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0 프라시온
운이 좋았다. 맵을 보던 중 센티페드 하나가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서 따라와 봤더니 사람들을 습격하기 직전이었다.
만약 조금만 더 발견하는 게 늦었다면 사람들이 여럿 죽었을 것이다. 네토루는 사람들이 무사히 대피소로 향하는 걸 확인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이 녀석.”
기껏 구해준 꼬맹이가 아까부터 계속 멍하니 성기병을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서 도망치지 않고 뭐하는 거지?
혹시 겁에 질려서 그런 건가 싶었지만 그건 아닐 것이다. 방금 네토루는 보았다. 저 꼬맹이가 사람들을 대신하여 센티페드의 시선을 끄는 걸 말이다.
그건 보통 용기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실제로 지금 자세히 보니 오히려 겁에 질렸다기보다는 간신히 감정을 억누르는 모습이었다.
분노? 아니, 그것보다 질척질척한 무언가다.
긍정적인 것도 아니고, 부정적인 것도 아닌 정체 모를 감정이 소년에게서 엿보였다.
“하악···. 으읏···. 무슨 일이야···?”
그때 조종석에서 고개를 떨구며 네토루의 마력을 소화하는데 집중하던 카렌이 문득 그리 물었다.
열띤 얼굴도 그렇고, 밖을 볼 여유도 없는 건지 카렌을 숨을 허덕이기 바빴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흐윽···. 주변에···. 다른 버그는 없는 거야?”
“이쪽은 대충 정리가 끝난 거 같아.”
“그러면···. 하아···. 다른 곳으로 빨리 가자. 아직 주변에 다른 버그들이 많이 있으니···. 어라?”
말을 하던 카렌이 멈칫하더니 고개를 들었다. 뒤늦게 밖을 확인한 카렌이 깜짝 놀란 얼굴이 되어 멍하니 중얼거렸다.
“···나츠오?”
“······”
무심코 카렌의 조정간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츠오라고?
당연하지만 네토루도 알고 있는 이름이다. 모를 수가 없다. 카렌의 원래 커플링 파트너니까.
아무래도 성기병 앞에 멈춰있는 소년이 나츠오라는 녀석인 듯했다.
그 사실에 네토루는 흥미를 느끼며 다시 한번 소년을 살펴보았다. 여전히 나츠오라는 소년은 제 자리를 유지한 채 카렌의 성기병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직 청소년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한 앳된 얼굴이다. 덕분에 카렌과 딱 동갑이라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카렌과 비슷한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인상은 카렌과 전혀 다르다. 카렌은 차분하면서도 어딘가 톡톡 튀는 당돌함이 있다면, 나츠오는 강인하면서도 활활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눈동자에 품고 있었다.
처음으로 보는 카렌의 커플링 파트너의 모습에 네토루는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이 녀석인가.’
안 그래도 한 번쯤 보고 싶기는 했다. 그런데 설마 이렇게 만날 줄이야. 이쯤 되면 반갑기까지 하다.
그때 카렌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 정말! 뭐야, 저 녀석 왜 대피소에 안 가고 아직도 혼자 밖을 돌아다니고 있는 거야···.”
그러더니 조종석에 누워있던 카렌이 초조한 얼굴로 손을 바쁘게 움직였다. 아무래도 나츠오와 이야기할 생각인 듯했다. 이윽고 외부 음성 채널을 연 카렌이 다그치듯 말했다.
─야! 나츠오, 너 거기서 뭐해! 왜 아직도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는 거야!?
─···뭐하기는. 시민들을 데리고 대피소로 가고 있었지. 혼자 도망갈 수는 없잖아.
─···다른 부대원들은? 너, 병원에 애들이랑 같이 있던 거 아니었어?
─걔네는 대피소로 먼저 보냈어. 위험하니까.
─먼저 보냈다고? 아니···. 몸도 성치 않은 녀석이 왜 혼자 그렇게 무리를 하고 있는 거야···.
“······”
뭘까 이건.
네토루는 미묘한 시선으로 카렌을 응시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나츠오랑 이야기하는 카렌의 모습은 왠지 남동생을 챙기는 누나를 연상케 했다.
덕분에 둘이 어떤 느낌의 관계인지 얼핏 보였다.
카렌의 말에 나츠오는 표정을 찡그렸다. 그리고 곧 앓는 목소리가 그에게서 흘러나왔다.
─···카렌. 아무리 그래도 보자마자 잔소리하는 건 너무하지 않아? 나름 오랜만에 만나는 건데.
─그러면 걱정 안 하게 해주던가! 방금 네토루가 안 구해줬으면 너, 죽을 뻔 했다고!
─으윽···. 그건 미안한데···. 아무튼,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도대체 뭔 일이 있었길래 우리 부대가 여기까지 와서 싸우고 있는 거고?
─그게···.
그걸 전부 설명하기에는 시간이 없다.
그래서 아까부터 얌전히 둘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네토루는 카렌의 조정간을 쥐었다.
“으응? 왜···? 으읏···!? 자, 잠시만···. 나, 나츠오랑 이야기 좀 더 하고···. 아앗!”
“이제 그럴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네토루는 카렌의 조정간을 잡아당기며 성기병을 움직였다. 그러자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포성이 울리더니, 포탄이 옆구리를 스쳤다.
───콰아앙!
근처에 있던 건물이 굉음을 동반한 폭발과 함께 힘없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한 회피였다.
“카렌. 이제 전투에 집중해. 지금 한가롭게 떠들 때야? 반가운 건 알겠지만, 상황은 분별해주면 좋겠는데.”
“앗? 아, 알겠는데···. 네토루··· 그렇게 갑자기 마력을 밀어 넣으면···. 으윽! 흐으읏!”
“조금만 참아. 지금 포위당한 것 같으니까.”
