부대는 전부 국경을 넘었다며?”
그 물음에 네토루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야 나는 안 따라갔거든.”
“······뭐?”
네토루의 대답에 카렌은 아연해졌다.
의미를 알 수가 없다. 어째서? 왜?
왜 안 따라간 거지?
“···그 사람들은 네가 오랫동안 함께했던 부대원들이잖아? 당연히 따라가야 하는 거 아니야?”
“글쎄···. 부대원들을 따라가기에는 나는 마음에 걸리는게 많았거든.”
당연하지만 부대원들은 네토루에게 같이 가자고 몇 번이나 말했다. 심지어 몇몇은 어째서 이곳에 남는 거냐고 화를 내기도 했다. 특히 대장의 반응이 제일 볼만했었지. 그때 처음이었다. 멱살을 잡힌 건.
하지만 네토루는 그들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단적으로 말하면 그들의 눈치를 보는 게 지쳤기 때문이다. 제1독립기동부대는 ‘원래 존재하던’ 네토루를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부대원들과 같이 있으면서 계속 ‘네토루’인척 연기할 수 있던 것은, 부대원들이 미숙하기 짝이 없는 거짓말을 믿어주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의문이다.
과연 그들은 정말로 믿었던 걸까. 전투 중에 갑자기 기억을 잃었다는 그 바보 같은 말을 말이다. 어쩌면 몇몇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대장같이 눈치 좋은 사람이 모르는 게 더 이상했다.
실제로 만약 부대원들이 눈치채고 있었다면.
그들의 입장에서는 내가 어떻게 보일까.
······분명 기괴한 무언가로 보였겠지.
나츠오가 악마에게 씌워진 것처럼 느껴지듯,
어쩌면 제1독립기동부대의 부대원들은 내가 동료의 몸을 뺏은 악마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어느날 동료의 몸을 뺏은 이세계의 악마.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는 분명 그렇게 보였겠지.
그런데 사실 네토루에게는 이것 말고도 다른 이유가 하나 있었다. 그들은 이미 모든 걸 잃었기에 마음 편히 국경을 넘을 수 있었지만, 네토루는 그럴 수가 없었다.
“···네토루. 뭐가 마음에 걸렸는데? 부대원들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거야?”
네토루는 카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울음이 그쳤으나 여전히 카렌의 눈시울이 붉다.
···그래도 다행히 이야기가 흥미롭기는 했나 보다.
어둡던 카렌의 표정이 다소 변했다. 물론 여전히 음울한 기색이 있지만, 그래도 방금보다는 낫다.
네토루는 카렌이 앞으로 울 일이 없으면 했다. 그가 좋아하는 건 언제나 씩씩하고 당돌한 소녀였으니까. 옆에 있으면 기운이 되는 그런 아이.
그렇게 네토루가 침묵을 유지한 채 가만히 얼굴을 쳐다보기만 하자 카렌이 입술을 삐죽였다.
“···뭐야. 나한테는 말해주기 싫은 거야?”
심술난 듯한 카렌의 반응에 네토루는 무심코 웃고 말았다. 안 그래도 방금까지 막 울고 있던 탓에 눈밑이 퉁퉁 부어 있는 아이였다. 그런 상태에서 저렇게 말하고 있으니 정말 애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보니 그 아이가 컸으면 카렌과 비슷한 나이가 됐으려나.
이제는 모든 것이 흐릿해진 기억이다. 애초에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덕분에 기억나는 것은 멈추지 않는 빗소리와 웬 아이한테 위로를 받았다는 사실 뿐.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소녀의 이름 정도는 물어봤겠지. 아쉽게도 이제는 찾고 싶어도 찾을 수가 없다. 찾으려면 전 도시를 헤집고 다녀야 한다.
그러니 지금으로서는 다른 도시에서 잘 지내고 있기를 빌어줄 수밖에.
오래된 필름 영화처럼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있던 기억을 되새기며 네토루는 카렌에게 말했다.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거든.”
“···지켜주고 싶은 사람? 누구?”
카렌이 고개를 기울인 채 쳐다본다.
제 나이의 소녀처럼 카렌의 순수한 검은 눈동자를 보며 네토루는 피식 웃었다.
말해주고 싶지만 정작 본인도 모른다.
그렇기에 네토루는 적당히 얼버무리기로 했다.
“그건 비밀이야.”
“뭐? 비밀? 괜히 더 궁금하게···. 으얏···?!”
카렌이 돌연 비명을 흘렸다. 네토루는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자리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카렌. 다 울었으면 이제 가자. 부대원들이 걱정하겠어.”
이제 과거 이야기는 끝이다. 슬슬 나츠오를 데리고 부대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언제까지고 계속 이렇게 이곳에 있을 수는 없다.
카렌은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네토루의 등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고는 소리쳤다.
“아···. 정말···. 네토루, 누군지 안 알려줄 거야?”
