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화 속 금태양이 되었다-81화 (81/148)

EP.81 프라시온

······나츠오, 그 꼬맹이는 무사히 대피한 걸까.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녀석이 보이질 않는다.

어쨌든 눈치껏 빨리 자리를 피해주었으니 고마운 일이다. 덕분에 전투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끼이이익.

스파이더의 포탑이 선회하는 소리가 소음이 되어 귓가를 간질인다. 그런데 그러한 소리가 하나도 아닌 넷이다. 네토루는 혀를 차며 성기병을 옆으로 뛰었다.

그러자 다음 순간 사방에서 쏘아진 4개의 포탄이 모양새 좋게 십자가 형태를 이루며 스쳐 지나가더니, 각자 서로 다른 도시 건물을 무너뜨렸다.

화려한 폭발과 함께 오랜 전통이 담겼을 건물이 그렇게 또다시 사라진다. 그리고 그것을 눈에 담던 네토루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피식 웃었다.

‘이 광경을 보면 귀족들이 정말로 좋아하겠군.’

농담이 아니라 어쩌면 귀족들은 지금 버그들을 응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프라시온은 귀족들에게 목 안의 가시 같은 존재였으니까.

당장이라도 지워버리고 싶은 불편한 존재. 언제 다시 목숨을 위협할지 모를 비수의 끝자락.

하지만 혁명의 시작점이라는 사실 때문에 섣불리 건들 수 없던 것이 바로 프라시온이었다.

안 그래도 왕국 내부의 민심이 좋지 않다.

형태가 어떠하든 혁명군은 귀족들에게 시민들의 의견을 대변하던 거대 세력이었고,

그리고 그런 집단과 수년간 전쟁을 하다가 버그 덕분에 운 좋게 살아남은 것이 지금의 귀족들이었으니 시민들이 좋아할 리가 없다.

그래서 귀족들은 프라시온을 지키는 제39구역 같은 걸 유지해줄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이것마저 꺾는다면 안 그래도 좋지 않던 민심이 어떤 형태로 표출할지 알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어떻게 보면 프라시온은 귀족들이 시민들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그런데 지금 그런 상징 같은 도시가 버그들에게 처참히 무너지고 있다.

그러면 이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좋든, 싫든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아마 이번 일은 리엔에게 좋지 않은 쪽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귀족들이 책임을 떠맡을 리는 없었고, 게다가 그들 나름대로 변명할 건 있으니.

성병기는 물론이고 전술 마법탄도 지원해주었다. 물론 이게 충분한 지원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무튼···. 결국 이번 일이 끝나도 너저분한 싸움이 기다리고 있는 건 분명하다.

네토루는 머지않은 미래의 일을 걱정하면서도 눈앞의 현실에 씁쓸함을 느꼈다.

‘결국, 이 도시도 끝인가.’

───콰아앙!

또다시 포탄이 쏘아진다. 네토루가 포탄을 피하자 이번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갔을 거라고 생각되던 시장가에 떨어졌다.

도로 위로 불꽃이 치솟고, 주변 건물들이 그 충격파를 견디지 못하고 위태롭게 휘청거린다.

불행하게도 이번에 포탄이 떨어진 곳 주변에 과일을 팔던 가게가 있던 건지, 폭발의 여파로 사과 같은 것들이 후두둑 허공에 튕겨 날아가는 게 보였다.

점점 그렇게 도시는 폐허로 변해간다.

아마 이대로 무사히 버그들을 몰아내도 도시는 옛 모습을 되찾기 힘들 것이다.

도시 재건을 위한 지원은 생각하기 어렵다.

다른 상황도 아니고 국토 전역에서 버그들과 싸우는 중인데 도시 하나를 재건할 여력이 어디에 있겠는가. 설령 있다고 해도 귀족들의 성격상 지원해줄 리는 없다.

‘어쩔 수 없나.’

그렇게 이 도시의 생명이 끝났다고 판단한 네토루는 망설임 없이 주변 건물들을 엄폐물로 삼았다.

시가전은 이래서 좋다. 적의 공격을 막아주는 게 많았으니까 말이다.

이름 모를 건물들을 자연스럽게 방패 삼아 포격을 피하던 네토루는 근처에 있던 스파이더와 거리를 좁혔다.

───끼이익!?

뒤늦게 스파이더의 포구가 바쁘게 움직였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서 휘두른 검이 스파이더의 장갑을 찢고서, 그 내부의 살점을 드러냈다.

