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5 NTO
결국 출격은 취소되었다. 카렌과 나츠오. 두 사람이 제대로 커플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저녁이 되었을 때였다.
카렌은 아스나에게서 커플링 파장에 대한 기록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치율이 이렇게 떨어지다니.”
처음에는 잘못 봤나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몇 번이나 숫자를 다시 보았다. 하지만 변하는 건 없다.
─70.3434%
일반적으로 커플링에 필요한 적정 수치가 70% 인근이라는 걸 생각하면 상당히 저조한 수치였다.
게다가 원래 카렌과 나츠오의 일치율이 90% 언저리를 기록하고 있던 걸 생각하면 충격은 더 컸다.
한 달 사이에 엄청나게 떨어진 것이다. 그것도 커플링에 실패할 정도로 말이다.
물론 70%만으로도 커플링은 된다.
그런데도 방금 전에 커플링이 끊겨진 건 아마···.
나츠오가 심리적인 면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겠지.
끝내 커플링에 실패하고 좌절하던 나츠오의 모습을 떠올리며 카렌은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착 가라앉은 눈동자. 그늘진 얼굴.
콕피트에서 나오면서 보았던 나츠오의 얼굴은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카렌은 몇 번이나 커플링 파장에 대한 기록을 확인하고는 아스나에게 물었다.
“아스나. 원래 이렇게 커플링 파장이 급격하게 바뀔 수 있는 건가요?”
“···글쎄. 흔한 일은 아니지. 적어도 나는 일치율이 이렇게 급격히 떨어지는 걸 본 적이 없어.”
이러한 변화는 아스나도 꽤나 놀라웠는지 아까부터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무언가 자신이 놓친 게 없는 건지 몇 번이나 자료를 살펴보던 아스나가 끝내 한숨을 쉬며 카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카렌. 혹시 너, 네토루랑······.”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너도 힘들었을 텐데 어서 가봐. 일단 쉬는 게 좋겠어.”
“···네.”
카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등을 돌렸다. 지친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무리한 커플링을 몇 번이나 다시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카렌이 격납고 안에서 사라지자.
“···네토루, 그 녀석. 설마 카렌도 건드렸나?”
아스나는 그제야 차마 카렌에게 직접 묻지는 못하고 속으로 삼키고 있던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처음에는 혹시나 싶었지만 지금은 반쯤 확신이 되었다. 확실한 증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상황이 그러했다.
한 달 전과 너무나도 다른 형태를 보이고 있는 카렌의 커플링 파장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한쪽으로 생각이 기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당장 세레스의 경우도 있지 않았는가.
‘···아직 생일도 안 지난 아이인데.’
하지만 그렇다고 아스나는 네토루를 뭐라고 욕할 생각은 없었다.
비록 아직 성인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미 성인만큼이나 몸과 마력 신경계가 성숙한 상태라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으니까.
그러니 카렌에게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 이상,
아스나는 네토루가 성인도 안 된 카렌과 같이 잠자리를 가졌다고 해서 엄청나게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중요한 전투가 있었다. 그러니 세레스처럼 그걸 위한 준비였다면 뭐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다. 실제로 카렌과 네토루 덕분에 많은 시민들을 구할 수 있었으니까.
두 사람이 살을 맞대는 걸로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났다면, 그것은 옳은 판단일 것이다.
여성에게 있어 처녀니, 순결이니 결코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과연 그것이 수만 명의 사람 목숨값만 할까.
다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흘려넘길 일도 아니었다. 아스나는 점차 뺨이 굳어가는 걸 느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러면 나츠오를. 흐음···.”
본래 카렌의 커플링 파트너는 나츠오다.
하지만 낮아진 일치율도 그렇고, 합리적으로 생각해 볼 때 차라리 이대로 계속 카렌을 네토루의 세컨드로 놔두는 게 전략적으로 옳은 판단이겠지.
게다가 이번 전투로 네토루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다. 그런 그가 카렌을 세컨드로 둠으로써 남들보다 두 배 더 많이 싸울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올바르다.
다만 이러면 문제는 나츠오였다. 그가 카렌을 좋아하고 있다는 건 부대원들이라면 전부 아는 사실.
당연하지만 아스나도 알고 있다. 나츠오가 평소에 카렌을 어떤 눈으로 보는지 말이다.
그러니 그런 그에게 이걸 말할 수 있을까. 부대를 위해 얌전히 스와핑을 받아들이라고 말이다.
감정의 영역은 합리적으로 판단할 것이 안 된다.
