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NTO 001
* * *
──······네토루!
“···카렌?”
방문을 두들기던 찰나였다. 카렌의 다급한 목소리에 네토루가 곧바로 문고리를 잡아보았다.
·····문은 잠겨 있다.
─으으윽! 이거, 놔! 놓으라고! 꺄아앗?!
잠시 뒤로 물러섰던 네토루는 그대로 땅을 박차며 문에 몸을 박아넣었다. 상황을 파악하는 것보다도 먼저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뿌드득!
전력을 다해 달려들자 어깨에 부딪친 문이 처참하게 찌그러졌다. 그렇게 네토루는 그대로 방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풍경.
그 순간 네토루는 표정을 관리하지 못하고 미간을 좁히고 말았다.
심장이 철렁인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카렌.”
카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방안이 어지럽혀진 상태로 창문이 열려 있었다.
네토루는 곧바로 창문으로 달려가 밖을 확인했다.
짙게 깔린 어둠 속. 광원이라고는 밤하늘에 장식된 커다란 보름달뿐. 그리고 거기서 카렌을 들쳐멘 채 믿기 어려운 속도로 도망치고 있는 한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사람을 들쳐메고 저렇게 뛸 수 있다고?
순간 자신이 잘못 봤나 싶었지만···.
“······나츠오?”
확신 없는, 설마 싶은 이름을 부르면서도 네토루는 망설임 없이 창문을 넘어 건물 밖으로 뛰어내렸다.
* * *
프라시온 사태 이후 393부대가 열심히 건물 잔해를 치웠다고 하지만, 여전히 도시 곳곳에는 무너진 건물들과 폐허가 된 공간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부대 밖을 나오면 몸을 숨기기에는 이상적인 곳들이 사방에 산적해 있다.
부대에서 뛰쳐나온 나츠오는 그곳을 향해 달렸다.
“하아···. 하아···.”
그런데 기절시킨 카렌을 껴안고서 달린 탓일까. 점점 숨이 차오르고 있다.
하지만 나츠오는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뒤에서 그 남자가 계속 쫓아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뒤를 돌아보며 나츠오는 표정을 찡그렸다.
“···무슨 저렇게 빨라?”
······믿기 어려운 신체 능력이다.
어떻게 나를 쫓아올 수 있는 거지?
아무리 따돌려도 끝내 뒤를 따라잡는 네토루를 보며 나츠오는 경악을 감출 수가 없었다.
녀석이 빌려준 힘은 대단했다. 먼 옛날 기사들이 이르렀던 초인의 영역이 이러했을까 싶을 정도였다.
현재 나츠오에게 제공된 비정상적인 신체 능력은 자기 스스로조차 제대로 다루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도 네토루는 뒤처지지 않고 뒤를 따라오고 있다.
─호오. 놀랍군. 설마 자네를 따라올 줄이야.
“하아···. 후웁···.”
─혹시 저런 인간들이 많은 건가? 그러면 곤란한데.
“그럴 리가 없잖아······! 이건 저 남자가 비정상적이라고!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파일럿들 중에서는 저런 인간은 없어!”
어두운 밤거리. 주변의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있다. 먼 거리를 엄청난 속도로 뛰어나온 나츠오였지만 네토루를 따돌리는 건 요원해 보였다.
그러면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하나뿐.
─흠. 원래 계획과는 조금 다르지만, 오늘 바로 저 사내를 죽여야겠군.
“···죽이라고?”
─그래. 그게 너와 나의 계약 아니었나?
“······”
계약···. 그래, 계약이었지.
녀석은 네토루의 목숨을 원했고, 나츠오는 카렌을 원했다. 그렇게 성립된 계약. 서로가 서로를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혹시 이제 와서 망설이는 건가?
“···아니. 여기까지 와서 뭘 망설여.”
이미 현장을 봐버린 남자다.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망설일까.
그나마 다행히 곧바로 뒤를 쫓아온 걸 보면 부대에 알리지도 않고 따라온 게 분명해 보인다. 그러니 저 남자만 죽이면 오늘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계획이 꼬인 건 변함이 없다.
당연히 이런 건 나츠오의 본래 계획에 없었다. 나츠오라고 오늘 막무가내로 행동에 나선 건 아니었다.
원래라면 지금쯤 계획대로 카렌을 ‘안고서’ 녀석의 도움을 받아 카렌을 바꾸려고 했다.
녀석은 말했다.
자신이 카렌을 바꾸어줄 수 있다고.
내가 원하는 아이로 교정해주겠다고.
그래서 나츠오는 이런 일을 벌였다. 이대로 네토루한테 카렌을 빼앗길 바에 차라리 악마의 힘이라도 빌리는 게 나을 테니까.
······그렇지만, 설마 이 늦은 시간에 그 남자가 카렌의 방에 올 줄이야.
왜 이 시간에 카렌의 방을 찾은 걸까?
그 답은 뻔했다. 나츠오는 곧바로 답을 내렸다.
‘설마 카렌이랑 또······.’
가슴이 울렁거린다. 그것은 질투와 시기였다.
어째서···. 저 남자는 내가 원하는 걸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손에 넣을 수 있던 걸까.
애초에 겨우 2달 정도밖에 안 되는 기간이었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만에 3년을 넘게 함께했던 커플링 파트너를 빼앗겨버렸다.
얼굴도 몰랐던 사내가 갑자기 나타나 카렌의 몸도 마음도 전부 가져가 버린 것이다. 이러면 그동안의 내 노력은 어떻게 되는 걸까.
빌어먹을···.
저런 남자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으면 좋았는데.
그렇게 이를 악물며 얼마나 달렸을까.
쉬지 않고 달리던 나츠오의 다리가 드디어 서서히 멈추기 시작했다. 마침 적당한 곳에 도착했다.
