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 선물
* * *
네토루는 소매치기당했을 때 곤란함만 느낄 뿐, 도망친 소년에 대해서 딱히 화가 나지는 않았다.
언제 망할지 모를 나라다. 이런 상황에 돈 따위에 일일이 감정을 소모하는 것도 귀찮다. 당장 내일 바로 쓸모없는 종잇조각이 될지 모를 물건이었다.
게다가 소년이 도망칠 때 네토루는 보았다. 소년의 허름한 차림새와 간절한 눈빛을 말이다.
이유가 어떻든 소매치기가 옳은 행동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비난하기도 그랬다. 세상이 이러하니 으레 그러하듯 무언가 사정이 있겠지.
다만 문제는 소년이 훔쳐 간 지갑 안에는 네토루에게 당장 필요한 돈이 있다는 점이었다. 어쨌든 카렌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으니까.
그래서 네토루는 뒤늦게나마 소년의 뒤를 쫓았다.
그런데 이건 무엇일까. 네토루는 건물 안에 들어서기 무섭게 자신을 둘러싼 사내들을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몇몇은 아예 위험해 보이는 무기를 손에 쥐고 있었다. 게다가 눈빛 또한 위험하기 짝이 없다.
“···흠.”
사람의 외견 가지고 평가할 생각은 없지만, 험상궂은 인상들도 그렇고, 평범한 시민들이 손에 나이프 같은 걸 쥐고 있을 리가 없다. 아무래도 부랑자들인 거겠지.
안 그래도 모두가 궁핍해지는 시대에서 버그들에게 한차례 습격받은 도시다. 그러니 불안정한 치안 속에서 이런 부랑자들이 생겨나도 이상할 건 없다.
네토루는 슬금슬금 거리를 좁혀오는 사내들을 보며 느슨해져 있던 긴장감을 높이면서도, 그들 뒤편으로 보이는 린과 이름 모를 소년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는 린이 왜 여기에 있는 것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큰 상처 없이 무사한 걸 보니 다행이었다. 그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네토루는 왠지 웃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꼬맹이 같은 소녀가 제 몸집과 비슷한 꼬맹이를 등뒤에 숨기는 모습은 용감하면서도 꽤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뭐 아무튼···.
뭔 사정으로 이런 꼴을 겪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주변 상황부터 해결하는 게 우선이겠지.
네토루는 다가오던 사내들을 눈여겨보고는 몸을 비틀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쇠 막대기 같은 것이 휘둘러지며 네토루의 어깨를 스쳤다.
“허? 이걸 피해?”
실실 웃으면서 이름 모를 사내가 입가를 히죽인다. 망설임 따위라고는 느낄 수 없는 풀스윙이었다.
평범한 사람이 맞았다가는 그대로 어디 몸 한쪽이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공격. 그런 걸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걸 보니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일반인이었다. 네토루는 공격을 피하기 무섭게 손을 뻗었다. 거리는 가깝다. 네토루는 탁하고 실실 웃던 사내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곧 사내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뭐, 뭐야! 힘이 무슨···!”
붙잡힌 손목을 쳐내기 위해 사내가 온몸에 힘을 주지만 무의미했다. 마력 신경계를 구축한 남성을 상대로 일반인이 뭘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네토루는 망설임 없이 붙잡은 사내의 손목을 나뭇가지 꺾듯이 꽈드득 비틀어주었다. 그에게 일반인의 손목을 꺾는 건 별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끄아아악?!”
고통 어린 비명. 네토루는 그 모습을 싸늘한 눈으로 노려보다가, 그대로 사내의 턱을 가볍게 쳐주었다. 그러자 축 늘어지고는 움직임이 사라졌다. 의식을 잃은 것이다.
찌이잉하고 사내가 쥐고 있던 쇠 막대기가 쓰러진 제 주인 따라 바닥을 구른다. 네토루는 허리를 굽혀 그걸 손에 쥐어보고는 마음에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그라고 해서 맨몸으로 연장이나 나이프 따위를 쥐고 있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게다가 이제 곧 작전날이다. 어설프게 싸웠다가 다치는 건 피해야했다.
네토루는 획득한 무기를 쥔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덤빈 것은 저쪽이 먼저다. 그러니 이쪽도 망설일 필요는 없다. 그리고 애초에 무기를 쥔 상대로 여유를 부리는 것도 멍청한 짓이었고.
그는 근처에 있던 부랑자들에게 아무런 경고도 없이 쇠막대기를 휘둘렀다. 단조롭지만 날카로운 궤적이 인간의 육신을 용서 없이 두들겼다. 하나둘···. 셋. 그대로 사내 셋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자 주변에서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던 부랑자들이 주춤거리며 뒷걸음쳤다. 눈치 없으면 모를 수가 없다. 범상치 않은 상대라는 걸.
