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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속 금태양이 되었다-131화 (131/148)

〈 131화 〉 선물

* * *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이네.”

소년의 몸을 훑더니 네토루가 내뱉은 목소리는 여전히 무덤덤했다. 하지만 무릎을 굽힌 채 소년과 눈높이를 맞춰주고 있는 건, 소년에게 위압감을 주지 않기 위한 그의 배려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어린 시절부터 작은 체구를 지녔던 린이다.

그러니 그녀가 네토루의 행동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는 건 별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어린 시절 가끔씩 성격 좋은 어른들이 저러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소년의 얼굴에 묻은 먼지 덩어리를 쓱쓱 털어주는 모습을 린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뭘까, 저 모습은.

“······”

분명 누렁이가 잔뜩 화난 줄 알았다. 소매치기당했을 때 화나지 않을 사람이 어딨을까.

실제로 린은 어릴 때 손찌검도 많이 당했었다. 잡혔을 때 발로 차이거나, 주먹에 맞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정작 네토루의 얼굴에는 화난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거지. 오히려 소년의 상태를 확인하면 은연히 웃는 것이 안도하는 얼굴이었다.

덕분에 잘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네토루의 희미한 미소에서 린은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어느새인가 잔뜩 힘이 들어갔던 린의 팔다리가 스르륵 무너지고, 온몸에 긴장감이 풀린다.

어쩌면 혼자 착각하고 있던 걸까.

그러한 의문 속에서 린은 넌지시 물어보았다.

“···이 녀석, 안 혼내는 거야? 소매치기했는데?”

“왜? 그러면 지금이라도 혼낼까?”

“아, 아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고···.”

린이 우물쭈물하자 네토루가 헛웃음을 흘렸다. 방금까지 무미건조한 얼굴로 부랑자들을 박살 내던 모습과는 어딘가 다른 인간적인 표정이었다.

그제야 소년을 품에 안고 있던 팔을 풀며 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이러니까 자기 혼자 착각하고 있던 게 바보 같아졌다.

“꼬마야. 내 지갑 좀 돌려주면 좋겠는데?”

“아···. 자, 잠시만요!”

네토루의 말에 곧바로 린의 품속에서 빠져나온 소년이 건물 구석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무언가를 주웠다.

네토루의 지갑이었다.

다행히 소년이 부랑자들에게 상납했던 네토루의 지갑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린이 소년을 구하기 위해 밀쳐냈을 때 사내가 손에서 떨궜었나 보다.

다만 더러운 바닥을 뒹군 탓일까. 네토루의 지갑 역시 방금 전의 소년처럼 잔뜩 더러워진 상태였다.

그러한 지갑의 상태에 소년은 어두워진 얼굴로 터벅터벅 걸어와 조심스레 네토루에게 내밀었다.

“죄, 죄송합니다···! 지, 지갑이···.”

“···뭐, 됐어. 어차피 오래된 지갑이니까.”

네토루는 지갑에 묻은 먼지를 대충 털어내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다행히 안을 살펴보니 돈은 그대로 있었다. 그거면 됐기에 네토루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품속에 지갑을 넣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문제는 이 사람들인데.”

손에 흉기를 들고서 덤벼들던 부랑자들이다. 당연하지만 이들까지 봐줄 생각은 없었다. 사정이 어떻든 선을 넘은 이상 대가는 치러야겠지. 이런 이들이 있으면 괜히 다른 시민들까지 피해만 본다.

그러면 역시 경비병들에게 넘기는 게 좋겠지. 애초에 도시의 치안을 관리하는 건 그들의 역할이었다. 성기병 파일럿인 네토루가 괜스레 끼어들었다가는 일만 귀찮아진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네토루는 린을 바라보았다.

일단 쓰러져 있는 부랑자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네토루는 여기에 있어야 한다.

