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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속 금태양이 되었다-134화 (134/148)

〈 134화 〉 선물

* * *

부대원과 함께 노을이 지고 있는 길거리를 걷는다.

부대로 복귀하는 길은 묘하게 발걸음이 가벼웠다. 카렌은 가는 길 도중에 나타난 가게의 유리창을 들여다보았다.

비록 노을빛이 섞여 있다고 하지만 누가 봐도 유리 창에 비치는 카렌의 얼굴은 붉었다.

그럴 수밖에.

민망함과 부끄러움. 그러면서도 따스한 무언가가 온몸에 스며들면서 가슴 안쪽이 충만해진 기분이었다. 그러한 감정들 때문에 얼굴이 붉어지는 걸 어떻게 주체할 수가 없었다.

설마 네토루가 머리핀을 선물할 줄이야. 사실 어릴 때 머리핀을 조금 하고 다니기는 했지만, 기관에 들어간 이후로는 일부러 빼고 다녔다.

그건 카렌이 꾸미는 것에 관심이 없었던 것도 있지만 빡빡한 기관의 생활을 떠올려보면, 머리핀 같은 건 거추장스러운 장신구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머리에 머리핀을 달아보니 썩 나쁘지는 않았다.

카렌은 네토루가 직접 달아준 네잎클로버 형태의 머리핀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카렌이 보더라도 예쁜 머리핀이었다.

그래···. 정말 예쁜데···.

─예쁘네

그런데 방금 전에 예쁘다고 한 건 무슨 의미였을까.

그건 단순히 머리핀이 예쁘다는 걸까,

아니면 머리핀을 한 내 모습이 예쁘다는 걸까.

궁금하다.

아까부터 머릿속에서 맴도는 의문이 답답했던 카렌은 걸으면서 옆을 흘겨보았다.

네토루는 무뚝뚝한 얼굴로 그저 조용히 카렌의 옆에서 걷고 있었다. 이쪽은 방금 전에 무슨 의미로 말한 건지 궁금해서 답답해 죽겠는데, 혼자 태연한 그 모습이 괜스레 불만스럽다.

뭐야. 이게.

말할 거면 똑바로 말해줄 것이지. 괜히 궁금하게.

하지만 차마 직접 물어볼 수는 없었다. 어떻게 네토루한테 그런 걸 직접 물어볼까. 그러다가 혹시라도 내가 착각이라도 하고 있는 거면······.

그러면 괜히 나만 이상하게 보이잖아.

답답한 마음에 카렌은 바닥에 있던 돌멩이를 찼다.

이윽고 떼구르르··· 굴러가던 돌멩이는 골목길 구석에 흘러 들어가며 모습을 감추었다. 그 모습이 마치 솔직하지 못한 카렌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그렇게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 따위로 카렌이 속으로 끙끙거리고 있을 때였다.

“흐응···. 그새 그런 일이 있던 거야?”

“그래! 만약 우리가 아니었으면 엄청 위험해졌을걸!”

그런 카렌의 앞에서는 린이 란한테 오늘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는 중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어보니 반나절 동안 꽤나 파란만장한 일들이 있었나 보다.

소매치기 소년을 구하기 위해 린과 네토루가 열댓명이 넘는 부랑자들하고 싸운 것이다. 게다가 흉기까지 들고 있었다고 하던가.

별일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던 입장에서는 깜짝 놀랄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소매치기 소년을 쫓던 일이 어떻게 저렇게 연결될 수 있을까.

아무리 성기병 파일럿이라고 해서 열댓 명이 넘는 인원들과 싸우는 게 쉬울 리가 없다.

실제로 그러한 싸움 때문인지 잘 보면 린의 무릎에는 상처가 있었다. 아마 부랑자들이랑 싸우다가 생긴 상처겠지. 제법 위험한 상황이 있었을 것이다.

저걸 보고 있자니 이제는 또 걱정되었다. 네토루 이 녀석은 쓸데없이 무리하는 녀석이었으니까.

그래서 카렌은 천천히 거리를 좁히며 그의 소매깃을 잡아당겨 보았다.

“왜?”

그러자 그가 살짝 고개를 틀고는 고개를 기울였다.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노을빛으로 물든 네토루의 얼굴은 평소보다도 온화해 보였다.

삭막한 눈동자···. 하지만 따스한 눈빛.

그래서일까. 카렌은 그런 네토루의 모습을 멍하니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 순간 그녀의 눈동자에는 오로지 네토루의 모습만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카렌이 말이 없자 네토루가 먼저 말을 꺼냈다.

“카렌. 나한테 할 말 있는 거 아니야?”

