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여기사
* * *
─그러면 이제 시작해보자고.
말과 함께 볼드로이가 타고 있는 케레네의 성기병이 움직였다. 세레스만큼이나 육중한 형태를 지닌 성기병이 맹렬하게 달려온다.
붉은빛을 띤 그것은 전쟁터에서 전신을 핏물로 색칠한 중갑 기사를 보는 것만 같았다. 비록 착용 중인 무기와 갑옷이 훈련용 무장이라고 하지만, 체급에서부터 차이가 나기에 위압감은 엄청났다.
“카렌.”
“나는 준비 됐어.”
네토루가 망설임 없이 조정간을 강하게 쥐자,
카렌은 눈을 질끈 감았다.
다음 순간 순식간에 서로 연결되어 있던 마력 패스가 확장되더니, 하복부에 있는 카렌의 마력 신경계가 엄청난 속도로 활성화되고 있었다.
···저번에 나츠오랑 커플링 했을 때와는 감각이 전혀 다르다. 온몸의 신경이 강제로 끌어 당겨지는 듯한 감각과 마력 패스를 짓누르는 엄청난 압박감.
마력을 소화할 여유도 없이 온몸을 가득 채우고 있는 네토루의 마력을 느끼며, 카렌은 성기병의 동력을 이끌어내는데 전력을 다했다.
이 싸움에서 지고 싶지 않다.
네토루가 볼드로이 저 남자한테 지는 꼴은 절대 보고 싶지 않다고 해야 할까.
아니, 정확히는 커플링 파트너를 물건 취급하는 저 쓰레기 같은 남자에게 크게 한 방 먹여주고 싶었다.
“으읏···!”
이윽고 출력이 절정에 이를 때였다. 카렌의 입술 사이로 신음 소리가 새기 무섭게, 네토루가 조정간을 잡아당기며 성기병을 움직였다.
────!
다음 순간 카렌의 성기병이 있던 공간을 베어 무너뜨리듯 검날이 스치고, 궤적을 따라 비명과 같은 파열음이 울렸다.
대련치고는 살기 넘치는 일격이다. 어쩌면 정말로 죽일 듯이 덤비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 위협적인 공격에서 도망치듯 네토루는 뒤로 물러섰다.
섣불리 반격은 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붉은 성기병을 차분히 관찰했다. 일단 상대의 역량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쿠우우웅!
그리고 그런 네토루를 쫓아 붉은 성기병은 지면에 커다란 균열을 새기며 땅을 박찼다.
그 속도는 결코 카렌의 성기병에 뒤처지지 않았기에 따라잡히는 건 순식간이었다.
───후욱!
또다시 선풍을 동반한 일격이 휘둘러진다. 시야를 베어내듯 그어지는 선명한 선 줄기.
그것을 인식하는 그 순간 네토루는 성기병을 비틀었다. 그와 동시에 섬뜩한 선 줄기는 성기병의 어깨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조금만 반응이 늦었어도 베였다. 그 사실에 볼드로이가 도발적인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계속 도망만 칠 생각이냐?”
당연하지만 그의 도발에 흔들릴 필요는 없다. 네토루는 차분한 표정을 유지한 채 볼드로이의 움직임을 눈에 새겼다.
흉흉한 살기가 주변에 드리우며, 폭풍 같은 검격이 네토루를 향해 몰아친다. 격렬하지만 그 안에는 기사 특유의 예리함이 있었다.
···과연 역시 기사라는 건가.
공격 하나하나가 전부 치명적이며 위협적이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네토루에게는 닿지 못했다.
새하얀 성기병의 유려하면서도 기민한 움직임은 날아오는 검격을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한발 앞서 움직여 피해냈다.
그렇게 공격을 피하면 피할수록 점점 상대의 움직임이 눈에 익기 시작한 가운데,
“···나쁘지 않군.”
네토루는 입술을 비틀었다. 이 정도면 다행히 그가 예상했던 수준이었다. 아직 볼드로이의 실력은 좀 더 봐야겠지만, 성기병의 성능 자체는 짐작했던 대로였다.
세레스보다 조금 못한 수준인가.
물론 그렇다고 케레네의 성기병이 부족하다는 건 아니었다. 이건 단지 반대로 세레스의 성기병이 그만큼 성능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이걸로 어느 정도 파악은 끝났다. 네토루는 카렌의 성기병을 앞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잠시 뒤로 물러서 있던 케레네의 성기병 역시 앞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는 높이 들어 올린 검을 그대로 내리긋는다.
상대를 그 자리에서 양단할 듯한 사뭇 위협적인 기세였다. 하지만 네토루는 그 일격을 멍청하게 받아줄 생각은 없었다.
