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9 프라시온
“하아···. 하아···.”
숨이 뜨겁다. 폐가 움직일 때마다 옆구리가 아팠다. 숨을 얼마나 몰아쉬고 있는 것인지 이제는 목이 따끔따끔해질 정도였다.
그때 뒤에서 조정간을 쥐고 있던 네토루가 말했다.
“카렌. 이제 머리 좀 식었어?”
“···응.”
“사람들이 죽은 것 때문에 화난 건 알겠지만, 그래도 갑자기 왜 그런 거야?”
“···그냥. 옛날 일이 생각나서 그래. 내 고향은 버그들 때문에 사라졌으니까.”
프라시온은 카렌에게 소중한 도시였다. 어떻게 보면 이제는 제2의 고향 같은 도시이기도 했다. 지난 3년 동안 지킨 도시였으니 애정이 안 갈 수가 없다.
그런데 그런 도시가 온통 폐허가 된 탓일까.
그 악몽 같던 날이 다시금 떠올랐다. 버그들에 의해 낯익은 거리가 온통 폐허로 변해버리고, 사방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사람의 죽음이 만연했던 곳.
부모님이 죽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보면서도 정작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무기력했던 시절.
그게 떠올라서 순간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래.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이해해준 걸까. 네토루가 납득한 듯 그리 중얼거리더니 다시 성기병을 움직였다. 아직 도시 안에서는 여전히 전투가 진행 중이었다.
그렇게 다시 버그를 찾아 움직일 때였다. 음성 채널로 비명과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악! 누, 누가 좀 도와줘!
“···쿄쿄의 목소리야.”
이미 네토루는 그 말을 듣기 무섭게 쿄쿄가 있는 지점으로 달리고 있었다. 맵을 보니 다행히 거리는 가까웠다.
이윽고 도착한 그곳에는 도시 내부의 대로가 교차하는 사거리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스파이더 셋에게 반쯤 포위당한 성기병이 하나 보였다.
페르아가 조종 중인 쿄쿄의 성기병이었다.
왠지 모르지만 두 사람은 도망치지 않고 주변 건물을 엄폐물 삼아 시간을 끌고 있었다. 얼핏 봐도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네토루는 그런 둘의 안전을 위해 곧바로 포위하던 버그들의 시선부터 끌기 시작했다.
건물의 벽면을 타고 은밀히 움직이던 센티페드의 몸통에 검을 박아 숨통을 끊고, 쿄쿄의 성기병을 향해 포구를 겨누려던 스파이더한테 맹렬히 돌진해 몸으로 밀쳐냈다.
──쿵!
그 충격에 끼이익 기괴한 소리를 내며 애꿎은 허공에 포탄을 쏘아내던 스파이더가 우스꽝스러운 모양새로 바닥에 뒤집어졌다. 포격의 반동과 네토루의 충격이 합쳐지며 균형을 잡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순식간에 버그들의 시선을 끌어모은 네토루는, 몸이 뒤집힌 상태로 징그럽게 개조된 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스파이더의 몸에 검을 박아 넣었다.
이윽고 찐득한 핏물과 함께 스파이더의 숨통이 완전히 끊겼을 때였다. 이제야 이쪽을 발견한 걸까.
─어어! 카렌과 네토루 형이다!
─꺄아아! 이제 우리 살았어!
방금까지 애처롭게 비명 지르던 두 사람이 떠들썩하게 반겨주었다. 카렌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안도하면서도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아무튼, 무사해서 다행이다.
“두 사람 괜찮아?”
─넵! 괜찮아요!
“어쨌든 우리가 왔으니까 안심···. 으앗!?”
두 사람을 안심시키던 카렌이 돌연 비명을 질렀다. 네토루가 갑자기 조정간을 잡아당기더니, 그의 마력이 아랫배를 꾹 누르듯 강하게 밀려 들어온 탓이었다.
“카렌. 아직 정리 안 끝났으니까 집중해.”
“으응···. 미, 미안.”
갑자기 확장된 마력 패스 때문일까. 마력 신경계가 욱신거린다. 그러면서도 나직한 음성으로 꾸짖는 네토루의 목소리에 카렌은 얼굴을 붉혔다. 그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잠시 긴장이 풀렸다.