하지만 네토루는 대답이 없다. 그저 무덤덤한 얼굴로 쓰러져 있던 나츠오를 들쳐메고 있을 뿐.
여전히 벽에 기댄 채 앉아 있던 카렌은 볼을 살짝 불리며 그 뒷모습을 불만스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정말 말해줄 생각이 없나 보다.
덕분에 이야기를 듣고나니 괜히 가슴만 답답해졌다.
네토루가 찾는 사람은 딱 봐도 여자라는 느낌이었으니까. 잠시 기억을 회상할 때 보여준 그의 얼굴이 너무나도 애틋했다. 오랫동안 함께한 부대원들을 보내고 혼자 남을 정도로 소중한 사람인 걸까.
누군지 모르겠지만 정말 부러운 사람이었다.
적어도 네토루에게는 그 존재가 자신의 생에 커다란 영향을 준 사람일 테니까.
···나츠오가 나한테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카렌은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네토루의 옆에 섰다. 그리고는 그의 어깨에 들려져 있는 나츠오를 바라봤다.
여전히 의식이 없는 것인지 나츠오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자는 것처럼 순진한 얼굴. 그런 나츠오의 얼굴을 보고 있던 카렌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목을 매만졌다.
역시 믿기 어렵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나츠오가 내 목을 조르다니···. 그것도 나를 겁탈하기 위해서····.
도대체 이걸 어떻게 정리해야 옳을까.
일단 리엔한테는 어떻게 숨길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다른 부대원들은?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일단 부대원들한테는 숨겨야겠네···.’
리엔에게는 알려야겠지만, 카렌은 이번 일을 조용히 정리하고 싶었다. 그건 단순히 카렌 본인이나 나츠오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부대원들에게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안 그래도 출격날이다. 괜히 부대원들을 심란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늘 나츠오가 어떠했든 지난 몇 년간 부대원들을 위해 고생했던 건 맞으니까. 부대원들이 오늘 일을 알게 되면 충격이 적지 않겠지.
그러니까 부대에 돌아가면 곧바로 목에 붕대라도 감아서 자국을 가릴 생각이다. 나츠오가 조른 흔적을 보면 다른 부대원들이 분명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부대로 돌아가기 위해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네토루가 카렌에게 말했다.
“···어쩌면 이번 일은 우리가 잘 모르는 무언가가 끼어들었던 걸지도 몰라. 부대로 돌아가면 나츠오를 자세히 조사해봐야 할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정신 상태도 조금 이상했지만, 나츠오의 힘이 비정상적이었거든.”
“아···.”
네토루가 나츠오에게 맞은 왼팔을 보여주었다. 그걸 보고나서야 카렌은 뒤늦게 그의 부상을 깨달았다.
이걸 왜 이제야 눈치챈 걸까.
나는 멍청이가 분명하다.
네토루는 저런 상태로 아무런 말 없이 내가 우는 걸 기다려주고 있던 거였나.
분명 아팠을 텐데···.
그걸 깨닫는 순간 카렌의 눈시울이 다시 붉어졌다.
“······네토루. 나 때문에 미안해.”
“잠시만···. 카렌. 그렇다고 다시 울지는 말고. 이거 이래 보여도 정작 별로 안 아프니까?”
“하지만······.”
곤란하군. 다시 울먹이기 시작한 카렌을 보며 네토루가 그저 쓴웃음을 짓던 그때였다.
────위이이이이이잉!
돌연 밤의 정적을 깨는 소리가 울렸다.
“······이건.”
그 시끄러운 소리에 화들짝 놀란 카렌의 눈이 커졌다. 순간 머리가 굳는 기분이었다.
그럴 수밖에. 갑자기 침습 경보라니.
이건 제39구역이 버그들에게 뚫렸다는 소리였다.
안 그래도 저번 전투로 병력이 보강되었으니 걱정 말라고 하던 리엔 아니었던가.
“카렌···. 빨리 부대로 돌아가자.”
“응···.”
도시 전역을 울리는 소리를 듣고서 경직된 네토루의 목소리에 카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쿠우우우우웅······. 근처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들렸다. 성기병의 발소리였다.
혹시 벌써 출격한 성기병이 있는 것일까.
소리가 들려오기 무섭게 마침 근처에서 다가오고 있는 커다란 무언가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갑자기 표정이 굳은 네토루가 카렌을 잡아당기며 다급히 건물 안으로 몸을 숨겼다.
“네토루? 갑자기···.”
왜? 라는 의문이 이어지던 그때.
드물게도 네토루가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얼어붙어 있었다.
“어째서···?”
쿠우우웅···. 점점 발소리가 다가오고 있다.
그럴 수록 네토루의 표정은 점점 굳어만 갔다.
이윽고 그가 의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엘프란디아 레인저의 성기병이 왜 이곳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