이윽고 참격이 공간을 베고, 주변의 공기가 파르르 떨린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아무리 위력적인 일격도 상대에게 닿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덤벼들던 네토루는 들어 올려지는 상대의 검을 보고서 곧바로 옆으로 몸을 뛰었다.
튀는듯한 날카로운 도약.
그것은 믿기 어려울 정도의 급격한 방향 전환이었다. 전력을 다해 앞으로 움직이던 성기병이 돌연 옆으로 방향을 꺾은 것이다.
오로지 카렌의 성기병만이 가능한 날렵한 움직임.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붉은 성기병의 검은 그저 빈 허공만을 때릴 뿐이었다.
“···이 자식.”
상대를 놀리는 듯한 네토루의 움직임에 볼드로이는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그것에 분노할 여유도 없이 그는 다급하게 조정간을 당겨야만 했다.
옆으로 방향을 꺾었던 새하얀 성기병은 멀리 가지 않았다. 해봤자 두 걸음 정도였을까. 그 정도 거리에서 새하얀 성기병은 다시 튀어 오르듯 달려들었다.
옆으로 도약해 공격을 피하고, 그 순간 만들어지는 상대의 틈새를 파고드는 그 모든 일련의 움직임들은 정말 1초도 안 되는 찰나의 순간에 이루어졌다.
번뜩이는 섬광.
이건 막을 수 없다. 공격을 인지하는 순간 그렇게 판단한 볼드로이는 성기병을 뒤로 물렸다. 하지만 거리를 완전히 벌리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
끼이이이익──!
칼날이 그대로 붉은 성기병의 갑옷을 긁고 지나갔다. 기다란 자상이 갑옷 위에 새겨지고, 갑옷의 표면에서 칼끝과 맞물린 마찰열을 못 이겨 불티가 화려하게 튀어 올랐다.
하지만 어떻게든 치명상은 피했다. 그런데 녀석은 공격 한 번으로 멈추지 않았다. 생겨난 틈새를 강제로 잡아 벌리듯 또다시 한걸음 내딛고 들어온다.
순간 등줄기가 섬뜩해지는 감각 속에서,
후우우욱!
이번에는 녀석의 검이 콕피트를 향해 찌르고 들어온다.
당연하지만 콕피트는 인간으로 치면 심장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아무리 갑옷이 있다고 하지만, 파일럿의 안전을 보장할 수가 없다.
“크으윽!”
덕분에 그 순간은 판단이고 뭐고 없었다. 볼드로이는 본능적으로 검을 위로 당겨 올리며 그대로 덤벼드는 새하얀 성기병을 향해 휘두르고 보았다.
뒷걸음치던 불안정한 자세에서 시작된 반격이었다. 그렇기에 그 안에는 기사다운 정교하고 정련된 움직임은 없었다. 어찌 보면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반격이다.
하지만 힘의 차이는 압도적. 충분한 힘만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위협적인 공격이 된다. 애초에 그 정도의 성능 차이가 둘 사이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상대에게 닿는가 였다.
──후우욱!
이번에도 볼드로이의 공격은 빈 허공만을 베어냈다. 허공을 저며내듯 강력한 검격도 정작 상대에게 닿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정신을 차려보니 당연하다는 듯이 녀석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어느새인가 새하얀 성기병은 저 멀리 거리를 벌리며 이쪽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
상대는 아무런 말도 없다. 아까부터 계속 침묵을 유지할 뿐. 음성 채널 역시 완전히 닫혀 있다.
하지만 그러한 침묵 속에서 그는 느꼈다.
지금 저 녀석은──. 웃고 있다.
마치 이것뿐이라고. 네 실력은 이 정도냐고.
멀리서 지켜본 채 조소하고 있는 게 훤히 보였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볼드로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조정간을 쥔 손에 힘이 더해지고, 이마에 십자 모양의 혈관이 불뚝 튀어나왔다.
볼드로이는 세인트 미샤르 기사단의 기사였다.
······그런데 방금 전의 공방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일방적으로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그것도 일반 파일럿한테 말이다.
하지만 자존심을 떠나 볼드로이는 현 상황에 대해서 냉철하게 판단했다.
믿기 어려울 정도의 날렵한 움직임이다.
덕분에 케레네의 성기병으로는 쉽사리 그 움직임을 따라 잡기가 힘들었다. 아무리 공격해도 전부 바람을 베듯이 허무하게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저건 단순히 성기병이 날렵하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남성 파일럿의 조종 실력이 이상할 정도로 정밀하고 기민했다. 상대하던 볼드로이조차도 경악할 정도로 말이다.
녀석은 정말 미래라도 보는 것인가?