그러면 경비병들을 불러올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한 명뿐이다. 괜히 소매치기 소년을 보내는 것보다는 신분이 확신한 사람을 보내는 게 좋다.

성기병 파일럿이라는 신분을 지닌 린이 간다면 경비병들도 이번 일을 섣불리 무시할 수는 없겠지.

그래서 린을 보내려고 하는데 네토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 린은 아까부터 말이 없더니 멍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뭔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가을 하늘을 연상케 하는 갈색 눈동자가 이쪽을 지그시 보고 있다.

그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네토루는 이름을 불렀다.

“린.”

“······”

“린···?”

“으, 응? 가, 갑자기 왜?”

이제야 귓가에 목소리가 닿은 걸까. 화들짝 놀란 린이 흠칫하며 눈을 여러 차례 꿈벅였다.

뭔 생각을 저렇게 하고 있는 거지. 아무튼, 잘 모르겠지만 네토루는 린에게 부탁했다.

“가서 경비병들 좀 불러오면 좋겠는데. 나는 여기서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할 거 같거든.”

“겨, 경비병? 아···. 그, 그래야겠네···. 이 사람들 전부 체포해야 하고···. 으응! 알았어!”

획획 고개를 끄덕이던 린은 벌떡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더니 입구로 뛰었다. 그런데 몇 걸음 안 가서 근처에 너부러져 있던 막대기 따위를 밟더니.

우당탕···. 린은 바닥에 그대로 엎어졌다.

“아읏···. 아파···.”

입구 앞에서 제 무릎을 잡으며 신음을 흘리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 굳이 저렇게 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었는데. 네토루는 괜찮은 건가 싶어서 린에게 다가갔다.

일단 가서 몸이라도 일으켜 세워줄 생각이었다.

“괘, 괜찮아···! 오, 오지마···.”

그런데 발걸음을 느끼기 무섭게 린은 눈물을 글썽이며 이쪽을 힐끔 쳐다보더니, 다시 벌떡 일어나 뛰어나갔다.

후다다닥···.

순식간에 뒷모습이 멀어진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녀의 뒷모습이 영 믿음직스럽지가 않아서 네토루는 무심코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저 녀석. 괜찮은 거야?”

이러니까 마치 어린 꼬마애한테 심부름이라도 보내는 느낌이었다.

2.

여전히 중앙 광장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린은 네토루의 말대로 경비병들을 불러오기 위해 사람들 사이를 달렸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이상할 정도로 심장이 콩닥콩닥 빠르게 뛰고 있었다.

게다가 제 자신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그건 숨이 차오르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달리기에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다. 겨우 이렇게 뛴다고 지칠 몸이 아니었다.

“우, 우와···. 자, 잠시만···. 이거, 뭔데.”

린은 이런 자신의 상태에 당혹스러움을 느끼며 더욱 속도를 높였다. 괜스레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볼까 봐 두려워질 정도였다.

가끔씩 카렌에게 이야기는 들었다. 생각보다 성격은 좋으니 너무 경계할 건 없다고.

하기야 도시 지키겠다고 혼자 무리하다가 마력탈진으로 하루종일 의식을 잃었던 녀석이다.

린도 성기병을 조종하는 입장이기에 네토루가 그때 얼마나 무리한 건지 잘 안다.

하지만 문제는 막연하게만 생각하던 걸 눈앞에서 직접 보게 되니 여러 의미로 린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는 점이었다.

무뚝뚝하지만 행동 하나하나에서 드러나는 숨길 수 없는 어른스러움이 린의 가슴과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아. 잠시만··· 이, 이러면 안 되는데···.”

정신없이 계속해서 달리던 린은 잠시 다리를 멈추었다. 욱신­ 다리가 아프다. 철부지처럼 거기서 넘어질 게 뭐람. 자기가 생각해봐도 그 일은 너무 부끄러웠다.

분명 누렁이­ 그 녀석도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했다.