자신의 적이 누구인지 천천히 주변을 확인하는 그 모습에서는 여유로운 걸 떠나 무미건조하기 까지했다. 아무런 흥분도, 공포도 없는 삭막한 눈동자.
지금까지 무기를 쥐기만 해도 덜덜 떨었던 만만한 일반인들만을 노렸던 부랑자들에게 네토루는 이질적인 상대인 것이다.
“멍청이들아! 뭘 뒷걸음치는 거야! 어차피 혼자야!”
그런데 그때 한 남자가 주변에서 멈칫거리는 사내들을 다그쳤다. 그제야 정신이 번뜩 들었는지 제 각자 무기를 쥐고는 하나둘씩 달려들기 시작했다.
숫자만 믿고 덤벼드는 무모한 돌격. 하지만 사방에서 달려들면 그것도 나름 위협적이다.
그렇지만 상관 없다.
그에게는 딱히 큰 문제라고 할 건 아니었다.
네토루는 더 이상 먼저 달려들지 않았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는 부랑자들이 고성을 지르며 달려오면 가볍게 피하고서 반격만 하였다.
그것만으로도 달려들던 부랑자들은 네토루한테 팔다리가 부러진 채 바닥을 뒹굴었다.
“뭐, 뭐야···. 너, 뭐야?!”
절반 정도가 그렇게 쓰러지자 남은 부랑자들은 안색이 새파랗게 변한 상태로 몸을 떨었다.
이윽고 방금 전에 싸우면 이긴다고 버럭 소리 질렀던 리더를 시작으로, 부랑자들은 슬그머니 엉덩이를 뒤로 빼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네토루는 그들을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만약 평범한 양아치들이었으면 모를까 대놓고 흉기를 들고 사람을 협박하던 녀석들이다. 그런 것들을 그냥 보내주었다가는 나중에 일만 귀찮아진다.
그렇기에.
끄으으으윽.
그는 쇠 막대기를 질질 끌며 입구를 막았다.
2.
린은 눈을 꿈벅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내들은 비명과 함께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무기를 쥐고 사방에서 덤벼드는 사내들을 상대로도 네토루는 다급해하는 것 없이 제자리를 유지한 채 단어 그대로 하나둘씩 박살 내고 있었다.
이쯤 되면 서로 짜고치는 연극이라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네토루는 그냥 가만히 있을 뿐인데 사람들은 상처 하나 주지 못하고 있었다.
흉흉하기 짝이 없는 무기도 그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어디 몸 다치는 게 전혀 무섭지 않은 건지 네토루의 얼굴은 시종일관 무덤덤했다.
도와줘야 하나?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는 건 순식간이었다.
괜스레 도와주겠다고 움직이는 것보다는 가만히 있는 게 그를 도와주는 거겠지. 그래서 린은 소매치기 소년을 데리고 적당히 구석에 숨었다.
그러던 그때 린은 손에 쥐고 있던 소년의 손이 덜덜 떨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뭔가 싶어 보니 소년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누렁이를 보고 있었다.
왜 이러는가 싶었는데 린은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보니 이 녀석, 누렁이한테 잘못한 게 있지 않은가.
게다가 차가운 얼굴로 사람들을 제압하는 모습은 린이 보더라도 꽤나 무서웠다. 누렁이를 모르는 소년이 보기에는 상당히 두렵게 느껴지겠지.
잘 된일이다. 안 그래도 린은 소년에게 소매치기는 나쁜 거라고 훈육할 생각이었다. 린은 입가에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꼬맹이. 이제 너도 저렇게 될걸?”
“뭐, 뭐? 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에이.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거야? 표정을 보니까 이미 뭘 잘못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눈치인데.”
“나, 나는 그냥···.”
그런데 너무 겁을 준 걸까. 갑자기 소년이 울먹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굳이 울릴 생각은 없었기에 린은 괜스레 미안함을 느꼈다.
일단 사정부터 알고 혼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너. 소매치기는 왜 한 거야?”
“도, 돈이 필요하니까···.”
“돈은 왜? 굶주려서?”
소매치기를 일 삶던 린과 란은 어린 시절부터 굶주리고 살았다. 어쩌면 그래서 이렇게 남들보다 몸집이 작은 걸지도 모른다. 성년이 된 지금도 한이 되는 일이었다.
“아니야···. 저 녀석들이 돈 가져오면···. 훔쳐 간 어머니 유품을 돌려준다고 해서···.
