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화 속 금태양이 되었다-103화 (103/148)

EP.103 엘프란디아

네토루는 그날 병원에서 퇴실했다.

애초에 심각한 외상이 아닌 이상 마력 신경계 문제로 휴식을 취하는 건 부대 안에서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러니 굳이 병원을 고집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병원에 있으면 ‘치료’에 방해만 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남녀 사이에 있었던 정사의 흔적을 숨길 수가 없으니까. 깔끔하게 치운다고 해도 청결을 중요시 하는 간호사들의 눈을 피하기는 어려울 터.

···정작 네토루는 병원에서 해도 괜찮지 않냐고 태평하게 굴고 있었지만, 세레스는 절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는 첫날밤을 기억하고 있다. 정사의 흔적이 진득하게 남아있단 네토루의 침대를 말이다. 물론 처녀혈 때문에 시각적 효과가 컸던 거지만 아무튼···. 그런 걸 다른 사람한테 보여줄 생각은 없다.

그런 점에서 네토루가 퇴원한 제일 큰 이유를 말하자면 원활한 치료를 위해서 남의 시선이 닿지 않는 개인적인 공간이 필요했다.

뭘 해도 눈치 볼 필요가 없는 공간이 말이다.

물론 부대 안이라고 해서 사생활이 완전히 보호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병원보다는 나았다.

“···설마 내가 이런 걱정이나 하게 될 줄이야.”

치료는 오늘 바로 시작하기로 했다. 시간의 여유가 많지 않으니. 그래서 오늘 밤을 위해 샤워실에서 몸을 청결히 씻고 있던 세레스는, 머리 위로 물줄기를 맞으며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한 달 전만 해도 이런 건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기 위해 남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걱정하고, 몸을 정갈히 하고 있는 건 말이다.

세레스는 잠시 거울을 바라보았다.

이제 곧 다시 그와 배를 맞출 것이다. 그래서인지 거울에 비친 얼굴은 약간 경직되어 있다. 뭔가 중요한 전투를 앞둔 것처럼 긴장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이제 막 처음을 겪어 본 그녀에게 두 번째 경험 역시 무서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래도 두려움 안쪽에는 숨길 수 없는 묘한 두근거림이 있었다. 세레스가 그 심장 울림에 침을 꿀꺽 삼키면서도, 오늘 밤에 있을 일에 대하여 자기 자신한테 용기를 불어넣고 있을 때였다.

문이 열리더니 샤워실 안으로 새로운 인원이 들어왔다. 얼굴을 확인한 세레스는 흠칫했다.

“어머? 안에 누가 있나 싶었는데, 세레스였네?”

“······”

붉은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넘기며 안에 들어온 사람은 케레네였다. 반갑지 않은 사람의 등장에 세레스는 무심코 흐릿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상황이 좋지 않은 도시 사정상 외부 인원들과 당분간 같은 곳에 지낸다고 듣기는 했지만, 설마 이렇게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 세레스에게서 경직된 분위기와 표정을 읽은 케레네는 빙그레 웃었다.

“세레스, 얼굴에 힘 풀어. 잡아먹을 생각 없으니까. 지금은 그럴 힘도 없고 말이야.”

세레스는 아무런 대답 없이 고개를 힐긋 돌렸다.

괜히 반응했다가는 자신의 나약한 모습만 드러내게 될 것 같아서 침묵한 것이다. 아무래도 빨리 씻고 나가는 게 좋을 듯하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무언가를 발견한 세레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케레네의 뒷모습 때문이었다.

그녀의 엉덩이와 허벅지 부근에 붉은 손자국이 보였다. 누가 보더라도 폭력의 흔적이었다.

그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던 세레스가 케레네에게 물었다.

“···케레네 언니. 뒤에 손자국은 뭔가요?”

“어머? 뭐야, 봤어?”

케레네는 입가에 요염한 미소를 새겼다. 그리고는 세레스를 흘겨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긴. 내 파트너가 새긴 거지.”