“어···. 응? 그, 그렇지.”

뒤늦게 정신을 차린 카렌은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내가 왜 이럴까. 카렌은 속으로 그리 자책하면서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가다듬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네토루. 너는 안 다쳤어? 오늘 부랑자들이랑 싸웠다며. 어디 칼이라도 맞은 거 아니지?”

“싸우기는 했는데···. 그렇게 큰일은 아니었으니까 너무 걱정 마.”

“걱정 말라고 해도···. 린은 좀 다친 모양인데?”

“···뭐, 쟤가 다쳤다고? 아···. 설마 무릎 좀 까진 걸 말하는 거야?”

네토루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처럼 입가에 짓궂은 미소가 생겨났다.

방금까지 보여주던 온화한 표정과는 거리가 멀다.

어떻게 보면 저 능글맞은 얼굴이야말로 카렌이 알고 있는 네토루의 본모습이었다.

덕분에 카렌은 조금 아쉬워졌다.

방금처럼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네토루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그런 카렌의 속마음을 모를 네토루는 코웃음 치며 말했다.

“카렌. 저건 그냥·····.”

“꺄아아! 스톱! 그만! 거기까지 해!”

네토루가 뭔가를 말하려던 찰나였다. 방금까지 란과 이야기하던 린이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작은 체구로 펄쩍펄쩍 뛰더니 매달리듯 네토루의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았다.

“누, 누렁이···. 그건 비밀이니까? 으응?”

“······으읍?”

린의 말에 네토루가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입이 막힌 탓에 말을 못 하고 있지만, 내가 왜 그래야 하냐고 말하는 듯했다.

그러자 린이 창피하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며 두 눈을 질끈 감고는 소리쳤다.

“···. 어, 어쨌든, 비밀이니까! 굳이 그런 걸 말할 필요는 없잖아!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푸아···. 괜히 그러니까 더 말하고 싶은데···.”

“저, 절대 안 되니까···. 말하면 가만히 안 둘 거야···!”

“······”

이건 또 뭘까. 카렌은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보며 흥미롭다는 듯이 눈을 빛냈다. 저런 둘은 뭔가 생각지 못한 조합이었다.

왠지 모르지만 그새 두 사람은 제법 친해진 모양이다. 혹시 소매치기범을 잡으면서 사이가 좋아진 걸까.

아무튼, 린의 격렬한 반응을 보아하니 부끄러운 무언가가 있었나 보다.

이러니까 괜히 더 궁금해진다. 린은 카렌의 친한 친구다. 그렇기에 더욱 괴롭혀지고 싶은 법이었다.

카렌은 네토루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뭐야. 린한테 뭔 일이 있던 거야? 네토루, 나도 좀 알려줘.”

“아, 안돼! 카렌, 알려고 하지 마!”

“린. 그게 굳이 비밀로 할 일인가? 사람이 실수로 넘어질······.”

“누렁이, 너는 제발 가만히 있어!”

린이 울상 지으며 네토루의 몸을 퍽퍽 치며 다그친다.

린의 작달 맞은 손으로 여러 차례 가슴께를 얻어맞던 네토루는 눈매를 찡그린 채 린을 쳐다보았다.

아픈 건 아닌데, 그냥 어처구니없는 모양이다.

이윽고 참다못한 네토루가 행동에 나섰다.

“으아앗? 자, 잠시만···!”

계속 린에게 주먹으로 가슴을 얻어맞던 네토루가 린의 두 팔을 잡고서 들어 올려버린 것이다. 그러자 린은 으아앗­ 하고 인형처럼 들어 올려졌다.

“놔, 놔줘······.”

가벼워서 그런 걸까. 대롱대롱 공중에서 흔들리는 린의 모습은 꽤나 귀여웠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카렌은 물론이고 근처에서 지켜보던 란도 웃음을 터뜨렸다.

노을 진 길거리.

고요함에 잠긴 길거리를 부대원들과 걷고 있자니 타이밍 좋게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네토루가 선물해준 머리핀을 단 채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정리하던 카렌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왠지 즐겁다. 이런 분위기는 싫지 않다.

네토루도, 린도, 란도, 나츠오도···. 다른 부대원들도.

앞으로도 계속 모두 이렇게 즐겁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카렌이 속으로 그리 생각하던 중이었다.

“······”

문득 카렌의 눈이 나츠오와 마주쳤다. 그러자 나츠오는 놀란 듯 곧바로 고개를 돌렸지만, 카렌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나츠오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보니 나츠오에게 아직 하지 못한 말이 있다.

그렇기에 카렌은 나츠오의 옆에 선 채 살짝 몸을 앞으로 내밀고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나츠오. 선물 고마워.”

