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화 속 금태양이 되었다-104화 (104/148)

EP.104 엘프란디아

도시 안에서 393부대가 임시로 쓰고 있는 주둔지는 그렇게 관리가 깔끔하게 된 곳은 아니었다. 그러니 당연하지만 숙소 역시 깔끔치 못한 상태였다.

어차피 며칠 뒤면 떠날 거라고 하지만 그래도 방안을 너저분하게 둘 수는 없다. 그렇기에 네토루는 퇴원하고서 제일 먼저 방안을 정리하는데 집중했다.

일단 눈에 보이는 먼지를 쓸어내고, 그 후에는 침대보를 교체하였다. 전에 쓰던 사람이 여기서 뭘 했는지 모르겠지만 쓸데없어 보이는 물건도 전부 정리하였다. 성격적인 문제를 떠나 남녀 간의 정사를 지저분한 곳에서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세레스를 맞이할 준비가 끝내고, 흘린 땀을 씻어내기 위해 샤워를 끝 맞추고 돌아왔을 때였다.

“···당신. 왔어요?”

돌아와보니 방 안에는 이미 세레스가 있었다.

활동하기 편해 보이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분홍빛이 맴도는 새하얀 피부와 머릿결에 남아 있는 싱그러운 물기는 세레스도 방금 막 씻고 왔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 상태로 그녀는 다소곳하게 침대에 앉아, 제 무릎 위에 두 손을 꼬옥 주먹 쥔 채 올려두고 있었는데, 뭔가 많이 긴장한 모습이다.

뭐···. 며칠 전까지만 해도 처녀였으니 긴장하고 있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럴 때 제39구역에서 보관하고 있던 찻잎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날 찻잔을 받았던 세레스의 반응이 썩 나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아쉬움을 느끼며 방 안에 들어왔을 때였다.

어깨에 걸치고 있던 수건으로 머리에 남아 있던 물기를 마저 털어내고 있자니, 아까부터 침대 위에서 가만히 있던 세레스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저···. 큰일 났어요.”

“···큰 일? 뭔 일인데.”

고개를 들며 눈을 마주한 세레스는 불안한 눈초리였다. 네토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딱 모양새가 어디선가 사고 치고 온 애처럼 보였다.

아니, 애가 아니라 아가씨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세레스의 모습은 어딘가 위태로워 보였다. 언제 이 아가씨가 이런 식으로 눈치를 살핀 적이 있던가. 어느새인가 얌전히 무릎 위에 올려놨던 손도 정신 사납게 꼼지락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그, 그게···. 말이죠?”

“그래, 그게 뭔데?”

“그게···. 그건데···.”

말꼬리를 흐리던 세레스는 입을 오물거리며 머뭇거렸다. 자기가 말문을 열어놓고서, 정작 말을 못 하는 그녀의 모습에 네토루는 헛웃음을 흘렸다.

뭔지 모르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세레스가 내 눈치를 볼 정도로 긴장되는 일인 듯했다.

그새 뭔 일이 있었길래 이러는 걸까.

덕분에 호기심만 강해졌다. 네토루는 근처에 있던 의자를 끌어오고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세레스. 뭔 일이야? 혹시 내가 화낼 일이야?”

“그, 그럴 수도 있고···. 아니, 그럴 거예요.”

흥미롭군. 네토루는 턱을 괸 채 세레스의 말을 기다렸다. 솔직히 말해서 네토루는 자신이 화낼 만 한 일이 뭐가 있을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저번처럼 녹음기를 가져와서 이상한 짓을 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과연 그 이상으로 귀찮게 하는 일이 있는 것일까.

“으으···. 그, 그게···.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제가···. 조금 사고를 쳤는데요···.”

“···사고?”

어서 말해보라는 눈짓에 세레스가 결심한 듯 떠듬떠듬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내용은 꽤나 흥미로운 것이었다.

아무래도 샤워실에서 케레네를 만난 것 같은데 거기서 무언가 말다툼이 있었나 보다. 자세한 내용은 말하지 않지만, 흔히 여자들의 기 싸움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

뭐 아침에 그런 일도 있었으니 서로 사이가 좋을 수는 없겠지. 그래도 다행히 아침때 보여준 모습처럼 일방적으로 밀리지는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안심하고 있자니,

마지막에 이어진 세레스의 이야기에 네토루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뭘 가지고 싸웠나 싶었는데,

“···결국, 누구 파트너가 더 잘났는지 싸운 거였어?”

