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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속 금태양이 되었다-132화 (132/148)

〈 132화 〉 선물

* * *

원래는 그냥 무시하려고 했던 일이다. 하지만 린이 옆에서 졸졸 따라오게 되었으니 괜스레 궁금해졌다.

그리고 보니 린은 왜 그곳에 있던 것인가.

만약 네토루가 타이밍 좋게 나타나지 않았다면 부랑자들한테 험한 꼴을 당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어쩌면 여자로서 최악의 일을 경험했을 수도 있겠지. 비록 외견은 어린아이 같아도 린 역시 어엿한 성년이었으니까. 은근히 보면 여인으로서 갖출 건 다 갖추고 있는 몸이었으니.

성욕에 목마른 남자들이 뭘 못할까.

그런데 정작 자신은 방금 전에 자신이 어떤 꼴을 당할 뻔했는지 전혀 모르는 것처럼, 린은 경쾌한 발걸음으로 네토루의 앞에서 걷고 있었다.

기분이 좋은 걸까. 아니면 평소에도 이런 걸까.

저런 뒷모습만 보고 있자니 방금 전에 부랑자들한테 둘러싸인 채 오들오들 떨던 소녀가 맞는지 의아할 정도다.

그렇게 린이 좋은 악세사리 가게가 있다고 해서 뒤를 따라가고 있을 때였다. 네토루는 린에게 물었다.

“그래서 너는 왜 거기에 있던 거야?”

“으응? 뭐가?”

“아니, 왜 그곳에서 소매치기 소년이랑 같이 있었냐고.”

“어어···. 그, 그거?”

앞에서 걷고 있던 린이 돌연 걸음을 멈추더니 볼을 긁적였다. 그 상태로 딱 봐도 무언가 숨기려는 모양새로 눈을 떼굴떼굴 굴리더니 중얼거렸다.

“비, 비밀인데······.”

“비밀?”

“그, 그래! 뭘 그리 알려고 해? 어차피 이미 끝난 일이잖아!”

린의 반응에 네토루는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알려줄 생각은 없는 듯하다. 하지만 이 녀석이 이렇게 숨기려고 한다면 네토루에게는 다른 방법이 있다.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하기 싫으면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면 되겠지.”

“다른 사람···? 누, 누구?”

네토루의 의미심장한 웃음을 발견한 린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떨린다. 네토루는 그런 그녀의 눈을 지그시 바라본 채 확신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야 누구겠어? 당연히 란이지. 네가 이곳에 혼자 왔을 리는 없잖아?”

“으윽···!”

정답인 걸까. 당혹스러운 얼굴로 린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뒷걸음쳤다. 그렇지만 와중에도 린은 고개를 돌리며 거짓말을 했다.

“뭔 소리야···. 언니 안 데리고 왔는데···.”

이건 도대체 누구를 속이려고 하는 거짓말인가. 너무 어설프다. 그렇지만 대충 속아 넘어주는 척 네토루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그렇다 쳐. 그런데 혹시 란은 네가 오늘 부랑자들한테 험한 꼴 당할뻔한 건 알고 있으려나?”

“······!”

린의 안색이 나빠졌다.

누구보다도 사이좋은 자매다. 만약 란이 오늘 린이 당한 일을 알게 되면 꽤나 재미있는 반응이 있을 것이다.

‘···언니가 분명 엄청 잔소리할 텐데.’

네토루의 예상대로 린은 란에게 오늘 일을 알리고 싶지가 않았다. 안 그래도 제멋대로 뛰쳐나오다가 생긴 일이었다. 알면 엄청 잔소리할 게 확실했다.

그런데 지금 잘 생각해보니까 란에게 과연 오늘 일을 숨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돌아가면 란이 곧바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꼬치꼬치 캐물어 볼 게 뻔하니.

어설프게 거짓말을 했다가는 란에게 들킨다. 지금껏 린은 란에게 거짓말해서 안 들킨 적이 없었다. 그러니 네토루가 대신 잘 말해줄 필요가 있었다.

“저기···. 누렁아···. 언니한테는···. 어떻게 잘 설명해줄 수 없을까? 나···. 오늘 위험했던 거 들으면 분명 싫어할 텐데···.”