“서, 설마 케레네 언니를 때린 건가요?”

“···. 뭐, 이것도 파트너의 성 취향이니까.”

“······”

성 취향이라는 건···. 그러면 방금까지 파트너와 성관계를 하고 왔다는 것일까. 아니, 애초에 어떤 상황이 되어야 저렇게 손자국이 남을 정도로 때리는 걸까.

세레스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남녀 관계에서 파트너를 때리는 걸 즐기다니.

그리고 케레네가 저렇게 태연한 이유는 또 무엇이고. 혹시 파트너에게 맞는 걸 즐기는 걸까.

아니, 지금 자세히 보니 태연하기보다는 케레네는 모든 걸 포기한 것처럼 처연한 얼굴이기도 했다.

그런 케레네가 신경 쓰인 탓일까. 세레스가 그녀 몰래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케레네가 씻기 시작하자 정사의 흔적을 숨김없이 드러내듯 그녀의 허벅지 사이에서 희멀건 액체들이 흘러나왔다. 남자의 정액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 색은 연분홍빛을 띠고 있었다. 피가 섞여 있는 것이다.

“피···?”

“응? 아, 이거? 오늘은 평소보다 많이 격렬했거든. 게다가 생리 직후였으니까. 원래 생리 직후에 바로 관계를 가지면 질 내벽에 쉽게 상처가 나잖아?”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케레네는 뭘 놀라냐는 듯이 말하지만, 세레스가 그런 걸 알 리가 없었다. 생리 직후에 관계를 맺어본 적은 없을뿐더러, 애초에 아직 경험이 한 번밖에 없는 여자가 성지식에 대해 뭘 알고 있을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세레스가 첫 경험을 했을 때 저러했을까. 핏물이 섞인 정액이 흘러나오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하복부가 아파 올 정도로 불편한 광경이었다.

성관계 중에 저렇게 몸 안에 상처를 낼 정도면 성 취향을 떠나 파트너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게 아닐까 싶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케레네였다. 세레스가 아는 그녀는 기가 세고, 성격이 활달한 여인이었다. 그렇기에 성관계 도중에 엉덩이를 맞거나, 난폭하게 취급받는 모습은 쉽게 상상할 수가 없었다.

“흐음···?”

문득 케레네의 눈이 얇게 변했다. 붉은 눈동자에 날카로운 이채가 맴돌더니, 이윽고 세레스를 보며 무언가 깨달은 듯 생긋 웃었다.

“헤에. 세레스, 너···. 딱 보니까 처녀 딱지 뗀 지 며칠 안 됐나 보구나? 반응이 어째 경험 없는 애들이랑 비슷한데.”

“네?”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것처럼 케레네가 성큼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세레스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쳤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등이 샤워실 벽에 닿으며 도망칠 곳이 막혔다.

케레네는 그런 세레스를 구석에 몰아넣고는 다리 한쪽을 은밀히 내밀며 그녀와 몸을 밀착시켰다.

그렇게 서로의 젖가슴이 짓눌려질 정도로 맞닿은 채로 케레네는 세레스의 눈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네 파트너는 어때? 역시 첫날을 치른 건, 그 금발 사내겠지?”

“갑자기 왜 그런 걸 묻죠···?”

“왜냐니. 궁금하잖아. 원래 파트너의 자지는 그렇게 만들어놓고서, 남의 건 잘도 물고 있으니까. 아, 혹시 지금 파트너의 물건은 아직 입에 안 넣어봤니?”

“···샤워실에서 언니랑 이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네요. 천박해요.”

“뭐 어때. 이거 나름대로 여자들만의 긴밀한 대화인데. 게다가 언니가 이런 것도 물어보면 안 되니? 예전에 어릴 때는 언니 이야기 많이 들었잖아?”

