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6 NTO
영웅이 되고 싶었다.
사람들을 지켜주는 정의로운 존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나츠오는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무섭다. 단지 문 앞에 섰을 뿐인데 온몸이 뻑뻑해지며 긴장되고 있었다. 첫 전투 때도 이러했을까.
······전투가 끝난 지금.
나츠오는 현재 네토루의 병실을 찾았다.
버그와 성기병의 격렬한 전투로 인해 도시 안에서 멀쩡한 건물을 찾는 건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다행히 나츠오를 비롯해 393부대원들이 기존에 머물고 있던 병원은 대체로 상태가 양호한 편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전투로 부상을 입은 사람들과 부대원들이 현재 상당수 입원한 상태였다.
나츠오는 길게 숨을 내쉬며 문고리를 쥐었다. 아마 이 안에는 카렌이 있겠지. 부대원들에게 어렴풋이 이야기를 들어보니 계속 네토루의 옆자리를 지키는 중인 듯했다.
“······”
문을 열기 전에 나츠오는 마지막에 보았던 카렌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금발 사내를 부축하며, 성기병에 오르던 그때.
그렇게 차갑게 식어 있는 그녀의 검은 눈동자는 지금껏 본 적이 없다. 그건 단순히 나츠오를 책망하는 눈초리가 아니었다.
그 이상의 감정이 담긴···. 무언가다.
그걸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위축된다. 차라리 거기서 나를 꾸짖었으면, 화를 냈으면···. 좋았을 텐데.
지난 한 달간.
그렇게 그 남자가 소중해진 걸까. 그렇게 나를···. 원망할 정도로, 그 남자가 좋은 걸까.
물론 나츠오도 알고 있다. 이번 일은 자신의 잘못이라는 걸. 그래서 후회하고 있다.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다. 그 남자가 구해준 것에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카렌과 그 남자를 떠올리자니 가슴이 욱신거렸다.
─···알았어. 믿을게.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카렌의 목소리. 감정. 신뢰.
나츠오, 그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그녀의 말.
지난 3년간 그토록 갈구했던 것을, 그 남자는 단 한 달 만에 얻어내었다. 그건 어째서인가. 역시 그 남자의 실력이 대단해서일까.
···뭐든 좋다.
여기서 나츠오가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카렌과 네토루에게 사과를 하는 것.
‘···카렌.’
나츠오는 카렌에게 그런 시선을 받고 싶지가 않았다. 언제나 그녀에게 믿음직스럽고, 등을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남자로서 그녀의 옆에 당당히 서고 싶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영웅이 되고 싶다는, 소망도.
전부 카렌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야, 그녀가 나를 봐줄 테니까.
그녀가 그런 사람을 원했으니까.
기관에서 이야기했던, 그녀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츠오는 용기를 내어 문을 열었다.
그러자 예상대로 안에는 카렌이 있었다. 그녀는 빗물이 툭툭 떨어지는 창가를 옆에 둔 채, 그저 조용히 네토루라는 사내를 응시하고 있었다.
고요한 분위기. 하지만 거기서 느낄 수 있는 건 가슴이 아릿할 정도로, 애틋한 무언가.
···그걸 보고 있자니 또다시 가슴이 욱신거린다.
차라리 지금 저곳에 누워있는 게 나였다면 좋았을 텐데. 순간 그런 생각마저 하며 나츠오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몇 초 동안 카렌의 뒷모습을 응시했을까.
드디어 카렌이 천천히 뒤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
“······”
눈이 마주쳤다. 무미건조한 침묵이 둘 사이를 맴돌았다. 카렌은 그저 조용히 쳐다보고만 있었고, 나츠오는 그 시선을 받아내지 못한 채 고개를 돌렸다.
지금껏 경험해본 적 없는 어색한 분위기.
기관에서부터 시작된 오랜 인연이었다. 그렇다 보니 다툼이 없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공기가 얼어붙을 것만 같은 어색함은 처음이었다.
이윽고, 카렌이 먼저 입을 열었다.
“···왔어?”
“아···. 응.”
이걸 다행이라고 해도 좋은 걸까. 카렌은 짤막한 한 마디와 함께 시선을 거두었다. 나츠오는 안절부절못한 얼굴로 그녀의 뒤에 섰다.
그렇게 네토루의 옆을 지키듯 의자에 앉아 있는 카렌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응시한다.
카렌은 계속해서 아무런 말이 없다. 어쩌면 이야기할 생각이 아예 없는 걸지도 모른다.
이런 분위기···. 역시 너무 싫다.
숨이 막혀온다. 심장이 아파서 죽을 것만 같았다.
완전히 제삼자가 되어, 따돌려지는 듯한 느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왜 카렌한테 이런 취급을 받고 있는 걸까. 왜 하필, 좋아하는 소녀한테.
뭐라고, 말해야 하는데···. 머릿속이 어지럽다.
그래서 나츠오가 겨우 꺼낸 말은 사과였다. 이곳에는 이걸 하기 위해서 왔던 거니까.
“···카렌. 미안.”
“미안하다고?”
“응. 그러니까···. 오늘 일은 정말로···. “
“나츠오.”
말이 끊겼다. 카렌이 싸늘한 목소리에 주변 공기가 쩌적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나츠오는 숨을 삼키며 흠칫했다.
그 순간 카렌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과할 거면, 나말고 네토루한테 해. 이 사람, 너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니까.”
“···아.”
무심코 고개를 끄덕인 나츠오는 입을 살짝 벌리며 병석에 누워있는 사내를 쳐다보았다.
