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화 속 금태양이 되었다-99화 (99/148)

EP.99 엘프란디아

여기사들에게는 항거할 수 없는 규칙이 있다.

그건 바로 자신의 커플링 파트너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기사단에서 그런 교육을 받아왔기에 세레스 역시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

그래서 커플링 파트너를 위해 헌신하고, 순종하였다. 그것은 당연한 상식과도 같았기에 그러한 자신에게 아무런 의문도 없었다.

애초에 교육을 떠나 환경부터 그렇게 되어 있었다. 기사단의 언니들은 파트너를 위해 헌신하였고, 파트너를 위해서라면 몸도 마음도 전부 내줄 것처럼 행동했다.

그래서 세레스 역시 성인이 될 때쯤 요구하면 자신의 커플링 파트너와 몸을 섞는 걸 당연히 여겼다. 파트너에게 자신의 처음을 바침으로써 진정한 의미로 순종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아예 걱정이 없던 건 아니었다.

가끔씩 어린 세레스에게 언니들은 짓궂은 농담을 하기도 했으니까. 첫날에는 아플 것이다, 파트너가 상냥하지 않으면 힘들 수도 있다, 심지어 파트너한테 이상한 성 취향이 있으면 그걸 맞춰줘야 하니 고생할 수도 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떤 언니들은 기분이 좋다고 하고, 어떤 언니들은 괴롭다고 투덜거리기도 했다. 각자 사람마다 말이 달랐고, 기쁨과 음울한 표정이 대조를 이루었다.

비록 세레스의 나이가 어리다고 상세히 설명하지는 않지만, 그런 식으로 언니들이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꺼낼 때면 세레스도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연 나에게 있어 커플링 파트너는 어떤 존재인가. 단순히 믿고 헌신해야 할 존재인가. 아니면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인가.

솔직히 말해서 세레스의 파트너는 사랑과 애정과는 거리가 먼, 무언가였기에 사이 좋은 다른 커플을 볼 때면 가끔씩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저 언니에게는 순종과 헌신이 무슨 의미일까 하고. 진심으로 파트너를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순종해야 하기에 사랑하는 척하는 걸까.

그날이 오기 전까지 세레스는 계속 고민했었고,

그렇게 그녀는 자신만의 답을 찾을 수가 있었다.

비록 그걸로 인해 세레스가 몸 바쳐왔던 주변의 모든 것이 바뀌었지만. 그동안 기사단에서 쌓아온 인간관계와 존재 가치, 그 모든 것이 말이다.

답을 찾게된 세레스는 더 이상 여기사가 아니었다.

커플링 파트너에게 순종하지 않는 여기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니 기사단 내부에서 여기사로서의 존재 가치를 부정당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것이 한 기사를 파멸로 이끈 계집이라면 더더욱.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던 세레스는 갑자기 자신의 앞에 나타난 여기사를 보며 몸을 떨었다.

타오를 듯한 붉은 머리카락과 장미처럼 화려한 외모는 수년 전과도 달라질 게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르며 더욱 성숙해지고, 농염해진 분위기는 여성으로서의 존재 가치가 제일 절정에 이른 상태였다.

케레네. 한때 세레스가 좋아했던 언니였다. 멋 모르던 시절부터 세레스를 돌봐주었던 상냥한 언니. 힘들 때도 옆에서 달래주던 친언니 같은 존재.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친했던 사람이 등을 돌릴 때만큼 가슴 아픈 일이 없다. 세레스의 기억에는 여전히 뚜렷했다. 처음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준 케레네의 모습이.

하지만 지금 그녀는 세레스를 경멸하고 있었다.

“남자 무서워하던 반푼이가 꼬맹이들 사이에서는 제법 든든한 언니 노릇 좀 하고 있던데···. 그나마 어린애들 좆맛은 좀 나은가 봐?”

“아, 아니요···. 저랑 애들은 그런 관계가···.”

날카로운 케레네의 말에 세레스는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뭐라고 제대로 항변하지 못한 채 우물쭈물할 뿐. 세레스는 입을 뻐끔거리며 두 눈을 내리깔았다.

기사단의 규율은 엄격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여기사들의 경우에는 더욱 심했다.