갑자기 마력 패스가 확장되자 카렌의 등줄기가 부러지듯 휘어지며, 그녀의 입술 사이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말하기 무섭게 또다시 어디선가 포탄이 쏘아지고, 주변의 건물이 무너져내렸다. 네토루는 빠르게 주변을 훑고는 버그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이제 이쪽을 경계라도 하는 걸까.
방금까지 보이지 않던 버그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며 노골적으로 포위망을 형성하며 좁혀들고 있었다. 제법 위협적인 움직이었다.
네토루는 최적의 이동 경로를 분석하며 검을 쥐었다. 무작정 움직이면 당한다. 그 정도로 녀석들은 조심스레 접근 중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네토루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쯧. 대피소로 가는 길목이 무너져 내렸군.”
방금 전에 인근 건물이 포탄에 맞은 탓일까. 대피소로 향하던 길목이 무너져 내렸다. 덕분에 나츠오는 이곳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된 상태였다.
그걸 카렌도 보았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으읏? 아, 안 되는데! 아직, 나츠오가···.”
“걱정 마. 저 꼬맹이는 내가 어떻게든 지켜줄테니까.”
“···알았어. 믿을 게.”
차분하게 타이른 효과가 있는 걸까. 당황하던 카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걱정하는 기색은 얼굴에서 여전히 숨길 수가 없다.
덕분에 그런 카렌의 표정을 흘겨보던 네토루는 문득 호기심을 느꼈다.
과연 저게 단순히 소꿉친구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 이상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인지.
2.
얼핏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나니 그동안 애써 부정하고 있던 감정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금 카렌은 정말로 다른 남자와 커플링 파장을 맞추고 있는 건가? 그것도 지금처럼 원활한 커플링이 가능할 정도로?
솔직히 말해서 나츠오는 카렌이 다른 사람과 커플링 하는 건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나츠오의 첫 커플링 파트너는 카렌이었다.
그는 기관에서부터 카렌과 커플링을 했었고, 부대에 배치되었을 때도 그건 변함이 없었다.
지난 3년간.
나츠오의 커플링 파트너는 오로지 카렌뿐이었다.
그리고 그건 카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일까.
─거기, 꼬맹이. 괜찮냐?
카렌의 성기병에서 낯선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는 온갖 감정들이 소용돌이 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초조하면서도 어딘가 소중한 것을 빼앗긴 듯한, 불안감의 집합체라고 해야 할까.
그 덕분에 방금 자신을 구해주었지만, 카렌의 성기병에서 흘러나온 남성의 음성이 무척이나 불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도움을 받은 건 분명한 사실.
그렇기에 나츠오는 울컥 치솟던 감정들을 억누르기 위해 노력했다. 카렌에게 이런 어린애 같은 모습을 보일 수는 없으니까.
안 그래도 나를 종종 어린 애 취급하던 녀석이다. 나츠오는 녀석에게 그런 취급을 받기 싫었다. 그가 원하는 건 당당하고, 믿음직스러운 파트너의 위치다. 어설픈 소꿉친구 관계가 아니라.
그래서 최대한 평소 때처럼 카렌에게 말을 걸던 그때였다.
─으응? 왜···? 으읏···!? 자, 잠시만···. 나, 나츠오랑 이야기 좀 더 하고···. 아앗!
───콰아앙!
“···크윽!”
갑자기 날아온 포탄이 주변 건물을 때렸다. 나츠오는 머리 위로 툭툭 떨어지는 돌조각들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몸을 숨기며 카렌의 성기병을 확인했다.
다행히 카렌은 무사했다.
그녀의 커플링 파트너가 타이밍 좋게 피한 듯했다. 대단한 반응 속도였다. 보고 있던 나츠오도 무심코 감탄할 정도로 말이다.
만약 나였으면 피할 수 있었을까?
문득 그러한 생각을 하던 중에 나츠오는 곧 무언가를 발견하고서 표정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길이 막혔어?’
방금까지 멀쩡했던 길목이 무너진 건물 잔해로 막혀버린 탓이었다. 저기가 막히면 대피소로 가기 위해 길을 빙빙 돌아가야만 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데 그 순간 카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앗? 그, 그렇지만 네토루··· 그렇게 갑자기 마력을 밀어 넣으면···. 으윽! 흐으읏!
“······”
아직도 카렌의 외부 음성이 켜져 있다. 덕분에 카렌의 신음 소리를 숨김없이 들을 수 있었던 나츠오는 착잡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혹시 커플링 파트너가 험하게 다루는 것일까.
장기간 전투로 숨을 허덕이는 모습은 보았어도, 카렌이 저렇게 마력을 받아들이는 걸 괴로워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면 저 남자는 지금 도대체 얼마나 많은 마력을 카렌에게 삽입하고 있는 것인가. 저러다가 카렌의 몸이 망가지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던 그때 남성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걱정 마. 저 꼬맹이는 내가 어떻게든 지켜줄 테니까.
“······”
그것은 무척이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였다. 마치 카렌을 달래는 듯한···.
···아니, 그것보다 꼬맹이라니.
의도한 건지 모르겠지만, 나츠오는 남자가 부르는 명칭에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왜 하필 카렌 앞에서 저렇게 꼬맹이 취급하고 있는 거지.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당혹스러운 건.
─···알았어. 믿을 게.
남자의 말에 믿음을 가지는 카렌의 대답이었다.
그것은 지금껏 나츠오가 들어본 적 없는 형태의 신뢰 어린 목소리였다. 그는 저렇게 카렌이 상대에게 기대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기관에서부터 카렌은 언제나 당차고, 자기 앞가림이 강한 아이였으니까. 적어도 누군가한테 저렇게 일방적으로 기대는 성격이 아니었다.
···적어도 나츠오가 알기로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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