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화 속 금태양이 되었다-85화 (85/148)

EP.85 프라시온

“···오빠. 울어요?”

어린 소녀의 목소리였다. 그렇기에 그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위험하다. 비록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사방에는 여전히 불길이 존재했고, 전투의 여파로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는 위험한 건물들이 여러 군데 존재했다.

······아니, 애초에.

왜 아직도 이런 곳에 어린 소녀가 있는 거지.

재건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파괴된 탓에 이제는 버려질 도시다. 그러니 지금쯤이면 살아남은 시민들의 피난이 진행되고 있을 텐데. 적어도 이렇게 소녀 혼자 돌아다닐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 툭툭 떨어지는 빗줄기 속에서 우산을 씌워주던 소녀가 등 뒤에서 조용히 말했다.

“울고 싶을 때는 그냥 우는 게 좋아요.”

“······”

“저도 방금까지 울고 있어서 아는데, 울고 나니까 좀 편해지더라고요.”

예상치 못한 당돌한 조언이다.

“오빠도 분명 저처럼 무언가 울고 싶은 일이 있던 거겠죠?”

쏴아쏴아···. 쏟아지는 빗방울 속에서, 소녀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퍼진다. 남자는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목울대를 떨었다. 소녀의 말이 가슴 안쪽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껏 안정시키고 있던 감정의 물결이 낯선 소녀의 한 마디에 거대한 파도가 되어 흔들린다.

어째서일까.

어째서 이렇게 어린 소녀의 말이 가슴 깊숙이 스며들고 있는 걸까.

모르겠다.

하지만 가슴이 아프다.

점점 억누르지 못할 감정들이 요동쳤다.

힘들다. 괴롭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건 처음이라고.

그동안 모두가 그를 원망하였다.

모두가 그를 욕하고, 꾸짖었다.

모두가···. 나를.

그런데 이렇게 처음으로 상냥하게 달래주는 사람이 오늘 난생처음 보는 어린 소녀라니.

이 얼마나 짓궂은 현실인가.

“울고 싶은 일이라···.”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탓인지 목소리가 떨린다. 하지만 그는 하나둘씩 튀어 오르려는 감정들을 겨우 억누르며 소녀에게 물었다.

애써 감정을 죽인 탓에, 그건 무척이나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다.

“너는 뭐 때문에 울고 있었는데.”

“죄를 저질러서요.”

“죄···?”

“저 때문에 오늘 부모님이 돌아가셨거든요.”

“······”

남자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말을 하고 나서야 방금 자신이 얼마나 무신경한 질문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소녀는 낮게 깔린, 그러면서도 울음소리가 너울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만 아니었으면 엄마랑 아빠가 오늘 버그들에게 죽을 일은 없었을 텐데···.”

그때 툭 하고 등에서 무게감이 느껴졌다. 소녀가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그의 등에 이마를 기댄 탓이었다.

그것은 갑작스러웠지만,

그는 그런 소녀의 투정을 받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꺾일 것처럼···. 어린 소녀는 위태로운 분위기를 흘리고 있었으니까.

“정말···. 싫어요···. 대체 왜 이렇게 된 건지···.”

어느새 소녀는 진심으로 울고 있었다.

서로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할 수 있는 진솔한 이야기가 있는 법이었다.

그렇기에.

울고 있는 어린 소녀가 누구인지 뒤를 돌아보지도 못한 채 남자는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 이 순간 그가 할 수 있는 건,

소녀의 말을 조용히 들어주는 것뿐이었으니까.

“저, 오늘 부모님이랑 싸웠어요.”

“······”

“잔뜩 화를 내고, 나쁜 말을 했어요. 엄마, 아빠가 밉다고···. 보기 싫다고···. 짜증 난다고··· 그렇게 말하고 집에서 도망 나왔어요.”

등이 어린 소녀의 눈물로 축축해졌다. 그리고 옷자락을 쥐는 소녀의 손아귀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러면 안 됐는데···.”

“그때···. 겁쟁이처럼 도망치지 않고 솔직하게 먼저 사과했어야 했는데···.”

“···그러면 괜히 나를 찾다가 대신해서 버그들한테 죽을 일은 없었을 텐데···.

절실하게 느껴지는 어린 소녀의 슬픔에.

남자는 속이 울렁이는 무언가를 느꼈다.

그것은 죄책감이었다.

이곳에도 내 죄가 있다. 소녀의 울음소리는 그 하나하나가 전부 남자에게 날카로운 창날이 되어 가슴을 찌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두 분은 제가 죽인 거예요.”

자책하는 어린 소녀의 말에 남자는 주먹을 쥐었다.

아니다.

이건 소녀의 잘못이 아니다.

처음부터 내가 버그들이 도시에 도달하지 못하게 막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것 또한···. 결국 내 죄다.

하지만 남자는 차마 그걸 소녀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두려웠다.

자신에게 상냥하게 말을 걸어준 소녀마저도 다른 부대원들처럼 원망 어린 시선을 보낼까 봐 남자는 두려웠다.

한심하고, 정말로 이기적이다.

이런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혐오스러워서, 끝내 오열을 참을 수가 없었다.

겨우 억누르고 있던 온갖 감정들이 뚫린 구멍을 통해 고개를 내밀었다. 이 세상에서 눈을 뜨고난 이후로 감춰왔던 것들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지난 시간 동안 남자는 계속 생각했다.

대체 어째서.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런 빌어먹을 세상에서 고통받고 있는 건가.

왜 나 때문에 남들이 죽는 걸 보아야 하는가.