“그건 상관 없는데···.”

약해진 린을 보며 네토루가 씨익 웃었다. 어서 말하라고.

그 얄미운 표정에 린은 신음을 흘렸다.

그렇지만 끝내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것 같다고 판단한 린은 한숨을 푹 쉬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전부 털어놓았다.

어차피 굳이 숨길 것도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린의 입장에서는 네토루를 돕기 위한 행동(?) 이었으니.

오히려 네토루가 고마워해야할 입장이었다. 그래서 린은 반대로 당당해지기로 했다.

“···그래서 나 대신에 소매치기 소년을 잡으려고 했던 거라고?”

“그래! 그러니까 어서 나한테 고마워 하라고.”

말하면서도 어느새인가 태세전환를 끝낸 란이 당당하게 가슴을 내밀며 허리춤에 양 손을 얹었다.

방금까지 쩔쩔매던 모습은 어디를 갔는지 그 과정을 지켜보던 네토루 입장에선 내심 감탄이 나올 모습이었다.

솔직히 정작 도움은 안 됐지만···.

뭐 어쨌든 린이 도와주려고 한 건 사실인 거 같으니, 네토루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고맙다.”

“으응? 그, 그래···.”

설마 네토루가 솔직하게 고맙다고 말할 줄은 몰랐기에 린은 민망한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 * *

과연···. 린의 안내를 받고 도착한 가게는 썩 나쁘지 않았다. 제법 여러 악세사리들이 구비되어 있던 덕분에 구경하는 맛이 있었다.

다만 여자한테 생일 선물로 줄 물건을 찾는 건 이번이 처음인지라 선택이 쉽지가 않았다. 애초에 성년이 되는 아이한테 뭘 줘야 옳은 걸까.

네토루는 한참 동안 가게 안의 물건들을 노려보았다.

그렇게 한참동안 고민하고 있자 옆에서 지켜보던 린이 답답했는지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멍청아. 너무 비싼걸 사려고 하지마. 카렌, 그런거 싫어해. 작년에 나츠오가 괜히 비싼거 선물하려고 했다가 얼마나 질색했는데.”

“음···. 그런가?”

확실히 카렌이 사치품을 좋아할 성격은 아니다.

그러면 뭘 선물하는게 좋을까.

“대신 저런 건 어때?”

고민하던 네토루 대신에 린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뭔가 싶어 보니 그곳에는 머리핀들이 모여 있었다.

“머리핀? 카렌이 원래 머리핀 쓰던가?”

“음···. 원래는 안 쓰는데, 그래도 카렌한테 나름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아?”

“···으음.”

린의 네토루는 머리핀을 쓴 카렌의 모습을 잠시 상상해보았다.

···의외로 썩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린의 말대로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해서 린의 도움을 크게 기대는 안 했는데···. 의외로 큰 도움이 될 듯하다.

“그러면 이걸로 할까.”

만족스러운 선택지를 찾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인 네토루는 머리핀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옆을 보았다.

그런데 어느새인가 린이 보이질 않는다.

이 녀석은 또 어디로 간 걸까.

잠시 주변을 둘러보자 멀지 않은 곳에서 다른 물건들을 구경하고 있는 린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시선에는 머리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

혹시 마음에 들던 게 있던 걸까. 머리끈을 구경하던 린이 품속에서 자신의 지갑을 꺼내 들었다. 여우 그림이 있는 귀여운 지갑이었다.

그런데 지갑 안을 살피던 린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더니 무언가 깨달은 듯 한숨을 쉬었다.

─아, 맞다···. 아까 다 썼지···.

린은 시무룩해진 얼굴로 지갑을 닫고서 품속에 다시 집어넣었다.

그러면서도 아쉬운 듯 힐끔힐끔 진열되어 있는 머리끈을 흘겨보다가 끝내 등을 돌렸다.

“······”

그걸 지켜보던 네토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뭘 하면 돈을 다 쓴 걸까.

그동안 제39구역에 있던 탓에 돈 쓸 일이 거의 없을 텐데 말이다. 성기병 파일럿의 봉급은 결코 적지 않은 편이다. 적어도 19살 소녀가 엉뚱한 곳에 쓰지 않는 이상 크게 돈이 부족할 일은 없을 텐데.