“··· 으읏···. 그, 그게? 어쨌든, 그렇게 되네요?”

“흐음.”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하게 인정하는 세레스의 모습에 네토루는 입가에 미소를 지웠다.

뭐라고 해야 할까. 세레스가 자기 파트너가 더 잘났다고 말다툼하는 모습은 쉽사리 상상이 안 된다.

이쯤 되면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다.

아무튼···.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이와중에 흘금흘금 눈치를 살피며 흘겨보는 모습이 제법 귀여웠다. 다 큰 처녀···. 아니, 다 큰 아가씨가 혼나는 걸 두려워하는 애처럼 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네토루는 세레스가 왜 이렇게 눈치를 살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오히려 이건 네토루가 고마워해야할 일인데 말이다.

세레스는 나름 자기 파트너에게 자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솔직하게 말해준거나 다름 없었다. 그러니 이건 커플링 파트너로서 상당히 기쁜 일이었다. 누가 이런 걸 싫어할까.

그게 의아했던 네토루는 세레스에게 묻기로 했다.

“세레스.”

“네···?”

“뭘 그렇게 무서워하는 거야? 내가 정말로 이 일로 화낼 거라고 생각한 거야?”

“그야···. 오늘 일 때문에 볼드로이 경이 언제 당신한테 시비를 걸어올지 모르니까요. 당신에게는 이게 큰일인가 싶을 수 있겠지만, 지금 제가 볼드로이 경의 명예를 모욕한 거라고요···. 케레네가 이걸 어떻게 전할지 알 수 없지만, 당신한테 분명···.”

과연. 그런 걸 걱정하고 있던 건가.

아무래도 세레스는 ‘볼드로이’라는 기사가 무언가 질 나쁜 시비를 걸어올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듯했다. 확실히 기사 놈들이 자존심 쌔기는 하다. 애초에 귀족 계급이지 않은가.

양산형 취급받는 기관 출신에게 비교되는 것조차도 치욕스러운데, 그보다도 못 난다고 모욕받았다.

게다가 그것도 명예 높은 세인트 미샤르 기사단의 파일럿이 말이다. 이쯤 되면 다른 ‘기사’들도 예민하게 나올 수도 있었다.

특히나 기사단의 성향을 잘 알고 있는 세레스였으니 이게 보통 사건으로 넘길 수가 없겠지.

그래서 이렇게 벌벌 떠는 건가.

왠지 우습다. 네토루는 아무런 두려움도, 긴장감도 느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아까부터 눈치만 살피는 세레스의 모습에 네토루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 괜찮으니까.”

“아, 아니···. 걱정 말라고 해도···!”

“어쨌든, 내가 더 잘난 건 사실이잖아? 세레스, 네가 거짓말 한 것도 아닌데 뭘.”

“···네?”

너무 오만한 말이라서 그럴까. 세레스가 입술을 살짝 벌리고는 망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순간 동공에 색이 사라질 정도로 놀란 모습이 썩 볼만했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그녀가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지, 지금···. 엄청 뻔뻔한 말을 한 거 알아요?”

“그렇지만 사실이잖아? 방금 네가 말한 볼드로이라는 사람보다 내가 못났을 것 같아?”

“아, 아니···. 그렇게 생각은 안 하는데···. 하지만 그것도 몇 년 전의 기억이고···. 어쩌면 그때보다 더 강해졌을지도···. 꺄아앗!?”

걱정이 너무 많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네토루는 세레스의 입에 입술을 맞추며 그녀의 몸을 밀쳐냈다. 키스와 동시에 세레스는 네토루의 침대 위로 힘없이 너부러졌다.

“우웁···. 츕···?!”

난데없는 키스에 놀란 세레스가 두 손에 힘을 주며 네토루의 가슴팍을 밀어내기 위해 애썼다. 그렇지만 정작 또 키스는 제대로 받아준다.

껴안은 세레스의 몸에서는 좋은 향기가 났다. 그런데 저번과는 다른 냄새다. 혹시 바디워시를 바꾼 걸까. 달달한 냄새가 썩 나쁘진 않았다.

