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1 엘프란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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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 못한 일이다. 설마 저번 전투에서 카렌이 네토루의 세컨드로서 싸우고 있었다니.
세컨드.
예전에 들어본 적은 있지만 직접 본 적은 없다.
커플링 파트너를 두 명이나 두는 건 효율적이지 않으니까.
남성 파일럿의 체력적인 문제도 문제지만, 그렇게 되면 커플링 파장을 양쪽 두 사람한테 맞춰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잘못하다가는 이도 저도 아니게 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여성 파일럿 입장에서도 세컨드라는 위치는 미묘했다. 퍼스트라 할 수 있는 여성 파일럿이 멀쩡하면 정작 세컨드는 출격할 일이 없으니까. 사실상 대기 자원이었다.
그렇기에 세컨드라는 건 특정 상황에서 전술적인 목적을 위한 임시적인 존재에 불과했다.
그래서 내심 나츠오는 안심하고 말았다.
며칠 전의 전투에서 카렌이 그저 네토루의 세컨드에 불과했다는 걸 들었을 때는 말이다. 게다가 카렌과 스와핑한 사람이 무려 세레스라고 한다.
여기사인 그녀가 네토루의 커플링 파트너가 되었다면, 더 이상 네토루는 카렌과 커플링할 이유가 없다. 그러면 자연스레 카렌의 커플링 파트너는 다시 나츠오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 분명 그래야 할 터.
“카렌은 이번 임무에서도 계속 세컨드가 되어주셔야겠습니다.”
나츠오는 순간적으로 귀를 의심했다. 그래서 그는 제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것도 알지 못한 채 멍하니 리엔을 바라보았다.
생각의 흐름이 도저히 잡히지 않는다. 머리가 이해하는 걸 포기하는 것만 같았다.
그때 카렌도 의아한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를 계속 네토루의 세컨드로 말입니까?”
“예.”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 건가요? 이번 임무의 목적은 단순히 탐색인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이번에 있었던 프라시온 사태에서 카렌이 네토루의 세컨드가 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데스 웜도 그렇고, 여러 의미로 위험 요소들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이번 임무는 버그들과 전투를 하는 것보다는 엘프란디아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척후 활동에 가까웠다. 오히려 전투를 피해야 한다. 버그들한테서 괜히 시선을 끌어봤자 좋을 게 없으니.
리엔은 그런 카렌의 생각을 얼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나직이 말했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고 싶습니다. 엘프란디아의 내부 사정을 모르니, 임무 중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알 수 없으니까요.”
그 말을 듣고서 옆에 있던 나츠오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이러면 다시 카렌이 네토루와 커플링을 하게 된다는 거니까.
“···그러면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나츠오는 이번 임무에서 제외될 겁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까요.”
“제외말인가요···.”
이건 나츠오도 짐작하고 있던 일이었다. 몸이 이런데 어떻게 따라가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그 남자한테 카렌이 세컨드로 가게 되면···.
지금도 카렌과 커플링 파장이 아슬아슬하게 맞춰지고 있는데, 여기서 파장이 더 바뀌면 어떻게 될지 뻔했다.
나츠오는 떠올려보았다. 어제 커플링을 통해 느꼈던 카렌의 몸을 말이다.
마력 패스도, 마력 신경계도, 전부 그 남자의 손길이 느껴졌다. 카렌의 몸은 지금 그 남자에게 맞춰 개발되고 있다. 마치 그에게 길들여지듯.
이대로 두 사람이 커플링을 하며 엘프란디아 탐색이 시작되면 어떻게 될까. 뻔한 일이었다. 이번 임무는 하루 이틀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이번에는 정말로 카렌을 빼앗길 것이다.
나츠오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떨려오는 최악의 상황에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리엔 사령관님. 정말로 카렌을 네토루의 세컨드로 데리고 가야겠습니까? 그랬다가는 저랑 카렌의 커플링 파장이 어떻게 될지 아실 텐데요.”
“그건···.”
리엔은 미안한 얼굴로 나츠오를 보았다. 그가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알고 있으니까. 옆에 있던 카렌도 사색에 잠긴 얼굴이 되었다.