조금만 늦었으면 죽었을지 모를 쿄쿄와 페르아를 살렸다는 사실에 너무 안도하고 만 것이다.
“페르아, 쿄쿄. 조금만 버티고 있어. 얼른 정리하고 올 테니까.”
─네!
두 사람에게 그리 말한 네토루는 주변에 있던 버그들을 마저 정리하기 시작했다.
포탄과 총탄이 빗발치는 곳에서,
여느 때처럼 그는 버그의 움직임을 예측하듯 한발 앞서 움직이며 차례차례 적들의 숨통을 끊었다.
그 움직임은 단조로우면서도 차분했다.
카렌은 그런 그가 최대한 전투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의 마력을 소화하는데 집중하면서도, 내심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이 녀석, 역시 어른이구나.
방금까지 카렌은 버그들에게 강한 적의를 느끼며 아이처럼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지만,
네토루는 전혀 달랐다.
폐허로 변해가고 있는 도시와 무수한 시체들,
그리고 아슬아슬했던 부대원의 위험 속에서도 네토루는 단 한 번도 차분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카렌은 그 모습이 정말 신기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낯설었다. 사실 그동안 커플링 파트너를 진정시키는 건 카렌의 몫이었으니까 말이다.
원래 이런 식으로 카렌은 커플링 파트너에게 지적당하기보다는, 반대로 지적하는 입장이었다.
나츠오, 그 녀석과 커플링 하다 보면 항상 고삐를 손에서 놓지 않도록 집중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인가 무리하고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 네토루 이 녀석은, 툭하면 나츠오처럼 무리하는 듯하면서도.
흔들림 없는 냉철함만큼은 잃지 않고 있었다.
무모하지만 냉철하다. 말이 안 되는 듯하지만 이런 성격 다른 두 성향이 자연스럽게 어울려져 있다.
이런 게 가능한 건 네토루가 그만큼 경험 많은 베테랑 파일럿이라 그런 걸까?
만약 그런 거라면 혹시 나츠오도 경험 많은 어른이 되면 이렇게 네토루처럼 성장하는 걸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순간 그러한 생각이 들 때쯤,
─후아! 네토루 형, 고마워요!
이윽고 무사히 버그들을 정리한 네토루는 페르아와 쿄쿄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여유를 가지며 다시 살펴보니 쿄쿄의 성기병은 기동 불능일 정도로 상태가 최악이었다.
전투 중에 몇 발이나 총탄에 맞은 것인지 성기병의 갑옷은 이곳저곳이 구멍이 나며 찌그러져 있었고, 성혈이 끊임없이 바닥에 흐르고 있었다.
심지어 왼팔은 포탄에 비켜 맞기라도 한 것인지 완전히 찢겨나간 상태였다.
어째서 이런 상태가 될 때까지 도망치지 않은 거지. 그 상황에서는 건물을 엄폐물 삼아 시간을 끄는 게 아니라, 도망쳤어야 옳다.
카렌이 문득 그러한 의문을 품을 때였다.
무언가 알고 있던 건지 네토루가 그 둘을 칭찬했다.
“페르아, 쿄쿄. 두 사람 모두 잘했어. 도망치지 않고 잘 버티고 있었네.”
─···헤엣. 덕분에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쿄쿄가 쑥스럽다는 듯이 맑게 웃더니, 페르아가 반쯤 부서진 성기병의 팔을 치웠다.
그러자 그 뒤로 어린 애들 두 명이 겁에 질린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게 보였다.
아···. 애들을 지키고 있었구나.
그래서 이 두 사람은 도망치지 못하고 이렇게 포위당하고 있던 건가. 죽을지도 모를 위험에도 두 사람은 꿋꿋하게 애들을 지켰던 것이다.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다른 성기병들도 이곳에 올 거야. 그러니까 지키고 있던 애들 데리고 뒤로 빠져. 마침 우리가 여기까지 오면서 버그들은 다 정리해놨으니까.”
──네!