“츄릅···. 후아···.”

이윽고 짤막하지만 굵직한 키스가 끝났다.

서로의 타액이 섞인 은빛 실줄기를 길게 늘어진다.

덮치듯 덤벼들었던 네토루는 세레스의 얼굴 양옆에 손을 뻗어, 그녀를 자기 몸안에 반쯤 가둔 상태로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촉촉하게 물든 자색 눈동자와 옅은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는 뺨. 그렇지만 눈은 새침스러우면서도, 약간 화났다는 걸 보여주듯 가늘게 뜨고 있었다.

“가, 갑자기 뭐에요! 지금 저는 너무 걱정돼서 이러는 건데···! 제대로 이야기를 들어주지는 못할망정···.”

“세레스, 그거 쓸데없는 걱정이야.”

“우웁!?”

다시 입을 맞춘다. 그런데 세레스는 지금 상황이 불만스러운지 이번에는 쉽사리 입술을 열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다. 네토루는 그녀의 입술을 강제로 열고는, 그 안에 자신의 혀를 밀어 넣었다.

세레스는 그 난폭한 키스에 저항하듯 혀를 뒤로 내빼며, 도망쳤지만 어설픈 발버둥이었다. 이윽고 혀가 뒤섞이며 네토루는 세레스에게 자신의 타액을 흘렸다.

꿀꺽.

끝내 세레스가 네토루의 침을 집어삼키며 눈물을 글썽이더니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노려보았다.

“으윽···. 뭐야···. 정말···.”

하지만 정작 세레스에게 저항은 없었다. 하는 말이나 표정과 달리 몸은 꽤나 순종적이었다. 어쩌면 저항해봤자 의미 없다는 걸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변함없이 네토루의 몸 밑에 깔린 상태로 갇혀 있던 세레스가 손등으로 입술을 닦아내고는 말했다.

“···지금, 당신 너무 난폭한 거 알아요? 저번하고 너무 딴 사람 같은데요.”

“그때는 처음이었잖아. 그래서 배려해준 거지.”

“···그러면 지금은요?”

“물론 지금도 배려는 해주겠지만···.”

“···흐윽.”

네토루는 세레스의 원피스에 손을 뻗었다. 조금만 잡아당겼을 뿐인데 옷감이 휘말리더니, 그녀의 살결과 배꼽이 훤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대로 위로 끌어올리자 이윽고 세레스의 속옷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현재 그녀가 입고 있는 속옷은 파일럿용 브래지어였다.

가슴을 강하게 압박해서 전투 중에 흔들림을 줄여주는 기능성 속옷.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세레스의 훌륭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뭐라고 해야 할까. 묘한 아쉬움이 있다.

그렇기에 네토루는 세레스가 원피스 안쪽에 숨기고 있던 속옷을 보며 솔직한 생각을 말했다.

“나는 저번에 입었던 속옷이 제법 마음에 들었는데. 이번에도 그거, 입고 오지 그랬어.”

“···제가 뭘 입든, 제 맘대로죠.”

“그렇지만 그래도 좀 더 야한 걸 입는 게, 파트너로서의 배려 아닐까?”

“야, 야한 거라니···. 뭘 원하는지 대충 알겠는데, 어쩔 수 없잖아요···. 전투가 끝나고 도시에 급하게 왔는데 그런 걸 무슨 정신으로 챙겨요? 게다가 야한 속옷같은게 저한테 있을리도 없고···.”

뭐, 그런가. 네로투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고는 그녀의 얼굴과 서서히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아직 세레스는 상냥함을 원하는 건가.

그러면 그렇게 해주는 게 좋겠지.

다시 입술을 맞추는 걸로 착각한 세레스는 눈을 질끈 감으며 침대보를 강하게 쥐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키스가 아니다.

네토루는 세레스의 귓가에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세레스, 오늘 일은 고마워.”

“···읏?!”

그것은 케레네에게 자신의 파트너를 신뢰하며 당당하게 맞서준 세레스에 대한 감사였다.

“···저도 낮에는 고마웠어요.”

말하면서도 부끄러웠던 걸까. 말을 끝낸 세레스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서도 점점 얼굴이 붉어지는 게 잘 익은 복숭아를 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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