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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속 금태양이 되었다-138화 (138/148)

〈 138화 〉 NTO ­ 001

* * *

“형이 저한테서 카렌을 빼앗으려고 하니까···.”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 채 나츠오가 중얼거렸다.

그 순간 손가락 틈새로 흘러나오는 붉은 안광이 위험한 느낌으로 네토루를 응시하고 있었다

주변의 공기가 착 가라앉을 정도의 끈적끈적한 살기.

······그리고 너무나도 익숙한 감각.

이것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깨닫는 순간 네토루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손과 발에 저도모르게 힘이 바싹 들어가며 등줄기에 불쾌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착각이면 좋겠지만···. 어째서일까.

버그들에게서 느낄 법한 ­ 인간을 향한 증오가 지금 나츠오에게서 느껴지고 있었다.

갑자기 흉흉하게 변해버린 눈동자도 그렇고,

지금 저 녀석은 정말 나츠오가 맞는 것인가?

그러한 의문 속에서 네토루는 나츠오에게 차분하게 말을 걸었다.

“···나츠오. 지금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여기까지 해. 그러면 지금이라도 우리끼리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솔직히 말해서 이미 좋게 해결하기는 글렀다. 적어도 카렌에게는 오늘 일이 커다란 마음의 상처가 되겠지.

하지만 지금이라도 잘 타일러서 부대로 돌아간다면 어쩌면 오늘 일의 여파를 최소한으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웃기지 마요. 해결하기는 뭘 해결해. 카렌 곁에 당신이 있는 이상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하지만 이야기를 들은 나츠오는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네토루 형···. 제발 이제 착한 척 그만 해요. 어차피 처음부터 저한테서 카렌을 뺏을 생각이었잖아요? 그런데 뭘 잘났다고 그러는 거야···.”

나츠오는 몸을 비틀거리며 걸었다. 그건 마치 제 몸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움직임이 어딘가 어색했다.

하지만 그러한 움직임 속에서도 건물 안을 채우고 있는 나츠오의 악의는 점점 커져만 가고 있었다.

나츠오에게서 흘러나오는 강대한 살기가 피부 끝을 바늘처럼 콕콕 찔러댔다.

“어차피 카렌도 기절해 있으니까 저한테만 솔직히 말해봐요. 일부러 카렌의 마음에 들려고 그동안 앞에서 온갖 허세 떨면서 멋진 척한 거 맞죠?”

“······”

“며칠 전만 해도 그래요. 뭐? 사내놈이 실수도 할 수 있지? 말도 안 되는 소리···. 당신도 그때 화났을 거 아니야! 차라리 그때 나한테 화를 내지 그랬어! 왜 카렌 앞에서 그렇게 멋진 척 해서는 나를 그렇게 비참하게 만드는 건데···!”

···내가 병석에서 막 일어났을 때를 말하는 건가.

치밀어 오르는 노성은 마치 상처 입은 들짐승이 울부짖는 것만 같았다. 비난과 증오 어린 나츠오의 목소리에 네토루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네토루는 시계탑 일로 괜히 나츠오가 마음의 짐을 가지지 않기를 원했다. 하지만 오히려 나츠오에게는 그것이 독이 되었나 보다.

그러면 나는 그때 뭐라고 말해야 했을까.

반대로 나츠오를 엄하게 꾸짖어야 했던 게 옳았을까. 네토루로서는 그 답을 알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당신만 아니었으면···. 지금쯤이면 카렌이랑 나는······.”

끝내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츠오는 횡설수설하더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원통하고 지독한 슬픔이 느껴지는···. 울음소리.

하지만 그 모습을 보며 네토루는 안타까워하기는 커녕 몸을 긴장시킬 수밖에 없었다. 잠시 멈춰 서있던 나츠오가 다시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설득은 포기해야 하나. 그렇게 판단하는 순간이었다. 핏물처럼 붉은 안광을 흘리며 나츠오가 땅을 박차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나츠오의 붉게 빛나는 눈. 그리고 그 안에서 흔들림 없는 살기가 네토루를 응시한 채 빛나고 있었다.

빠르다.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나츠오의 움직임은 대단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코앞까지 육박해 들어오자 네토루는 몸을 숙였다.

───후우욱!

송곳처럼 뻗어 나온 나츠오의 주먹이 허공을 가른다.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하며 나츠오의 움직임을 눈에 담던 네토루는 곧바로 반격을 하였다.

그 행동에 망설임은 없다. 방금 전에도 이미 겪었다시피 나츠오의 신체 능력은 이상할 정도로 비대해진 상태였다. 그러니 평범하게 제압한다는 생각으로 싸워서는 안 된다.

────!

“커억···!”

몸을 숙이고 있던 네토루는 그대로 틈을 파고들며 나츠오의 복부를 향해 주먹을 찔러넣었다.