그렇기에 세레스는 언니에게 대들었던 경험이 없었다. 비록 기사단에서 나온 지 이제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어린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인 기억은 어떻게 떨쳐낼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설마 여기서 케레네를 만날 줄이야. 세레스는 자신의 불행에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어서 시간이 가주기를 원했다. 이대로 케레네가 할 말을 전부 내뱉고 나면 결국 지쳐서 먼저 사라질 테니까.

그렇게 고개만 숙인 채 하염없이 케레네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읏?”

그때 세레스는 돌연 자신의 허리가 뒤로 잡아 당겨지는 걸 느꼈다. 난폭한 손길이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나니 어느새인가 그녀는 한 남자의 품에 안겨있었다.

세레스는 어딘가 익숙한 온기와 냄새에 놀라면서도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보았다. 자신의 머리 위. 올려다본 그곳에는 구릿빛 피부의 사내가 있었다.

네토루였다.

그의 얼굴을 본 순간 곧 세레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 이 남자가 여기서 나타나는 것인가.

“에? 자, 잠시만···. 어째서?”

갑자기 나타난 그를 보며 세레스가 놀라서 말을 더듬고 있자니, 앞에 있던 케레네는 눈을 얇게 뜬 채 갑자기 나타난 금발 사내를 노려보았다.

“···누구죠. 당신은?”

“세레스의 커플링 파트너인데.”

“···커플링 파트너? 흐음? 당신이 말인가요?”

케레네는 입가에 가느다란 호선을 새기며 금발 사내를 살펴보았다. 애들만 보이길래 뭔가 싶었는데 그래도 제법 그럴듯한 파일럿이 있기는 했나 보다.

잘 단련된 육신도 그렇고, 착 가라앉은 특유의 기도가 방금 보았던 꼬맹이들과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케레네가 제일 눈여겨본 것은 남자의 품 안에 자연스레 안겨있는 세레스의 반응이었다. 남자 무서워서 기사단에서 사고 친 여인이 제법 순진한 얼굴로 몸을 맡기고 있었다.

덕분에 케레네는 금발 사내에게서 흥미를 느꼈다.

과연 저 금발 사내는 알까. 세레스가 과거에 어떤 사고를 저질렀는지 말이다. 그것은 남자라면 결코 가볍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과연 그걸 알고도 저렇게 태연히 품에 안을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아무리 반푼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여기사를 다루기에는 파일럿들이 너무 어리다 싶었는데, 나름 제대로 된 남자가 있기는 했네? 왜? 이 남자는 괜찮든? 입에 물어도···.”

“그, 그만···! 그만 해요!”

“하하. 뭐야? 혹시 비밀이야? 세레스. 그러면 네 커플링 파트너가 너무 불쌍해지잖아.”

방금까지 눈을 내리깔고 있던 주제에, 부릅뜨며 노려보는 세레스를 보며 케레네는 입꼬리를 잡아당겼다. 안색이 창백하다. 확실히 그런 걸 커플링 파트너에게 이야기할 건 안 되겠지.

세레스의 반응을 눈여겨보던 케레네는 세레스를 품에 안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당신. 이름이 뭐죠?”

“네토루.”

“그래요. 네토루. 당신은 알고 있나요? 세레스가 왜 기사단에서 쫓겨났는지.”

“······”

네토루는 침묵했다. 모르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네토루는 품에 안고 있던 세레스를 흘겨보았다. 마침 그녀도 고개를 들며 네토루를 쳐다보고 있었기에 두 사람은 자연스레 눈이 마주했다. 그녀의 자색 눈동자는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조심스레 네토루의 옷자락을 쥐며 말을 듣지 말라는 몸짓이 무척이나 애처롭다.

방금 전에 병실에 찾아와 잔소리하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뭐, 세레스가 정신적으로 강한 여인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적나라한 실체를 보게 되니 마음이 편치 않다.

조금만 과거를 들춰내도 이런다. 첫 커플링 때도 세레스가 무너진 것도 과거와 관련된 뭔가였으니.

지금도 변함없는 세레스의 모습에 네토루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사람마다 치명적인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건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이거, 과연 나중에 고쳐줄 수나 있을까.