햇볕에 오랫동안 탄듯한 갈색 피부와 탁한 느낌의 금발···. 날카로운 이목구비와 예리한 눈매도 그렇고 차가운 인상의 남자였다.
제대로 보는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그동안 어렴풋이 이야기로만 듣던, 카렌의 커플링 파트너.
그리고 한 달 동안 나를 대신하던 남자.
···그리고 카렌이 믿음을 주었던 남자.
“너한테는 오늘 정말로 실망했어.”
그리 말한 카렌이 손을 뻗었다. 이윽고 그녀의 손이 닿은 곳은 금발 사내의 머리카락이었다.
상냥하게 남자의 머리를 쓸어만지는 그 모습에 또 다시 가슴이 욱신거린다. 나츠오는 애써 그런 자신의 아픔을 부정하려고 했다. 아니, 해야만 했다.
“나츠오. 한 가지 물을 게. 그때 왜 대피소로 가지 않고 시계탑 위에서 얼쩡거리고 있던 거야?”
“···그건.”
나츠오는 입술을 달싹였다. 여기서 뭐라고 말해야 할까. 뭐라고 말해야 그녀를···.
아니, 말할 수 있을리가 없다.
네토루라는 사람이 궁금해서 시계탑 위에 올라갔다고,
그곳에서 그의 전투에 압도당해서 하염없이 지켜보았다고···.
어떻게 이 모든 걸 카렌에게 솔직히게 말하겠는가.
하지만.
“나츠오. 말해줘.”
도망갈 구석 따위는 줄 생각이 없다는 듯이.
카렌이 다시 고개를 돌려 물끄러미 응시했다.
무미건조한 검은 눈동자였다. 차갑지도, 따스하지도 않다. 지금 그녀는 꾸짖기보다는 순수하게 의문을 품고서 묻고 있었다.
“너, 왜 거기에 있던 거야?”
“그게···. 그러니까···.”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다. 나츠오는 목소리를 떨었다. 카렌의 눈을 보면 볼수록 두려움이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무거운 위압이 몸 전체를 짓누른다.
원래라면 솔직하게 말하려고 했다. 그리고 용서를 구하려고 했다. 카렌에게는 모든 걸 털어 넣고 진심으로 사과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러면. 할 수가 없잖아.
나츠오는 두려워졌다. 이대로 솔직하게 말하면 카렌이 어떤 시선을 보낼지.
그래서, 그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있었어.”
“사람?”
“그, 그래···. 사람! 그래서 도와주고 대피소로 보냈다가···. 어쩌다가 버그에게 걸려서 그만···.”
“······”
카렌은 여전히 나츠오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그건 마치 거짓말인지 진실인지 알아내기 위한 듯한 냉담한 시선이었다.
끝내 카렌이 눈을 살짝 가늘게 좁히고는 물었다.
“···그거 정말이야?”
“지금···.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거야?”
카렌의 질문에 순간 나츠오는 울컥했다.
왜 카렌이 내 말을 믿어주지 못하는 거지.
내가 언제 그녀를 속인 적이 있던가.
기관에서부터 나츠오는 항상 카렌에 솔직했다.
그녀에게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적어도 지금을 제외하면 말이다.
“카렌, 내가 사람들을 구해주다가 센티페드한테 위험해진 건 너도 봤잖아! 그, 그냥 그거랑 똑같은 일이 있었을 뿐이야. 정말이니까 믿어줘···.”
“······”
초조하다. 카렌이 아무런 반응도 없다.
나츠오는 목울대를 떨며 그녀에게 말했다.
“카렌···. 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 너도 잘 알잖아. 내가 너한테 거짓말 한 적이 없다는 거.”
“···확실히 지금까지는 없었지.”
“···에?”
지금까지는···?
그 말의 의미를 깨닫기도 채 전이었다. 싸늘한 표정을 짓던 카렌의 얼굴에 흐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정말···. 싫다.”
그것은 뭐라고 해야 할까.
당장이라도 울것처럼, 애절한 미소였다.
냉담했던 검은 눈동자에 물기가 어려 있었다.
“나츠오···. 너, 지금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아?”
“···내 얼굴?”
카렌의 말에 나츠오는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매만져보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그 답을 알려주듯 카렌이 말했다.
“너···. 지금 엄청 꼴사나운 표정 하고 있어. 정말, 비겁하고, 비열한···. 내가 알던 나츠오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그럴 얼굴 말이야.”
“···카렌.”
“···솔직히 말해서 오늘 너한테는 화가 많이 났어. 그렇지만 일단 네가 뭐라고 하는지 이야기 정도는 들어보려고 했어. 아무리 그래도 너랑 나 사이의 관계가 있으니까. 혹시라도 내가 너를 오해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카렌.”
카렌. 그 이상 이야기하지 말아줘.
제발 부탁이니까.
하지만.
“그런데 말이야···.”
카렌은 어설픈 거짓말을 단번에 꿰뚫어 보았다는 것처럼,
붉어진 눈시울로 눈물을 글썽이며, 나츠오에게 고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한테는 거짓말 하면 안 되지.”
그 순간, 나츠오는 자신의 내면에서 무언가 빠각 부서지는 걸 느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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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미. 카렌&성기병 표지 공개는 조금 미루어질 거 같습니다. ㅜㅜ
대신 귀여운 센티페드 러프를 공개하겠습니다!
오늘 보니까 선호작 10000이 코앞이네요!
게다가 인생픽도 이틀만에 46위에서 26까지! 아주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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