게다가 넘어질 때 녀석한테 오지 말라고 했을 때도 이상한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부끄러워서 너무 급했던 것이다. 덕분에 자리를 뜬 지금도 온갖 자괴감과 부끄러움이 린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 상태로 린은 일단 제 감정부터 진정시키자는 생각에 몸을 굽힌 상태로 몇 번이나 심호흡을 반복했다. 깊게 숨을 들이쉬고, 몸 안의 모든 걸 털어내듯 내쉰다.

그렇게 몇 차례 심호흡을 반복하니 확실히 도움이 되었는지 서서히 가슴과 머리가 안정되는 걸 느꼈다. 린은 후아­ 작은 탄성과 함께 이마에 흐르던 식은땀을 닦아내며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어라?”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을 둘러보던 린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말았다.

뒤늦게 커다란 사실 하나를 깨달은 린의 가을빛 눈동자가 두둥하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까 엄청난 걸 잊고 말았다.

그리고 보니 경비병들의 위치가 어디에 있더라?

거기서 무작정 뛰쳐나오느라 정작 자신이 경비병의 위치를 모른다는 걸 생각 못 하고 있었다.

린은 그 사실에 멍하니 잠시 얼어붙어 있다가 고개를 획획 젓고는 근처에 있던 시민을 붙잡고 물었다.

“음? 꼬마야, 혹시 길이라도 잃은 거니?”

“기, 길을 잃은 건 아닌데···.”

어디를 봐서 내가 꼬마라는 걸까.

하지만 린은 용수철처럼 튀어나오려는 감정을 애써 꾹 억눌렀다. 지금은 일단 경비병을 불러오는 게 우선이다. 괜히 늦었다가는 네토루만 곤란해진다.

린은 간신히 감정을 갈무리하고는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경비병 어디 있어요?”

그대로 린은 이름 모를 시민한테 경비병이 있는 곳까지 안내 받았다. 덕분에 길 잃지 않고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다.

3.

네토루는 린이 경비병들을 불러오는 동안 건물 구석에 부랑자들을 모아놓았다. 그와 동시에 소년이 찾던 어머니의 유품도 찾아주었다.

“혹시 찾는 게, 이거야?”

“네! 그거에요!”

다행히 소년이 찾던 어머니의 유품은 무리의 리더격이었던 사내가 가지고 있었다.

찾은게 그렇게 기쁜 것인지 어머니의 유품을 꼬옥 손에 쥔 채 눈물을 글썽이는 소년을 보며 네토루는 옅은 웃음을 흘렸다. 딱히 소년을 도와주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다만 걱정되는 건···. 과연 혼자 남게 된 소년이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지인데. 그래도 도시에서 이번에 고아가 된 아이들을 지원해주고 있다고 하니 그걸 믿어볼 수밖에 없다. 거기까지는 네토루도 어떻게 해줄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다행히 린은 생각 이상으로 경비병들을 빠르게 데리고 왔다.

이윽고 하나둘씩 경비병들에게 연행되어 가는 부랑자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네토루는 등을 돌렸다.

어쨌든 이걸로 끝이다. 소년도 운 좋게 어머니의 유품을 되찾으니, 이제 네토루는 본래 하던 일이나 계속하기로 하였다.

“너. 카렌한테 선물할 거 찾고 있는 거지?”

그런데 린이 뒤를 졸졸 따라오더니 옆에 달라붙었다. 순간 그걸 어떻게 알았나 싶었지만 네토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숨길 것도 아니었다.

“뭐, 그렇지.”

“그러면 내가 선물 고르는 거 도와줄까?”

“···네가?”

“그래! 내가 카렌하고는 오랫동안 알고 지냈으니까, 그 녀석이 좋아할만 한 거 내가 알려줄 게!”

“······”

갑자기 왜 도와주는 건가 싶지만···

잠시 고민하던 네토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괄량이 같은 녀석이지만 린도 나름 여자아이였으니 도움이 될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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