서러운 일이 있던 걸까. 이윽고 소년의 눈가에 닭똥 같은 눈방울들이 뚝뚝 흐른다. 그러면서도 소년은 이런저런 사연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가볍게 야단이나 칠 생각이었던 린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표정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나쁜 놈들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상상 이상이었다.
소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금 네토루와 싸우고 있는 부랑자들은 버그들의 습격 때 혼란을 틈타서 물건을 훔치던 무리인 듯했다.
그러다가 그들이 훔친 물건 중에는 피난 도중에 죽은 어머니의 반지도 있는 것이었다. 즉 시체에서 물건을 훔쳐 간 것이다.
“아버지는? 아버지는 이거 몰라?”
도리도리. 소년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모르는 구나 싶던 린은 소년의 다음 말에 아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때 돌아가셔서.”
“······아.”
생각해보니까 부모가 멀쩡히 있다면 이런 꼬맹이가 이러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생각이 짧았다.
린은 떨리는 목소리로 소년에게 물었다.
“···그, 그러면. 혼자야?”
어린 시절에 린에게는 란이 있었다.
덕분에 배를 굶주리며 힘들더라도 외롭진 않았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소년은 어떠한가.
린은 그 고독감을 결코 상상할 수가 없었다. 아니, 상상하는 것부터가 싫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앞이 아찔해지는 기분 속에서.
“···여기서 뭐하는 거야. 너.”
“으읏? 뭐, 뭐야! 손 치워!”
별안간 머리를 꾹 누르는 손길이 있었다. 그 손을 치워내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소용없다. 뭐 이리 힘이 센 것인지 아무리 밀어내도 손은 꿈쩍도 안 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고개를 들어보니 황당하다는 눈으로 린을 쳐다보는 네토루의 모습이 보였다.
“너, 왜 여기에 있는 거야.”
“······”
네토루의 질문에 린은 입술을 달싹였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네가 소매치기당한 것도 모르고 그냥 멍청하게 있길래, 참다못해 자신이 쫓아갔다고 말하기에는 뭔가 모양새가 안 산다.
그래서 뭔가 좋은 변명거리가 없나 생각하던 그때였다.
“···됐다. 어쨌든 다친 곳은 없어 보여서 다행이네.”
네토루는 그리 말하더니 린을 지나쳐 뒤에 있던 소년한테 걸음을 옮겼다.
이내 소년의 얼굴 위로 네토루의 그림자가 들어섰고, 그를 올려다보던 소년이 새파랗게 지린 얼굴로 침을 꿀꺽 삼켰다.
객관적으로 봐도 네토루의 인상은 결코 선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무섭다. 적어도 잘못을 저지른 소년에게는 부랑자들만큼이나 무서울 것이다.
그렇기에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린이 다급하게 둘 사이에 끼어들며 소년을 품에 안고는 말했다.
“누, 누렁이! 이 녀석 혼내지 마!”
“뭐?”
네토루가 표정을 찡그렸다.
품에 안고 있던 소년에게서 감정이 전염된 걸까. 린은 괜스레 자신도 그의 얼굴이 무섭게 느껴졌다.
안 그래도 어두컴컴한 폐건물 안이다. 그곳에서 올려다본 그의 얼굴에는 짙은 음영이 그늘져 있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비집고 들어온 뿌연 먼지들이 공기 중을 타고 돌아다니는 가운데, 무겁게 깔린 정적 속.
지금 이게 뭔가 싶어 린을 지그시 쳐다보던 네토루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 그 녀석이 뭔 짓을 했는지 알고는 있어?”
“다, 당연히 알고는 있지···. 이 꼬맹이가 소매치기로 네 지갑을 훔쳤잖아···?”
“그래. 소매치기했지. 그런데도 그러는 거야?”
“그, 그렇지만···.”
저렇게 말하면 린도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실제로 린은 논리 따위 없이 감정만이 앞서는 중이었다.
그래서 린은 간절함이 담긴 절박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본 채 다시 한번 말해보았다.
“···나는 네가 이 꼬마를 혼내지 않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안 돼? 응?”
소매치기한 게 잘한 짓은 아니지만 그래도 처지가 너무 딱하다. 며칠 전에 부모까지 잃은 아이 아닌가. 적어도 무작정 혼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른이라면 한 번쯤 사정 정도는 들어줘도 되지 않을까, 싶은 게 린의 솔직한 생각이었다.
그렇게 린의 눈을 얼마나 쳐다보았을까.
이윽고 한숨을 쉬던 네토루가 무릎을 굽혔다.
그리고는 소매치기 소년과 같은 높이에서 두 눈을 마주하더니, 소년의 얼굴에 묻어 있는 먼지 덩어리를 손등으로 닦아주며 물었다.
“···꼬마야. 다친 곳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