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7 NTO
솔직히 말해서 나츠오는 네토루에게 반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소년에게서 커플링 파트너를 빼앗으려고 결정한 순간부터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선택을 후회할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걸 가릴 여유는 없었고,
만약 카렌과 커플링하지 않았다면 부대원들 중에서 몇 사람이 더 죽었을 것이다. 아니면 이번 사태 때 많은 사람들이 죽었겠지.
비정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과연 소년의 풋풋한 사랑이 다른 사람들의 목숨만큼 중요할까.
우리는 지금 전쟁 중이었다.
그렇지만 소년이 원망한다면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줄 뿐이었다. 그것이 소년에게 해줄 수 있는 네토루의 유일한 보상이었으니.
“···. 역시 마력 신경계가 온전치 않은 상태로 무리를 한 건가.”
느지막한 저녁 시간. 자고 있던 나츠오의 마력 신경계를 확인하던 네토루는 미간을 좁혔다.
애초에 회복하는데, 반년이나 걸린다고 했던 소년이다. 그런 녀석이 갑자기 괜찮다고 했던 것부터 뭔가 이상했다.
혹시나 싶어서 확인해보니 마력 신경계를 이루는 마력 신경 다발이 몇 개 금이 가 있었고, 심지어 어떤 것은 반쯤 끊어진 상태였다.
검에 비유하자면 검신에 금이 가거나, 날이 반쯤 나간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리 봐도 온전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몸으로 굳이 무리하게 카렌과 커플링을 해야 할 정도로 이 녀석은 초조했던 걸까.
솔직히 말해서 네토루는 나츠오가 왜 이렇게 다급하게 행동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적어도 나츠오 앞에서는 커플링 파트너를 뺏을 거라고 티를 낸 적이 없으니까. 애초에 정식으로 만난 것도 오늘 그가 깨어나고 나서였다.
혹시 본능적으로 느낀 걸까.
이대로 가면 자신의 커플링 파트너를 뺏길 거라고.
만약 그런거라면.
정말이지···. 쓴웃음이 나오는 일이다.
거기서 네토루는 생각해보았다. 만약 내가 없었다면, 두 사람은 나중에 어떻게 되었을까.
과연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연인이 되었을까?
아니면 계속 지금 같은 커플링 파트너 관계를 유지했을까?
아니, 어쩌면 그럴 기회도 없이 누군가 한쪽이 죽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좋다. 이제 무의미한 가정들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다행히 아직 두 사람이 사랑을 속삭이던 연인 관계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누군가에게서 좋아하던 여자를 빼앗아 오는 건 사실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네토루는 카렌이 오롯이 자신만을 바라보게 할 생각이었다.
그래야지만 카렌을 조교 할 수 있다.
그녀의 마력 신경계와 체질을 바꾸기 위해서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카렌의 애정도, 믿음도 모두 독차지해야 했다. 그녀의 모든 것을 네토루에게 맡길 수 있도록 말이다.
현재 네토루에게 필요한 건 자신의 역량을 완전히 받아줄 수 있는 커플링 파트너들이었다.
그래야 그날이 왔을 때 뭐라도 해볼 수 있다.
‘···그날이라.’
사실 네토루는 프랑기아가 정확히 언제 무너지는 건지 잘 모르는 상태였다.
단지 그가 기억하는 건 연도뿐이다.
─세기가 바뀐 해 왕국이 멸망하였다.
애니메이션 PV영상에서 그런 자막을 보았던 기억만이 그의 머릿속에 뚜렷하다. 그리고 현재가 PV영상에서 보았던, 세기가 바뀌는 연도였다.
그렇기에 모두가 새로운 해를 맞이하고, 버그들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것에 기뻐하고 있을 때.
네토루는 그 누구보다도 앞날이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남들은 모르는 미래를 안 다는 것.
그건 숨이 막히고 어깨가 무거워지는 일이었다.
어쩌면 당장 1주일 뒤에 왕국이 멸망할 수도 있고,
어쩌면 당장 내일 바로 커다란 사건이 일어나며 왕국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앞으로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앞으로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네토루는 나츠오의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비록 이 소년은 나를 원망하게 되겠지만,
그래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센티페드한테서 미끼가 되려던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그렇기에 네토루는 적어도 그런 나츠오의 용기와 정의감만큼은 사라지지 않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날이 왔을 때 살아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것 역시 내 이기심이겠지.’
속으로 그리 중얼거린 네토루는 나츠오의 가슴팍 위에 올려놨던 손에 의식을 집중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미지의 영역을 탐색하듯 천천히 마력이 뻗어 나간다. 이윽고 소년의 몸 안에 있던 마력 신경에 접근하는데 성공했다.
자궁구에 마력 신경계가 존재하는 여성 파일럿들과 다르게, 남성 파일럿의 마력 신경계는 대부분 심장 부근에 있었다.
마력을 받아들이는 역할이 아닌, 파트너에게 마력을 제공하는 역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마력을 가공하는 기관인 심장에 마력 신경계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네토루는 힘겹게 접촉한 소년의 마력 신경을 따라 올라가며, 소년이 구축한 마력 신경계의 구조를 천천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남성 파일럿의 마력 신경계는 여성 파일럿의 것과 그 구조와 형태가 완전히 다르다.
그렇기에 뇌리에 그려지는 마력 신경계의 설계도는 네토루에게도 상당히 낯설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그가 연구했던 것은 여성의 마력 신경계였지 남성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능력을 다루는 원리 자체는 달라질 게 없다.