하지만 그런 걸 따지기에는 현재 상황이 좋지 않다. 나츠오에게 미안하지만 지금 필요한 건 강력한 파일럿이었다.
당분간 도시에서 얌전히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지만, 머지 않아 엘프란디아 관련해서 크게 일이 시작될 테니까.
“···쯧. 리엔한테 괜한 짐을 맡기게 되겠는데.”
카렌과 커플링이 불안정하게 변한 나츠오도 그렇고, 아스나는 리엔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알려야 할지 고민하며 혀를 찼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만약 오늘처럼 이대로 계속 커플링이 불안전하면, 리엔은 결국 나츠오한테 스와핑을 요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
나츠오에게 스와핑을 요구한다는 게 어떤 건지 알고 있을 테니, 리엔에게도 제법 굳은 각오가 필요한 일이 될 터.
일단 사령관이랍시고 나름 냉철한 척하고 있지만,
리엔은 결국 마음 약한 아가씨였다.
안 그래도 맨날 상급 부대에 시달리면서 눈 밑이 거무죽죽한 리엔의 모습은 계속 지켜보기가 어렵다.
덕분에 가끔씩 사령관 역할을 받아들이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다 싶을 정도였다.
“···나참. 이래서 파일럿들을 지켜보는 건 정말 귀찮다니까.”
정비 반장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근처에서 파일럿들의 상태를 확인하며 리엔에게 슬쩍 보고하는 역할을 하고 있던 아스나는 한숨을 쉬었다.
남녀 관계만큼 제일 질척거리고 귀찮은 건 없다.
2.
나츠오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것은 지독한 악몽이었다. 그곳에서는 카렌이 금발 사내에게 사랑을 속삭이며 안겨 있었으니까.
곧 금발 사내의 왼손이 카렌의 허리를 타고 비스듬하게 올라가더니, 남은 오른손으로 카렌의 턱을 잡아당기며 서로의 입술을 가까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나츠오는 근처에서 지켜보았다.
당연하지만 멍청이처럼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나츠오는 달렸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그런데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다.
그래서 나츠오는 참다못해 소리를 질렀다.
하지 말라고. 그러지 말라고.
하지만 무의미한 고성이다.
그런 나츠오를 비웃듯 두 사람의 입술이 포개지며, 서로의 혀가 얽히기 시작했다. 키스는 한참 동안 이어졌다. 서로의 얼굴이 붉어질 때까지, 숨이 차오를 때가 되어서야 입맞춤이 끝났다.
그렇게 오랜 키스가 끝나자, 입술에 남자의 것과 뒤섞인 타액을 흘리던 카렌은 금발 사내를 올려다보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마치 기쁘다는 것처럼. 행복하다는 것처럼.
이윽고 남자의 손길에 의해 카렌의 옷이 한 꺼풀 벗겨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서히 새하얀 피부와 속옷이 드러나더니 카렌이 수줍게 웃으며 침대 위로 이끌렸다.
철퍼덕···. 침대 위로 몸이 눕혀지는 카렌.
아무런 저항도 없다. 오히려 손을 뻗어 다가오는 금발 사내의 목을 팔로 두르고 있었다. 남자는 그런 카렌의 허벅지를 잡으며 위로 벌리고는······.
“······하아. 하아.”
거기서 나츠오는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부릅뜬 눈으로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현실과 꿈이 분간이 안되고 있어서였다.
앞이 껌껌하다.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건 짜증 날 정도로 익숙한 병실의 풍경.
창밖을 보니 밤하늘 위로 달이 큼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게 보였다. 은은한 달빛이 창문을 넘으며 나츠오의 침대 옆까지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병실인가···.”
이윽고 방금 그 장면들이 꿈이었다는 걸 깨달은 나츠오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뒤늦게 현재 상황이 머릿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현재 그는 다시 입원한 상태였다.
카렌과 커플링 도중에 마력 탈진으로 의식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과도하게 성기병의 출력을 높이려다가 불안정했던 마력 신경계가 결국 버티지 못한 것이다.
다행히 큰 부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다시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하던가.
빌어먹을···.
커플링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무너진 자신을 보며 나츠오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방금 꾼 악몽 때문일까. 등줄기가 땀으로 젖은 탓에 축축하다. 식은땀이 볼 옆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아니, 그건 단순히 악몽이라고 할 게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니까.
···어쩌면 지금도 방금 꿈에서 봤던 것처럼 두 사람은 비밀스러운 관계를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느지막한 심야 시간.
꽈드드득.