이윽고 터벅터벅 걸어오던 린은 가게 문을 열고 나가면서 말했다.

“나 먼저 나가 있을게.”

“그래.”

그렇게 린이 가게 밖으로 나갔을 때였다.

네토루처럼 아까부터 린을 주시하고 있던 흰머리 가득한 가게 주인이 미소를 늘어뜨리며 말했다.

“자네 애인이 상당히 아쉬워하는 것 같던데, 사는 김에 저것도 사주는 게 어떤가?”

“···애인?”

우리가 가게 주인한테는 그렇게 보였던 걸까.

뭔가 싶어 가게 주인의 얼굴을 보니 하나라도 물건을 더 팔아먹기 위한 음흉한 미소가 있었다.

그 모습에 잠시 헛웃음을 흘리던 네토루는 방금까지 린이 보고 있던 머리끈들을 바라보았다.

······뭐, 하나 정도는 나쁘지 않겠지.

* * *

하늘을 보니 어느새인가 해가 지고 있었다. 저녁놀의 붉은빛이 길거리에 드리운다. 린은 저 멀리 보이는 노을을 보며 눈가를 찡그렸다.

“으음···. 란이랑 카렌이 아직도 광장에 있으려나?”

혹시라도 나를 찾고 있으면 어쩌지?

문득 린의 머릿속으로 그런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어쨌든 이대로 저녁이 되기 전에 란이랑 카렌하고 합류해야 할 텐데.

그 초조함에 발을 동동거리고 있을 때였다.

“누렁이는 왜 이렇게 늦어?”

가게 안에서 네토루가 나오는 걸 기다리던 린은 미간을 좁혔다. 분명 물건을 고르는 거까지 보고 나왔는데 왜 이렇게 늦는 걸까.

혹시 선물을 다시 고르고 있나?

이제는 더 이상 못 기다리겠다 싶어서 다시 가게 안에 들어가 보려던 그때였다. 문에 달려 있던 종소리와 함께 네토루가 가게 안에서 나왔다.

그의 손에는 카렌의 선물이 담겨 있을 거로 예상되는 작은 종이봉투가 쥐어져 있었다.

“뭐야. 왜 이렇게 늦은 거야?”

린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를 째릿 노려보았다.

그런데 네토루는 그런 린의 시선에도 개의치 않고 말했다.

“린. 손 좀 줘봐.”

“···손? 갑자기 왜?”

뭔지 모르겠지만 시키는 대로 린은 손을 줘보았다.

그러자 네토루는 자신이 손에 쥐고 있던 작은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덕분에 얼떨결에 그에게서 자연스레 종이봉투를 받은 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이걸 왜 나한테 줘?

이건 카렌을 위한 선물일 텐데?

“······?”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우며 린이 네토루의 옆에서 따라 걷고 있자니, 그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 무덤덤한 네토루의 모습에 린은 황당해졌다.

설마 나보고 카렌한테 대신 선물로 주라는 건가? 자기가 직접 안 주고?

아니···. 그건 아닐 텐데.

뭔가 싶던 린은 잠시 걸음을 멈춘 채 조심스레 종이봉투 안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내용물을 확인하던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안에 있는 건 카렌의 선물이 아니었다.

넘겨받은 종이 봉투 안에는 방금 가게 안에서 린이 구경하고 있던 머리끈이 들어 있었다.

이거 설마···. 나 주려고 산 건가?

그 의문을 풀기 위해 린은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정작 네토루는 어느새인가 노을빛을 등진 채 긴 그림자를 늘어뜨리며 멀어지고 있다.

덕분에 혼자 남겨진 린은 표정을 찡그렸다.

저 녀석 설마 날 버리고 갈 생각인가?

“야야! 같이 가!”

생각지 못한 선물에 멍하니 서 있던 린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서 네토루의 뒤를 잡기 위해 바쁘게 뛰었다.

그 순간 방금까지 카렌과 란이 자신을 기다리면 어쩌나 싶은 초조함이, 이제는 다른 것으로 바뀌며 린의 가슴 안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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