여기서 네토루와 카렌이 더 커플링 했다가는 서로의 커플링 파장이 더더욱 일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그러한 변화만큼 카렌과 나츠오의 일치율은 떨어지게 된다.
잘못했다가는 정말로 나츠오는 카렌과 커플링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리엔도 그걸 알기에 고민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사색에 잠겨 있던 카렌이 얕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츠오. 어쩔 수 없을 거 같아.”
“뭐···?”
나츠오는 예상치 못한 카렌의 말에 고개를 돌려 카렌을 응시했다. 마침 그녀도 나츠오를 보고는 표정을 흐리고 있었다.
“지금 부대 상황이 안 좋아. 이번 임무에서 제대로 출격할 수 있는 부대원들이 몇이나 된다고 생각해.”
“···그래서, 굳이 그 남자의 세컨드가 되겠다고? 어쩌면 가서 대기만 할 수도 있는데?”
“최악의 일은 대비해야 하니까.”
카렌은 기억하고 있다. 저번에 있었던 관측탑 때의 일을 말이다. 아니, 그때만 아니다. 요즘 들어서 위험한 상황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었다.
그렇기에 네토루의 힘이 필요했다. 그 녀석이라면 어떤 위험한 상황이라도 해결해줄 것 같으니까.
물론 한 사람한테 의지한다는 게 얼마나 창피하고, 바보 같은 일인지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는 믿을만했다.
하지만 나츠오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애초에 그 남자한테 세컨드가 필요한 거면, 굳이 네가 될 필요는 없는 거잖아. 꼭 네가 세컨드가 되어야 하는 거야?”
“그 녀석을 감당할 수 있는 게 나뿐이니까.”
“···너뿐이라고?”
“그래. 다른 애들로는 안 돼.”
카렌은 이제 와서 네토루의 인성을 의심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의 마력은 난폭했고, 여성 파일럿에게 여러 의미로 큰 부담이 된다. 그의 역량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여성 파일럿도 무리해야만 했다.
카렌조차도 한 달 정도 커플링하고 나서야 겨우 적응할 수 있게 되었는데, 다른 부대원들은 어떨까. 이제 와서 다른 부대원을 세컨드로 붙여주기에는 시간이 없을뿐더러, 부대 안에 그럴 인재도 없었다.
입술을 달싹이던 나츠오가 힘겹게 말을 꺼냈다.
“···카렌. 정말 순수하게 그것뿐이야?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나츠오···?”
“너는 그냥···. 그 남자가···.”
좋아서 그런 거 아니야?
하지만 말은 거기까지였다. 나츠오는 차마 말을 끝내지 못하고 중간에 입을 다물었다.
사령관 앞에서 할 이야기도 아닐뿐더러, 이러면 자신이 너무 구차해지니까.
“···아무것도 아니야.”
끝내 나츠오는 카렌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2.
10시 무렵이 되었을 때였다.
예정대로 리엔은 부대원들을 소집하였다. 이유는 당연히 엘프란디아 탐색 관련해서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그 내용은 어젯밤에 네토루가 먼저 들었던 것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대략 1주일 뒤에 시작될 것이고,
그때까지도 성기병 기동이 힘든 부대원들은 도시에 남아 시민들의 피난을 도울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런 리엔의 이야기를 듣고서 제일 당황한 것은 세레스였다. 1주일 뒤면 너무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데스 웜과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그 상태에서 성병기를 사용한 여파 때문일까. 세레스의 마력 신경계는 상당한 휴식 기간을 요구하는 중이었다.
비록 네토루에게 신기한 재주가 있다고 하지만,
과연 1주일 안에 성기병 기동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하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레스는 이번 임무에서 빠지고 싶지는 않았다.
케레네. 그 언니가 이번 임무에 같이할 테니까.
안 그래도 그녀는 아침에 네토루와 살벌한 기 싸움을 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정작 세레스만 빠졌다가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었다. 세레스에게 이쯤되면 이건 책임감의 문제였다.