네토루는 그 내부 안에 징그럽게 꿈틀거리는 스파이더의 살육에 그대로 성기병의 손을 꽂아 넣었다.

우직, 불쾌한 소리가 한차례 울려 퍼지더니 그대로 스파이더의 기계 다리가 힘없이 무너지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수초도 안 되어 불그스름한 기운을 흘리던 거미의 눈동자에서 색이 사라졌다.

하지만 한 마리 죽였다고 상황이 여유로워지는 건 아니었다. 네토루는 쉴 여유도 없이 바쁘게 성기병을 움직이면서 맵을 확인하다가 미간을 좁혔다.

센티패드, 스파이더, 그 종류 가리지 않고 붉은 점들이 점점 근처에 나타나고 있다.

······이건. 설마.

“···나를 사냥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흥미로운 상황에 네토루는 입매를 비틀었다.

죽이면, 죽일수록 버그들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그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쯤 되면 네토루도 모를 수가 없다. 도시 전역에 흩어져 있던 버그들이 지금 그를 잡기 위해 모여들고 있다는 걸 말이다.

미끼를 뿌리면서까지 버그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도시를 먼저 타격했는지 모르겠지만, 본래 계획했던 걸 완전히 포기한 게 분명했다.

─뭐, 뭐야! 버그들이 왜!?

─챈들러! 버그들이 후퇴하는데!?

─멍청아! 지금 그 녀석들 후퇴하는 거 아니야! 그 녀석들은 지금···!

분투하고 있던 부대원들도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연결되어 있던 음성 채널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제일 먼저 이상함을 눈치챈 것은 기지에서 관측하고 있던 리엔이었다.

─네토루! 버그들이 지금 당신한테···!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버그들에게 단단히 원한을 산 듯하다.

도시로 진격하던 걸 막아섰던 것도 그렇고, 버그 무리 안에서도 제법 중요한 개체일 거라고 예상되는 데스 웜을 죽인 것도 그렇고,

이 녀석들이 정확히 뭘 노리려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계획은 일그러졌겠지. 그래서 그 실패에 대한 분풀이로 나를 죽이려고 하는 걸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판단을 끝낸 네토루는 카렌의 상태부터 확인하였다.

“카렌. 몸은 어때.”

“하아···. 하아···. 최악이야. 아니, 그것보다 이 녀석들 우리를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야?”

카렌도 현재 상황이 어떤지 파악은 하고 있는지 입가를 일그러트렸다. 그것은 두려움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호승심에 가까운 뜨거운 미소였다.

이윽고 카렌이 말을 덧붙였다.

“···네토루. 나는 괜찮으니까, 네 맘대로 해.”

“그 말 후회할 수도 있는데.”

“흐응···. 그러면 그건 그때 가서 후회하지 뭐.”

마력을 소화하며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카렌이 입술을 혀로 핥으며, 쾌활하게 웃었다. 그것은 어딘가 천진난만한 소녀의 웃음과 닮았다.

솔직히 이런 전장과 어울리는 웃음은 아니지만,

지금의 네토루에게는 그 어떤 웃음보다도 더 없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저 씩씩한 카렌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지쳐있던 그의 감정도 조금은 위로받는 느낌이다.

정말이지···.

“···카렌. 나는 이래서 네가 좋단 말이야.”

“엣? 뭐? 자, 잠시만. 너!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뭔 소리를···. 꺄앗!”

실수로 말이 샜다. 카렌의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그건 누가 봐도 단순히 성기병과의 커넥팅으로 열이 오른 얼굴이 아니었다.

그런 카렌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던 네토루는 그녀의 조정간을 힘껏 잡아당겼다.

그 반동으로 카렌의 허리가 유려하게 휘어졌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주섬주섬 마력 신경계에 삽입되는 마력을 흘림 없이 받아내 주었다.

역시 어린 소녀답게 생명력 넘치는 몸이었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싸우는 게 아닐 텐데도 그녀는 네토루가 원하는 대로 근성 있게 호응해주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진짜 문제는···. 오히려 나인가.

그래도 다행히 지금까지 미끼에 붙잡혀 있던 다른 부대원들이 신속하게 도시로 오고 있지만,

과연 내가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네토루는 목구멍 안쪽으로 올라오는 피 맛을 느끼며 얼굴에서 표정을 지웠다. 이윽고 날카롭게 조여진 표정에서는 잘 갈린 칼날 같은 눈빛만이 남았다.