카렌이 그 남자의 침대 위에서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자신의 비부를 드러낸 채, 가랑이를 벌리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나츠오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쯤되니 나츠오는 카렌에게 배신감마저 느꼈다. 어째서 카렌은 커플링 파트너인 자신을 놔두고 첫 경험을 그 남자한테 준 걸까.
언제나 옆을 지키고 있던 건 나였는데, 겨우 한 달 만났던 사람에게 자신의 처음을 줄 정도로···.
그 정도로 그 사내가 마음에 들었던 걸까.
아니면 내가 그렇게 많이 부족했던 걸까.
나츠오도 알고 있다. 그 남자가 대단하다는 것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 달 만에 헤픈 여자처럼 다른 남자에게 가랑이를 벌리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정작 기관에서 나오고 3년 동안 나에게는······.
─흠. 인간의 질투라는 건 언제봐도 재미있군.
“······”
그때 놈의 목소리가 머리를 울렸다. 흐리멍텅했던 나츠오의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왔다.
─이제는 그 소녀가 미운 건가?
“····밉다고? 아니···. 그럴 리가···.”
─내 앞에서 부정할 생각 말게. 생각이면 몰라도 자네가 나한테서 감정을 숨기는 건 불가능하니까.
“······”
놈의 말에 나츠오는 흐트러져 있던 이불자락을 강하게 쥐었다. 그건 녀석의 말에 불쾌해서가 아니었다. 그냥 참담해서였다.
녀석의 말은 옳았다.
지금 나츠오는 카렌을 원망하고 있었다.
그리고···. 질투하고 있었다. 그 금발 사내를.
지난 수년간 그토록 원했던 걸, 단 한 달 만에 손에 넣은 그 사내가 너무 부러워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러던 그때 녀석이 태연하게 속삭였다.
─나는 잘 모르겠군. 그렇게 괴로워하지 말고 그냥 자네도 가서 그 소녀랑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뭐?”
지금 이 녀석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자네도 가서 소녀랑 관계를 맺게. 어차피 성욕이라는 건 생물체로서 당연한 욕구 아닌가?
“···미친 소리.”
─뭐 안되면 강제로 덮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만해···! 그 이상 말하지 마!”
─아니, 자네라고 못할 게 뭐가 있는 건가?
인간이 아니라서 그런 걸까. 황당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지껄이고 있었다. 하지만 더 짜증 나는 건 아무리 귀를 막아도 녀석의 목소리를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역시 이 녀석은 악마다.
어떻게든 몸 안에서 떼어내야···.
그 후로도 녀석이 이상한 소리를 계속 지껄이고 있었지만, 나츠오는 애써 녀석의 말을 무시하며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대로 다시 잠을 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끼이익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막 침대에 몸을 눕힌 나츠오는 이 늦은 시간에 누가 온 건가 싶어 귀를 기울였다.
“···. 자고 있는 건가?”
그런데 들려온 것은 네토루, 그 남자의 목소리였다.
무슨 볼일이 있던 걸까. 나츠오는 일부러 잠든 척했다. 그하고 이야기할 상태가 아니다. 애초에 왜 이런 시간에 찾아온 건가.
하지만 그는 오히려 잘 됐다는 것처럼.
깜깜한 어둠 속에서 누워있는 나츠오에게 소리 없는 발걸음으로 다가오더니 손을 뻗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혹여라도 상대가 잠에서 깰까 봐 뒤집어쓰고 있던 이불을 조심스레 아래로 끌어내리더니.
갑자기 나츠오의 가슴팍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뭘까, 이건. 금발 사내의 정체 모를 행위에 나츠오가 몸을 긴장시키고 있을 때였다.
수초간의 짤막한 침묵 속에서.
이윽고 그가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 역시 마력 신경계가 온전치 않은 상태로 무리를 한 건가.”
나츠오는 가슴 안쪽에 스며드는 기운을 느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크리곤님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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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삽화는 32화에 커플링 파트너가 아버지를 죽이고, 세레스가 피눈물 흘리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아래에 멋스러운 이팩트는
75화에 네토루가 성병기로 데스웜 죽일 때 장면입니다!
참고로 오늘부터 H씬 일러 제작 시작했습니다!
첫 시작은 세레스입니다! 작업 기간은 열흘 정도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리엔 그림도 제작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캐릭터 인기 투표 봤는데! 아주 재미있네요! 아직 안하신 분 있으면 한표 부탁드립니다!
혹시라도 네토루가 1등하게 되면....!
...음. 저야 일러 뽑는 거 말고 더 할 게 있나요. ㅎ
아니면 네토루 TS 버젼이라도 뽑아볼까요?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