아니, 애초에 겨우 기관 출신 계집년으로 저렇게 움직일 수 있다고?
“볼드로이 경? 괜찮은가요?”
커플링을 통해 울렁이는 감정을 느낀 걸까. 케레네가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까지 계속된 격렬한 기동 탓에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 있었다.
“···진정해요. 어차피 해봤자, 저쪽 성기병의 성능으로는 제 성기병을 이길 수 없으니까요.”
“······”
케레네의 차분한 조언에 볼드로이는 입술을 비틀었다.
그래. 지금 네토루, 저 녀석이 타고 있는 건 기관 출신의 소녀였다. 비록 기관 출신치고는 성능이 제법인 것 같지만 성기병의 성능 차이는 명확하다.
누가 보더라도 케레네가 더 우월했다.
애초에 저 녀석이 정면에서 검을 부딪치지 못하고 치고 빠지는 형식의 전투에 집중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있었던 공방 중에서 녀석은 단 한 번도 두차례 이상 검을 맞댄 적이 없었다. 그건 성기병의 성능 차이를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이걸 다르게 보면.
성기병의 차이가 이 정도인데 이기지 못하고 있다는 게 무슨 의미를 뜻하겠는가. 이것은 누가 봐도 남성 파일럿의 역량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러면 지금 나는 저 녀석보다도 못한 건가?
문득 그걸 깨닫고 나니 눈앞이 침침해지는 듯한 분노가, 그의 머릿속을 시꺼멓게 빈틈없이 칠해가고 있었다.
볼드로이는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녀석의 속도가 빠르다면, 그만큼 이쪽도 빨라지면 그만이다.
그렇기에 그는 케레네의 조정간을 잡아당기며, 케레네와 연결된 마력 패스를 강제로 확장시켰다.
“흐윽!? 자, 잠시만요···! 볼드로이 경!?”
순식간에 강대한 마력이 몸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그 난폭한 마력 덩어리에 놀란 케레네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차갑게 식은 눈으로 케레네를 응시하던 그가 말했다.
“참아. 빨리 끝낼 테니까.”
“하, 하지만···! 끄앗!?”
주도권은 온전히 볼드로이한테 있기에 케레네가 저항하는 건 불가능했다. 점점 출력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케레네는 마력 신경계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이윽고 케레네의 한계 출력을 벗어난 붉은 성기병이 땅을 박찼다.
2.
카렌의 성기병이 지닌 최대 장점은 날렵한 기동력이었다. 비록 여기사의 성기병에 비해 전체적인 능력치가 부족할지언정, 특유의 민첩함만큼은 절대 뒤지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케레네의 성기병이 카렌의 성기병보다 일방적으로 속도가 뒤처지는 건 아니었다. 단지 미세하게 이쪽이 더 빠를 뿐.
네토루는 그 조그마한 우위로 최대한 적의 빈틈을 만들어내며 치고 빠지는 공방을 반복하는 중이었다.
다만 아쉽게도 날렵함만으로는 여기사의 성기병에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기가 힘들었다. 성기병 자체가 튼튼한 것도 있었고, 섣불리 거리를 좁혔다가는 되려 반격당할 정도로 높은 능력치 때문이었다.
그래서 네토루는 차근차근 아래에서부터 무너뜨리고자 했다. 상대방을 자극하고, 분노시키며, 흐트러진 틈새를 노려 단번에 일격으로 끝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엇일까.
“···저 녀석 설마.”
거리를 벌리며 뒤로 물러서던 네토루는 돌연 자신을 쫓아오던 붉은 성기병의 움직임이 점점 눈에 띄게 가속되는 걸 느꼈다.
이건 착각이 아니다. 거리가 점점 좁혀진다.
속도만큼은 결코 밀리지 않던 카렌의 성기병이 서서히 따라잡히고 있는 것이다.
혹시 한계 출력까지 끌어올리지 않고 싸우던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얼핏 봐도 저건 파트너의 한계 출력을 넘어선 비정상적인 움직임이었다. 만약 처음부터 저런 속력을 낼 수 있었다면 아까처럼 엉망진창으로 당하지는 않았겠지.
마침 카렌도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 걸까.
“하아···. 하윽···. 저 녀석 지금 파트너의 한계 출력보다 출력을 높인 것 같은데? 뭔가 이상해.”
“···그런 것 같네.”
···아무래도 싸움을 질질 끌어서는 안 될 듯했다.
여성 파일럿마다 감당할 수 있는 출력의 한계치가 존재하는 법이었고, 그러한 한계를 넘어선 출력을 유지하면 당연히 여성 파일럿에게 무리가 간다.
즉, 오버히트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인간과 인간의 대련에 불과했다. 버그들과 목숨을 건 전투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커플링 파트너를 혹사시킬 생각인 건가.