당연하지만 이대로 쉽게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2.

──명령 확인

──NTL-001 생포 시작

본래 계획은 완전히 틀어졌다. 그렇지만 이대로 동족들을 그냥 죽게 놔둘 수는 없었다.

죽더라도 어떻게든 좀 더 목숨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괴물은 동족들에게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본래 계획을 취소하는 대신 새하얀 성기병을 파괴하고, 그 안에 있는 파일럿을 생포하도록 말이다.

안 그래도 이미 프로젝트의 적합체로 선정된 개체였다. 그렇기에 이 영역의 군단에게서 허락을 받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저 인간이 좋겠군.’

동족들의 피 냄새가 바람을 타고 흘러 다니는 도시에서, 괴물은 그 얄팍한 몸뚱이를 파르륵 떨었다.

보면 볼수록 탐이 난다.

도시 전역에서 모여드는 동족들이 NTL-001한테 파괴될 때마다, 괴물의 감정 속에서 피어오르는 것은 분노 대신 강렬한 탐욕이었다.

───콰아앙!

몇 번이나 포성이 울리지만 아무런 소용 없다. 새하얀 성기병은 민첩한 몸놀림으로 포격을 피하고는 하나둘씩 동족들을 능숙하게 유린하였다.

그의 움직임은 지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오히려 싸울수록 어디선가 힘을 얻는 것인지 성기병의 움직임이 더욱 맹렬하게 변하고 있다.

건물 뒤편에 은밀하게 움직이던 침투형 센티페드들이 중기관총으로 탄막을 형성해도,

정작 꿰뚫는 것은 잔영만 남은 빈 허공뿐.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어려운 그 기민한 움직이는 괴물에게 전율마저 안겨주고 있었다.

저것은 사냥꾼이다.

동족을 사냥하기 위해 만들어진 듯한 존재.

설령 여기서 붙잡지 못해도 좋다. 오히려 그럴수록 저 인간에 대한 가치는 더욱 상승한다. 그러니 나중에 다시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둘씩 NTL-001에게 동족들이 사라지고 있는 가운데,

“······?”

전장의 풍경에 한눈에 보이는 시계탑 위에서 전투를 관찰하던 괴물은 문득 인기척을 느꼈다.

──저벅저벅

뭔가 싶어 돌아보니 웬 소년이 시계탑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뭐 하는 녀석이지. 뭔지 모르지만, 괴물은 인근 구석에 슬금슬금 몸을 숨겼다.

3.

쿠르르릉···. 건물이 흔들린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포성이 귓가를 계속해서 두들겼다. 그렇지만 나츠오는 물러섬 없이 천천히 계단을 올라 시계탑의 꼭대기로 향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이건 일종의 호승심에 가까웠다. 나츠오는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 카렌과 커플링을 하고 있는 녀석이 도대체 어떤 녀석인지 말이다.

······도대체 얼마나 잘난 녀석이길래.

─···알았어. 믿을 게.

카렌이 그 정도로 믿음을 줄 수 있는 걸까.

두 사람이 커플링한지 이제 겨우 한달 조금 넘었을 텐데 말이다.

이윽고 나츠오가 도착한 그곳에는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었다. 코 끝을 찌르는 매쾌한 검은 연기와 버그들의 피 냄새가 바람을 타고 흘러다녔다.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느끼며 나츠오는 시계탑의 꼭대기에서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사방에서 쏘아지는 포탄으로 인해 곳곳에서 화염과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는 가운데,

그제야 도시의 전경을 확인할 수 있던 나츠오는 경악 어린 목소리를 흘리고 말았다.

이런 건 생각도 못했다.

아니, 생각할 수 있을리가 없다.

“···뭐야, 저게.”

그곳에는 무수한 버그들의 시체를 쌓으며 홀로 외롭게 싸우고 있는 새하얀 성기병이 있었다.

분명 수많은 버그들이 사방에서 포위하고 있지만,

사냥당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사냥하는 모양새를 띄고 있는 그 압도적인 전투에.

나츠오는 아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지만 이런 전투는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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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 설정 그림입니다!

다리가 얇은 건 전차형이고, 뭉툭한 건 장거리 포격형, 즉 자주포형입니다. 참고로 자주포형이 좀 더 몸집이 큽니다!

다음은 센티페드 그림으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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