갑자기 와서 놀란 걸까. 나츠오는 흠칫하면서도 뒷머리를 긁적이고는 웃었다.

“아···. 뭐···. 네 생일이니까 당연히 준비해야지. 너도 내 생일 때 선물 줬잖아?”

“후훗···. 내가 준 거 잘 보관하고 있지?”

“물론!”

나츠오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는 입장에서는 어딘가 과장스러운 반응이었다.

뭔가 힘이 없다 싶었는데 착각이었나보다. 이런 걸 보니 평소의 나츠오였다.

“나츠오. 오늘은 널 따라 나오길 잘한 거 같아.”

“그래···? 다행히 즐거웠나 보네.”

“응.”

카렌은 미소를 머금은 얼굴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방금 전에 나츠오에게 받은 상자를 꺼내보았다.

원래는 받는 자리에서 곧바로 상자를 열어보려고 했는데···.

이게 전부 네토루 때문이다.

그 녀석이 갑자기 와서 머리핀을 달아준 것 때문에 나츠오한테서 받은 선물을 잠시 잊어버렸다.

그렇게 카렌이 방금 받은 선물을 확인하려고 하자 나츠오가 당혹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자, 잠시만···. 카렌. 지금 그거 확인해보게?”

“응? 그런데 왜?”

“그, 그게···.”

뭘까. 나츠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어딘가 난처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윽고 나츠오는 결심한 듯 주먹을 쥐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확인해 봐.”

“응.”

뭔데 이러는 걸까. 카렌은 나츠오에게 받았던 선물 상자를 확인해보았다.

그리고 카렌 무심코 아­하고 소리를 흘려버렸다.

“······”

선물 상자 안에 든 것은 머리핀이었다.

그제야 카렌은 방금 전에 보여준 나츠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 * *

가는 길 내내 카렌은 설레 보였다. 네토루를 힐끔힐끔 몰래 흘겨보며 얼굴을 붉히는 한편,

갑자기 난데없이 길바닥에 있는 작은 돌멩이를 툭 쳐대며, 수줍어하고 있는 자신을 탓하기도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저 아이가 왜 저러는 걸까 싶겠지만, 나츠오가 보기에 저건 자기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소녀의 모습이었다.

아니, 눈치채고 뭐고 할 것도 없었다.

─어차피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이미 저 소녀의 몸과 마음은 네토루한테 가 있다는 걸.

“······”

그래. 알고 있었어. 하지만···.

그래도 임무를 가기 전에 좋아하는 아이한테 자신의 흔적 정도는 새길 수 있잖아?

큰 걸 바란 것도 아니다.

그냥 임무 동안이라도 내가 선물해준 걸 머리에 달아주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래서 나츠오는 카렌에게 직접 머리핀을 달아주려고 했다.

─예쁘네

하지만 그 역할마저 네토루에게 빼앗겼다. 나츠오를 비웃듯이 바로 눈앞에서 말이다. 분명 먼저 선물을 준 건 이쪽인데 선수를 빼앗긴 것이다.

그 순간 나츠오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망연하게 카렌이 네토루의 얼굴을 보며 부끄러워하는 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결국 나츠오의 작은 바램마저도 꺾인 것이다.

피 맛이 난다. 나츠오는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그 순간에도 그의 뇌리에는 네토루가 준 머리핀을 단 채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 카렌의 얼굴이 떠오르고 있었다.

행복한 얼굴.

그리고···. 나는 지금껏 본 적 없는 카렌의 얼굴.

부대로 복귀하던 도중에 길거리에서 네토루의 소매깃을 잡아당긴 채, 그를 걱정하는 척 아양 부리는 모습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카렌이 언제 저렇게 남자한테 교태부린 적이 있었던가.

그래서 더욱 화가 났다.

왜 저런 카렌의 시선이 나한테 향하지 않은 걸까.

원래 저 위치에 내가 있어야 했는데.

네토루, 그 남자가 아닌 내가.

아무리 참아보려고 해도 강한 분노와 원망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네토루 같은 인간이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

처음부터 저런 남자가 393부대 따위에 오지를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이렇게 좋아하는 아이를 비참하게 빼앗기지도 않았을 텐데.

그는 내게서 모든 걸 빼앗고 있다.

내가 바래던 이상을 그대로 구현한 존재가 되어서.

─아직도 고민하나?

“······”

─여기서 자네가 더 잃을 게 뭐가 있다고 생각하나? 그냥 내 제안을 받아들이게.

악마의 유혹이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나츠오는 녀석의 제안에서 어째 거부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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