그는 소년의 마력 신경계를 탐색하며 부서지고, 금이 간 부분에 조심스레 손을 대기 시작했다.
다만 그 속도는 무척이나 느렸고, 어떤 부분은 아예 접근조차 할 수도 없었다. 제대로 된 마력 패스를 만들어서 접근한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이건 응급조치에 불과했다. 카렌이나 세레스 같은 회복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물론 마력 패스를 형성하면 이것보다 나아지겠지만, 나츠오가 남자인 이상 그건 힘든 일이었다.
성기병 파일럿들이 괜히 남녀가 짝을 이루어 커플링 파트너가 되는 게 아니었다. 쌍둥이 자매인 린과 란 같은 경우가 아닌 이상 마력 패스를 연결하기 위해서는 서로 성별이 달라야 했다.
그렇게 얼마 동안이나 소년의 마력 신경계에 손을 대고 있었을까. 초침이 여러차례 시계를 돌고 났을 때였다. 네토루는 의식을 집중하기 위해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뜨기 시작했다.
“······”
그 순간 제일 먼저 네토루를 반겨준 건 가슴을 여며내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이었다. 정확히는 몸 안에 있는 마력 신경계의 울림이라고 해야 할까.
안 그래도 마력 탈진으로 기절했던 몸이다.
그러니 이러한 통증은 몸이 무리하게 마력을 사용하지 말라고 항의하는 것과 같았다. 그렇지만 심각하게 여길 정도는 아니다.
몸을 혹사시키는 건 익숙하다.
지난 수년간 그는 한 번도 자기 자신을 혹사시키지 않은 적이 없었다. 아무리 채찍질해도 부서지지 않는 이 몸뚱이야말로 최고의 재능이었으니.
“···일단 여기까지 할까.”
네토루는 나츠오의 가슴 위에 올라가 있던 손을 슬며시 떼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
손을 떼는 순간 무언가 정체 모를 오싹함이 등줄기를 가로지르더니, 사아악-. 하고 벌레들의 울음소리 같은 게 귓가를 간질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덕분에 나츠오에게서 손을 떼던 네토루는 무심코 미간을 좁히고 말았다.
방금 그건 뭐였던 거지. 환청인가?
그 답을 찾듯 잠시 나츠오를 가만히 응시하던 네토루였지만,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네토루는 시야가 점점 뿌옇게 흐려지는 걸 느꼈다. 그러면서도 무거운 두통이 뇌를 짓누르고 있었다. 온몸의 피가 밑바닥에 쏟아지는 듯한 탈력감이 그를 괴롭혔다.
······쯧. 그냥 현기증이었나.
잠시 이마를 부여잡던 네토루는 가볍게 고개를 털고는 등을 돌렸다.
2.
피곤하다. 나츠오의 병실에서 나왔을 때 네토루가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언제나 늘 그렇듯 능력을 사용하는 건 네토루에게 큰 체력 소모를 강요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시야는 여전히 뿌옇다. 게다가 다리 또한 이상할 정도로 무겁다.
그래서 혹시라도 쓰러지지 않도록 벽을 짚으며 곧장 자신의 병실로 돌아가던 그때였다.
“······. 너, 왜 나츠오의 병실에서 나와?”
돌연 들려오는 카렌의 목소리에 네토루는 멈칫했다.
현기증 때문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자 네토루는 자신의 병실 앞에서 서성이고 있던 카렌이 보였다.
벽을 짚고 움직이던 네토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는 너는 왜 내 병실 앞에서 서성거리는 거야.”
“···그냥 잠이 안 와서.”
카렌의 대답에 네토루는 피식 웃었다.
“잠이 안 온다고 보통 이 늦은 시간에 여자가 혼자 남자 방에 오나?”
“이상한 상상 마. 나는 그냥···.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그거 듣지 않으면 오늘은 잠을 못 잘 것 같더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거라. 뭔지 대충 알 것 같다.
아마 네토루가 건든 마력 신경계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거겠지.
안 그래도 자세하게 이야기는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너무 나쁘다.
“···미안하지만 이야기는 내일 하면 좋겠는데. 지금 내가 많이 피곤해서 말이야.”
“그래, 그러는 게 좋겠네.”
카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슬그머니 거리를 좁혀왔다. 그리고는 자연스레 네토루의 어깨를 부축해주었다.
그런 카렌의 몸에서는 좋은 향이 났다. 샴푸 냄새일까. 네토루는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굳이 이럴 필요는 없는데. 어차피 바로 방이 코앞이고.”
“그거 알아? 너 지금 안색이 너무 안 좋아.”
어느새인가 카렌은 불안한 눈초리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를 흘겨보던 네토루는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몸을 맡기었다.
이윽고 그렇게 카렌의 도움을 받고 병실로 들어와 침대에 몸을 눕히자,
네토루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그런 네토루의 모습을 옆에서 본 카렌은 쓴웃음을 지었다.
뭔지 모르지만,
이렇게 지친 모습을 보니 네토루가 나츠오를 위해서 뭔가 몰래 하고 왔다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를 부드러운 눈길로 응시하고 있을 때였다. 순간 어디선가 인기척 따위를 느낀 카렌은 뒤를 돌아보았다.
"......?"
당연하지만 돌아본 그곳에는 닫혀 있는 문 밖에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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