다음 순간 주먹에 살육이 짓뭉개지는 소리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둔탁한 소리가 한 차례 울려 퍼지고, 나츠오가 헛바람을 들이삼켰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

나츠오는 주먹에 맞은 상태 그대로 다시 팔을 움직이며 네토루한테 주먹을 뻗었다.

단순히 맷집이 좋은 걸 넘어선, 그 억센 반격에 네토루는 흠칫하면서도 몸을 뒤로 내뺐다.

이윽고 나츠오의 주먹이 허공을 헤맨다. 반격은 놀라웠으나 단지 그것뿐이었다. 나츠오의 움직임은 흥분한 짐승의 그것처럼 엉망진창이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나츠오가 지금까지 상대했던 건 전부 버그들 뿐이었다. 소년이 대인전을 훈련했을리가 없다. 인간을 상대로 싸우는 법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크으으윽!”

다만 문제는 그러한 미숙한 움직임을 전부 아울러줄 비정상적인 신체 능력이었다. 공격이 빗나가기 무섭게 나츠오는 발로 밟고 있던 바닥에 커다란 균열을 새기며 땅을 박찼다.

···역시 빠르다.

예상했던 것을 넘어선 매서운 움직임에는 네토루도 별 방법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나츠오의 주먹을 받아냈다.

꽈드드득──!

공격을 막기 위해 급히 들어 올린 팔에 나츠오의 주먹이 박혀든다. 단련된 근육을 꿰뚫고, 뼈를 으깨는 듯한 강력한 힘에 네토루는 그대로 튕겨 날아갔다.

그렇게 3m 정도를 미끄러지듯 날아가던 네토루는 곧바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표정을 찡그렸다.

“···허.”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도대체 어떤 괴력을 지니고 있어야지 주먹으로 이렇게 성인 남성을 날려 보낼 수 있는 것일까.

심지어 공격을 막아냈던 왼팔에는 감각이 없다. 어깨를 흔들자 왼팔 역시 힘없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단지 주먹을 한 번 받아냈을 뿐인데 왼팔의 뼈가 부서진 것이다.

딱히 방심은 안 했다. 단지 나츠오가 비정상일 뿐.

상식을 벗어난 괴력. 이걸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형. 보니까 왼팔이 부러졌나 보죠? 뭔가 잘 안 움직이는 모양이네요.”

이걸로 이겼다고 생각하는 걸까. 너덜거리는 네토루의 왼팔을 보며 나츠오가 입꼬리를 잡아당겼다.

역시 어린 녀석이다. 네토루는 그런 나츠오의 생각을 비웃듯 조소 어린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 이 정도는 포션 좀 부어주면 내일 충분히 조정간을 잡을 수 있으니까.”

여러 의미로 편리한 것이 많은 세상이었다.

마법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세상이었기에 RPG 게임에서나 보던 치료 포션도 존재한 것이다.

정 안되면 치료 마법이라도 받으면 그만이었다.

물론 그러한 치료 방식이 몸에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뼈가 부러진 정도는 괜찮다.

그때 네토루의 말을 들은 나츠오가 미간을 좁혔다.

“···그건 형이 여기서 살아서 나갈 때 이야기고요. 오른팔 하나로 뭘 어쩌게요?”

“글쎄. 너 정도는 오른팔 하나로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도 안 되는 소리···. 이런 상황에서도 괜히 허세부리지 마요. 짜증 나게.”

“나츠오. 이게 허세인지 진짜인지는 지금부터 알아보면 되지 않을까?”

네토루는 오른팔의 뻐근함을 풀듯 어깨를 가볍게 움직여주었다. 표정은 여전히 여유롭다. 그것은 마치 귀여운 동생을 봐주는 듯한 어른의 얼굴이었다.

“···으득.”

그렇기에 그런 네토루를 지켜보던 나츠오는 화를 참지 못하듯, 이를 악물더니 악귀처럼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다시 앞으로 뛰쳐나왔다.

이번에야말로 네토루를 끝낼 생각이었다.

현재 나츠오에게는 그만한 힘이 있었다. 실제로 방금 전에는 왼팔까지 박살 내지 않았는가.

바닥에 균열을 새기며 힘차게 달려든 나츠오는 그대로 네토루를 향해 몸을 날렸다. 꽈득­ 강하게 움켜쥔 주먹을 그대로 네토루를 향해 휘두른다.

하지만.

“···나츠오. 주먹은 그렇게 휘두르는 게 아니야.”

나츠오의 주먹은 네토루에게 닿지 못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휘둘러진 나츠오의 주먹 끝은 네토루의 머리카락만을 훑고 지나갔다.

정확히 반발자국. 그 정도만으로 공격을 피한 네토루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히 신체 능력은 비약적으로 좋아진 것 같지만, 그만큼 쓸데없는 움직임이 많아.”