한계 출력을 넘어선 움직임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되면 이쪽이 버틸 수가 없다.
네토루가 우위를 점하던 것은 성기병의 민첩함과 속도였다. 그런데 그것조차도 상대에게 밀리게 된다면, 아무리 네토루라도 어떻게 당해낼 수가 없다. 이제는 상대가 지칠 때까지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하나뿐이었다.
저쪽이 전력을 다해 부딪고자 한다면,
반대로 이쪽도 전력을 다해 맞서 싸워줄 수밖에.
한순간의 틈새를 노려 일격에 끝내는 것이다.
점점 서로의 거리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는 가운데, 네토루는 조정간을 잡아당기며 카렌의 이름을 불렀다.
“카렌.”
“하윽···. 할, 할 거야? 할 거면···. 빨리해.”
“···뭐?”
···지금 이 녀석은 내가 뭘 할 줄 알고 이러는 거지?
순간 그런 의문이 들기 무섭게 카렌이 말했다.
“너···. 저번에 나츠오 구할 때 사용했던 능력 쓰려고 하는 거잖아···. 맞지?”
눈치가 빠르다.
아니면 커플링을 통해 감정의 일부를 읽은 걸까?
“왜···. 틀려···?”
“···아니, 맞긴 한데.”
“으읏···. 으응···. 할 거면, 빨리 사용해.”
“······”
원래는 카렌에게 해도 되냐고 허락을 구할 생각이었는데, 도리어 재촉당하고 말았다.
숨을 허덕이며 어서 하라고 시선을 보내는 이 묘한 상황에 네토루는 피식 웃으며 잠시 눈을 감았다.
······의식을 집중한다.
그 순간 뇌리에 그리는 것은 카렌의 몸 안에 존재하는 무수한 마력 신경 다발과 그러한 선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형태를 이루는 마력 신경계였다.
“하으읏···!”
이윽고 카렌의 마력 신경계에 접속하기 무섭게 쾌락에 젖은 얼굴로 그녀의 등줄기가 휘어졌다.
그 몸짓에 아픔은 없다.
단지 열 띤 얼굴로 활짝 개방된 마력 패스를 통해 네토루의 마력을 몸 안에 받아들이고 있을 뿐.
순식간에 카렌의 모든 마력 신경계를 점거한 네토루는 그녀의 마력 신경계를 강제로 활성화하며 짤막한 숨을 토해냈다.
이건 오랫동안 지속할 수는 없다.
유지할 수 있는 건 정말로 찰나의 순간.
시계탑에서 나츠오를 구할 때조차도 정말 마지막에 어쩔 수 없이 사용했던 능력이었다.
그렇게 준비가 끝나고 네토루가 눈을 뜬 그 순간,
네토루의 황량한 눈동자에 들어오는 건 미쳐 날뛰는 붉은 질풍처럼 달려오는 성기병이었다. 마치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베어 죽일 것만 같은 사나움.
하지만 물러서지는 않는다. 오히려 네토루는 달려오는 상대를 맞이하듯 검을 들었다.
이윽고 서로의 거리가 완전히 좁혀졌고,
카아아아앙──!
직후 막대한 힘의 충돌로 주변에 있던 공기가 폭풍이 몰아치듯 훌쩍 밀려났다. 놀랍게도 카렌의 성기병은 그 순간 힘에 밀려나지 않고 버텨냈다.
하지만 그것이 무식하게 힘과 힘의 싸움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절묘한 형태로 간신히 힘의 평행선을 이룬 채, 잠시 뒤로 물러섰던 두 사람은 다시 앞으로 뛰쳐나오며 서로에게 칼날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두 검이 엄청난 양의 섬광을 만들어내며,
세상 모든 것이 느려지게 느껴지고 가운데,
네토루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몇 초 뒤에 있을 미래에 대한 무수한 심상들이었다.
그러한 미래 속에서 서로의 검이 그리는 수많은 궤적들이 시야에 수를 놓으며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네토루는 그중에서 어떤 것이 답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니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냉철한 이성이 아닌, 오로지 자신의 직감뿐이었다.
지금껏 쌓아온 무수한 전투 경험이 만들어낸 직감에 의지한 채 네토루는 볼드로이의 공격을 하나하나 전부 막고, 튕겨내며, 이윽고 역습을 가했다.
그것은 정말 찰나의 틈새에 불과했지만,
그 기회를 놓치지 않던 네토루는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일순간 섬뜩할 정도로 새하얀 섬광이 번뜩였고,
─서걱
새하얀 성기병의 날카로운 검격은 붉은 성기병의 팔을 예리하게 잘라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