나라고···. 이렇게 도시가 파괴되는 걸 보고 싶던 게 아니었는데.

무서웠다. 괴로웠다. 그래도 노력했다.

하지만 결과는 이렇다.

그 누구도 이해해주지 않고, 이해할 수 없다.

실수라고 하기에는, 단순히 잘못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죽었으니까.

그것은 마음의 비명과도 같았다.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자신의 죄에 대한 울부짖음.

차곡차곡 쌓인 죄가 가슴을 옥죈다.

그 순간 뇌리에 스친 건 오면서 보았던 무수한 시체들이었다. 사람이 죽었다. 어린아이가 죽었다. 너무나도 많은 생명들이 버그들에게 짓밟혔다.

당장 뒤에 있는 소녀 또한 자신 때문에 무언가를 잃었다고 생각하니,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걸 도대체 어떻게 갚아나가야 하는 걸까.

나 때문에 죽은 사람들을 도대체 어떻게···.

─털썩

끝내 그는 발치에 힘이 풀리는 걸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무릎이 바닥에 강하게 닿는다. 빗물이 바닥을 튕기며 그의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고개를 숙이며 모든 걸 털어놓았다.

“···미안해.”

“······”

“내가···. 좀 더 잘 싸웠다면···. 거기서 도망치지 않았다면···. 네 부모님이 죽을 일이 없었을 텐데···.”

“······”

그것은 죄인이 자신의 죄를 털어놓는 고해성사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런 어린 소녀에게라도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한 남자의 비겁함이기도 했다.

그 순간에도 소녀의 얼굴을 제대로 볼 용기가 없어서, 그저 고개만을 숙인다.

그러나 소녀는 원망하지도, 비웃지도 않았다.

단지 나직이 혼잣말하듯 이야기할 뿐.

“오빠도 저처럼 똑같이 겁쟁이인가 보네요.”

그때 툭 하고 우산이 바닥에 떨어졌다. 휘몰아치는 바람에 순식간에 저 멀리 날아가 버린다.

“그러면 저희 오늘부터 약속해요.”

쏴아쏴아···. 비가 내린다.

하지만 소녀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선명했다.

“다음부터는 서로 도망치지 않겠다고···.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이윽고 얼굴 모를 소녀는,

대신 비를 맞으면서도 약간 몸을 숙인 채 조용히 남자의 머리를 껴안아 주며 속삭였다.

“그러니까 지금은 마음껏 울어요. 저는 오빠를 원망하지 않으니까요.”

2.

어린 시절,

도시가 무너지고, 부모님을 잃고서 도착한 기관에서의 생활은 괴롭고 힘들었다.

나름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살던 카렌에게 기관에서의 삶은 버티기 힘든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렇기에 입소한 이후부터는 죽은 부모님의 사진을 항상 손에 쥐며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어느새인가 카렌은 더 이상 부모님의 사진을 보지 않게 되었다. 이제 유일하게 남은 마지막 가족사진인데도 말이다.

뚝. 뚝. 뚝···.

별안간 창가를 두들기는 물방울 소리.

“···비가 내리네.”

갑작스러운 빗소리에 카렌은 멍하니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먹구름이 잔뜩 낀 것이 계속 보고 있자니 다시금 그날을 연상케 해서 왠지 우울해지는 느낌이었다.

덕분에 반쯤 잊고 있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대피 행렬에서 벗어나 몰래 집에서 마지막 남은 가족사진을 찾고 있던 그날,

카렌은 흐릿한 인상의 금발 사내를 만났다.

하얀 피부와 호리호리한 체격도 그렇고 어딘가 믿음직스럽지 못한 분위기의 사내였다.

그러면서도 폐허로 변한 길거리에서 비에 맞으며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 마치 기가 죽은 강아지를 보는 것만 같았다.

무언가 괴로워하는 그 모습은 그 당시의 카렌과 너무나도 닮아 있어서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동질감을 느꼈다고 할 수 있겠지.

그래서 조심스레 말을 걸어보니 역시 생긴 대로 나약한 사람이었다. 떠나는 그 순간까지 그는 단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어쩌면 내 얼굴도 못 봤을 것이다.

그건 역시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내가···. 좀 더 잘 싸웠다면···. 거기서 도망치지 않았다면···. 네 부모님이 죽을 일이 없었을 텐데···.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그렇고,

어린 카렌이 보기에도 그건 바보 같은 말이었다.

그날, 도시 하나가 그렇게 처참히 무너진 게 과연 한 사람의 실수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원망스럽기보다는 그냥 불쌍하게만 느껴졌다. 너무 혼자서 무거운 짐을 껴안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어떻게 보면 네토루, 그 녀석이랑 비슷하려나.

그 녀석 역시 혼자 무리하게 많은 걸 껴안고 가는 녀석이었으니까.

안 그래도 서로 비슷한 머리 색을 지닌 탓일까.

이제는 얼굴도 잘 기억 안 나는 사내를 떠올리던 카렌은 병석에 누워있는 네토루를 바라보았다.

죽은 것처럼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그를 빗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있자니,

스르륵─. 천천히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보니,

나츠오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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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오늘 외주 완성된 겁니다!

참고로 로봇은 카렌 성기병은 아니고, 그냥 과거에 탔던 무언가입니다.

카렌&성기병 표지는 내일 공개될 것 같습니다!

아마, 당분간은 휴재 or 한편 씩 연재할 수 있습니다. 법원 좀 가야 해서요.

8.27 삽화 추가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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