후욱──!

“힘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바른 움직임이야. 최소한의 동작으로 최대한의 힘을 내는 거지.”

훅─! 훅─!

“봐. 동작이 크니까 하나도 안 맞잖아? 움직임이 너무 쉽게 읽힌다고.”

“시, 시끄러···. 욱?!”

순간 네토루의 오른손이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나츠오의 가슴팍을 때렸다. 명치를 맞았다. 숨이 컥컥 막혔다. 하지만 나츠오는 공격을 멈추기는커녕 더욱 성을 내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싸움이라고 부르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공격을 해도 닿지 않았으며, 반대로 반격만 당할 뿐. 그러한 패턴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그렇기에 그 순간 그곳에 있는 건.

힘에 의존한 채 주먹을 휘두르는 소년과 절제된 움직임으로 짐승을 제압하는 듯한 사냥꾼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나츠오는 혼자 수렁에 빠진 기분이었다. 모든 공격을 예측 당하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혹시 이 남자는 미래라도 보는 걸까?

그러한 의문에 네토루의 눈을 응시하던 나츠오는 온몸의 털이 쭈뼛쭈뼛 곤두서는 걸 느꼈다.

왜 이걸 이제야 눈치챈 걸까.

아까부터 네토루의 눈동자 속에는 분노도, 살기도, 투기도 없었다

단지 안타까운 무언가를 바라보는 듯한, 연민 어린 감정만이 담겨 있을 뿐.

그리고 나츠오가 그 사실을 깨닫던 그 순간.

“···나츠오. 이만 자라.”

네토루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고,

────!

다음 순간 나츠오의 의식이 끊겼다.

턱밑에서 올라오는 네토루의 주먹 때문이었다. 아무리 비정상적으로 향상된 육신도 뇌를 보호해주지는 못했다.

* * *

이윽고.

──털썩. 나츠오의 몸이 바닥에 힘없이 무너졌다.

네토루는 그런 나츠오를 보며 점점 머릿속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인간이라는 건 완벽함에서 거리가 먼 존재였다.

그렇기에 신체 부위마다 무수한 약점들이 존재했고, 네토루는 그러한 곳을 몇 번이나 공략했다. 단순히 봐줄 생각이 아니라 진심으로 공격한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나츠오는 쓰러지기는커녕 맞으면 맞을수록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턱을 가격해서 기절시켜버렸다.

비정상적인 신체 능력. 그리고 붉게 변한 눈.

······도대체 이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일단 부대로 데리고 가서 검사를 받게 해보는 게 좋겠지.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힘은 아니었다. 오히려 악마한테 씌워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아니, 차라리 악마한테 홀려있는 거면 좋겠다.

그러면 오늘 일을 어떻게든 이해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네토루.”

그때 뒤에서 카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깨어난 모양이다. 네토루는 등을 돌렸다. 그러자 슬픈 눈을 한 채 벽에 기대고 있는 카렌이 보였다.

“나츠오는···. 괜찮은 거야?”

“···괜찮아. 기절만 시켰어.”

“그래···?”

고개를 끄덕인 카렌은 그대로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깔았다. 그리고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조용히 훌쩍이기 시작했다. 그건 간신히 울음을 참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정말이지···. 이럴 때는 그냥 울면 좋을 텐데.

그렇기에 네토루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카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말했다.

“···카렌. 참지 말고 울어도 돼.”

“응.”

그제야 카렌은 하염없이 울기 시작했다.

* * *

아무래도 정신을 차리려면 제법 시간이 필요할 듯했다.

···인간이라는 건 생각 이상으로 나약한 몸이군.

나츠오가 의식을 잃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괴물의 생각이었다. 인간의 몸 안에 들어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이렇게 연약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아니···. 어떻게 보면 NTL­001이 비정상적이라고 해야 하나. 설마 이렇게 나츠오가 질 줄이야.

아무리 강력한 신체를 만들어주어도 정작 그걸 다루는 주인이 미숙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뭐.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실패한 건 실패한 거다. 괴물은 딱히 미련을 갖지 않기로 했다. 그렇기에 괴물은 슬금슬금 기절한 나츠오의 몸을 점거하기 시작했다.

본래는 불가능했지만, 어느 정도 주도권을 넘겨받은 덕분에 이제 특정 상태에서는 ‘제 맘대로’ 움직이는 게 가능해졌다. 다만 문제는 NTL­001에서 어떻게 도망칠지가 문제인데······.

그러던 그때였다.

──제39구역 돌파 완료

네트워크를 통해 한 줄기의 정보가 전해졌다.

괴물 ­ 나츠오는 입매를 비틀었다.

──지원 요청 확인

──좌표 수신 중······.

──좌표 확인 완료

──예상 도착 시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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