페르아와 쿄쿄가 씩씩하게 대답하였다. 방금 전에 죽을 뻔했음에도 두려운 기색 하나 없다. 덕분에 카렌은 그런 둘을 보며 무심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말았다. 친동생들 처럼 귀여운 애들이었다.
2.
새벽이 가시고 아침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곳저곳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검은 연기가 도시의 암울한 상황을 적나라게 보여주는 듯했다.
“······”
그런데 이건 착각일까. 나츠오는 고개를 들었다.
왠지 모르지만, 이 주변에서 계속 울리던 포성이 조금은 잦아든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주변의 소리에 의식을 집중해보았다. 몸 안에 구축한 마력 신경계를 활성화하고, 인간의 감각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린다.
여성 파일럿은 불가능한, 오로지 인간의 육신을 단련하는 남성 파일럿들만이 가능한 재주였다.
이윽고 주변의 전투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나츠오는 곧 답을 내렸다.
이건 착각이 아니다.
시야를 가리는 도시 건물들 때문에 전장의 흐름은 알 수 없지만, 확실히 아까보다는 포성이 잦아들었다. 게다가 스파이더 특유의 시끄러운 발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게 되었다.
혹시 페르아와 쿄쿄가 버그들을 해치운 걸까?
‘···아니, 그 두 사람으로는 안 돼.’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나츠오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페르아와 쿄쿄의 실력을 알고 있다. 그 아이들의 실력으로는 이 주변에 있는 버그들을 정리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면 누가?
순간 그것이 궁금해졌지만, 어쨌든 상황이 좋아졌다니 됐다. 나츠오는 하던 일을 계속하였다.
“대피소는 이쪽이에요. 모두 따라오세요!”
건물 잔해에 깔렸던 탓에 몸이 성치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덕분에 생각보다 이동하는 시간이 지연되고 있었다. 원래라면 지금쯤 지하에 있는 대피소에 도착해야 했는데 말이다.
하지만 누구 하나 버리고 갈 수 없다. 나츠오는 환자를 부축하며 이동하는 시민들을 데리고, 제일 선두에서 버그들의 움직임을 확인하였다.
어차피 이제 거의 다 왔다.
벙커 형태로 만들어져 있는 그곳이라면 버그들도 어떻게 접근할 수 없을 터.
이제 시청 근처의 큰 도로만 넘으면 도착이다···.
그렇게 나츠오는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은 채 버그들의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키리릭?
“······!”
버그 특유의 기괴한 울음소리.
그것을 듣는 순간 등줄기로 오싹한 한기가 가로지르는 걸 느끼며, 나츠오는 곧바로 고개를 쳐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침투형 센티페드.”
나츠오의 시선이 닿은 그곳에서는 지네 형태의 괴물이 건물 벽면을 타고 드러내고 있었다.
설마 계속 따라오고 있던 건가?
침투형 특유의 소리 없는 움직임 때문에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빌어먹을. 어떻게 해야 하지.’
나츠오는 이를 악물었다. 따라오던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러댔다.
“으, 으아악! 버그다!”
“아, 안돼! 주, 죽기 싫어!”
제대로 걷는 것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절반이었다. 이러다가는 전부 죽는다.
그렇기에 고민은 짧았다.
여기서는 내가 미끼가 되어야 한다.
가슴 안쪽으로 두려움이 샘솟았지만, 나츠오는 애써 억누르며 따라오던 피난민들에게 말했다.
“제가 미끼가 될 테니까, 모두 먼저 가···.”
하지만 나츠오가 그 말을 끝내기도 채 전이었다.
───키에엑?
벽면을 따라 움직이던 침투형 센티페드가 비명을 지르며 멀리 나가떨어졌다.
······지금 무슨 일이?
쿠우웅···. 그때 들려오는 커다란 발소리.
나츠오는 자신의 등 뒤로 늘어서는 성기병의 그림자를 발견하고서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곧 그의 눈동자에 반가운 듯하면서도 정체 모를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원래라면 자신이 타고 있어야 했던,
카렌의 성기병이 눈앞에 있었으니까.
이윽고 카렌의 성기병에서 낯선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꼬맹이. 괜찮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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