“훗···. 당신의 표정을 보아하니 딱 봐도 모르는 눈치네요. 하기야 말했을 리가 없겠죠. 커플링 파트너에게는 말하기 힘든 이야기니까.”

“······”

남성에게 교태를 부리듯 웃음기 섞인 목소리. 세레스를 살펴보던 네토루는 그 목소리에 이끌리듯 붉은 머리칼 여인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당신, 지금 그 아이한테 속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지금은 그렇게 겉으로 순한 척하고 있지만, 은근히 무서운 아이거든요.”

겉으로는 순한 척하고 있다라. 네토루는 헛웃음을 흘렸다. 세레스는 오히려 평소에 틱틱대는 쪽에 가까운 편이었다. 적어도 네토루에게는 그랬다.

아니, 애초에 이미 세레스에게 속아봤고 말이다.

“궁금하지 않아요? 세레스가 과거에 뭘 했는지.”

세레스의 과거. 뭐, 솔직히 궁금하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여기서 들어야 할까. 그것도 세레스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으로 말이다.

세레스가 기사단에서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의 과거를 본인이 아닌 제삼자가 들춰내는 건 추악하고 더러운 짓이었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이어지는 네토루의 침묵을 다르게 이해한 케레네가 흘긋흘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잘 들어요. 세레스가 기사단에서 쫓겨난 이유는···.”

“그만.”

네토루는 건조한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 더 이상 이 여자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말이 끊기자 케레네는 눈썹을 찡그렸다.

“이봐요. 이거, 당신한테도 중요한 이야기가 될 거예요. 그러니 제대로 들어두는 게···.”

시끄러운 여자다. 아니면 눈치가 없는 건가. 네토루는 애써 드러내지 않던 감정을 천천히 드러내며 붉은 머리카락 여인을 노려보았다.

차갑게 식은 황량한 눈동자.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은 숨김없는 경멸 어린 눈빛이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거기까지 하는 게 어때.”

네토루는 낮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입이 싼 여자는 천박해 보이거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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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엔 일러 완성되었습니다. 전술 지원 장치 <아이기스> 안에서 관측하는 모습입니다.

일단... (비공개)님 후원 및 솔직한 사과 감사합니다. 과연 이 글을 보실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NTL 요소도 그렇고, 저도 가끔 괜히 금태양으로 했나 생각도 합니다.

아무래도 거름망 요소니까요. 게다가 유입 속도도 보면 꽤나 적은 편이고요.

실제로 25화 정도 나왔을 때인가.

그때 총 조회수가 1만 조금 안되고, 최신 조회수가 200 언저리였을 겁니다.

어차피 취미로 시작하자는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조금 마음에 걸리기는 했습니다. 조금만 최신 조회수 떨어지면 바로 나락이니까요.

그래서 간신히 100위권을 유지할 때, 이거 괜히 19금으로 했나. 그냥 비성인으로 할 걸 그랬나. 대충 그런 생각들도 들더군요. 비성인이 더 대우도 좋고, 유입도 많으니까.

그리고 솔직히 성기병 타는 씬으로도 충분히 야한 장면 대체할 수 있으니, 굳이 19금 작품으로 안 해도 됐을 거 같기도 합니다.

아마 지금도 H씬이나, 노골적인 단어만 없애면, 비성인으로 충분히 돌릴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100화마다 19금 장면 5개는 넣을 수 있으니까요.

뭐, 그렇지만 어떻게 하겠습니다. 이미 19금 작품으로 100화 정도 쓰게 되었고,

그리고 50화 정도 썼을 때 느낀 건데, 이 세계관에서 금태양이라는 캐릭터는 어떻게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금발 태닝 양아치라는 개념을 떠나, 스토리 진행하다보면 NTL 요소가 안나올 수가 없거든요.

스포 아닌 스포? 어차피 나중에 쌍둥이 자매 스토리도 있을 거고, 그외 H씬 장면도 나올 수 있을 거고...

그때 뻔뻔하게 여자랑 몸을 섞으려면, 그럴만한 캐릭터가 필요한데 그게 딱 금태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금태양이기에 가능한 캐릭터 조형도 있고요.

어쨌든 지금은 만족하고 있습니다.

8.21 11:28 소개글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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