“······”

케레네의 손이 뱀처럼 세레스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세레스의 배꼽을 천천히 기어오르더니, 말캉한 젖가슴을 부드럽게 매만지고는 마지막에 이르러서 턱을 당겼다. 마치 시선을 피하지 말고 자신의 눈을 보라는 것처럼.

“그래서 처음으로 겪어 본 남자 경험은 어땠어? 그 나이 될 때까지 꽁꽁 아껴둔 보람은 있었어? 혹시 아깝다고 느껴지지는 않든? 기사가 아니라 겨우 기관 출신이잖아. 여성 파일럿한테 처음이 얼마나 중요한데.”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건지 모르겠지만, 저는 후회 안 해요. 그 사람한테 제 처음을 준 건.”

이번만큼은 케레네의 붉은 눈을 당당히 응시하며 그리 말했다. 그 용기에 놀란 듯 케레네의 눈썹이 약간 들썩였으나, 오히려 화만 자극한 꼴이었다.

케레네는 세레스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기사가 겨우 기관 출신 남자 따위한테 만족하는 꼴이라니···. 기사단에서 귀한 대접 받으며 자란 아가씨가 너무 몸을 싸게 굴리는 거 아니야?”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그리고 제가 제 몸을 어떻게 하든, 애초에 이제 언니랑 상관없잖아요? 게다가 저는 더 이상 여기사도 아니에요.”

“흐음···. 낮에도 그렇고 이제 이렇게 따박따박 대드는 걸 보니까···. 꽤나 파트너한테 귀여움 받고 살고 있나 보네. 아니면 하찮은 기관 출신이라 여기사를 떠받들어 주고 있는 건가?”

하찮다니···. 세레스는 주먹을 쥐었다. 아까부터 네토루를 깔보는 어투가 너무 불편했다.

그 남자는 결코 하찮은 사람이 아니었다. 평소에 뭘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이상한 남자지만, 그래도 주변 사람을 챙기는 모습이 멋진 사람이었다. 세레스는 입술을 바득 깨물고는 케레네를 노려보았다.

“···우습네요. 언니 파트너가 얼마나 대단하다고, 이렇게 남의 파트너를 깔보는지 모르겠어요.”

“···뭐?”

케레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자신의 파트너를 욕하는 것이 불쾌했다는 것처럼. 하지만 세레스는 그런 반응을 보고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언니 파트너가 분명···. 볼드로이 경이었나요? 쓸데없이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던 남자.”

“···너.”

“하하. 지금도 기억나네요. 어쭙잖은 실력으로 괜히 허세 많고, 명예욕만 강했던 오만한 사람이라는 걸.”

“뭐? 세레스, 너 미쳤어? 지금 누구를 깔보는 거야?!”

케레네가 목소리를 높이자, 세레스도 물러서지 않고 맞섰다.

“언니야말로 제 파트너를 깔보지 마세요! 네토루는 언니 파트너보다 몇 배는 멋지고, 능력 있는 사람이니까!”

“······”

세레스가 목소리를 높이는 건 드문 일이었다. 심지어 기사단에서 나올 때조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케레네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주변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는 듯한 착각 속에서, 세레스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또렷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서 베일 것처럼 날 선 눈빛들이 얼마나 부딪쳤을까.

이윽고 케레네의 눈매가 점점 일그러지더니, 그녀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물었다.

“···너. 그 말 책임 질 수 있겠어?”

그 물음에 세레스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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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삽화는 39화에 탈의실 장면입니다. 참고로 마력신경계(자궁 문신)은 머리색 따라갑니다.

엌. 정작 저는 후원 메시지 덕분에 100화 넘은 거 오늘 알았네요. 100화 축하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늘 투표 보는데, 저는 결승 가는 걸로 만족해야겠습니다.

1만표씩 뿌리는 어마무시한 분이 계시는데, 어이구야...

혹시라도 막 투표하려고 거금 써서 투표권 사모을 생각 마시고,

노벨피아 월정액 꾸준히 질러서 제 작품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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