그렇기에 세레스는 복도를 걷고 있던 네토루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멈춰 세웠다.
“···저기, 당신 너무 태평한 거 아니에요?”
“뭐가?”
“아니···. 정말 몰라서 그래요? 지금 잘못하면 다음 임무에서 제가 제외되게 생겼는데······.”
말끝을 흐리며 옷자락을 잡아당기던 세레스의 손아귀에 힘이 강해졌다. 그녀는 슬며시 고개를 들며 네토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녀의 시야에 맺히는 건 오로지 네토루의 입술이었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머릿속에서 온갖 것들이 떠올랐다가 천천히 가라앉는다.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감촉과 경험들. 그와 입을 맞췄던 기억들을 되새기며 세레스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1주일 안에 저를 치료할 수 있겠어요? 그···. 당신이 항상 하던 그걸로요.”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
“···모르겠다고요?”
“너도 알다시피 나도 지금 정상이 아니잖아.”
“···아.”
세레스의 눈이 살짝 크게 뜨여졌다. 확실히 그건 그렇다. 네토루가 깨어난 지 이제 겨우 하루가 지난 상태였다. 그가 말로 표현은 안 해도 몸 상태가 결코 좋다고 할 수는 없을 터.
그래도 그라면 뭔가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던 세레스는 안색이 파리해진 얼굴로 네토루에게 물었다.
“···그, 그러면 어떻게 하죠?”
“흠. 일단 시험 좀 해봐야겠어.”
“시험이요? 꺄앗?”
세레스는 허리가 당겨지는 걸 느꼈다. 이윽고 정신을 차려보니 오전의 그것과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다. 어느새인가 세레스는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이 남자는 여자를 품에 안는 게 버릇인 걸까. 케레네 앞에서도 서슴지 않더니···. 물론 그게 싫었던 건 아니지만···. 속으로 그리 중얼거리면서도 세레스는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한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자, 잠시만요···. 지금 여기서 키스하게요?”
“그런데. 왜?”
“왜, 왜라니···. 누가 보면 어쩌려고요!”
지금 두 사람이 있는 곳은 언제 누군가가 나타날지 알 수 없는 복도였다. 부대원이든, 외부인이든 이런 꼴을 보여주기는 부끄러운 일이었다.
“걱정 마. 확인만 해보면 되니까. 빨리 끝날 거야.”
“아니, 걱정 말라고 해도···. 으읏.”
역시 제 멋대로였다.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턱이 당겨진다. 세레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윽고 입술 끝으로 그의 것이 느껴졌다.
입술이 열리고, 서로의 혀가 뒤얽히며 두 사람 사이에서 마력 패스가 연결되었다.
이제는 제법 키스에 적응한 탓일까. 예전과는 다르게 여유를 느끼면서도, 세레스는 그하고의 연결을 선명히 느낄 수가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다. 정신도, 육신도.
그게 썩 나쁜 감각은 아니라서···. 일단 네토루가 시키는대로 순응해주고 있을 때였다. 이윽고 그가 천천히 얼굴을 떼어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무리인 것 같네.”
“무리···? 그러면 어떻게 하죠?”
키스의 여운을 즐길 겨를도 없이 세레스는 울상을 지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건가. 케레네가 가는 곳에 네토루 혼자 보낼 수는 없다. 그런데 정작 네토루는 태연한 얼굴인지라 세레스는 답답했다.
“뭐. 방법이 하나 더 있기는 한데.”
“···방법이 있다고요?”
세레스의 자색 눈동자에 기대감이 떠올렸다.
그리고···.
네토루에게서 그 방법을 듣던 세레스는 자신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걸 느끼며 생각했다.
이 남자, 지금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시즌하모니님 후원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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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오늘 H씬 러프를 받았는데 무척 예쁘더군요! 공개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완성되면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팬아트 너무 귀엽습니다 ㅠㅠㅠㅠ
카렌 볼이 너무 말랑말랑해보이는 게 한 번 만져보고 싶어지네요!
저번에도 예쁜 팬아트 그려주셨는데! 므밍님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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