그곳은 3층 높이의 폐건물이었다. 스파이더의 포격을 맞은 탓인지 옥상 부근이 통째로 부서진 채 난장판이 된 건물.
여기라면 누군가 죽어도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여기서 모든 걸 끝낸다. 그러한 결심이 서는 순간 서늘한 살기가 나츠오의 눈동자를 스쳤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던 괴물은 조용히 웃었다.
원하는대로 교정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정작 본인은 모르는 모양이었지만 말이다.
* * *
방안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겠지. 그렇지 않으면 카렌이 그렇게 비명을 지를 리가 없었고, 나츠오가 저렇게 범죄자처럼 도망쳤을리가 없다.
······그런데 설마 뒤를 따라잡지 못할 줄이야.
네토루는 전신의 모든 마력 신경계를 활성화하며 땅을 박찼다. 과도하게 마력을 일으킨 탓인지 마력 신경이 비명을 지르며 삐거덕거리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예상했던 것을 훨씬 넘어선 나츠오의 신체 능력에 네토루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은지 오래였다.
저건 단순히 다리가 빠르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애초에 기사도 아닌 겨우 기관에서 육성된 소년이다. 게다가 심지어 카렌을 들쳐멘 상태였다.
현실적으로 그런 상태로 네토루를 따돌린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믿기 어렵게도 나츠오는 해냈다.
도대체 어떻게?
끊임없이 그러한 의문이 머릿속을 어지럽혔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어떻게든 카렌을 구해내야만 한다. 그렇기에 네토루는 흥분하기보다는 냉정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이윽고 네토루는 나츠오가 모습을 감춘 건물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춘 채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커다란 보름달.
그것을 머리 위에 둔 채 불길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폐허가 네토루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리는 전부 박살 나고, 총탄과 포격의 흔적이 뚜렷하다.
“···이 녀석 설마.”
당연하지만 이곳에 몸을 숨기려고 들어온 건 아닐 터.
주변에 인기척은 없다. 이 늦은 시간에 사람의 발길 따위가 닿을 리가 없는 곳이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아무도 모를 곳.
지금 나츠오는 나를 그런 곳에 유도한 건가?
점점 의미를 알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불길한 생각만이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버그랑 싸우는 거면 모를까 이런 식으로 사람을 쫓는 건···.
“···후.”
뭐든 좋다. 일단 움직일 수밖에 없다. 길게 숨을 들이킨 네토루는 주먹을 쥔 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새카만 어둠이 네토루를 반겼다.
당연하지만 폐건물 안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컴컴했다. 불빛은 없기에 네토루가 의지해야 할 것은 시각을 제외한 인간의 오감뿐이었다.
이러한 곳에서는 아무리 네토루라도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렇기에는 온몸의 감각을 바싹 세운 채 건물 안에 남아 있는 잔해 따위를 밟으며 위로 올라갔다.
그렇게 3층에 도달했을 때였다.
그곳에서 네토루는 의식을 잃은 상대로 벽에 기댄 채 앉아 있는 카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카렌.”
곧바로 네토루는 카렌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의식을 잃었을 뿐, 호흡은 정상적이다.
그 사실에 네토루가 안도하고 있을 때였다.
바득···. 돌가루 따위를 밟은 소리가 나는 동시에.
네토루는 등 뒤에서 인기척 따위가 빠르게 다가오는 걸 느꼈다.
기척을 감지하는 순간 네토루는 곧바로 반응했다.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본능적으로 축발인 오른발이 꽈득···! 바닥을 짓밟으며 네토루의 온몸이 회전했다.
살기가 담긴 공격이다. 그러니 망설일 필요가 없다.
기다란 호선을 그리던 네토루의 돌려차기는 그대로 정체불명의 인기척을 향해 작렬했다.
뿌드득···. 발끝에서 느껴지는 선명한 감촉.
“···커억.”
갑자기 덤벼든 정체불명의 인기척 나츠오가 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묵은 숨을 토해냈다.
이윽고.
설마 반격할 줄은 몰랐던 건지 제대로 방어도 하지 못한 채 나츠오는 그대로 저 멀리 날아 가버렸다.
쿠우우웅──!
그대로 나츠오는 건물 구석을 향해 등부터 지면에 추락하며 미끄러지듯 스르륵 누워버렸다.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죽일 생각은 없었다. 처음부터 나츠오일 거라고 짐작은 했으니까.
다만 공격이 제대로 들어갔으니 잠시 동안은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터···.
“······”
그런데 그때였다.
네토루의 눈썹이 삐딱하게 꿈틀거렸다.
저 멀리 날아가며 바닥에 쓰러져 있던 나츠오의 몸이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으윽···.”
이윽고 나츠오는 발에 맞은 부위를 손으로 짓누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네토루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어둠컴컴한 건물 안이다.
하지만 포격으로 부서진 벽면에서 흘러들어오는 달빛이 나츠오의 모습을 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한 가운데.
네토루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츠오.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왜냐고요?”
이유를 묻자 나츠오는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허한 울림이 섞인 목소리로 그가 중얼거렸다.
“이게 다···. 네토루 형 때문이잖아요.”
“······”
“형이 저한테서 카렌을 빼앗으려고 하니까···.”
나츠오가 거기까지 말을 끝냈을 때였다. 현기증이라도 느낀 것일까. 이마를 부여잡은 채 비틀거리던 나츠오가 눈을 잠시 감았다 떴다.
그리고 다음 순간···. 건물 안의 어둠 속에서 섬뜩한 붉은 안광이 번뜩였다.
착각이면 좋겠지만.
그 불길하기 짝이 없는 붉은 안광은 마치 버그를 연상케 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